위성으로 따라가본 서유럽 여정.
서유럽 5개국 여행경로.
영국 런던의 버킹검궁.
런던 트라팔가 광장의 서남쪽에 위치한 버킹검 궁전은 영국 입헌군주 정치의 출발점이자 중심지라고 할 수 있다.
1703년 건축되었을 때는 애초 셰필드 공작의 저택으로 이용되어 왔다.
1761년 조지 3세가 이를 구입한 이후 왕실 건물로 편입되었으며 건축가 J. 내시에 의해
개축됐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여러 왕궁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다.
건축가 J 내시는 대리석을 사용해 아치형의 입구를 만듦으로써 인상적인 건물로 변모시켰다.
1937년 빅토리아 여왕이 즉위한 이후 여왕이 상주하는 궁전이 되기 시작했다.
그 후 계속적인 증개축이 시행되었는데, 1946년 E.블로어, 1913년 A.웨브가 동쪽 옆면을 증개축하면서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었다.
런던의 웨스트민스트사원.
웨스트민스터 대사원은 13세기 이후에 영국 왕의 무덤이었으며 대관식장이고 왕가의 결혼식장이었다. 10세기에 지어졌지만 현재 프랑스의 영향을 받은 고딕 건축양식은 1245년 헨리 3세의 명령으로 건축이 시작되었다. 웨스트민스터 궁은 16세기까지 왕이 거처한 궁궐이었는데 바로 길 건너 웨스트민스터 대사원은 왕실 직속의 특수 교회이다. 교회 안에 묻혀 있는 역대 왕만 해도 17명이 넘는다. 공식 명칭은 '웨스트민스터에 있는 성 피타교회'요 애비라고 부른다. 애비는 웅장한 미관이 세계적이다. 길이 1백56m 너비 61m 그리고 높이 31m이니까 규모에 있어서도 세계적이다.
정문에 들어서 몇 발자국 가면 녹색 대리석에 새겨진 처칠경의 기념 석판이 깔려 있음을 본다. 워낙 큰 글씨로 '윈스턴 처칠을 기억하라(remember winston churchill)'의 세 단어가 새겨져 있어 금방 눈에 뛴다. 처칠 기념비석의 왼쪽에 애틀리, 맥도날드, 베빈 등 노동당 및 노동운동지도자의 기념비들이 바닥에 깔려 있고 몇
발자국 더 가면 아프리카 탐험가요 기독교 전도에 심혈을 기울인 리빙스톤의 묘가 나타난다. 성가대석 오르간 왼편에는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턴의 묘비, 좀더 들어가면 노예해방의 선구자 윌바포스의 이름이 보인다. 제단의 좌측, 북쪽 입구까지는 대영 제국을 건설했던 대재상들. 피트, 파마스톤, 카닝, 디즈레일리, 글래드스톤, 피일 등의 기념비가 몰려 있다. 여기에는 영문학을 빛낸 시인 작가를 비롯하여 예술가들이 망라되어 있다. 영문학의 원조 초오서의 묘비를 비롯하여 롱펠로우, 블레이크, 드라이든, 바이런, 밀턴, 엘리어트, 그레이,
존슨 박사, 세익스피어, 워즈워스, 골드스미스, 키플링 등의 묘비, 기념비 아니면 석상이 모셔져 있는가 하면
개릭(연극인), 아빙(연극인), 헨델(음악가)등의 이름도 보인다.
TOWER BRIDGE (타워 브리지)
다리는 1886년부터 1894년까지 8년간에 걸쳐서 지었는데, 당시만 해도 영국은 빅토리아여왕 시대로
대영제국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기여서 전세계의 무역량의 41%가 런던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부산 영도다리처럼 올라가는 다리로서 길이가 270m이고, 당시 돈으로 118만4천파운드의 비용을 들여서 지었다는 아름다운 다리이다.
THE TOWER OF LONDON (런던 탑)
런던탑은 노르만디의 정복왕 윌리엄(William the Conqueror)공이 1066년 잉글랜드를 정복한 후에 런던의 사수와 런던 시민들을 위압하기 위하여 지어졌다. 1078년 본성이 화이트 타워(White Tower)가 축조되었고 그 후 13세기 후반 에드워스 1세 때 지금의 규모로 확장되었다.
