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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자의 몸으로 11년간 수상의 위치에 있었다는 점이 새롭다. 정말 엘리자베스1,2나 빅토리아 여왕 때문에 여자통치자에 대한 반감이 없는건지 궁금하다. 영국의 여성 통치자들은 정말 강한 신념을 가지고 나라를 위해 산것 같다. 대처는 너무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던 것이 흠이지만 정말 그녀가 변화를 모색하려 불도저처럼 밀고 나간것은 대단한 추진력이다. 이카루스의 아버지는 이카루스에게 날개를 달아주며 '너무 높게 날지도 너무 낮게 날지도 말라'라고 했다는데 결국 너무 높게 날아버린 대처는 결국 이카루스처럼 추락해버리고 말았다. 물론 인두세나 국적법이나 부정적으로 보이는 것들도 많이 만들었지만 다시 한번 왕국의 힘을 보여준 리더가 아닐까 싶다. 전통을 지키면서 혁신을 일으키는 나라에서 대처의 너무 빠른 변화는 영국인들에게 부담스러웠을 듯 싶다. 한국의 대통령을 하면 어울릴 것 같은 여자, 대처. 우리 나라도 핸드백을 휘둘르며 no,no,no!를 외치는 강인한 여성상이 지도자가 되는 날이 올까? | 2011-11-07 19:27:2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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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he unique phenomena about this prime minister is that she won an election voted by the people in her own right regardless of the circumstances how she became a party leader which is not any different from other party leaders in the Westminster system . People voted for her knowingly that she is unmarried woman having a living relationship with a man and above she is not religious. So I'm just curious would other members vote for such candidate as she does not conform to the ideal candidate (such as a family man or someone who goes to church). But yes, I do sort of understand how this "iron lady" became a favorite amongst the English because of her precision and harshness. | 2011-11-08 08:46: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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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녀의 행적들을 보니 연약해보이는 얼굴과는 달리 강인하고 거침이 없다. 그리고 영국령 포클랜드 섬을 탈환하기 위해 전쟁까지 마다하지 않았다니 여자 대장부같다. 그래서 인터뷰에서 걸죽하면서 허스키한 남자목소리로 말하는 걸 기대했는데 그냥 그 나이때의 보통 아주머니들과 같은 평범한 여성의 목소리여서 조금 실망(?)했다. 만약 그녀가 우리나라의 지도자라면 어떨까 생각해보았다. 국영기업을 민영화시키고 더군다나 성, 신분, 소득에 관계없이 내야하는 인두세 납세를 추진했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엄청난 비난을 받았을 것이다.그녀를 보니 서울시 전 시장이었던 오세훈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무상급식을 강력히 반대하다 사임한 그의 모습과 사회복지정책을 척결해야 할 문화로 보았던 그녀의 모습이 많이 닮아보였다. 상류층의 자식이 아닌 식료품점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보면 서민들의 처지와 마음을 다른 누구보다 더 헤아릴 수 있었을텐데 그녀가 내세운 정책들은 서민들을 너무 서럽게 만드는 정책이 아니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2011-11-08 14:54:1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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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은 사회주의적 정책 일변도로 인해 많이 기업이 국영화 되고 노동 조합이 강화되어 생산성이 크게 저하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인플레이션은 갈수록 악화되었고 대처가 수상에 취임할 무렵에는 5대 국영기업에서만 매주 2백만 파운드씩 적자를 내느 형펴니었다고 합니다. 이후로 그녀가 실시한 일련의 정책들인 공기업사유화, 노조에 대한 강걍책, 금리 인상을 통한 인플레이션 억제 정책들이 확실히 영국 경제를 부흥시켰으며, 시장 자유화 와 신 자유주의 경제의 성공적 모델은 사회주의 국가들에게 본을 보여 냉전체제를 붕괴시키는데 크게 기여한 것이 커다란 성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영유권을 둘러싼 아르헤티나와의 분쟁에서도 강경책을 관철시킴으로서 '강한 나라 영국'을 다시금 부각시켰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그녀의 자본주의 논리는 큰 번영을 가져왔지만 번영의 그늘에 가려진 약자들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사회복지의 축소, 노조 약화, 부분적으로 실시한 지방자치세의 인두세화 등은 거센 비난 여론을 가져왔고 집단시위 및 과격한 폭력사태로까지도 이어졌습니다. 