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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8일 금요일 흐림
장마가 시작되었다더니 흐리기만 하다.
마른 장마.
축구도 지고, 몸도 무겁고....
그래도 누워만 있을 수는 없는 일,
해무라고 표현하기는 무리가 있지만 다습한 바다 내음을 맡으며 산책에 나섰다.
낚시를 하는 사람들 한 둘이 보이고,
이른 아침 올레길에 마주친 사내의 미소담긴 눈인사가 싱그럽기만 하다.
포구를 돌아가다 보니 아낙이 바닷가에 서서 먼 곳을 향해 손짓을 하고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른 시간이라 괘이한 마음이 들었으나
돌담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내의 눈길도 아낙을 향하고 있어
가는 걸음을 재촉하고 말았다.
하르방들의 산책은 끝났을 시간이고,
아저씨 한 분이 유유히 자전거를 타고 시야에 들어왔다가 이내 사라진다.
여행객인 듯한 아가씨가 츄리닝 바람에 MP3를 귀에 꽂고 무신경하게 지나가는 통에
그 아낙의 존재가 머릿속에서 지웠을 무렵, 등짐을 메고 모퉁이를 돌아오고 있다.
눈도 마주치지 않는 50대 중반의 발걸음이 빠르기도 하다.
얼마가지 않아 여름에 탈의실로 쓰였을 법한 곳에서 매쾌한 연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들어가 본다.
파다닥!!!
들고양이 한 마리가 튀어 나가고,
망자의 것을 상기시키는 옷이며 축문을 썼던 지방 같은 제사 용품들이 타고 있었다. .
아,
그 아낙이 무당이었단 말인가?
머라고 표현해야 하나? 이 알 수 없는 설레임을...
방향을 바꿔 법환초등학교를 향해 가기로 한다.
꿩이며 고라니와 같은 동물들은 텃밭이나 과수원에 가면 매일 만났지만,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달팽이 한 마리가 사투를 벌이며 횡단을 시도하고 있다.
힘겨워 보이지만 한 걸음 한 걸음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그 놈이 부러울 때도 있는 걸 보면,
무소유란 필명은 아직도 내게 어울리지 않는 것만 같다.
늦은 오후 하르방 형님이 말씀하신 낙천리 과수원을 살피러 갔다.
어떤 노력이 있었는지 알 수 없었으나 수세며, 밀식 정도, 과실의 크기와 수, 정말 탐이 났다.
6월 19일 토요일 맑음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자리잡이를 나가겠다고 했던 강씨의 말을 떠 올리며
법환포구에 나가 봤다.
헌데, 1시쯤이면 귀항한다던 광진호가 벌써 들어와 있다.
관광선을 운영하고 있는 선주들에게 소식을 물으며, 수인사라도 건넬 요량으로 사무실 안에 탁자를 가운데 두고 U자형으로 배치된 쇼파 한 귀퉁이에 엉덩이를 붙였다.
컨테이너 출입구 바로 앞에 옹색한 표정으로 앉은 모습이 측은했는지 그들 사이에서 사람 좋아 보이는 50대의 아저씨가 1회용 커피 한 잔을 건넨다.
아니나 다를까 그 친구는 어제도 만취했던 모양이다.
사람 취급을 안 하는 듯한 투의 거친 말들이 순서도 없이 여기저기서 튀어 나온다.
정착하려면 사람 가려서 사귀라는 말이 귀에 따갑다.
낭패라고 생각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조언을 청해 본다. 밀감 밭엔 장마 중간에 다이센을 살포하면 된단다.
낚시를 배워 보고 싶다는 말엔 차라리 골프를 하는 게 낫다고 ...
하귤을 한 조각 베어 물고 나서 자릴 뜨려고 일어서는데 책상 한 구석에 캔 맥주 한 박스가 눈에 들어온다. 뱃사람들은 워낙 술들을 잘 마시니 수명이 길지 않다는 말이 새삼 새롭다.
따가운 햇살이 내리 쬐지만 커피 한 잔이 마시고 싶어졌다.
이른 아침엔 주인을 만날 수 없는 매점으로 향했다. 부녀회에서 운영하는 가게일거라는 추측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우뜨르 마을로 시집을 갔다는 이 곳 태생의 아주머니가 부업으로 선택한 곳이었다. 라면은 물론 담배며, 아이스크림, 쥬스, 올레 빵, 원두 커피 등을 팔고 있었다.
나도 그랬지만 올레꾼들은 식사와 물까지 준비를 하고 걷기 시작한다.
생수 1병을 구입하기는 커녕, 심지어 컵라면을 먹기 위해 뜨거운 물을 거저 달라고 할 정도라니 ‘영 재미가 없다’는 그녀의 푸념이 선뜻 이해가 간다.
무인카페를 보고 정말 반가웠던 나는 평균적인 올레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강씨 집성촌이라는 법환동.