이 성은 윌리암공의 본래 목적 이외에도 화폐제조창, 동물원, 감옥소, 사형장, 병기창, 천문대(그리니치 천문대의 전신) 등 다른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되었고,
16세기초 제임스 1세때까지 궁전으로도 사용되었다. 화이트 타워는 높이 27m에 벽의 두께는 하부가 5m. 상부가 4m나 된다 입구는 2층에 있으며 지상에서 나무 계단(유사시 파괴됨)을 통해서만 출입할 수 있다.
타워 안에는 런던에서 가장 오래된 성 존스 채플(St. John's Chapel)과 갑옷, 투구, 그리고 무기들이 시대별로 전시되어 있다. 천일의 앤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헨리 8세의 두 번째 부인 앤 왕비가 처형당한 타워 그린에는 처형된 사람들의 이름과 처형 일시가 표시되어 있다.
앤여왕을 포함한 1,500여구의 시체는 타워 그린 뒤에 보이는 교회(St. Perter ad Vincula)주위에 매장되었다 한다.
비프이터스(Beef Eaters)라고 불리우는 이 성의 경호원들은 1485년 헨리 7세에 의해 창설되었으며, 지금은 준사관 이상이 퇴역 군인 중에서
선발된 41명이 성안에서 가족과 함께 기거하며 근무한다. 쥬윌 하우스(Jewel House)에는 10 무게의 금실로 짠 대관복을 비롯하여 세계에서 제일 큰 530캐럿의 다이아몬드, 왕실 소유의 집기, 왕관, 보검 등을 볼 수있다.
현재 엘리자베스 여왕이 사용하고 있는 3,250개의 보석들이 박혀 있는 임페이얼 스테이트 크라운(Imperial State Crown)도 이 안에 전시되어 있다. 이 성안 명물 조의 하나는 닭만큼이나 큰 까마귀이다. 성안에는 항상 6마리 이상의 까마귀가 사육되고 있으며, 만일 까마귀가 모두 이성에서
떠날 경우 성이 붕괴되고 왕조가 몰락한다는 전설이 있어, 까마귀를 날지 못하게 하여 기르고 있다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
프랑스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 끝 12개의 방사상 대로의 중심부인 샤를 드 골 광장(1753~1970년에는 에투알 광장이라 했음)
한복판에 세워져 있는 전승기념 구조물이다.
1806년 나폴레옹의 명으로 장 샬그랭과 장 아르망 레몽이 설계했고, 나폴레옹이 죽은 후인 1836년에야 완성되었다.
이 개선문은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을 본떠 만들었는데, 그 높이와 너비는 2배 크기이다.
프랑수아 뤼드가 전면에 조각으로 장식해놓은 '1792년 용사들의 출정'(일명 라 마르세예즈 La Marseillaise)이 유명하다.
개선문의 안쪽 벽에는 각 전투에 참가했던 600여 명의 장군이름이 새겨져 있고,
그 안의 자그마한 미술실에는 개선문의 역사를 말해주는 그림·사진·모형 들이 진열되어 있다.
전망대로 올라가면 앞으로는 콩코르드 광장·루브르 궁이 보이고, 뒤로는 라 데팡스가 보인다.
개선문의 바닥에는 무명용사묘가 설치되어 '영원한 불길'이 언제나 타오르고 있다.
빠리의 루브르 박물관.
루브르 박물관은 13세기초에 성채로 건립되었다. 한때 주인 없는 성으로 방치되어 있다가 16세기 때 프랑스와 1세가 르네상스 양식으로 재건하여 다빈치의 (모나리자), 티치아노, 라파엘로 등 이탈리아 거장들의 작품 12점을 모은 것이 미술관의 시초이며 그 후 17세기 루이 14세 때 약 2500여 점이 루브르 궁전에 장식되었다. 실질적인 미술관의 시작은 1793년 국민의회의 결정으로 일반인에게 공개된 때부터이다. 고대에서 19세기 전반까지의 작품들은 고대 아시아관, 고대 이집트관, 그리스와 로마관, 고대 오리엔트관, 조각관, 회화관, 미술 공예품관등 7개의 전시실로 나뉘어져 있다. 1981년 미테랑 대통령은 루브르(Louvre)박물관 전체의 건물을 박물관으로 사용하기 위한 '대 루브르 박물관(Grand Louvre)계획'을 발표하였다. 수많은 응모자가 있었지만 중국계 미국 건축가인 아이오밍페이(Ieoh Ming Pei) 의 설계안이 채택되었다. 이 설계안은 루브르 궁 뜰에 유리로 된 피라미드(Pyramid)를 설치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수많은 논란이 있었고 반대가 있었지만 1983년 공사는 착수되었다.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출입구를 하나로 통일하고, 1200년 카페 왕조에 의해 세워졌던 성곽을 발굴하며, 루브르 전체 보수를 시작하였다. 20억 프랑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이 투자되었다.