그녀가 몸소 보여주었던 의지력, 그녀를 철의 여인이으로 만든 진취력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배워야 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데처 수상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어떤 날이 만족스러운가 생각해보라,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빈둥거린 날과 할 일이 많았는데 다 해치운 날과' 그녀는 배경이나 집안이 뛰어났던 것이 전혀 아닙니다. 대신 꾸준한 노력과 불굴의 의지, 끊임없는 끈기가 그녀를 영국의 수상의 자리에 올려 놓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녀의 정책과 노선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입장을 가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강력한 내적 능력은 모두가 인정할 것이며 그 가장 밑바탕에는 노력이라는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2011-11-08 14:58:4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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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인적으로 좋게 평가하는 정치인 중에 한분입니다. 여자 답지 않게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고, 그녀의 머리속에 있는 것은 실행에 옮길 정도로 강력한 추진력을 가지고 있었다. 거기다 아르헨티나와의 포클랜드 제도를 두고 영국본토와 멀리 떨어진 포클랜드 제도에서의 포클랜드 전쟁을 치뤄 당당히 이겨서 포클랜드를 확고한 영국영토로 만든 '철의 여인'임에 확실하다. 어느 나라에 필요한 어느 시대에 이러한 저돌적인 정치지도자가 있어야 하는데 딱 맞게 영국의 단점을 치료하기에 딱 맞은 시대의 지도자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치매증상이 좀 있고 고령으로 평범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 | 2011-11-09 21:16:4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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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here there is error, may we bring truth. Where there is doubt, may we bring faith" 굳은 의지가 느껴지는 말이다. 성인의 말을 인용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믿음직하게 보이게 하는 느낌이다. 대처는 "철의여인"이라는 닉네임만큼 강한 정치인이었고 아직도 회자되는 정치적 아이콘 중 한사람이다. 대처수상이 행한 정책들은 당시의 영국병을 치유해 주었는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대처의 아이들"로 대변되는 많은 아이들을 또다시 앓게 만들었다. 대처수상 집권하에서 기초교육을 받으며 자라난 10대들은 정치에 대한 무관심, 흡연과 알코올 의존, 비합리적 경향 등을 특징적으로 보이는데, 그 이면에는 고실업으로 인한 자신들의 불확실한 미래와 급격히 증가한 부모의 이혼과 가족해체 등의 원인이 있었다. 이제 집권하지 않는 대처수상이 책임질 수도없는 대처의 아이들.. 신자유주의는 무한경쟁의 사회이고 도태되는 사람들이 당연히 생겨날거라는 것을 대처수상은 몰랐던것일까? 아니면 모르는척하고싶었던 것일까? 신자유주의정책의 명과 암이 확실히 보이는것 같아 씁쓸해진다. | 2011-11-09 21:37: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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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렬한 눈빛과 오똑한 코 그리고 굳게 다문 입술은 그녀의 결단력 있고 용기 넘치는 모습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신자유주의 이념을 모든 정책들을 추진하는데 투입시켰던 그녀에게 영향을 미친 사람은 부모님이였다. 식료품상의 딸로서 장사를 통해 이윤을 남기는 법을 배웠기에, 이윤과 생산성을 중시하던 그녀의 경영 방식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게다가 그녀는 아버지의 말씀, 특히 " 일을 시작하는 사람이 되기는 쉽다. 그러나 관철시키는 것은 더욱 어려운 법이다. 너는 일을 시작만 하겠느냐? 관철시킬 수 있는 인물이냐?"하는 말을 가슴에 담고 그녀만의 결단력과 추진력을 키워왔다. 고든 브라운도 그녀의 확신에 찬 신념을 높이 샀다. 그러나 그녀의 인두세 실시와 반유럽통합 정책은 그녀를 몰락시켰다. 장기집권을 하면서 국민의 뜻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 탓인지 계급간의 위화감을 조성하였다. 그녀는 분명 오만과 독선으로 사회 공동체 정신을 실현시키는데는 실패했다. 노조의 탄압과 인두세의 집행, 그리고 반유럽통합 정책에서 그녀의 이미지는 실추되었다. 그러나 남성 못지 않게 강인했고 결단력과 추진력 넘치던 그녀의 정치적 행보는 앞으로도 많은 이들이 기억할 것이다. | 2011-11-09 22:37: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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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말 말 그대로 확신에 찬 사람이었군요.