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5장에는 예수께서 행하신 두 가지 기적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1~5절을 보겠습니다.
1 그들은 바다 건너편 거라사 사람들의 지역으로 갔다.
2 예수께서 배에서 내리시니, 곧 악한 귀신 들린 사람 하나가 무덤 사이에서 나와서, 예수와 만났다.
3 그는 무덤 사이에서 사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묶어 둘 수 없었다.
4 여러 번 쇠고랑과 쇠사슬로 묶어 두었으나, 그는 쇠사슬도 끊고 쇠고랑도 부수었다.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 없었다.
5 그는 밤낮 무덤 사이나 산 속에서 살면서, 소리를 질러 대고, 돌로 제 몸에 상처를 내곤 하였다.
예수께서 귀신 들린 사람을 고쳐주셨다는 이야기인데, 마태복음 8장에도 같은 내용의 글이 담겨있습니다. 역시 원본인 마가의 글을 마태가 가져간 것인데, 같은 내용이지만 세부적인 기록에서는 적지 않은 차이가 납니다. 마태복음 8장 28절을 보겠습니다.
28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사람들의 지역에 가셨을 때에, 귀신 들린 사람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오다가, 예수와 마주쳤다. 그들이 너무나 사나웠으므로, 아무도 그 길을 지나다닐 수 없었다.
마태는 마가의 글을 가져가면서 내용을 대폭 줄였습니다. 게다가 원본인 마가복음에는 귀신 들린 사람이 하나라고 되어있는데, 마태는 둘이라고 했고, 사건이 일어난 장소도 마가복음에는 ‘거라사’라고 되어 있는데, 마태는 ‘가다라’라고 기록했습니다. 거라사와 가다라는 같은 지역에 대한 다른 이름이 아닙니다. 둘 다 요단강 건너편 데카폴리스에 있지만 상당히 떨어져 있는 다른 도시입니다.
이후의 이야기는, 예수님이 귀신을 그 사람에게서 쫓아내어 돼지에게 들어가도록 하셨고, 귀신 들린 돼지들이 스스로 호수로 내달아 모두 빠져 죽었다는 내용인데, 이 부분도 적지 않는 기록의 차이가 납니다. 먼저 마가복음의 기록을 보겠습니다. 6~13절입니다.
6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엎드려서
7 큰소리로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제발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하고 외쳤다.
8 그것은 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악한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거라" 하고 명하셨기 때문이다.
9 예수께서 그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니, 그는 "군대입니다. 우리의 수가 많기 때문에 붙은 이름입니다" 하였다.
10 그러고는, 자기들을 그 지역에서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예수께 간청하였다.
11 마침 그 곳 산기슭에 놓아 기르는 큰 돼지 떼가 있었다.
12 귀신들이 예수께 "우리를 돼지들에게로 보내셔서, 그것들 속으로 들어가게 해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
13 예수께서 허락하시니, 악한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거의 이천 마리나 되는 돼지 떼가 바다 쪽으로 비탈을 내리달아, 바다에 빠져 죽었다.
이어서 같은 내용을 기록한 마태복음 8장 29~32절을 보겠습니다.
29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여, 당신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때가 되기도 전에 우리를 괴롭히려고 여기에 오셨습니까?" 하고 외쳤다.
30 마침 거기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놓아 기르는 큰 돼지 떼가 있었다.
31 귀신들이 예수께 "우리를 쫓아내시려거든, 우리를 저 돼지들 속으로 들여보내 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
32 예수께서 "가라" 하고 명하시니,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 돼지 떼가 모두 바다 쪽으로 비탈을 내리달아서, 물 속에 빠져 죽었다.