에펠 탑.
에펠 탑(프랑스어: La Tour Eiffel)은 1889년 프랑스 혁명 100주년 기념 박람회 계획의 일환으로 건축가인 귀스타브
에펠의 설계로 건축된 기념물이다. 에펠 타워(Eiffel Tower)로도 불린다. 1889년 5월 6일에 개관하였다.
아름다운 곡선의 미가 배어있는 건축물이며 1930년 크라이슬러 빌딩이 완공되기 전까지는 세계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다.
건축 : 1887년 - 1889년 안테나 :첨탑 324 m 지붕 300.65 m 용 도 : 관측, 라디오 및 TV 방송, 관광용
베르사유 궁전 [Palace of Versailles]
프랑스 일드프랑스주(州) 이블린현(縣)의 주도(主都). 파리의 남서쪽 22km 지점에 위치하며, 17세기 말~18세기에
부르봉 왕조의 궁전이 있던 곳으로 유명하다. 도시는 궁전을 중심으로 질서정연하게 도로가 뻗었고, 3줄의 아름다운 가로수가 있는 큰 도로는 절대왕정의 자취를 엿볼 수 있어 호화
찬란한 궁전과 정원을 중심으로 관광도시를 형성한다. 베르사유의 기원은 17세기 전반 수렵을 즐겼던 루이 13세가 고요한 마을에 불과
했던 이곳을 수렵장으로 만들고 작은 성(城)을 지은 것에서 비롯한다. 그 후 루이 14세가 1661년 건축가 르보, 실내장식가 르 브룅, 정원
예술가 르 노트르 등을 초빙하여 궁전을 짓고 1672년 왕궁이 이곳으로 옮기자, 왕국의 수도로서 정치·문화\·사교의 중심이 되었다. 루이 14세 시대는 황금시대를 이루었으므로 베르사유의 명성은 높았으며, 빛나는
고전주의 문화의 전당(殿堂)으로서 자리잡았다. 후에도 증축·개축되었으나 프랑스혁명 초에는 혁명의 무대가 되어 도시는 황폐화되었다. 1837년의 왕정복고 후 왕궁은 L.필립에 의하여 박물관이 되었다. 역사적으로 기록할 만한 것은 1871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프랑스가 패배한 후 프로이센 왕(王)이 독일 황제로서의 즉위식을 이
궁전에서 거행한 것, 제3공화정 초기의 의회가 열렸던 것, 1919년 6월 28일 제1차 세계대전 후 강화조약의 조인(調印)이 이루어졌던 것
등이다. 정원(庭園)은 전형적인 프랑스 정원으로, 기하학적으로 구성된 데다가 수로(水路)와 샘물이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으며, 자연을
인간의 예술에 복종시키려는 서구사상(西歐思想)을 엿볼 수 있다. 주변에는 루이 14세의 별궁이었던 대(大)트리아농과 마리앙투아네트가 거주했던 소(小)트리아농이 있다. 원래 루이 13세가 지은 사냥용 별장이었으나, 1662년 무렵 루이 14세의 명령으로 대정원을 착공하고 1668년 건물 전체를 증축하여 외관을 가로축 부분이 앞으로 튀어나온 U자형 궁전으로 개축하였다.
1680년대 다시 커다란 건물 2동을 증축하고 남쪽과 북쪽에 별관과 안뜰을 추가하여 전체길이가 680m에 이르는 대궁전을 이루었다.
웅프라우요흐.
인터라켄은 융프라우(Jungfrau) 지방 입구에 있는 마을이다. 툰(Thun) 호수와 브리엔츠(Brienz) 호수 사이에 있어 인터라켄 (호수의 사이라는 의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19세기에 성행한 이탈리아인들의 여행 열풍의 영향이 짙게 남아 마을 전체가 호반의 리조트 분위기를 띄고 있다.