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을 확실하게 알고 있지 못했다면 저렇게 확신에 찬 행동들을 할 수가 없었겠지요. 과감하게 변화를 시도하고 그것을 확신을 가지고 한 점은 참 배울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너무 확신이 지나쳐서 일까요, 융통성이 부족한 느낌입니다. 심지어 본인이 'Where there is discord, may we bring harmony'라고까지 말을 해놓고 결론은 조화와는 전혀 반대의 상황이 초래되었습니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는 속담이 우리나라에 있지요. 확신을 가지고 자신의 결정에 몸을 던지는 것도 좋지만 그 전에 먼저 자신의 결정에 대한 영향을 좀더 폭넓게 생각해보았다면 더 좋은 지도자로 남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2011-11-10 10:25:5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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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십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한나라의 수상직을 맡아온 여성 마가렛 대처, 비록 현대에 들어서 그녀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고 현재 나이든 몸으로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하나 한때 영국을 좌지우지하던 철의여인이다. 동영상 속에서 어느 것에도 기죽지 않을 듯한 그녀의 차분하고 당찬 목소리에서 그녀의 완고한 성격이 느껴지는 듯하다. 그녀의 통치 철학은 ‘대처리즘’이라고 불릴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1970년대 영국은 저성장/고실업, 저생산/고임금, 노조, 인플레이션 게다가 제정적자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당시 수상이 된 대처는 강력한 정책 추진력과 철저한 시장 경쟁 원리의 도입으로 영국 경제를 살리게 되는데 정치, 노조, 경제, 복지 전반에 걸친 개혁을 실시하였다. 이로써 볼 수 있는 대처리즘의 빛은 자유정신과 자유시장의 진정한 승리는 물론 복지지향의 정책으로 인기에만 매달렸던 영국 정부의 한없는 추락을 막고, 나아가 자본주의 기반의 영국 및 세계경제를 보다 안전하게 유지하도록 만드는데 크게 이바지 한 것이며 그림자는 집권 당시 경제 위기에서는 영국을 구해 냈지만 강력한 통화정책의 고수로 복지정책의 한계점과 문제점에 대해서만 이야기 할 뿐 가능성과 성과는 철저히 무시되어 최소한의 인간적 기본권, 약자들에 대한 국가적 의무도 경쟁의 원리로 대처 했다는 점이다. 요즘 유럽은 그리스 사태로 시끌벅적 하다. 자신들의 손으로 뽑은 소수의 정치가들이 얼마나 다수를 고통 받게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분명한 예인 듯하다. 그녀 또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융통성 없는 그녀의 정책이 국가적 위기를 넘기긴 하였지만 다수들에게 또다시 문제를 남겨 두었다. 하지만 온고지신의 정신을 지닌 영국이라면 이것조차 거울삼아 발전해 나갈 것을 의심치 않는다. 오히려 이와 비견해 훨씬 편협한 사고와 유연성 없는 정치로 민심을 잃어가는 우리나라의 정치판에도 후대에 웃으면서 이야기 할 수 있는 정치인이 한명 나왔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 2011-11-10 20:06:4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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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의 입장에서 정치와 경제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일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리더의 자리에 오른다는건 남성이고 여성이고 할 것 없이 모두의 신임을 얻는 다는것은 그 만큼 힘과 지지세력을 얻게 되지만 그 책임감의 무게는 생각할 수 없을만큼 무거웠으리라 생각됩니다. 대처 수상이 사임할때 흘린 눈물은 그 동안의 책임감의 무게를 내려놓게 되어서 홀가분함에 흘린 눈물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물론 자신의 신념으로 이끌었던 리더의 자리가 불명예스럽게 박탈되는것에 대한 서운함의 눈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그 강하고 굳세게만 보였던 대처 수상의 눈물은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가지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글에서도 나타 나듯이 리더의 자리라는 것은 정말 외로운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모두를 위해 책임감을 가지고 대중앞에 강한 의미지를 주기 위해 스스로를 단련하고 강하게 만들기 위해 행한 노력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힘겨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는 대처수상이 그러한 책임감에 물들어 정권을 놓치 못하고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자신의 뜻을 펼쳐보이려는 욕심에 