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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比스님이 읽어주시는 화엄경(2020.10.7.PM2시)
세주묘엄품(世主妙嚴品)2
화엄회상 대중들의 득법(得法)과 게송
이번 10월 9일 문수선원 금요일 법회를 하려고 했는데 10월 9일 금요법회도 생략하고 16일 법회도 상황을 봐서 결정하도록 하겠다.
어제 유마경 끝날 무렵에 제가 잠깐 실수를 해서 강의는 다 끝났는데 늘 하는 인사인 ‘불일증휘(佛日增輝) 법륜상전(法輪常轉)’ 을 제대로 전해 드리지 못했다.
아마추어 중에도 상아마추어가 되어서 겨우 이렇게 창을 열고 강의하고 끝나고는 프로그램을 닫는 정도밖에 못하니까 그렇게 가끔 실수가 있다.
불자님들 잘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
오늘 2시 화엄경 공부하는 시간이다.
염화실 TV 온라인을 통해서 저는 여러분들 이름만 읽어도 얼굴이 다 떠오른다. 혹 모르는 분도 있지만 거의 다 아는 분들이다.
여러분들은 저의 얼굴을 보시고, 제가 하는 움직임들을 다 살피고 하니까, 우리가 어찌보면 상당히 좋은 세상에 산다. 이것이 화엄경에서 말하는 시공을 초월한 세계다.
본래 모든 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존재하고 있는데 그것을 우리가 일상생활에 활용을 못할 뿐이었다.
그런데 자꾸 과학이 발달하다보니 이정도라도 일상에 활용을 한다.
미국서 들어오고 하는데 미국이 거리가 얼마인가?
서울서도 들어오시는데 서울은 또 거리가 얼마인가?
하등의 시간의 제약도 받지 않고, 공간의 제약도 받지 않고, 모든 존재는 그렇게 자유자재하게 존재하고 있다.
그동안은 과학이 발달 못해서 우리가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살아왔는데 현대 문명이 발달을 하니까 이정도라도 우리가 누리고 산다.
*
화엄경 공부에 들어가도록 하겠다.
어제에 이어서 ‘선화천왕과 그 대중들의 득법과 게송’ 중에 게송을 보겠다.
불어낭세무량겁(佛於曩世無量劫)에 구수광대바라밀(具修廣大波羅蜜)하사
근행정진무염태(勤行精進無厭怠)하시니 희혜능지차법문(喜慧能知此法門)이로다
부처님은 옛적 한량없는 세월 동안
광대한 바라밀을 구족하게 닦으셨네.
부지런히 정진해서 게으름이 없었으니
희혜 천왕이 이 법문을 능히 알았네.
부처님은 옛적 한량없는 세월 동안
광대한 바라밀을 구족하게 닦으셨네.
광대한 바라밀을 구족하게 닦으셨다고 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6바라밀이고 10바라밀까지 알고 있다. 그 외에 사실 많고 많은 바라밀이 있다.
제가 주바라밀 조바라밀이라는 말을 한다.
경전에서는 잘 안쓰는데 그래도 화엄경에서는 주바라밀 조바라밀 그런 말은 안써도 그런 형식은 취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10바라밀을 가지고 보시를 닦는다 하면 보시바라밀이 주(主)가 되고 그 나머지 아홉바라밀은 조(助)바라밀이 된다.
그다음에 지계를 중심으로 닦는 부분에 가서는 나머지 보시부터 인욕 정진 선정 지혜 나머지 아홉바라밀이 보조적인 바라밀이 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내가 스님들에게도 스님들은 무조건 공부하는 것이 주바라밀이다. 아무리 중요한 소임을 맡았다 하더라도 설사 주지 아니라 종정을 맡았다손 치더라도 원주 별좌 교무 재무 총무 그런 시시한 소임은 말할 것도 없고, 주지를 맡고 조실을 맡고 방장을 맡고 종정을 맡았다손 치더라도 그 소임은 보조적인 바라밀이다.
무조건 주된 바라밀은 공부다.
주된 바라밀인 공부에 중점을 두고 하루 예를 들어서 16시간을 우리 생활하는 시간이라고 친다면 최소한도 3분의 2는 주바라밀을 수행하고 나머지 3분의 1정도는 보조적인 바라밀을 하도록, 중요한 소임이라도 역시 그렇게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 말을 내가 스님들에게 강조를 많이 한다.
