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대성동 고분군은 2023년 9월 17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가야고분군이다.
사적 제341호인 고분군 바로 인근에는 김수로왕릉과 구지봉엔 허왕후릉도 있다.
대성동고분군은 발굴 조사 결과 원삼국시대의 널무덤과 가야 전기의 덧널무덤,
그리고 구덩식 돌방무덤이 발견되었는데 금관가야 지배층의 무덤으로 추정하고있다.
가야국 분포도
가야국의 김수로왕은 금관가야의 초대 국왕(태조)이자 김해김씨의 시조이다.
가야 건국신화는 2가지가 있는데 삼국유사에 수록된 구지가의 여섯(6)개알 신화로 유명하다.
서기 42년 김해 구지봉에서 사람들이 모여 구지가를 부르며 춤을 추자
하늘에서 자주색 줄이 내려오고 줄 끝에는 황금색 상자안에 6개의 황금 알이 있었다.
그 황금알이 12일 후에 사내아이로 바뀌었고, 가장 먼저 깨어난 이가 김수로이며
나머지 알 5개에서 태어난 아이가 각자 나머지 가야의 왕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김해 대성동 고분박물관
알 6개에서 태어난 가야의 왕들은 모두 키가 9척이었는데 서기 42년에 가야를 건국했다.
이후 48년 김수로왕은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과 결혼했으며,
둘 사이에서 태어난 왕자 열명 중 두 아들에게 왕비의 성인 허씨 성을 주어
대를 잇게 했으며, 이들은 김해허씨의 시조가 되었는데 서기 199년까지 살았다고 한다.
이런 연고로 김해김씨와 김해허씨는 같은 형제로써 최근까지 서로 혼인도 하지 않았었다.
대성동 고분박물관의 전시유물(1)
또한 최치원의 석이정전과 석순응전을 인용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가야산신 정견모주가 천신(天神) 이비가지(夷毗訶之)와 감응해
첫째인 대가야 왕 뇌질주일(惱窒朱日 이진아시왕의 별칭),
둘째인 금관국 왕 뇌질청예(惱窒靑裔 수로왕의 별칭)를 낳았다는 대가야 중심의 설화가 있다.
대성동 고분박물관 전시유물(2)
가락국(駕洛國)이라는 이름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국명이며
삼국유사 이전에는 금관가야 혹은 구야국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금관가야에 대해 중국 사서인 삼국지 동이전에서는 구야국(狗邪國)
또는 구야한국(狗邪韓國)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후에 가야는 가야(伽倻, 加耶, 伽耶), 가락(駕洛, 加洛), 가라(加羅, 伽羅, 迦羅),
가량(加良) 등 여러 한자로 표기되었다.
김해 대성동 고분군
금관가야는 1세기 중엽부터 4세기 말까지 변한 지역 연맹체의 중심국가였기 때문에
"가야"라는 말은 변한 지역 전체 또는 그 국가연맹체를 칭하는 이름이 되었다.
이 때문에 금관가야에 이어 후기가야연맹을 이끌었던 반파국 역시 금관가야가
전기 가야연맹을 이끌 때 쓰던 대가야란 이름을 연맹체의 이름으로 사용하였다.
399년 금관가야(구야국)의 세력 약화로 고령에 위치했던 대가야가
가야의 맹주로 떠올랐으며, 금관가야는 소국으로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고 있었다.
532년 금관가야국의 구형왕은 신라에 투항하였으며, 가야 귀족들은 신라의 진골로 편입되어
여전히 그 세력을 유지했고 이는 나중에 김유신 등이 신라의 정계로 진출하는 기반이 되었다.
가락국의 왕손들은 이후 신라황실의 성(姓)인 김씨에 대해 신 김씨라 불리며
진골에 편입되었으며, 나중에 김유신이 삼국통일 전쟁에서 높은 전공을 세웠다.
그 자신도 생전의 전공으로 사후에 흥무대왕에 추증되어 신라왕이 되었다.
고려시대 이후 신 김씨는 본관을 김해로 지정받아 김해 김씨가 되었다.
김해 대성동 고분군 3호분 발굴 터
대성동 고분군의 느티나무
김해 대성동 고분군 야외 전시관
대성동 고분군을 둘러보고 수릉원으로 향한다
대성동 고분군과 김수로왕릉 사이의 수릉원(首陵園)
수릉원은 가락국의 시조인 김수로왕과 허왕후가 만나
거닐었던 정원을 구상하여 조성하였다고 한다.
수릉원 동편의 허황옥(許黃玉,허왕후) 상(像)
허황옥상과 수릉원
김수로왕릉 입구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확정 현수막
김수로왕릉의 숭화문
홍살문과 가락루
납릉정문(納陵正門)
김수로왕릉
김수로왕릉 담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