사로잡힌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독재자의 이미지로 그녀의 카리스마는 변질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녀에게 배울 점이라면 강한 추진력 기존의 틀을 깨는 혁신의 생각들을 생각 할 수 있겠고 그녀의 퇴임으로 얻게된 교훈이라면 역시 "박수칠 때 떠나라" 라는 문구를 연상시키게 합니다. | 2011-11-11 13:13: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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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처주의의 빛은 마가렛 대처가 행한 정책으로 중앙정부의 힘을 강화하고 노조와 지방정부이 힘을 억제시키면서 개인주의와 사기업의 진흥을 활성화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부와 남부의 빈부격차가 심해졌고 경제적 소외계층들이 가난의 덫에 빠졌으며 실직을 하고 사회에 불만을 품은 홀리건들이 난동을 부리는 일이 잦았고 폭력 범죄가 증가되었다는 점에서 대처주의의 그림자 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마가렛 대처가 여성 총리로서 영국 정치를 이끌어간 위대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비록 그녀의 정치가 소외계층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지만 여성으로서의 위치와 개인으로의 위치를 상승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다는 점에서는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2011-11-12 00:25:5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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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처가 수상이었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빌리 엘리어트'를 보면 대처의 정책에 노동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를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영국광부들은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서 평생을 광부로 살아갔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다른 직업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광부들끼리 하나의 끈끈한 공동체를 형성하며 지냈다. 하지만 대처는 나라의 적자가 누적되자 수익성이 낮은 탄광들을 폐광하기로 결정하였고 노조의 파업을 무력화시켜 결국에는 승리를 하게 된다. 신자유주의자들의 입장에서는 통쾌한 결과였겠지만 영국의 노동자들에게는 큰 시련이자 아픔이었을 것이다. 또한 오랜 세월동안 유지해 왔던 공동체가 무너져 내리는 고통도 느꼈을 것이다. 마가렛 대처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가 개봉한다고 한다. 영화 제목은'The Iron Lady(철의 여인)'. 마가렛 대처역은 메릴 스트립이 맡았다.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이 영화에서는 마가렛 대처를 어떻게 그려낼지 궁금하다. | 2011-11-12 01:11:0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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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의 카리스마는 돈과 명예보다는 자신이 지닌 내면, 외면의 이미지로부터 발생한다" 마가렛 대처가 한 말을 보아도 그녀는 영국을 위하여 최선과 노력을 다하여 진심으로 정치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자유주의로 영국의 급격한 변화에 적응을 못하는 사람들과 불이익을 가진 사람들의 불만이 있었다 하더라도 전체적으로 그녀는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가 아닌 오직 영국을 위해서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대처가 정치를 할 당시에 인플래와 노사 분규로 인해 영국경제는 침체될 때로 되어있었는데, 이 시기에 뚝심이 있는 그녀가 재임을 했던 것이 영국에겐 크나큰 행운이라고 봅니다. 그녀의 뚝심때문에 많은 비판이 있음에도 영국경제를 살릴 수있었던 것 같습니다. 기나긴 재임기간 동안 그녀의 활약에 전 박수를치고 싶습니다. | 2011-11-13 18:16: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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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정치인들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듯, 마가렛 대처에 대한 평가 역시 다양하다. 그녀는 당시 영국병에서 벗어나는 데 일조했으며 경제부흥을 낳았지만, 빈부격차와 여러 사회 문제를 야기했던 만큼 애증의 존재임이 분명한 것 같다. 하지만 개인적인 입장으로는 대처리즘에 대한 재평가가 더욱 절실하다고 여겨진다. 당시 그녀의 정책이 영국의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주었지만, 장기적으로 본다면 그녀가 그토록 표방했던 신자유주의는 글로벌 경제위기의 원인으로 이어졌다. 