그런데 소임을 하나 맡았다 하면 주바라밀은 어디 가버리고 보조바라밀이 주가 되어서 그저 소임에 허덕이고 소임도 제대로 살지도 못하면서 ‘소임사네’ 하고 다른 일은 전부 등한시하고 공부는 더 말할 것도 없이 등한시 한다. 그런 상황이 된다.
우리 불자들은 주바라밀과 조바라밀을 잘 나눠서, 물론 가정생활을 하고 살림을 살아야 되고 예를 들어서 직장이 있고, 나가서 일을 해야할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그 무게를 차츰차츰 공부하는 쪽으로, 공부하는 것이 주된 바라밀이다 이렇게 정하고 그쪽으로 자꾸 무게를 심어 줘야 한다. 그러면 그것이 업이 되고 그것에 길이 난다.
주바라밀에 마음을 많이 쓰고 시간을 많이 투자하면 그것에 또 길이 난다.
그러면 자꾸 그 길이 넓어지고 닦여져서 공부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공부도 더 잘된다.
여기 바라밀 이야기가 나와서 제가 드리는 말씀이다.
옛적에 한량없는 세월 동안에
광대한 바라밀을 구족하게 닦으셨네
라는 말이 광대한 바라밀 그러니까 많다는 뜻이다. 바라밀 종류가 많다.
하루 우리 일상생활에 어떤 일들을 하느냐?
잠도 자야 되고, 음식도 먹어 줘야 되고, 쉬어 줘야 되고, 병원에 가서 치료도 해야 되고 등등 일이 많다.
그런데 그중에 주바라밀은 공부하는 것이다. 그것을 늘 잊지마시고 하되, 다른 것들도 소홀하지 말기 바란다.
부처님도 광대한 바라밀 했는데 많고 많은 바라밀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을 구족하게 닦아야 된다. 치우치지 말고 그렇게 광대하게 닦았다.
부지런히 정진해서 게으름이 없었으니
희혜 천왕이 이 법문을 능히 알았네.
그런 말이다.
업성인연불가사(業性因緣不可思)라 불위세간개연설(佛爲世間皆演說)
법성본정무제구(法性本淨無諸垢)하시니 차시화광지입처(此是華光之入處)로다
업의 성품 그 인연은 불가사의하나
부처님은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
법의 성품이 본래 맑아 때가 없음을 연설하시니
이것은 화광계 천왕이 들어간 곳이로다.
업성과 법성을 이야기 한다. 우리는 법성은 잘 모른다. 사실 밑바탕에 깔려 있고, 나의 참주인공이고 ‘참다운 나’가 바로 법성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은 잠겨서 감추어져 있고 업성만 활동하고 있다. 업만 활동하고 있다.
업의 성품 그 인연은 불가사의하나
업력부사의하다. 불가사의하다. 화엄경을 우리가 함께 이렇게 생각해보는 시간인 줄 뻔히 알면서도 ‘차 마시기로 했다, 친구 만나기로 했다, 어디 가기로 했다’ 이런 것 때문에 업이 발동해서, 우리 스님들 사이에는 ‘저 업이 또 발동했구만’ 이런 말을 쓴다. 그래 업이 발동을 해서 그만 그 중요한 화엄경 공부하는 시간을 등한시해버리고 다른 데 시간을 보낸다. 그런 경우가 많다. 너무나도 많다. 그것이 업의 성품 인연이 불가사의한 도리다.
참 불가사의 하다. 그런데
부처님은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
법의 성품이 본래 맑아 때가 없음을 연설했다.
‘너가 그렇게 업의 힘에 끄달려서 이리저리 나부된다 하더라도 그래도 너의 본성은 법의 성품이다’
법성자리다. 텅 빈 부처자리다. 바로 부처의 경지고 부처자리다. 그것이 있다고 하는 사실 그것이 참나라고 하는 사실, ‘참나의 삶이라고 하는 이 사실을 잊지마라’
부처님은 그것을 굳이 줄기차게 연설하신다.
참나자리를 줄기차게 연설한다.
그래서 우리가 잘 아는 화엄경의 어려움을 푸는 열쇠가
‘심불급중생시삼무차별(心佛及衆生是三無差別)’이다
‘마음과 부처와 중생 이 셋은 차별이 없다’
그것이 뭔가?