오스트(Ost)와 베스트(West) 2개의 역이 있으며, 그 사이의 메인 거리를 일직선으로 걸으면 20분 정도 걸린다.
등산 철도는 모두 오스트 역에서 출발하며 웅프라우요흐까지 올라 갈려면 기차를 두번 갈아타야 한다.
차비는 왕복 120유로, 우리나라돈으로 약 20만원정도이니 비싼편이다.
마지막 갈아타고 웅프라우요흐 정상까지 올라가면서 중간에 두번 정차를하는데 산을 바라보는
전망이 좋은곳에 약 5분간씩 정차를 하게된다. 그 첫번째 전망대 해발 2,865m에 있는 Eigerwand 이다.
그 두번째 전망대 해발 3160m에 있는 Eismeer 이다.
기차가 올라갈수있는 유럽에서 제일높은 웅프라우 역은 해발3,454m의 위치에 있다.
시설모두가 지하에 있어 눈과 바람으로부터 보호받고있다.
융프라우요흐를 오르는 톱니바퀴기차는 14년에 걸쳐 아이거와 뮌히를 관통하는 터널 작업으로 완성되었다.
제일 높은곳에있는 시설은 해발 3,571m 스핑크스 전망대이다.
등산열차로 3,454m 까지 웅프라우 지하역까지 올라가서 다시지하통로로 이동하여 엘리베터로 108m를 올라가서
스핑크스 전망대에 도착하여 몇층을 또 걸어서 올라가면 옥외 전망대 해발 3,571m 가 된다.
유럽 최정상에 위치한 레스토랑에서 멋진 식사를 즐길 수 있으며 얼음궁전, 스핑크스 테라스를 관광 할 수 있다.
특히 전망대 스핑크스 테라스로 나서면 쌓여 있는 눈에 반사되는 눈부신 빛속에서
웅장한 그 자태를 드러내는 융프라우 영봉과 크고 작은 빙하를 볼 수 있다.
이탈리아 여행경로.
밀라노의 두우모성당.
밀라노의 가장 뛰어난 기념물은 두오모 대성당으로 고딕 건축의 걸작이다. 이것은 현재 유럽에서 3번째 크기의 교회로 2만 명을 수용할 수 있다. 1386년에 시작되어 5세기에 걸쳐 완성되었는데, 한때 산타테클라와 산타마리아마조레 교회가 있던 자리에 세워졌다.
두오모 (Duomo)는 도시 중심부에 있는 두오모 광장과 접해 있는 흰 대리석의 대성당으로서 길이 157m, 폭 92m, 높이 108.5m로 성당으로는 바티칸의
산 피에트로 사원에 이어 세계 2번째의 규모를 자랑한다. 특히 135개의 뾰족한 첨탑과 3159개의 성자와 사도들의 조각군은 이 성당의 멋을 더해 주고 있다.
이 곳은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고딕 건축 양식으로, 1386년 비스콘티 공작의 명에 따라 공사가 시작되어 450년 후인 19세기 초에 완성되였다. 내부에는 거대한 52개의 열주가 늘어선 광대한 공간이 있고, 15세기 때의 작품인 스테인드 글라스가 인상적이다.
오른쪽에 있는 엘리베이터나 계단으로 옥상까지 올라갈 수 있는데, 맑은 날은 알프스 산맥까지 볼 수 있다고 한다.
장 가레아초 비스콘티의 예술 진흥 정책에 의해 한 무명 건축가가 짓기 시작한 두오모 성당은 1805년 성당의 정면이 완성되었고, 1858년에는 첨탑이
완성되었으며, 1906년부터 두오모 입구의 청동문과 대리석 부조 작업을 시작해 1965년이 되어서야 전체적인 완성을 볼 수 있었다.
내부에는 16세기에 만들어진 스테인드글라스의 색색의 빛깔이 감탄을 자아내며 리프트나 계단을 통해 135개의 첨탑이 하늘을 찌르고 있는
전망대에 올라 밀라노 시내를 감상할 수 있다.
특히 135개의 뾰족한 첨탑과 3159개의 성자와 사도들의 조각군은 이 성당의 멋을 더해 주고 있다.