그렇기에 개인의 독립성, 개인의 발전을 표방하는 그녀의 주장이 지금 세대에 다시 돌아본다면 여러 문제점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 2011-11-14 00:10:3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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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가릿대처는 특유의 카리스마, 결단력으로 신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정책들을 남겼다. 그리고 떠났다. 많은 사람들이 지도자가 꼭 갖춰야 할 자질로 카리스마와 결단력을 자주 언급하곤 한다. 물론 그것들이 부족해서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여 미미한 성과를 내면 어찌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겠는가? 맞는 얘기이긴 하지만, 지나치면 없느니만 못하다고, 자신의 신념과 다른 의견들을 수렴치않고 행한 정책들에 국민들이 겪고 있는 문제점을 보면 그녀가 재임기간 중 좀 더 소통을 향한 노력이 필요했단 아쉬움이 든다. 대처리즘을 표방하며 닮고자 하는 사람들은 카리스마와 성과 만큼이나 소통 역시 중요한 지도자의 능력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 2011-11-14 00:44:3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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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차대전이후 전쟁의 피폐함속에서 영국이 내건 정책이 이른바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어구로 유명한 베버리지 보고서이다. 빈곤자가 많아지고 그로인해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국민복지와 최저 생활권을 보장하려 했던 이 복지정책은 전후 피폐함으로 인해 러시아 처럼 왕권체제가 흔들릴 것을 대비하여 만들어진 정책이지만, 유럽의 많은 복지정책에 큰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이런 복지정책은 이후 많은 어두운 그림자를 낳게 되는데 너무나도 잘되어있는 복지로 인해 국가 재정이 파탄나고 국민들의 생산성 또한 하락되는 점이었다. 철의 여인이라 불리웠던 마가렛 대처가 수상으로 취임하는 시기가 마침 이 복지정책의 문제점이 극에 달해있을 때였고 자연스럽게 이 복지정책에 반하는 정책을 실시하게 되는데 이것이 대처리즘(신 자유주의)이다. 생산성과 효율성을 가장 큰 가치로 두고 개인의 경제활동, 즉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의 역할을 강조하려 했던 것이 핵심적인 정책의 골자였다. 지나친 복지로 인해 생긴 무기력한 '영국병'을 타파하고 국가 경제를 재건하려 했던 정책이었고 실제로 인플레이션을 극복하고 경기를 회복시키는데 일정부분 성과를 거두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빛에 가려진 그림자또한 있었다. 복지재정의 지나친 삭감과 노조활동에 대한 억압, 인두세의 부과등은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지나치고 잔인한 정책이었다. 결국 영국사회의 양극화 현상을 만들어냈고 영국 각지에서 대처리즘에 반발하는 노조의 과격한 반항과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의 물리적 충돌이 상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대처리즘이 낳은 이른바 여피족, 대처세대(고실업과 가정해체로 인해 무기력하고 정치에 무관심한 세대)또한 영국사회의 문제점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한다. 국가가 어려운 시기 자신의 신념과 정치적 노선을 뚜렷하게 내세워 카리스마 있게 정책을 집행하는 것은 국가의 정치적 수장으로써 필요한 부분이지만 소수의 힘없는 소외계층을 무시하고 탄압하며 전체에 의한 개인의 희생을 낳은 점에 있어서 대처의 신자유주의 노선은 결국 실패한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 2011-11-15 17:06:0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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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처리즘'이라는 말이 보편화 되어있을 정도로 마가렛 대처의 영향력을 상당하다고 볼 수 있다. 남성이 아닌 여성으로서 국가를 통치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특유의 카리스마와 남성다운 모습으로 남성 지도자 못지않은 확고한 지도력을 보여주었다. 대처가 정권을 거머쥐었던 당시 영국의 경제는 참혹 그 자체였다. 엄청난 재정 적자와 더불어 끊임없는 노사분규는 영국을 암흑의 구렁텅이로 빠져들 뻔 했다. 하지만 대처는 4차례의 노동법 개정과 더불어 기업의 활동 폭을 확대시키고 국영화된 사업을 민영화로 바꾸며 영국의 경제부흥을 이끌어 냈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인두세와 노조탄압이 생겨나게 되었고 대처는 많은 서민들의 비판을 받고 지도자로서의 명예가 실추당하게 된다. 