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난 음주 필사 중!
지인 변호사가 음주 운전으로 벌금을 맞고 면허시험을 다시 봤다. 사법 고시는 붙었는데 운전면허는 너무 어렵다고 투덜거렸다. 난 음주 글쓰기 중이다. 다행히 키보드를 두드리는 게 위험한 것은 아니다. 물론 음주로 인해 글을 정지당할리도 없다. 밤새 실수를 한다. 요실금 환자처럼 여기저기 싸지른 글, 이제 다들 포기한 것 같다. 고마운 지인들, 나를 정식 정신병자로 인정한 것 같다. 경멸하지 않고 받아주는 이웃들이 좋다.
음악을 들으며 손 편지처럼 "토지"를 필사했다. 난 또다시 이벽을 넘지 못하리라! 벌써 손가락이 굳어져 간다. 언제 이 글을 다 옮길지 모른다. 4년의 고통을 뭘로 표현할까? 그래 차라리 말자!
세상에서 정말로 나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영민하고 총명함이 고통이 되는 순간이 있다. 생각이 많아서 뇌 회로에 날마다 천둥과 번개가 동반한다. 두 살까지 일들이 사진처럼 떠오른다. 지금 이 순간 내리는 폭우가 내 삶을 파탄 내지 못할 것이다.
할아버지께서 노산 이은상 선생님과 함께 박정희 대통령을 만났다. "이순신 장군 아산 현충사 " 건립을 제안하셨다. 법인카드도 안 쓰시고 자비로 앞장섰다. 세상에서 남의 돈 함부로 하는 자가 제일 나쁘다고 하셨다. 난 그렇게 배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넉넉할 것!
남의 돈 함부로 하는 자는 자신의 돈도 붙지 않는다고.. 배웠다. 그 신념들이 날마다 깨진다. 남의 돈으로 빵 사 먹는 그분은 아무 상관 없고 만날 일도 없는 나를 우울하게 만든다.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운 좋은 자는 계속 좋을 것이고 불운한 자는 계속 불운할 것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제일 먼저 생각나는 일은 이순신 장군의 종손을 만나러 가는 날이었다. 꼬꼬마인 나는 할아버지를 따라 이순신 장군의 종갓집에 갔다. 할아버지께서 세세하게 설명을 했다. 종손이 스쳐가는 샛바람처럼 한마디 했다.
"어르신, 매점권은 무조건 제게 주셔야 합니다!"
"내 그리 약속함세."
그 말은 정말 충격이었다. 물론 그 당시는 몰랐다. 시간이 지나고 삶을 하나씩 정리하는 순간에 떠올랐다. 아산 현충사 오픈 기념식에 갔다. 매점에서 그분을 다시 만났다. 그 순간, 아이스크림을 바라보았다.
종손께서도 내 숨은 의도를 알았으리라.
할아버지께서
"부라보콘 사줄까? " 하셨는데 사실 너무나 먹고 싶었다. 철이 빨리 들어서 대답을 망설이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작게
"아니요, 괜찮아요."라고 말했다.
이제서야 고백 하건대, 기실 종손께서 하나쯤 주실 거라는 영악한 생각에서였다. 할아버지의 도포자락만 만지작거렸다. 그분을 폄하하거나 야박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난 그냥 사실을 기록하는 자이다. 그분께서 살아계신다면 나를 기억하실 것이다. 그날의 삼각구도를 분명 알고 계실 것이다.
집에 오자마자 감색 도포를 벗으며 할아버지께서 혼잣말을 하셨다.
"인정머리 없는 인간! 애한테 아이스크림 한 개를 안 줘. 내가 예천에서 서울까지 수십 번을 오가면서 고생했는데 .."
몰래 듣고 있다가 재빨리 말했다.
"전 부라보콘 안 좋아해요."
조부는 그 후로 "난중일기"를 해독하시느라 일생을 보냈다. 아직도 난중일기는 해독중이다.
아버님은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 핵 개발을 의논하셨다. 국방과학 연구소에 계실 때는 전두환 대통령도 여러 번 만나기도 하셨다. 위대한 당신들의 일상을 그냥 난 옮기기에도 바쁘다.
난 지독하게도 신념의 인간이었으니 그 후로도 아이스크림을 일 년에 2개도 먹지 않는다. 1개라고 말하기엔 너무 거짓말 같아서 넉넉하게 두 개라고 결정했다. 심지어 동생이 사준 하겐다즈를 한 입 먹고 버렸다. 엄마한테 일러서 혼났다.
31가지 맛이라고 선전하지만 매장에 가면 보통 24~26가지 맛이 있는 이름이 서른하나인 그 유명한 아이스크림도 나를 유혹하진 못했다. 동생들은 하루에도 몇 개씩 먹고 온몸에 축복을 받았다. 뉴욕에서 지금 "일런 머스크"랑 '킴 카다시안"이 맞았다는 기적의 다이어트 주사 "위고비"를 맞고 있는 중이다.
기적의 다이어트 약 위고비와 일런 머스크
난 이 글을 쓰고 나서 후회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걱정하지 않는다. 난 분명히 보고 들었으며 진실을 남기고 싶을 뿐이다. 누구를 비난하고자 함도 아니다. 이유는 단 하나, 나만의 진실을 기록하고자 함이다. 물론 난 금치산자(정신병자, 일명 또라이)라 어떻게든 법망을 요리조리 피해 갈 수 있다. 음주 기록까지 했으니 절대 무죄( innocent)이다. 그리고 40년 이상 세월이 지났다. 위대한 남자! 난 이순신을 구한 좌의정 "정탁"의 30대 후손 "정온"이다.
진실을 함구하는 자로 남고 싶지 않다. 이젠 볼장 다 본 자이다. 지옥의 아홉 계단을 오르고 또 올라왔다. 짧고 굵게 살기에도 너무 늦었다. 많이 살았다. 누군가가 죽어가는 시간에 이 글을 남긴다. 생각보다 삶은 짧다. 꿈처럼 왔다 가니 악몽이여! 이제 그만! 감방 벽을 바라보는 죄수처럼 삶을 노려본다.
나를 위한 치유의 글, 그러나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행복하기를 바라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공부가 되는 새벽, 진정한 학문이란 삶에 관한 바른 이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