밀라노의 비토리오 엠마뉴엘 2세 갈렐리아.
레오나르도 다빈치 상과 라 스칼라 극장을 지나면 나오는 비토리오 엠마뉴엘 2세 갈레리아.. 갈레리아는 이태리어로서 터널이라는 뜻이란다. 1865년부터 1877년까지 13년에 걸쳐 완공된 터널형 아케이드. 유리로 장식된 높은 돔형의 천장과 모자이크로 장식된 바닥이 멋진조화를 이루고 있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갈레리아는 거대한 십자길로 하늘이 보인다. 명품을 지르고 싶으면 쇼핑가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갈레리아로 가서 유명 브랜드가 몰려 있는 몬테 나폴레오 네거리를 쏘다니면 신상품이 많이 진열되어 있다. 비토리오 엠마뉴엘 2세 갈레리아 에서는 어디에서나 명품샵과 까페가 가득하다.
지금부터 약 130년 전에 건설한 비토리오 엠마뉴엘 2세 갈레리아는 지금도 그화려한 모습을 전세계 관광객에게
자태를 뽐내고 있으며, 그 시설을 이용한 이태리 명품 상가들이 밀집한 이곳은 관광객의 주머니를 노리고 있는듯 하다.
통로 양쪽으로는 멋진 카페와 레스토랑 부띠끄 등이 줄지어 있다.
두오모 앞에 있는 두오모 광장은 밀라노 시민들의 휴식장소로 애용되고 있는데 광장 중앙에는 비토리오
엠마뉴엘레2세 기념상이 서있고,갈레리아라는 아케이드가 광장 주위를 감싸고 있다.
물의도시 베네치아.
이탈리아 북부 베네토 지방과 베네치아 주의 행정중심지이자 주요해항. 한때 지중해 전역에 세력을 떨쳤던 해상공화국의 요지였고, 오늘날에는 주로 운하·예술·건축과 독특하고 낭만적인 분위기로 알려져 있다.
유서깊은 베네치아 시는 북동쪽에서 남서쪽까지 약 51㎞로 뻗은 초승달 모양의 석호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다. 이 도시가 세워져 있는 작은 섬, 진흙습지, 길이 3㎞, 너비 1.5㎞의 모래언덕들이 군도를 이룬다.
베네치아에 있는 많은 운하는 118개 섬 사이를 이어주는 수로역할을 한다. 이 섬들 사이로 중심 수로인 그란데 운하가 2개의 넓은 만곡부 주위를 흘러 도시를 통과한다. 너비 37~69m이며 평균수심이 2.7m인 그란데 운하 주위에는 많은 대저택, 교회, 해상주유소 등이 있다. 베네치아는 13세기중반에 내륙의 페라라(Ferrara)를 점령하여 포(Po)강 유역의 상권을 장악한데 이어서, 14세기말까지 지속된
제노바와의 전쟁을 통해 대내외적인 지배체제의 반석을 다지고, 다른 한편으로는 두칼레 궁전(Palazzo Ducale) 등의 수많은
건축물을 완성함으로써 15세기에는 이탈리아 반도의 명실상부한 주역으로 등장하였다.
베네치아의 산마르코광장과 성당.
산마르코광장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공 광장 가운데 하나로 광장의 한쪽 끝에는 아름다운 산마르코바실리카와 베네치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인 유명한 종탑이 잇다. 지금의 종탑은 8세기에 지어진 원형을 모방해서 20세기에 세로 지은 것으로 1902년
무너져버렷다고 한다. 종탑꼭대기에 올라가면 불가사의 할 정도로 멋진 광경를 볼수있다. 날씨가 맑은 날이면 돌로마이트 산의 희미한 윤곽이 보이기도 한다
베네치아의 여러 광장 중에서 Piazza라고 이름 붙여진 유일한 광장으로 일찍이 나폴레옹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
격찬한 곳이기도 하다. 광장 주위로 하얀 대리석의 열주가 늘어서 있는데 광장 동편으로 베네치아의 상징인 산 마르코 대사원을
비롯해 두칼레 궁전, 박물관 등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광장에는 수많은 비둘기 떼가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노천 카페에서는 악단이 달콤한 연주를 들려준다.
쏘렌토만 부근의 여행 경로.
아름다운 나포리항.