그녀는 자기 자신에겐 상당히 엄격했던 반면에 나라를 정치하는데 있어서는 엄격함이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녀는 오직 신자유주의 사상에 입각해 못가진 자에 대한 배려심 없이 경제부흥을 일으키려고 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기존의 틀을 깬 여성으로서의 통찰력있고 카리스마있는 모습으로 11년동안 정권을 잡았다는 사실은 감탄할만하지만, 그 정권의 과정에 있어서는 낙제점을 줄 수도 있을만큼 편협한 사고방식의 정치를 해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 2011-11-16 20:43:5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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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가렛 대처는 물론 영국내에서는 대처를 평가하는데 있어서 다양한 시각차가 있겠지만 개인적인 입장에서 경제적인 관점으로 보았을 때는 그녀를 위대한 업적을 남긴 수상이라고 말하고 싶다. 최근 벌어지는 그리스식 경제위기의 모습을 보면 대처가 영국수상이 되지 않았다면 아마도 영국은 그리스처럼 붕괴의 위험까지 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가 추진한 공기업의 민영화, 누진세폐지, 긴축재정 등은 영국이라는 나라를 살리기 위해 그녀가 노력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많은 반대측 입장에 탄압을 받았겠지만 그녀는 그녀의 생각을 유지하고 이를 관철 시켰다. 이는 여자의 힘으로 여타 반대입장과 맞서서 자신만의 생각을 유지하고 노력을 하는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도 이를 유지 지속했다는 것은 본받아야할 자세라고 생각한다. 올 연말에 대처수상을 모델로 하는 영화가 개봉된다고 한다. 이 영화 속에서 그녀의 또다른 진실한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 2011-11-17 14:52:4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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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거릿 대처는 철의 여인이라 불리며 유럽최초 여성총리의 자리에 오른 여성이다.엄격한 도덕과 질서의 확립을 중시했으며 포클랜드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낼만큼 강인한 심장을 가졌다. 또한 과다한 사회복지 지출과 노사분규로 멍들어가던 70년대 영국 경제를 되 살려냇 점은 훌륭한 업적임에 틀림없지만 효율성을 중시하는 인두세 도입과 같은 신자유주의적 행보는 빈부격차를 심화시키고 경제적 소외계층들을 가난의 덫에 빠트렸으며 이에따라 사회적 폭력과 범죄가 증가하였다. 경제적 발전과 복지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지 못한것이 아쉬운 점이지만 그의 여성으로서의 카리스마는 아직까지도 후대에 큰 영향을 미치고 기억되고 있다. | 2011-11-18 16:44: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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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의여인”이라 불렸던 대처 수상도 엘리자베스 여왕처럼 카리스마 있고 굉장히 결단력과 추진력, 남성 같은 강단이 있는 여성이다. 보수파의 당수로서 활약을 했지만 그녀는 사회주의를 절대 신봉하지 않았고,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며 기존 정치와 사회질서에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새로운 질서를 구축시키고자 했다. 그녀는 나태함과 게으름, 의존성을 매우 싫어하여 부지런한 사회, 국가와 사회 전반에 걸쳐 안정된 질서를 세우고자 했다. 중간계급의 확대를 발판으로 사회 안정을 추구하고자 했던 그녀는 근면함과 자신들 스스로의 노력과 책임에서 우러난 성공과 돈벌이를 가치 있게 생각했다. 중간계층의 성장을 통한 신자유주의적 사회질서 구축엔 성공했지만, 사익 추구에서 나온 개인주의의 만연를 초래했고, 결과적으로 공동체 의식과 질서의 붕괴를 불러왔다. 너무 중간계층의 성장만을 중시한 결과 하위계층의 노동자들을 무시했고, 복지재정의 긴축정책으로 인해 많은 하위층의 불만을 사게 되었다. 너무나 그녀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끼친 영향이 컸기에 “대처리즘”이라는 용어도 생기게 되었다. 그녀가 여성총리로서 11년간 추진력있고, 강단 있게 부지런하게 영국 정치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그녀의 리더십과 여성으로서의 카리스마있는 자세는 배울만 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녀가 노동자들, 사회의 하위층을 무리하게 억압했고, 차별과 홀대 받는 사람들이 그만큼 있었다는 것이 그녀의 그림자인 것 같다. | 2011-11-20 01:33:4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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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국이 망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으로 꼽는 '영국병' 을 이겨낸 것으로 20세기 최고의 여성지도자인 마가렛 대처. "철의 여인"이라 불릴 정도로 피도 눈물도 없다는 언론의 비판과 비난도 많았지만 그녀가 이룬 업적 또한 빛을 발했다. 영국은 대영제국이라는 영광의 칭호로 불리며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릴 만큼 번영했지만 고부담 정책과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적극적 복지 정책으로 인해 영국인들의 청교도 정신인 근면,성실함은 차츰 사라지게 되었다.