우리 참나자리, 불성자리, 법성자리, 진정한 내주인공자리 그것을 자꾸 부각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저는 화엄경의 종지, 주된 뜻을 ‘처음에는 시성정각을 밝히고 뒤에는 보살행을 드러내는 것이다’ 라고 정리를 하지만, 옛사람들은 ‘통만법명일심(通萬法 明一心) 이 세상 삼라만상을 전부 통털어서 일심(一心) 한마음도리, 본래 부처자리를 밝히는 데 있다’ 이렇게 표현했다.
대체적으로 그렇게 많이 알고 있다.
그것이 일리가 있다. 100퍼센트는 아니지만 상당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화엄경 곳곳에서 참주인공 자리를 아주 많이 부각시킨다.
제가 언젠가도 말씀드렸지만 요즘 부자되는 방법, 자기계발하는 방법을 보면 전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원리를 가지고 이야기 한다. 전부 일체유심조 도리를 새롭게 요즘 용어로 풀어서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한다.
‘전부 마음이 알아서 하는 것이다. 내 생각이 좌지우지 한다’
마음이라고 했든, 생각이라고 했든 같은 뜻이다.
‘내 생각이 내 인생을 좌지우지 하고, 내 인생을 성공으로 이끌어 가는 열쇠다’
이런 말들이 알고보면 전부 화엄경도리다.
화엄경을 현대적으로 풀어서 표현이 된 것이지, 화엄경 도리 아닌 것이 없다.
요즘 책읽어 주는 유튜브가 많다. 거기서 제가 들어보면 성공비결, 자기계발의 비결 등등이 나오는데 전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도리를 가지고 하고 있다.
우리 불자들은 이미 일체유심조 도리를 환히 알고 계시니까 그거 굳이 넘겨다 보려고 할 필요가 없다.
화엄경 도리를 그대로 현대적으로 풀어서 적용시켜서 사용하는 것 뿐이다.
업의 성품, 인연, 법의 성품, 본래 맑고 밝은 우리 본래의 마음자리 그 관계를 잘 표현하고 있다.
여응관불일모공(汝應觀佛一毛孔)하라 일체중생실재중(一切衆生悉在中)호대
피역불래역불거(彼亦不來亦不去)니 차보견왕지소요(此普見王之所了)로다
그대들은 부처님의 한 모공(毛孔)을 보라
일체중생이 다 그 속에 있어도
그들은 오지도 아니하고 가지도 아니하니
이것은 보견시방 천왕이 아는 바로다.
보견시방천왕이 아는 바는 부처님의 한 모공속에 일체중생이 다 그 속에 있다.
그들은 가도 가는 것이 아니고 와도 오는 것이 아니고 그래서 그들은 오지도 아니하고 가지도 아니하고 전부 부처님의 모공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 부처님의 한모공이 무엇이겠는가?
바로 일심자리다.
전부 일심자리에서 모든 인생이 영위되는 것이다.
우리 인생을 어떻게 살든 전부 일심을 바탕으로 해서 거기에서 떠나지 않는다.
손오공이 아무리 달리고 달려도 결국은 부처님 손바닥 안이다 라고 하는 말의 뜻이 무엇인가?
바로 우리 한마음 안에서 이런 일도 하고, 저런 일도 하고 옳은 일, 그른 일, 남을 돕는 일 남을 해롭히는 일 남을 속이는 일 등을 하지만 아무리 해봤자 자기 한마음 안에서 하는 짓이다.
손오공이 아무리 달려가, 거기 기둥이 다섯 개 있길래 표시한다고 오줌을 찍 갈기고 돌아보니, 부처님의 손가락 다섯 개가 기둥처럼 서 있는 데에 그렇게 했더라.
서유기는 손오공이 백팔 번뇌가 나부되는 내용처럼 되어 있고 삼장법사가 경전을 찾으러 가는 역정을 소설로 그렸는데, 우리가 불교를 알고 그런 소설을 보거나 만화를 보더라도 참 재미가 있다.
부처님의 한 모공 속에 있다라는 것은 바로 우리 한마음 안에 다 있다. 한마음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뜻이다.
8. 지족 천왕과 그 대중들의 득법과 게송
1) 득법
부차지족천왕(復次知足天王)은 득일체불출흥세(得一切佛出興世)에 원만교륜해탈문(圓滿敎輪解脫門)하니라
다시 또 지족(知足) 천왕은 모든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여 교법을 원만하게 하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해서 교법을 원만하게 하는 해탈문을 얻었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팔만사천 법문을 하지 않으셨으면 부처님이 계셨는지, 왔다가셨는지 어떤 분인지 아무도 알 리가 없고, 우리에게 아무 덕도 안된다.
