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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오선사 유트브로 보기 https://youtu.be/r0lcML1Y784
운문록 상당 대기 2-18. 반야지혜가 무엇입니까?
한 스님이 운문선사에게 물었다.
"무엇을 '모든 것을 아는 청정(淸淨)한 지혜(智慧)'라 합니까?“
여기서 한 스님이 물은 것은 무엇있니까?
“모든 것을 아는 청정(淸淨)한 지혜(智慧)는 논리적으로 해석하면은 모든 것을 아는 청정이란 부처님의 불지(佛智)를 말하는 것이니 범어로 말하면 반야(般若)이며 그러니 ”모든 것을 아는 청정(淸淨)한 지혜(智慧)“는 반야지혜(般若智慧)인 것입니다.
그러면 반야지혜는 무엇인가를 먼저 알아야만 이 물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임으로 논리적으로 반야지혜를 논술적으로 알아보고자 합니다. 즉 부처님의 설법중에 18년이나 설하신 반야부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반야경을 총체적으로 말한다면 마하반야바라밀다 심경일 것입니다. 그래서 반야경 800여권을 총체적으로 알아보려면 한 번 읽어 보기에도 수년이 걸릴 것이며 그 뜻을 헤아려 본다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집약하여 그 핵심을 알아 볼 수 있는 경이 금강경일 것이며 그 금강경을 더욱 압축하여 심요를 압축한 것이 마한바야 바라밀을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摩訶般若波羅密) 설명을 아미산은 이렇게 설파하고 있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이란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위대한 지혜의 완성이란 뜻으로, 산스크리트어 마하 파라하 파라밀다(mahā-prajñā-pāramitā)인 것입니다.
• ‘마하(摩訶)’라고 하는 말은 크다(大), 많다(多), 비교할 것이 없는 절대적인 것(勝) 등의 뜻을 가진다.
• 반야(般若)는 지혜, 통찰, 분명하게 알다, 맑고 밝다, 그런 뜻이고, • 바라밀(波羅密)은 충만한, 완전한, 위대한 완성, 그런 뜻이다.
그리하여 큰 지혜의 완성이라고 마하반야바라밀의 의미를 요약할 수 있다.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은 지혜의 완성 혹은 지혜를 터득하기 위한 수행을 말한다. 그래서 지혜바라밀(智慧波羅蜜)이라고도 한다.
‘반야(般若)’란 빠알리어 판나(‘panna’)를 음사한 말로서, 반야의 ‘반(般)’은 접두어 판(‘pan’)를 음사한 말인데, 그 의미는 능동적으로 앞서간다는 것이고, ‘야(若)’는 ‘na’를 음사한 말로서 혜(慧), 즉 앎이라는 의미이다. 반야란 바로 무명(無明)과는 정반대 개념이며,
번뇌를 제거하는 일이 곧 반야를 드러내는 일이다.
제대로, 있는 그대로, 사실 그대로를 아는 지혜가 바로 반야이다.
우리 인간의 몸과 마음은 인연화합으로 생겨났으며, 몸과 마음은 아주 없는 무(無)가 아니며, 다만 이 몸과 마음 안에 실체가 내재돼있지 않기에, 무아(無我)이기에, 이 몸과 마음이라는 오온(五蘊)은 공(空)한 것이다.
이와 같이 반야란 곧 공(空)의 실상을 깨닫는 것이고, 제법실상(諸法實相)이며, 곧 공임을 이해하는 것이 반야이다.
반야의 힘은 대단히 강력하다. 반야만이 선심소(善心所-선한 마음작용)의 핵이다.
마치 거대한 원자력발전소 안의 핵연료봉과 같은 핵심이다.
처음에는 누구나 반야가 없다. 선심소(善心所)로 밝고 행복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면, 또한 불교를 배워서 진리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조그마한 불씨처럼 반야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른 선심소(善心所)들이 열심히 기능해서 반야가 나타나도록 도운다. 번뇌를 부셔버리는 능력이 있는 것은 반야뿐이다.
반야가 나타난 시점에서 괴로움을 초월해서 해탈을 하게 된다.
그래서 ‘반야’를 ‘보살의 어머니’라고 한다.