전체적인 내용은 마가와 마태가 일치하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원본인 마가복음에는, 예수님이 귀신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묻는 장면이 나오고, 귀신이 ‘군대입니다’ 하고 대답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군대처럼 매우 많은 귀신이 한 사람에게 들렸다는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그런데 마태는 이 내용은 뺐습니다. 왜 뺐을까요? 우리말 성경에 ‘군대’ 라고 되어 있는 이 단어가 헬라어 원문에는 ‘레기온’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레기온은 로마군대에서 6천명으로 구성된 병력 단위입니다. 우리말로는 보통 군단이라고 번역합니다. 그러니까 이 귀신 이야기에는 로마제국에 대한 반감이 묻어있는 것입니다. 마가복음이 쓰여진 때가 예루살렘이 로마제국의 제10군단에 점령된 서기 70년경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마가가 로마제국을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귀신으로 묘사하면서, 호수에 빠져죽은 돼지가 몰살하는 것처럼, 예루살렘을 점령한 로마 군단이 그렇게 파멸할 것을 바라는 은유의 언어로 이 귀신이야기를 담은 것이라고 진보적인 학자들은 해석합니다.
그런데 마태는 이 부분을 빼버린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로마제국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 내용을 뺐을 것입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모두 ‘하나님의 나라’라고 되어 있는 표현을 마태만 유독 ‘하늘나라’라고 표현한 것과 같은 이유일 것입니다.
선의로 해석하면 로마제국의 폭력으로부터 교회를 지키기 위해 정치적인 견해는 가급적 피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마태복음의 저자는, 현실적이고 사회적이며 역동적인 예수님의 생명운동을 피안의 세계로 도피시키는데 일조한 셈이 됩니다.
이어지는 본문에는, 예수께서 어린 소녀와 혈루증에 걸린 여자를 고쳐주시는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이 내용도 마태복음 9장에 수록되어 있는데, 마태는 이 이야기도 대폭 간추렸습니다. 먼저 마가복음 5장 21~24절을 보겠습니다.
21 예수께서 배를 타고 맞은편으로 다시 건너가시니, 큰 무리가 예수께로 모여들었다. 예수께서는 바닷가에 계셨는데,
22 회당장 가운데서 야이로라고 하는 사람이 찾아와서 예수를 뵙고, 그 발 아래에 엎드려서
23 간곡히 청하였다. "저의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오셔서, 그 아이에게 손을 얹어 고쳐 주시고, 살려 주십시오."
24 그래서 예수께서 그와 함께 가셨다.
이어서 마태복음 9장 18~19절을 보겠습니다.
18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지도자 한 사람이 와서, 예수께 절하며 말하였다. "내 딸이 방금 죽었습니다. 그러나 오셔서, 그 아이에게 손을 얹어 주십시오. 그러면 살아날 것입니다."
19 예수께서 일어나서, 그를 따라가셨다. 제자들도 뒤따라갔다.
원본인 마가복음에는, 소녀의 아버지가 ‘회당장 야이로’라고 구체적으로 그 이름이 적시되어 있는데, 마태는 그냥 ‘지도자 한 사람’이라고 기록했고, 마가복음에는 ‘딸이 죽게 되었으니 살려달라’고 요청하는 것으로 되어있는데, 마태는 ‘딸이 방금 죽었다’고 말한 것으로 기록했습니다.
왜 마태는 마가복음의 본문을 가져가면서 이렇게 내용을 바꾸었을까요? 이어지는 본문을 보면, 예수께서 소녀의 집으로 가시는 도중에 혈루증을 앓는 여인을 고쳐주셨다는 이야기와, 소녀의 집에 도착했을 때 소녀가 이미 죽어 있었다는 이야기 전체의 결론은 마가와 마태가 같습니다. 그러나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을 살리는 것보다, 죽은 지 조금이라도 더 오래된 사람을 살리는 것이 더 극적인 효과가 있기에, 마태가 그렇게 내용을 살짝 바꾼 것이 아닐까요?
어쨌든 이런 저런 이유로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의 기록이 서로 다를 때, 학자들은 마태보다는 마가의 기록을 더 신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가복음이 원본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