아무리 위대한 부처님이라고 하더라도 부처님의 교법, 가르침이 남아 있다는 그것 때문에 부처님이 위대한 것을 알게 되고 우리는 ‘부처님 부처님’ 하는 것이다.
교법을 원만하게 한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와서 교법을 원만하게 했다.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니까 불자들은 불교 공부부터 해야 된다.
해인사에 팔만대장경이 그렇게 많이 쌓여 있는데 그거 몇 분의 일이나 우리가 공부하는가?
전문적으로 출가해서 수행한다고 하는 분들부터 도대체 몇 분의 일이라도 공부하고 있는가? 계산해 볼 필요가 있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바로 그 팔만사천 법문을 우리에게 남겨줬고, 우리는 그것을 통해서 부처님이 위대하심을 알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을 알고 진리가 무엇인 줄을 아는 것이다. 그렇게 되어 있다.
희락해계천왕(喜樂海髻天王)은 득진허공청정광명신해탈문(得盡虛空界淸淨光明身解脫門)하니라
희락해계(喜樂海髻) 천왕은 온 허공계가 청정한 광명의 몸인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온허공계가 청정한 광명의 몸이다.
이 세상은 전부 한마음으로 만들어졌고 한마음 안에서 살고 있다. 한마음이다.
세상은 온통 한마음이다.
마음이 개재되지 아니한 삶이 어디 있는가?
한순간, 일분일초, 또는 손바닥 만한 장소라 하더라도 거기에 우리 마음이 개재되지 아니한 시간과 장소가 어디에 있는가? 그러한 도리를 여기서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온 허공계가 청정한 광명의 몸이다.
최승공덕당천왕(最勝功德幢天王)은 득소멸세간고정원해해탈문(得消滅世間苦淨願海解脫門)하니라
최승공덕당(最勝功德幢) 천왕은 세간의 고통을 소멸하는 청정한 원력의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부처님이 팔만사천 법문을 설한 것은 목적이 무엇인가?
중생들의 이고득락(離苦得樂) 고통을 소멸하고 즐거움을 얻게 하자는데 그 뜻이 있다.
그래서 세간의 고통을 소멸하는 청정한 원력 ‘아 이것이 부처님의 원력이구나. 부처님이 오신 뜻이 바로 이것이구나’ 이렇게 보신 것이다.
사람마다 다 어떤 이들은 ‘부처님은 관세음보살을 내세워서 관세음보살에게 기도하라고 오셨다’ 이렇게도 표현할 수가 있을 것이고, 어떤 분들은 부처님은 지장보살을 통해 ‘말세에는 내대신에 지장보살을 내세워서 지장보살이 세상을 구제하라’고 말씀하셨다고 아시는 분도 상당한 숫자가 있다.
그 나름대로 다 그렇게 정리할 수가 있을 것이다.
우리 화엄행자들은 ‘아니야 부처님은 화엄경을 우리에게 일러 주려고 오신 것이야’ 라고 정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적정광천왕(寂靜光天王)은 득보현신설법해탈문(得普現身說法解脫門)하니라
적정광(寂靜光) 천왕은 널리 몸을 나타내어 법을 설하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적정광 천왕이 보기에는 부처님께서는 법을 곳곳에서 설하고 계신다. 부처님의 분신들이 전부 부처님을 대신해서 법을 설하고 있다. 거기에서 인생의 의미를 깨닫고 세상의 진리를 깨닫고 그래서 유익한 삶을 살게 되고 행복한 삶을 사는 길이 무엇인가를 알게 된다고 본 것이다.
우리 염화실 까페나 염화실 TV와 인연을 맺은 분들은 대개 ‘아 부처님은 화엄경이나 법화경 같은 훌륭한 법을 설해서 우리에게 뭔가 깨우침을 주려고 한 분이다’ 그렇게 아시는 분이 상당할 것이다. 저와 인연된 분들은 대개 그렇게만 알고 계실 수도 있다. 그것 뿐은 아니지만 일부 맞는 말이기도 하다.
선목천왕(善目天王)은 득보정일체중생해탈문(得普淨一切衆生解脫門)하니라
선목(善目) 천왕은 일체중생을 두루 청정하게 하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일체 중생을 두루 청정하게 한다. 일체 중생을 살기좋게, 행복하게 평화롭게 하는 역할을 부처님께서 하시는구나.