그리하여 ‘반야’란 ‘수승한 지혜’라는 뜻인데, 사물의 이치를 정확하게 깨닫고 처리하는 능력이다.
즉, 인간이 진실한 생명을 깨달았을 때 나타나는 근원적인 지혜, 통찰(洞察)을 반야라 한다.
보통 말하는 판단능력인 분별지(vijnana)와 구별하기 위해 반야라는 음역을 그대로 사용한다.
따라서 반야지혜(般若智慧)가 있으면 불지(佛智)요, 성지(聖智)며, 반야지혜(般若智慧)가 없으면 중생의 분별지(分別知)요, 범부의 망념(妄念)인 것이다.
그리고 ‘바라밀(波羅蜜)’은 산스크리트어 파라미타(paramita)를 음사한 말로서, 산스크리트어 파라마(parama:최고라는 뜻)에서
파생된 말이다.
태어나고 죽는 현실의 괴로움에서 번뇌와 고통이 없는 경지인 피안(彼岸)으로 건너간다는 뜻이고, 열반에 이르고자 하는 보살의 수행을 이르는 말이다. 수행은 곧 ‘바라밀’의 실천이다.
그리고 바라밀(pāramitā)을 어원적으로 분석해보자.
➀ ‘저 언덕’을 의미하는 파라암(‘pāram’)과 과거를 나타내는 접미사 이타(‘ita’)가 합쳐졌다는 풀이가 있다.
이런 분석에 따르면 바라밀은 ‘저 언덕에 도달한 상태’ 등의 의미를 갖게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자로 의역해 ‘도피안(到彼岸)’이라 하기도 한다. 또는 ‘도(度)’라고도 한다.
용수(龍樹, 나가르주나)의 저서 <대지도론(大智度論)>에서 ‘도(度)’ 역시 파라미타(Paramita)의 번역어이다.
‘도(度)’는 현실의 차안(此岸)에서 이상적인 상태인 피안(彼岸)으로사람들을 보내기 위한 덕목ㆍ수행 또는 실천이라는 의미이다.
그리하여 바라밀이란 한발 한발 건너간다는 의미이다.
② ‘뛰어난’ 혹은 ‘최상’을 의미하는 파라마(‘parama’)에 기인한다는 풀이도 있다. 근래에는 이 두 번째 풀이를 더 선호한다.
곧 파라미타(paramita)가 ‘최상의’ ‘궁극의’ 의미인 형용사 파라마(parama)를 여성명사로 변화시킨 뒤 접미사 타(tā)를 추가해 파라미타(‘pārami +tā’) 의 태가 됐다고 풀이한다.
이런 분석에 따른 의미는 완성ㆍ성취ㆍ완벽ㆍ최상 등이 된다.
주로 반야계 경전에 많이 언급되고 있는 6바라밀과 비교해 보더라도 이러한 ‘완성’의 의미가 문맥에 보다 적당해 보인다.
또 앞의 설명처럼 자신이 저 언덕에 도달하는 것이나 유정(有情)을 제도하는 것도 결국은 발원해 추구하는 바를 성취하는 것이고, 완성하는 것이기에 그것들도 ‘완성’의 의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이라 하겠다. 그리하여 <미륵보살소문경>에도 완성의 의미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모든 부처와 여래가 저 언덕에 도달한 것을 바라밀이라 하고, 초지보살이 궁극적으로 저 언덕에 도달할 것이기 때문에 바라밀이라 하며, 모든 보살이 저 언덕으로 가는 것을 궁극적으로 얻을 것이기 때문에 바라밀이라 한다.”고 설명했다.
또 <섭대승론석>에서는 도피안(到彼岸)의 의미를 3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① 수습해야하는 실천에 따라 완전해서 남음이 없는 것,
② 여러 지류들이 바다로 귀결돼 끝마치는 것처럼 진여(眞如)에 들어가는 것,
③ 등급이 없는 결과[無等果]를 얻는 것이다.
이는 보살이 수습해야하는 실천, 들어가야 하는 이치, 얻어야하는 결과가 모두 절대이고 완전하기 때문에 바라밀이라 한다고 했다.
