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조 지회장이 한의원 문을 열고 들어왔다. 치료하면 조금 풀리는 것 같았던 어깨가 다시 말썽을 일으켜 결국 외과적 시술을 받았단다. 그런데 그 어깨가 다시 탈이 난 것이다.시술을 받고 난 뒤 물리치료, 재활치료를 받고 쉬어야 하는데 쉴 틈 없는 일정으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단다.
“왜 이제 오셨어요?”
“이런저런 일정으로 바쁘다 보니 진료 받으러 올 수가 없었습니다.”
겸연쩍은 모습으로 진료실로 들어오는 그이의 미안하다는 말에 마음이 무겁고 내가 더 미안해진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년 째 그런 삶이 이어진다면 몸이 망가지지 않을 사람이 세상에 누가 있겠습니까?”
“몸이 아파도 시간을 내기 힘들어서요. 저만 그런 게 아니니 어쩌겠습니까?”
“요즘 잠자리는 여전한가요?”
“낮엔 퇴약볕 밑에서 지내야 하고 밤엔 찬이슬 맞고 자야 하고, 비바람이라도 불 땐 잠자기를 포기해야 하다 보니 치료를 받아도 그저 그렇네요.”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기 전만 하더라도 농성장 천막 안에서 아쉬운 대로 진료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정권 들어 대부분 농성장에서 천막을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비닐 포장조차 불가능해졌다. 경찰이 감시하고 있다가 그 자리에서 빼앗아간다는 것이다.
몸 가릴 곳 없이 노출된 상황은 그나마 가능했던 진료마저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진료는 고사하고 밤이슬, 비바람이라도 피하게 해줬으면 좋겠다. 정권과 경찰은 법을 앞세워 최소한의 건강권과 인권을 이들과 함께 거리에 버렸다. 적어도 잠자리만큼은 편하게 잘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그래야 회복이 되고 크게 병들지 않는다. 회복되지 않고 쌓이는 피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다. 할 수 없이 요즘엔 한의원 진료실로 불러 치료를 이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사람을 만나야 치료를 할 수 있을 것 아닌가? 끝없이 이어지는 농성, 집회로 이들의 몸은 지쳐있고, 조금의 틈이라도 있으면 다른 투쟁현장으로 연대를 간다. 서로의 아픔을 잘 아는 이들이기에 연대투쟁을 주고받는다.
상황이 이러하니 치료 받을 시간이 있을까? 그럴 마음의 여유도 없는 듯하다. 온갖 의료시설과 장비, 안락한 치료실이 기다리고 있지만, 거기에서 꾸준하게 진료를 받아야 한다는 걸 모르지는 않겠지만, 이게 가능하지 않은 그이들의 처지가 너무 안타깝다.
길 위에서의 외침이 오래될수록 이들의 몸과 마음은 병들어 가고 참다못해 한 번 들르는 진료실은 겨우 잠깐의 휴식과 위안을 줄 뿐이다. 비바람, 밤이슬 피할 천막 하나 허락되지 않는 척박하고 저주스러운 이 땅에서 그이들은 아직도 실낱같은 희망을 외치고 소망한다. 메아리 없는 외침을 쉬지 않고 보내고 있다. 그럴수록 점점 그들은 지치고 병들어간다. 아주 조금씩 조금씩...
이제 두세 달이면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4년이 된다. 유가족들은 아직도 아픈 몸과 마음을 이끌고 길 위에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외치고 있다. 노사 합의로 일터로 돌아갔던 기륭노동자들이 다시 길로 나섰다. 회사가 처음 약속을 지키지 않고 복직된 노동자들에게 일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은 아직도 대한문과 평택 회사 앞을 망부석처럼 지키고 있다.
이렇게 길 위에서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이들은 모두 만신창이가 될 것이다. 회복되지 못할 끝으로 달려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이 싸움에서 상처받은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다시 삶의 터전에 돌아올 수 있도록 나는, 우리는, 세상은 힘을 모아야 한다. 함께 싸워야 할 뿐 아니라 그이들이 잠깐만이라도 편히 쉴 수 있는 틈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용산참사 대책위가 지난 16일 오후 서울 강서구 과해동 한국공항공사 앞에서 촛불문화제를 열고 김석기 사장에게 용산참사에 대한 책임과 공항공사 사장 사퇴를 촉구했다. 날씨가 쌀쌀한 가운데 참가자들이 이불로 추위를 달래고 있다.ⓒ양지웅 기자
제2, 제3의 귀정사가 생기기를 다행히 반가운 소리를 들었다. 전라도 남원 땅 작은 절, 귀정사로부터 날아든 소식이었다. 투쟁으로 지치고 상처 받은 이들과 그이들의 가족을 위한 쉼터를 연다는 따듯한 알림글을 받았다.
그리고 지난 10월 19일 여기에 뜻을 모은 이들이 귀정사에서 쉼터를 여는 잔치를 열었다. 이런 작고 소박한 노력들이 조금씩 커지고 모여져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큰 마당으로 널리 펼쳐지길 소망해본다.
제2, 제3의 귀정사 쉼터가 이 땅 곳곳에 세워져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보듬고 살아왔던 이 땅의 많은 길 위의 삶들에게 위로와 휴식을 주고, 거기에 더해 스스로 자신을 지키고 회복하며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곳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이제 길 위에서 싸우는 이들이 몸과 마음이 지치고 다쳐 더 이상 쓰러지지 않도록 그이들에게 잠깐만이라도 휴식할 수 있는 길을 열어보자. 많은 이들이 귀정사 쉼터에 깊은 관심과 많은 도움을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