이렇게 짧은 한마디로써 요약을 한다.
이렇게 정리하는 습관을 우리가 자꾸 들여야 된다.
‘부처님은 어떤 분이다’
예를 들어서 범어사는 어떤 곳이다. 그러면 한줄로 딱 요약 정리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그 한 줄이 두 줄 되고 두 줄이 석 줄 되고 석 줄이 넉 줄 되고 이렇게 여러 가지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얼마나 좋은가?
일체 중생을 두루 청정하게 하는 해탈문을 얻었다.
청정이라는 말속에는 무궁무진한 좋은 뜻이 담겨있다.
행복하게 한다. 일체중생을 평화롭게 한다. 고통에서 떠나게 한다. 모든 소원을 이루어지게 한다.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딱 ‘일체 중생을 두루 청정하게 하는 분이다’ 이렇게 정리를 했다.
보봉월천왕(寶峰月天王)은 득보화세간(得普化世間)하야 상현전무진장해탈문(常現前無盡藏解脫門)하니라
보봉월(寶峯月) 천왕은 세간을 널리 교화해서 항상 눈앞에 무진장을 나타내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보니까 부처님은 ‘우리에게 이익을 주는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니니 무진장이라는 말을 써야 되겠다’ 이런 표현을 한 것이다.
세간을 널리 교화해서 미국이면 미국, 영국이면 영국, 일본이면 일본, 중국이면 중국, 한국이면 한국 곳곳에 다 불교가 널리 퍼져서 항상 눈앞에 무진장을 나타낸다.
무진장, 정말 불법은 무진장이다.
어떻게 그 양을 다 정확하게 헤아릴 수 있겠는가. 그냥 무진장이라고 하는 것이 제일 편하다. 그래서 무진장이라는 말을 불교에는 잘 쓴다.
용건력천왕(勇健力天王)은 득개시일체불정각경계해탈문(得開示一切佛正覺境界解脫門)하니라
용건력(勇健力) 천왕은 일체 부처님의 정각의 경계를 열어 보이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아니야 아니야’ 하면서, 물론 그런 표현은 없지만 이 용건력천왕이 ‘부처님은 정각하신 것이 부처님의 주된 내용이잖아’ 라고 한마디 한다. 이렇게 한마디 표현하면 그것도 정답이다.
용건력 천왕은 용건력이니까 아주 우렁차고 힘이 좋고 힘이 넘치는 사람이다.
일체 부처님의 정각의 경계를 열어보였다.
빈틈없는 대답이다. 좀더 세분화 되면 좋겠지만 그런 표현도 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금강묘광천왕(金剛妙光天王)은 득견고일체중생보리심(得堅固一切衆生菩提心)하야 영불가괴해탈문(令不可壞解脫門)하고
금강묘광(金剛妙光) 천왕은 일체 중생의 보리심을 견고하게 해서 무너지지 않게 하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정각의 경계를 열어보였다? 그것 가지고는 표현이 좀 와닿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는 일체 중생의 보리심을 견고하게 해서 그것이 무너지지 않게 하는 것이 부처님의 부처님다운 모습이다’ 이렇게 말한 것이다.
보리심이 무엇인가?
자비와 지혜, 지혜와 자비의 마음, 남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다. ‘부처님이 우리 일체 중생들에게 베푼 내용이니 그것이 더 정답이 아니냐. 더 옳지 않느냐’ 이런 주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화엄경에 많고 많은 대중들이 있다. 제가 자꾸 보다 보니 이 한 줄 한 줄은 전부 그 대중들의 표현이다.
한분한분이 그때그때마다 불교를 이해하고 아는 바대로 표현한 것들이다. 이렇게 정리할 수가 있겠다.
저는 그렇게 정의가 되어진다.
성수당천왕(星宿幢天王)은 득일체불출흥(得一切佛出興)에 함친근관찰(咸親近觀察)하야 조복중생방편해탈문(調伏衆生方便解脫門)하고
성수당(星宿幢) 천왕은 모든 부처님이 출현함에 다 친근하고 관찰해서 중생들을 조복하는 방편의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빨리 부처님한테 가서 친근하고 부처님을 관찰하고 ‘그래서 우리가 보면 감동을 받지 않느냐?’ 잘못한 사람들은 제 발 저린다고 저절로 중생들이 잘못한 것이 조복되고 고쳐지고 바로잡아지지 않느냐, ‘아 이것 중요하지 않느냐? 빨리 부처님께 가자. 가서 친견하자’ 이런 표현을 또 했다.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뜻은 우리가 가서 뵙고 눈으로 보고 쳐다보고 부처님의 설법듣고 거기서 감동을 받고 그러다 보면 부처님이 ‘네가 뭐뭐 잘못했지? 무엇을 고쳐야 돼’ 이렇게 지적을 하지 않더라도, 또 그런 지적을 받지 않아도 중생들은 자기 잘못을 자기가 다 알지 않는가? 저절로 거기에 대해서 ‘아 내가 이렇게 살아야지 이렇게 살아야지’ 하는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성수당천왕이라는 분은 그렇게 또 표현을 했다.
