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를 읽고
영화 ‘미나리’로 윤여정 배우가 여우 조연상을 받으며 온 세계 영화계의 주목을 받기 얼마 전 캐나다 밴쿠버 써리에서 ‘파친코’라는 소설을 8부 드라마로 애플 tv의 외주 제작사인 Media Res가 촬영하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문협 최춘희선생님의 소개로 조정선생님께서 한국어 번역판을 한국에서 공수해 온 덕에 쉽게 ‘파친코’를 읽게 되었다.
이 책을 보면서 놀랐던 것은 '이민진'작가가 한국에서 자라고 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7살에 미국으로 이민 간 1.5세 이민자로 현재 50대이다. 재일교포에 대한 관심은 예일대학시절, 일본에서 포교활동을 하고 귀국한 미국인 한 선교사의 충격적인 선교보고에서 시작된다. 재일교포 2세 초등학생이 학교폭력을 견디지 못해 건물옥상에서 떨어져 죽는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이다. 일제강점기에 대해 조사하고 공부하며, 재일교포 2세인 남편의 직장을 따라 일본에 살게 된 동안 실존인물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하는 등 치밀하게 자료를 준비하였다. 글 고치기를 수없이 하며 드디어 마지막 퇴고를 마치고 30년 만에 세상에 나오는 결실을 맺었다.
일본의 대하소설 ‘대망’과 맞먹을 정도의 긴 시대상을 배경으로 한 ‘파친코’는 1919년부터 시작된다. 부산 영도 출신의 주인공 선자를 축으로 4대가 일본 오사카에서 현대까지 재일 한인으로 살아가는 회한이 담긴 리얼리즘 계통의 소설이다.
이 책에 등장한 인물 중 누구하나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지 않은 사람이 없고, 모두 아픈 손가락이기는 하지만 노아와 경희가 더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선자는 엄밀하게 따지면 두남자의 진실한 사랑을 받았고 두 아들까지 있는 여자이다. 큰 아들 노아의 죽음으로 그녀의 삶이 나락으로 떨어진 황폐한 삶이되긴 했지만---.
'반 노부오'라고 개명까지 하며 일본사람으로 살려고 했던 노아는 큰 일에 직면할 때마다 받아드리거나 현명하게 대처하려는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 도피 형이다. 어머니의 과거에 대해 두 번의 사죄와 큰아버지의 설득에도 받아드리지 못하고 현실을 피했던 그의 종국은 결국 죽음으로 치달았다. 그 당시 재일교포들이 겪어야했던, 죽음보다도 더 무섭고 엄청났던 고통을 상상하게 하는 대목이다.
한 세기를 단 두 권의 책으로 엮어낸 작가의 기법이 놀랍다. 소설이라면 친절하게 설명할 장면도 담담하게 마치 수필을 써내려가는 형식을 취했다.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는 ‘노아’의 죽음까지도 단 한 줄로 끝냈다. 그런대도 생생한 장면으로 떠오르고 시종 긴장감으로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요셉은 가족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던 사람이었고 가족을 위해 돈을 벌러 나갔기 때문에 이런 일을 당한 것이었다.’ 원폭에 뭉그러진 그의 얼굴과 몸이 세상을 떠난 내 남편과 오버랩(overlap)되면서 많이 울었다.
“드디어 집에 왔구나. 매일 집에 가는 생각을 했어. 한 시도 빼놓지 않고 말이야. 아마 그래서 이렇게 집에 돌아왔나 봐.” 목사인 이삭이 신사참배를 거부한 이유로 2년간 옥고를 치르며 모진 고문을 당해 거의 죽게 된 몸으로 집에 왔을 때 한 말이다. 이 대목 역시 나를 울게 하였다. 코비사태에 2주 동안 요양병원에 격리 된 남편이 이 심정이었지 싶었다.
난 이 소설의 인물 중 이상주의였던 노아보다는 현실주의인 모리수나 이상과 현실을 적적하게 타협할 줄 아는 솔로몬이 더 맘에 든다. 고난을 겪더라도 현실을 받아드리고 극복하며 그 장벽을 뛰어넘는 의지와 노력이야말로 인간승리이며 참 행복으로 가는 길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파친코’의 궁극적인 메시지는 희망과 극복이라고 본다. 이 소설의 서두에 기록된 “역사가 우리를 망쳐놓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가 이 책의 주제인 셈이다.
‘파친코’라는 서명은 아주 상징적이어서 인상적이다. '인생이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불확실성에 기대하는 파친코 게임과 같다.' 특히 재일교포들의 삶은 운명을 예측할 수 없는 도박과도 같다. 또 '편견으로 점철된 타국에서 파친코는 재일교포들에게 돈과 권력과 신분의 상승을 가져다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는 의미에서 독자에게 각인 될 수 있는 책 제목이 아닌가 한다.
나는 작가 ‘이민진’씨에게 필력으로 모국을 사랑하는 그 위대함에 찬사를 보낸다. 그리고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벌써 27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나갔다니 한국의 정체성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감칠맛 나고 생생한 언어로 실감나게 번역해준 김미정 번역가에게도 감사함을 느낀다.
각 처에서 다방면으로 알게 모르게 이토록 애국하는 사람이 있어 우리 대한민국은 영원무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