피안에 이르든, 구제(救濟)를 하든,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인 깨달음의 성취나 완성에 있다. 완성과 성취는 괴로움의 세계에서 깨달음의 세계로 옮겨가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도피안(到彼岸)에서 피안(彼岸)은 바로 지혜와 자비로 가득 찬 깨달음의 세계에 이르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볼 때, 바라밀은 어리석음과 탐욕으로 생기는 괴로움의 세계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에 이르는 것이다.
따라서 바라밀은 도피안(到彼岸)이나 완성의 의미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바라밀의 경지는 애쓰고 노력하는 경지가 아니라 몸에 배서 자연스레 그렇게 되는 경지이다.
애쓰는 것 없는 제법이 공(空)한 상태, 즉 공성(空性)이 있어야 바라밀이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바라밀은 보살의 길로서 보살이 걸어가야 할 도(道)를 의미한다.
그리고 반야와 바라밀이 합쳐진 ‘반야바라밀’은 ‘완전한 지혜’, ‘지혜의 완성’이라는 뜻이지만, 이 지혜는 육바라밀 전체를 포함한, 육바라밀을 동시에 실천함으로써 얻어지고 행해지는 포괄적인 지혜를 의미한다.
그리고 ‘반야바라밀은 모든 부처님과 부처님 법이 나온 곳’이라고 해서 불모(佛母)라고도 한다.
모든 부처님께서 부처님이 되신 근거가 반야바라밀이라 했다.
그러므로 진리의 길을 구하는 사람은 마땅히 반야바라밀을 구해야 할 것이다. 개인의 완성에 있어서나 사회의 완성에 있어서나 역사와 국토의 완성에 있어서도 무엇보다 반야바라밀을 구해야 한다.
반야바라밀은 근원적 진리이며 주체적 진리이다.
우주와 시간이 벌어지기 이전의 원 모습이며, 시간과 역사가 벌어진 후에도 그 원 모습이고, 무궁한 시간과 공간과 존재와 발전의 근원적 원 모습이 반야바라밀이다.
생멸의 근원이 반야바라밀이고, 우리의 참 모습이 반야바라밀이며,
일체존재를 초월한 실존이 반야바라밀이라는 말이다.
또한 이 법은 모름지기 실행할 것이요, 입으로 외는 데 있지 않다.
입으로 외고 실행하지 않으면 꼭두각시와 같고 허깨비와 같으나,
닦고 행하는 이는 법신 부처님과 같으리라.
미혹한 사람은 입으로만 외고, 지혜 있는 이는 마음으로 행하느니,마음이 한량없이 넓고 크다고 해도, 행하지 않으면 곧 작은 것이다. 지혜를 실천한다는 말은 바로 보시ㆍ인욕ㆍ선정 등 육바라밀을
실천한다는 뜻이다. 육바라밀 중의 어느 하나를 들면 다른 다섯 가지가 동시에 포함돼 나오는 식이다.
따라서 반야바라밀은 보시바라밀, 인욕바라밀, 선정바라밀 등
육바라밀의 의미를 확실하게 알고 실천하는 경지를 말한다.
때문에 반야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갖춰야 할 능력이다. 그러나 반야만으로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
반야바라밀 수행이 있어야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면, 배를 타고 강을 건너야 할 때 건너가야 할 배가 있어야 한다. 그 배가 반야이다. 배가 있는 것만으로는 강을 건널 수 없고
그 배를 저어 강을 건너려는 노력이 있어야 건널 수 있다.
그 노력이 바라밀이다.
그리하여 반야바라밀은 “완전한 지혜로 깨달음을 얻는 수행을 철저하게 열심히 하여~“ 라는 뜻이다.
그런데 반야로만 바라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반야바라밀이 아니더라도 육바라밀 중의 어느 것 하나 만으로도 바라밀 할 수 있다. 보시만 잘해도 되고, 지계만 잘해도 되며, …
어느 것 하나만 제대로 하면 바라밀 할 수 있다.
그리고 ‘반야’는 단순한 지혜가 아니라 순간순간의 실천 속에서 항상 새롭게 터득되는 지혜이기 때문에 반야바라밀, 즉 지혜의 완성을 의미한다.