묘장엄천왕(妙莊嚴天王)은 득일념(得一念)에 실지중생심(悉知衆生心)하야 수기응현해탈문(隨機應現解脫門)하시니라
묘장엄(妙莊嚴) 천왕은 한 생각에 중생들의 마음을 다 알아서 근기를 따라 응하여 나타나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묘장엄 천왕이 있다가 ‘내가 보기에는 부처님의 신통이라고 하는 것, 부처님의 능력이라고 하는 것은 한생각에 중생들의 마음을 다 안다.’ 한순간에 많고 많은 중생들이 무엇을 마음에 두고 있는지 그러한 것을 다 안다. 그래서 근기에 따라서 거기에 맞춰서 지적도 해주고 법을 설해주기도 하고 ‘너는 어떻게 살아라’ 하는 것을 일러주는 분이다.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그것도 맞는 표현이다.
그것도 참 좋은 표현이다.
2) 게송
이시(爾時)에 지족천왕(知足天王)이 승불위력(承佛威力)하사 보관일체지족천중(普觀一切知足天衆)하고 이설송언(而說頌言)하사대
그 때에 지족천왕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 모든 지족천의 대중들을 널리 살피고 게송으로 말하였습니다.
여래광대변법계(如來廣大徧法界)하사 어제중생실평등(於諸衆生悉平等)하시며
보응군정천묘문(普應群情闡妙門)하사 영입난사청정법(令入難思淸淨法)이로다
여래는 광대하여 법계에 두루 하사
모든 중생들에게 다 평등하시며
온갖 유정(有情)들에게 널리 응하여 미묘한 문을 여시사
생각하기 어려운 청정한 법에 들어가게 하였네.
첫게송은 이렇게 사람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
여래는 광대하여 법계에 두루 하다
온 법계에 두루하다. 진리 그 자체다.
모든 중생들에게 다 평등하시며
누구를 더 예쁘게 보고 누구를 좀 덜 예쁘게 보고 그런 것이 없다. 여래는 진리 그 자체다.
어느 종교의 믿는 신은 사정없이 벌을 주고 많은 사람들을 살상을 하고 그것이 그냥 경전상에 기록이 되어서 전해진다. 어떻게 그런 기록이 남아 있는지 이해가 안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해석하기를 옛날에 다른 별나라에서 와서 지구상에 있는 사람들을 사정없이 살상하는 광경들을 그대로 기록해 놓았다. 빛이 내려와서 빛으로 사람을 죽이는 그런 광경을 그대로 그려놓은 것과 똑같다 그렇게 표현을 했다.
그것은 알 수 없지만 내가 한때 그런 공부를 할 때 보면 아주 그것이 맞는 이야기 같기도 했다.
모든 중생들에게 다 평등하시며
온갖 유정(有情)들에게 널리 응하여 미묘한 문을 여사
생각하기 어려운 청정한 법에 들어가게 하였네.
불가사의하고 중생들로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훌륭한 법에 들어가게 하였네 그런 내용이다.
불신보현어시방(佛身普現於十方)하사 무착무애불가취(無着無碍不可取)나
종종색상세함견(種種色像世咸見)하니 차희계천지소입(此喜髻天之所入)이로다
부처님의 몸은 시방에 널리 나타나시어
집착도 없고 걸림도 없어 취할 수 없으나
가지가지 색상을 세상에서 다 볼 수 있으니
이것은 희락해계 천왕이 들어간 바로다.