로마 중심부.
로마의 콜로세움.[Colosseum]
플라비아누스 황제 때 세워진 것으로 원래는 플라비아누스 원형경기장이라고 불렸다. 70~72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때 공사를 시작해
80년 티투스 황제 때 100일간의 경기가 포함된 제전을 위해 공식적으로 헌정되었다. 82년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최상층을 덧붙여 공사를 완성했다.
콜로세움의 야경콜로세움(Colosseum)은 고대 로마 시대의 건축물 가운데 하나로 로마 제국 시대에 만들어진 원형 경기장이다. 콜로세움은 네로 황제의 황금 궁전(도무스 아우레아)의 정원에 있던 인공 호수 자리에 세워진 것이다.
정식으로는 ‘플라비우스 원형극장(圓形劇場)’이라고 한다. 플라비우스 왕조 때 세워진 것으로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착공하여 80년 그의 아들 티투스 황제 때에 완성하였다. 중세에는 ‘거대한 건축물’이란 뜻으로 쓰였다. 제정기(帝政期) 로마의 복받은 로마 시민의 오락시설로서,
여기에서는 글라디아토르(劍鬪士)의 시합, 맹수연기(猛獸演技) 등이 시행되었다.
직경의 긴 쪽은 188m, 짧은 쪽은 156m, 둘레는 527m의 타원형이고, 외벽(外壁)은 높이 48m로 4층이며, 하단으로부터 도리스식(式)·이오니아식·
코린트식의 원주(圓柱)가 아치를 끼고 늘어서 있다. 내부는 약 5만 명을 수용하는 계단식 관람석이 방사상(放射狀)으로 설치되어 있다.
콜로세움의 명칭은 근처에 네로의 거상(巨像:colossus)이 있었던 데에 유래한다.
티투스는 등극하기 전인 70년에 이스라엘 왕국과의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고 10만 명의 포로를 데리고 귀환하였다.
그 중 4만 명을 동원하여 콜로세움을 건축했다는 전설이 있다.
콜로세움은 검투사들끼리의 싸움이나 맹수들과의 싸움을 시민들에게 구경시킴으로써
한편으로는 일체감과 애국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포심을 심어주기 위한 정치적인 목적으로 건립되었다.
콜로세움은 608년까지는 경기장으로 사용되었지만 중세기에는 군사적 요새로 이용되다가
그 이후에는 성당이나 궁전 등의 건축에 사용될 자제의 제공 터가 되었다.
베드로성당과 광장.
베드로 대성당은 처음 완공되던 349년부터 현재까지 세계기독교의 성지순례장소로서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것은 이곳에는 사도 베드로를 비롯하여 초기 로마 교회의 순교자들 무덤이 안치되어 있고,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인
헬레나 성녀가 예루살렘에서 직접 가져온 십자가와 베로니카 성녀의 수건, 그리고 그리스도를 찌른 창들이 보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베드로광장은 베르니니가 1656년에서 1667년까지 11년에 걸쳐 양쪽 회랑을 포함하여 세운 것이다.
광장은 그 폭이 246미터, 광장의 입구에서 대성당의 입구까지의 길이가 300여 미터나 되며, 전체 회랑에 세워진 원주형
기둥이 284개, 사각으로된 기둥이 각각 네 줄로 88개가 세워져 있으며, 회랑 바닥에서 천정까지는 그 높이가 16미터나 된다.
그 위에 140개의 대리석상( 당시의 성인, 교황들의 모습으로 구성되어 있고, 석상 하나의 높이는 3.24미터임)이 세워져 있다.
Concertp for Violin and Orchestra No.2 in D major k.211 Mozart, wolfgang Amadeus (1756-1791 Aust.) Takako, Nishizaki: Vio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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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멋진 사진에 좋은 설명, 수고했다. 새삼스럽네.
현장에서는 그냥 지나쳤는것도 찍어온 사진과 인터넷 자료를 검색, 수정 편집하면서 역사공부를 많이 했단다. 몇군데 인터넷에 올려놓았는데 반응이 꽤 좋은편이란다.
아름다운 세계의 여행을 두루 다니시는 대 선배님의 여유로운 삶에 부러운 맘도 느끼고 존경의 박수를 보냅니다...가만히 앉아서 가고 싶은 곳 여행 잘 하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