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다른 나라들이 고용조정을 통해 저비용 고효율 정책을 따랐던데 반해, 영국은 대영제국을 위해 희생했던 노동자들을 보호한다는 미명 하에 고비용 저효율 정책을 단행, 사회 근간 산업을 국유화하고 막대한 세금을 들여 유지하게 되며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대처 수상이 당선이 되고 그녀는 "파업으로부터 국가 경제를 구하겠다."고 호언장담하며 사회 전반에 퍼져있던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싸웠다. 그녀의 노력 끝에 영국은 세계 20위권 밖으로 밀려났던 영국의 국가 경쟁력 순위를 다시금 10위권 이내로 진입시키게 된다. 그녀는 수상직에서 직접 물러나기 전까지 매일 19시간씩 일을 했고 모든 서류를 직접 두번 이상 검토하며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행동하는 지도자였다. 독재적인 면으로인해 많은 반대와 비난이 돌았지만 그녀의 정확한 상황판단과 강한 추진력이 없었다면 지금의 영국은 없을 것 같다. | 2011-11-22 00:09:3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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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적 색채가 뚜렷한 사람이다. 그녀의 추진력과 신념은 충분히 한 나라에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개인주의와 승자독식사회를 만들어가는 그녀가 민중들에게 영원한 사랑을 받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치열한 경쟁사회가 남긴 것은 사회발전과 경제성장이라는 장점도 있지만 빈부격차라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그것을 보완해 줄 수 있는 방법은 사회복지가 있다. 그녀는 지나친 개인주의는 공동체 의식을 퇴색하게 만들었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민족주의와 인종차별적인 국가법의 변화를 들 수 있다. 그녀의 열정과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한 개인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 상상을 해보니 대처는 존경받아야 할 정치인은 아닌 것 같다. | 2011-11-23 00:41:2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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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솔직히 교재에 나와 있는 대처에 대한 글을 읽고 의외의 모습에 많이 놀랐다. 여성 수상이기 때문에 그랬던 것일까? 내가 애초 대처란 인물에 대해 상상했던 정책은 보편적 복지나 공동체 주의 같은 것이었다. 여성만이 낼 수 있는 부드러움과 온화함으로 영국민들을 정말 엄마처럼 잘 보살펴 준 그런 인물이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것이 나의 성(性)에 관한 선입견에 불과하다는 걸 책을 읽고 알게 되었다. 그녀는 남성들보다 더 강한 추진력과 리더쉽을 가지고 있었다. 중앙 정부의 힘을 강화하고 노조와 지방정부의 목소리를 막았다. 공기업을 민영화 시키고, 인두세라는 이상한 세금 제도도 도입했다(이상하게 우리나라 현 정부가 오버랩된다. 왜일까?) 그녀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정책을 펴 나갔는지 알 것 같다. 영국의 경제를 살리고 대내외적으로 영국의 굳건함을 알리자는 목표였던 것 같다. 그러나 그녀는 사회에서 소외되어 있는 국민들은 생각하지 않았다. 중앙에 있는 사람들은 점점 더 중앙으로, 변두리에 있는 사람들은 점점 더 벼랑으로 몰고 갔다.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타협하여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정치인들이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한 쪽으로 치우친 견해를 갖고 있다면 그 피해는 국민들이 입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대처에게 배울만한 것은 브라운 총리가 말한 '확신' 이외에는 무엇이 있는지 '확신'할 수가 없다. 위 몇 학생들이 언급한 철의 여인 예고편을 보고 왔는데 메릴 스트립과 실제 대처의 목소리나 억양이 너무 비슷해서 좀 놀랐다. 영화가 과연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지 정말 궁금하다. 개봉날짜도 방학이고 하니 한 번 꼭 봐야겠다. | 2011-11-24 02:09: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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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처 여수상을 보면서 난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여성을 남성보다 강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여성은 육체적으로는 남성보다 연약하다. 이것은 신미만든 변할 수 없는 순리니까 말이다. 난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해야 함을 전제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육체적으로는 약할 수 있으나 그녀는 수많은 남성들을 지휘하고 지배하였다. 