부처님의 몸은 시방에 널리 나타나시어
불신(佛身) 부처님의 몸, 평생 공부를 해도 알쏭달쏭하고 쉽게 ‘이것이다’ 하고 확신하고 아주 결정적으로 말하기가 어려운 문제가 바로 이점이다. 부처님의 몸
불신보변시방중(佛身普遍十方中) 하는 말하고 똑같은데 부처님의 몸은 시방에 널리 나타나시어
집착도 없고 걸림도 없어 취할 수 없으나
가지가지 색상을 세상에서 다 볼 수 있으니
부처님의 몸은 시방에 꽉 찼다. 그런데 그 어디에도 집착도 없고 걸림도 없고 취할 수도 없다.
그래서 가지가지 색상을 세상에서 다 볼 수가 있다.
그러면 우리가 보고 있는 현상들이 그대로 부처님 법신의 몸이다. 부처님의 몸이다 이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다.
이런 내용은 우리가 읽을 때마다 이해의 차원이 달라지고 안목의 차원이 달라진다.
부처님의 몸이 뚜렷하게 무엇이다 라고 딱 꼬집어서 표현할 수도 없고 그렇게 하도록 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두고두고 숙제이고 볼 때마다, 생각할 때마다 그 이해의 차원이 조금씩 달라지는 부분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여래왕석수제행(如來往昔修諸行)에 청정대원심여해(淸淨大願深如海)하사
일체불법개영만(一切佛法皆令滿)케하시니 승덕능지차방편(勝德能知此方便)이로다
여래가 지난 옛적 여러 가지를 수행하셔서
청정한 큰 원력이 바다처럼 깊으시네.
모든 부처님의 법을 다 원만하게 하시니
최승공덕당 천왕이 이러한 방편을 능히 알았네.
여래가 지난 옛적 여러 가지를 수행하셔서
여러 가지 수행을 했다는 것이다. 온갖 수행을 했다.
한 가지만 수행하는 것은 치우친 것이다. 육바라밀 가운데 좌선 하나만 가지고 계속 고집하면 그것도 문제가 있다. 보시 하나만 가지고 고집해도 그것도 문제가 있다.
지계 하나만 가지고 고집해도 그것도 문제가 있다.
왜 여섯 가지 바라밀, 또는 열 가지 바라밀을 부처님이 소개했겠는가? 골고루 치우치지 말고 닦아야 된다고 하는 의미다.
음식도 골고루 먹어야 건강에 좋듯이 수행에도 골고루 닦아야 그것이 원만한 수행이 되는 것이다.
그래 여기도 보면
여래가 지난 옛적 여러 가지를 수행하셔서
청정한 큰 원력이 바다처럼 깊으시네.
라고 하였다.
청정한 원력, 훌륭한 원력이 바다처럼 깊으시네.
모든 부처님의 법을 다 원만하게 하시니
일체 부처님의 법을 다 원만하게 하시니
최승공덕당 천왕이 이러한 방편을 능히 알았네.
여래법신부사의(如來法身不思議)여 여영분형등법계(如影分形等法界)하사
처처천명일체법(處處闡明一切法)하시니 적정광천해탈문(寂靜光天解脫門)이로다
여래의 법신이 부사의함이여
그림자처럼 형상을 나누어 법계와 같게 하사
곳곳에서 모든 법을 열어 밝히시니
적정광 천왕의 해탈문이로다.
여래의 법신이 부사의함이여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여래의 법신은 불가사의하다. 여래의 몸은 불가사의 하다. 우리의 마음 자리는 불가사의하다. 참나라고 하는 경지는 너무나도 불가사의하다. 그래서 공부할 거리가 있는 것이다. 간단하게 알아지면 뭐 공부할 거리가 있겠는가? 그것은 끝없는 저 하늘 높이와 같은 경계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림자처럼 형상을 나누어 법계와 같게 하사
곳곳에서 모든 법을 열어 밝히시니
부처님의 몸은 불가사의 한테 그림자처럼 형상을 나누어 법계와 같이 한다.
온 세상에 부처님 모셔 놓은 데가 많다. 참 그림자처럼 나누어서 법계와 같이 했다. 어떤 의미인지 짐작이 가실 것이다. 자꾸 읽다 보면 짐작이 가진다.
적정광 천왕의 해탈문이로다.
우리가 깊이 읽고 자꾸 사유하고 마음을 턱 가라앉히고 그러다 보면 어느날 무릎을 탁 치게 될 것이다.
‘아 이것이 바로 부처의 경계구나, 이것이 바로 부처의 몸이구나, 바로 여기가 부처자리구나’
그렇게 깨닫는 기회를 우리가 기다리고 있을 수 밖에 없다.