반야바라밀은 모든 사람이 하나의 진리로 통하는 길이다.
그래서 반야바라밀을 대명주(大明呪)라고 하고, 마하반야바라밀이라 한다. 대명주이고 무상주(無上呪)임을 알아서 반야바라밀을 입으로만 외우지 말고 내 몸 전체가 대명주가 되라는 것이다.
일체가 통하는 도리를 입으로만 말하는 진언(眞言)이 되지 말고, 구하는 것 없이, 조건 없이, 무조건 일심으로 반야바라밀을 염하고,
몸으로 외워서 대명주가 되자는 말이다.
그리고 ‘마하(摩訶)’는 모든 사람과 사람 아닌 것과 악함, 착함과 악한 법, 착한 법을 보되, 모두 다 버리지도 않고 그에 물들지도 아니하며, 마치 허공과 같으므로 크다고 한다.
이것이 곧 큰 실행(摩訶行)이다.
반야는 바로 마하 곧 열반의 체(體)를 뜻하며, 바라밀은 용(用)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마하반야바라밀은 반야바라밀이라는 말 앞에 ‘마하’라는 말을 덧붙여서 반야바라밀이라는 말의 뜻을 ‘마하’라는 말로 좀 더 분명하게 규정한 말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하므로 ‘마하반야바라밀’이라는 이 말 7자 자체가 신령스런 주문(呪文)이기도 하다.
마하반야바라밀은 <반야심경>에서의 표현대로 크게 신령스런 주문이며, 크게 밝은 주문이며, 위없는 비할 바 없는 주문이다.
주문(呪文)은 곧 참된 말[진언:眞言]이며, 마하반야바라밀이야말로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참된 말이다.
따라서 마하반야바라밀을 많이 염송하면 마음이 밝아지고 건강해지며 복된 삶을 누리게 됨은 당연한 이치다.
그런데 마하반야바라밀의 ‘큰 지혜의 완성’이라는 뜻은 장차 완성한다든가 어떤 조건이 붙은 완성이 아니라
이미 완전하게 완성돼 있음을 말한다.
이것은 무엇이 어떻다고 설명할 수 없는, 생각이나 마음을 초월한 무한 절대의 완성, 진리 본연의 완성을 뜻한다.
그리하여 마하반야바라밀을 외우고 이루면 마침내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되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무상정등정각이고, 위없는 바른 깨달음, 최상의 깨달음, 즉 성불(成佛)이다.
그래서 반야바라밀을 “불모(佛母)” 즉 붓다의 어머니, 혹은 “보살의 어머니”라고 한다.라고 아미산은 설법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사선에서 본다면 다 사량분별심이요 번뇌망상인 것입니다. 모든 것에서 벗어나는 것이 해탈이요 생각이라는 마음의 실체가 있는 것도 아닌 것인데 깨달음이란 무심처에 계햡해야 하는데 이른 논리적 생멸법에 머물고 있는 한 스님의 질문에 무엇이라해야 한 마음 회광반조(廻光返照)했어 지금 여기에서 펼쳐진 진여실상을 보지 못하느냐며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승당(대중이 기거하는 집)에서 법당으로 들어간다."} ㅎㅎㅎㅎ
지금 여기에서 보니 승당 스님이 법당으로 들어가고 있지않느냐
고 꾸짓고 계십니다. 성불인연 맺으소서 옴 바아라 믹~~~~!!!!!!
조사선(祖師禪) 운문록(雲門錄)을 들어시어
인연성불(因緣成佛) 하시어서 붓다(佛陀) 같이 살아가소!
일승법문을 시절인연삼아 인연성불 하옵시고 대원성취 하옵소서 !
원오선원 명상쉼터 천안시 두정동 611_1번지 5층(041)551 8546
무명 납승 원오선사 010 8748 6006 옴~바아라 믹!!!_()_
탁발성원 보시구좌 농협 351 1042 1598 93 대한불교 정토회

첫댓글 운문록을 통하여 인연성불 요인성불하시어서 본불본락 하옵소서 옴~바아라 믹!!!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