여성이 이러한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으로 부터인가? 냉철한 이성? 박식한 지식? 거침없는 추진력? 브라운 전 총리는 자신이 대처수상한테서 배우고 싶은 점으로 '변화의 필요성'과 '확신'(신념)을 꼽았다고 한다. 그녀가 가졌던 것중 남성들이 갖지 못했던 것은 변화의 필요성을 느낌과 그것을 확신을 갖고 추진하는 것이였을까? 무엇이 그녀가 꿋꿋이 자신의 추진하는 바를 밀고 나갈 수 있었으며 한편으로는 많은 사람들의 욕설과 비난에도 불구하고 개의치 않고 수상의 일을 할 수 있었을까? 그녀가 결혼을 했다는 말을 보거나 듣지 못한 것같다. 그녀는 여성으로써 남성에게 사랑받고 싶은 욕구와 아이들 갖고 낳아 기르고 싶은 모성애가 없었던 것일까? 아, 정말 궁금하다. 단지 그녀의 진취적인 정치와 추진력이 그녀의 장점이고 본받을 점이라고 쓰기엔 궁금한 점이 많이 있는 그대로 이곳에 토해내 보았다. | 2011-11-26 21:10:3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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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자신의 지위를 견고히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마가렛 대처는 한 국가의 총리로서의 임무뿐만 아니라 남성중심주의 사상과도 싸우느라 힘들었을 것이다. 본인의 성격이 카리스마 있고 대장부같은 모습이었을지 몰라도 그러한 모습을 더 어필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점에서 찾아볼 수 있다. 느리고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 영국에 큰 반향을 일으키는 정책들로 영국을 더 한 단계 진보시켰다. 그러나 그 결과적으로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쉽게 말해, 전체적으로 봤을 때 국가의 레벨은 올라갔다고 볼 수 있지만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이 모든 것은 모든 국민들의 힘이 아니라 상위 소수 계층의 힘이었다는 것이다. 경제적인 효율성과 인간적인 미, 배려는 결국 조화할 수 없는 요소들인 것인지 의문이 든다. | 2011-11-28 18:19:0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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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자라고 하면 연약함, 보호존재 등등 으로 떠오르게 된다. 대처수상은 이것을 뛰어 넘어 새로운 여성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여성을 여전히 차별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남여 차별을 폐지한지 오래지만 여전히 사회문화 속에는 자리잡고 있는것으로 보인다. 남성들이 주도하는 정치, 한국인들에게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러나 카리스마 넘치고 리더십이 돋보이는 대처수상은 너무 멋있게 보인다. 이른바 '영국병' 은 우리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게으름피우며 일확천금을 누리는 사람들에게 알려야 할 점이다. 개인의 성취가 국익을 추구하게 되고 국익의 추구가 개인의 성취를 보게된다. 경쟁이안되고 돈벌이가 안되면 문을 닫는 신자유주의, 비교적 나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런것이 국익의 발전을 도모하는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 2011-11-30 20:28:0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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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이 한 사회의 지도자로서 신임을 받아 자신의 지위를 확고히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고달픈 일인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다. 어딜가든 여성이 지도층의 일원이 된 다는 것은 힘든 일이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대단한 것 같다. 그러한 점에서 대처수상은 우리가 배우고 본받아야 할 여성상을 제시해주고 있지 않나 싶다. 대중들을 압도하는 카리스마 넘치는 그녀의 리더십과 노력은 정말 멋있는 여성 지도자의 모범이 될 만큼 멋지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녀는 그녀가 추구했던 대처주의의 문제점을 낳았으며 여러 비판을 받으며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그녀가 남긴 후유증은 생각보다 심각해 보였다. 극심한 양극화 현상으로 인해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실직문제와 경제적으로 빈곤한 소외계층을 증가시켰다. 경제적으로 이윤추구에 목표를 두고 상위 소수계층이 경제발전을 이끌었다 할지라도 공동체 모두가 행복을 가져오지는 못했다. 오히려 또 다른 문제를 낳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여성지도자로서 갖추어야 할 역량은 본받을만 하지만, 그녀가 추구했던 정치적 역량은 그리 본받을 만한 것 같지는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