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앞둔 마지막 장날. 북평장은 어느 때보다 분주하다. 북평장이 이렇게 활성화된 것은 지리적 이유도 크다. 강원도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7번 국도에 있고 태백에서 내려온 37번 국도와 정선에서 넘어오는 42번 국도가 북평장이 열리는 동해에서 만난다. 강원도 최대규모의 재래시장이 서는 까닭이다. 심지어 장날이면 대형마트의 매상이 뚝 떨어진다. 장이 서는 곳은 동해시의 식수원인 ‘전천(箭川)’ 옆이다. ‘전천’은 임진왜란 때 격전지였던 까닭에 전사자의 피와 화살이 하천에 가득 떠 내려와서 붙게 된 이름이라고 한다.
북평장의 역사는 무려 2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3년 발행된 삼척읍지 <진주지>에 따르면 '정조 20년(1796년), 북평장은 매월 3, 8, 13, 18, 23, 28일의 여섯 번 장이 열리는데 장세를 받았다'고 기록돼 있다. 이후 북평장은 여러 차례 변화를 겪었다. ‘전천’의 물길이 변하면서 그에 맞춰 하구 쪽으로 이동해 왔고, 1910년 10월 8일에는 대홍수로 인해 북평마을이 수해를 입으면서 장이 옮겨지기도 했다. 1932년 현재 위치에 자리 잡으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북평장의 노인들은 아직도 장을 ‘뒷두르장’ 또는 ‘뒷뜨루장’이라고 부른다. 뒤쪽의 평야라는 뜻으로 예로부터 불러오던 우리말 이름이다. <동해시사>에 따르면 '뒷뜨루는 마을 전체이름이다. 삼척부 북쪽에 있는 넓은 뜰이란 뜻으로 우리는 북방계 민족이라 남쪽을 앞이라 하고, 북쪽을 뒤라고 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북쪽 평야에서 열리는 북평장에는 전통을 이어온 우리네 재래시장의 멋이 있다.
“무엇을 팔러 오셨어요?”
‘생산자 직거래’, ‘당일 배송’, ‘한정판매’. 요즘 유행하는 인터넷 쇼핑몰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동해 북평장을 둘러본 느낌이다. 대형 마트를 찾아가면 신선한 제품을 생산자의 얼굴을 내걸고 판다는 광고를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원조는 재래시장에 있었다. 자릿세 500원을 내고 한 평 남짓한 공간에 자리 잡은 상인들은 대부분 생산자이자 판매자이다. 어제 텃밭에서 수확한 배추, 무, 오이를 비롯해 집 앞 농로에서 잡은 미꾸라지까지 모두 직접 가져온 상품들이다. 당연히 생산자 직거래일 수밖에 없다. 많지도 않다. 기껏해야 고무 대야 몇 개 분량으로 집에서부터 바리바리 싸온 물건들이다. 그러니 한정판매, 당일 배송일 수밖에… 이곳에선 좋은 포장, 대량판매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래가 우선이다. 과일을 한가득 쌓아놓은 매장보다 앉은 자리 빙 둘러놓은 나무 소쿠리의 과일이 더 잘 팔린다. 잘 팔리기 때문인지 닷새에 한 번 세상 구경하려는 시골노인의 나들이인지, 인근지역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길은 발 디딜 틈도 없이 장터가 벌어진다. 강원도 바닷가에서 열리는 장터답게 가자미, 문어 등과 같은 생선이 많다. 또한 고래고기, 상어고기처럼 다른 시장에서 보기 힘든 것도 있으니 북평장을 꼼꼼히 둘러보는 묘미가 여기 있다. 추석 제사 음식 준비를 위해 문어를 파는 가게 앞에는 사람들이 줄지어 섰다. 한쪽에선 닭 세 마리를 끈으로 묶어 손에 쥐고 있는 노인이 호객에 나섰다. “토종닭이요~”.
재래시장의 참맛
전국에는 수백 개의 재래시장이 있다. 주로 5일장으로 열리는 재래시장들은 지역의 유통 중심지였다. 하지만 대형마트와 현대식 유통 방식으로 인해 점차 사라져가고 있으며 일부는 ‘재래시장’의 관광상품화를 통해 재탄생 했다. 동해 북평장이 차별화되는 이유는 여기에도 숨어 있다. 다리가 아픈지도 모르게 이곳저곳 구경하고 다녀도 정감이 느껴진다. 낡은 기와와 적갈색 나무 창살의 방앗간에선 기름을 짜고 질척하게 물이 흐른 어시장에는 싱싱한 꽃게가 박스를 넘어 탈출을 시도한다. 동해안의 명물 오징어는 간이어항에서 삐죽거리며 수영을 하고 있다. 오후가 돼도 꾸준하게 사람들이 오가는 장터. 옛날모습 그대로 장터의 기본인 ‘교류’에 중심이 맞춰져 있다. 200년 전 모습도 그랬을 것이다. 집에서 가져온 닭, 소와 텃밭의 채소와 좁은 강원도의 논에서 일궈낸 잡곡들이 농민들의 손에 들려 나왔을 것이다. 지금과 달라진 것이라면 우시장이 사라졌다는 것 정도? 북평장의 모습은 옛날 방식 그대로 남아 있다.
가는 길 승용차로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강릉을 지나 동해 나들목까지 간다. 7번 국도를 타고 삼척방면으로 향하다 효가사거리에서 좌회전해 북평교를 건너면 장이 펼쳐진다. 내비게이션에는 ‘북평동주민센터’를 입력하면 된다. 서울에서 기차를 이용할 때는 청량리역에서 동해까지 가는 야간열차를 타면 좋다. 22시40분에 출발해 동해에 04시12분에 도착한다. 동해역에서 장터까지는 약 2km, 도보로 30분 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