중생업혹소전부(衆生業惑所纏覆)로 교만방일심치탕(憍慢放逸心馳蕩)이어늘
여래위설적정법(如來爲說寂靜法)하시니 선목조지심희경(善目照知心喜慶)이로다
중생은 업과 미혹으로 얽히고 뒤덮여서
교만과 방일로 마음이 방탕하거늘
여래가 그들을 위하여 적정법을 설하시니
선목 천왕이 비추어 알고 마음에 기뻐하도다.
선목천왕이라고 하는 분은 이런 면을 부처님께 보았다.
중생은 업과 미혹으로 얽히고 뒤덮여서
중생은 업과 미혹으로 얽히고 뒤덮여 있다. 맞는 말씀이다. 우리들 중생은 업과 미혹으로 전부 자기 나름으로, 알고 짓기도 하고, 모르고 짓기도 하고 어리석어서 실수해서 짓기도 하고 실수투성이 삶이다.
그렇게 해서 지은 업과 미혹이 얽히고설켜 있다.
교만과 방일로 마음이 방탕하거늘
같잖게도 교만과 방일로 마음이 방탕하다. 철이 제대로 들면 그럴 까닭이 없는데 아직 나이와 상관없이 철이 들지 않고 지혜가 나지 않아서 교만과 방일로 마음이 방탕하다.
제멋대로 제잘난 맛에 산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덟 가지 불법만나기 어려운 조건 가운데 세지변총(世智辨聰)이라는 것이 있다. 세상 지혜가 아주 뛰어나다. 꾀가 뛰어나고 머리가 아주 잘 돌아간다. 뭐를 잘 굴린다. 그런 표현도 한다.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들이 세상에 많다.
그래서 경전의 말씀 한마디 듣고 ‘아 이런 거야’ 저 나름대로 해석해 버리고 부정해 버리고 ‘얼토당토 않은 소리다’라고 ‘화엄경 순 엉터리야’ 이런 식으로 하는 사람도 적지가 않다. 교만과 방일로 마음이 방탕한 것이다.
세속적으로 방탕한 것은 별 것 아니다.
정법에 대해서, 법에 대해서 교만하고 방탕한 것이 제일 무서운 것이고 제일 손해를 많이 보는 것이다.
여래가 그들을 위하여 적정법을 설하시니
적정법, 고요한 자리 이 한마음 자리 쉽게 말하면 ‘이뭣고’‘모르겠다’ 다 좋다. 그래서 마음을 잘 가라앉혀서‘화엄성중’ 하면서 가라앉히던지 ‘대방광불화엄경’ 하면서 고요한 자리로 내려앉든지 얼마나 좋은 처방전인가?
정말 좋은 처방전이다.
선목 천왕이 비추어 알고 마음에 기뻐하도다.
화엄경은 읽을수록 무상심심미묘법이다. 가장 높고 미묘한 법이라고 하는 것을 늘 느끼고 감탄하는 바이다.
오늘 공부는 여기까지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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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이 오셨는지 밑에서부터 살펴보겠다.
모두들 많이 동참해 주셔서 정말 반갑다. 고맙다.
이렇게 어려운 세상에 우리가 화엄경을 앞에 두고 화엄경 이야기를 하면서 이런 시간을 우리가 함께 보낸다. 이 사실은 너무나도 다행 중의 다행이고 정말 무량대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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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일증휘(佛日增輝) 법륜상전(法輪常轉)
불일증휘(佛日增輝) 법륜상전(法輪常轉)
불일증휘(佛日增輝) 법륜상전(法輪常轉)
부처님의 태양은 날로 날로 더욱 더 밝아지고
진리의 수레바퀴는 항상 쉬지않고 굴러가지이다.
만중생의 미몽이 하루 빨리
활짝 열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성불하십시오.
첫댓글 _()()()_
고맙습니다. 戒香ㆍ定香ㆍ慧香ㆍ解脫香ㆍ解脫知見香!
@釋대원성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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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일심자리..._()()()_
이렇게 다시 한번 공부할수 있게 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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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
大方廣佛華嚴經 大方廣佛華嚴經 大方廣佛華嚴經...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 _()()()_
유튜브방송의 발견과 개발로 본래부터 인드라망으로 시공을 초월하여 있는 것을 알지 못하다가 이제서야 조금씩 알고 실천해 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처님의 지혜가 증명되어 가고 있음에 감탄합니다.
主波羅蜜과 助波羅蜜에 따라 天王들의 개성이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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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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