정착하고 싶어 왔노라고 하니 , 일언지하로 10년만 살면 인정하겠다고 말을 자른다.
2-3년 정도 살다가도 못 견디고 다들 살던 곳으로 돌아가는 이유가 먹고 살기 힘들어서라니 그 속내가 어찌했을지 짐작이 갈 듯도 한데....
포구 앞의 콘도형 민박집 주인에 대해 혹시 아는지 물어 봤다.
강모씨라고 그녀와도 멀지 않은 친척인데, 그녀는 물론 다른 친척들이 임대를 하고 싶어 요청을 해보았지만 묵묵부답. 소문난 부자라 그에게는 하챦은 재산 중 하나라나... 지난 선거에 도의원으로 출마해서 낙선을 했었어도, 비용에 대해선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할 정도라니 나에게는 기회조차 오지 않을 물건인 듯 하다.
잘 정착할지 두고두고 지켜 보겠다는 말에 용기를 얻는다.
6월 20일 일요일
오전에 관악산에 가겠다는 집사람하고 통화를 하고 나서 밀린 숙제를 한다.
비가 올지 모른다는데 행여나 미끄러지지나 않을지.....
정오가 지나서 문자가 온다.
정상에서만 비를 만났었다니 다행스럽다.
웬만하면 본가에 들려 모친을 위로해주길 바랬는데,
다음으로 미뤄야지 별 수 있겠는가?
6월 21일 월요일 맑음
일어나자마자 뭔가 조치를 취해야한 한다는 강박감에 호미를 든다.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잘 못돼가고 있다.
텃밭에 뿌려 놓은 종자의 발아 상태가 만족스럽지 못하다.
고추 모종도 영양 상태가 나쁘고, 토마토만 잘 자라는 이유를 확인해 봐야겠다.
식전 댓바람부터 무슨 영문인지 의아해 하는 눈치들이 보이지만
다시 씨를 뿌려보고 싶어 30여 분의 호미질로 이랑을 만든다.
나름 양분을 공급한다고 액비를 뿌려 놓고
파종이랍시고 해 놓고 나서 보니 정말 애들 장난이 따로 없다.
이 밭에서 제대로 된 채소가 나올지 의문이다.
친환경 미생물 수업 시간.
친환경 자재를 농진청에서 공시하고 있는데
농약대비의 효능은 인정하지만 안정성까지 담보하지는 않는단다.
유기농의 목적이 땅을 살려 후손에게 물려줌으로써 궁극적으로 인간에 이롭게 하겠다는 것이라면 , 오히려 과학이 만능은 아니라는 역설이 성립한다.
EM센터 이영민 회장이 가꾸고 있는 과수원에 가 본다.
만평이 넘는 규모에 놀랐지만 나무들의 상태며, 열정은
비록 만능은 아닐지라도 차선의 노력으로써 박수받아 마땅하다.
그렇다해도 과수원의 규모는 차치하고 경제적으로 안정되기까지 최소 3년 이상이 걸린다니
하루살이도 힘든 사람들에겐 모험이 아닐 수 없다.
형님의 이쁜 맏딸이 추천하는 오리 샤브샤브에 소주 반병을 마시고 나니
머릿속은 오히려 복잡하다.
복잡할 땐 초심으로 돌아가면 풀리리라.
6월 22일 화요일 다소 흐림
왠 병충해가 그리 많은지.
용어조차 생소하니 더 노력을 해야겠다.
형수님의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표선 세화리의 김성우씨가 경작하고 있는 과수원으로 또 견학을 떠난다. 체구는 자그마하지만 당차 보이는 주인의 성정이 과수원에서 물씬 풍겨난다.
과감한 전정으로 아까운 나무 몇 그루는 고사했을지언정 내게는 선배요, 스승인 것을....
7월 4일 모임에 필히 참석해야 한다는 전화를 받고 혼란에 빠져든다.
집사람이 다음 달부터 내려 와서 귀농교육을 받겠다는 이야길 듣고 나니 더 그렇다.
단순화 시킬 수 있고 정답이 있다면 정말 도움이 되련만...
사라졌던 불면의 버릇이 온 몸에서 스멀스멀 기어 다니고 있다.
6월 23일 수요일 맑음
새벽 축구의 16강 진출이 그래도 불면엔 도움이 되었나보다.
(이른 아침의 햇살이 상쾌하기만 하다.)
밤을 지샜건만 7시가 넘어서도 피곤하지가 않다. 두통만 있을 뿐...
오전에 차돌바위 선배의 이사를 돕기로 했는데 잘 해낼지 의문이다.
표선에서 한 시간 정도 걸린다던 선배가 날 듯이 달려 온다.
이십 분은 족히 단축했는데 몰고 온 목장 트럭의 외양을 보니 믿겨지지가 않는다.
차체가 온통 녹이 슬어 바람만 조금 불어도 부서질 것 같고
핸들의 유격도 부드럽지 않아 회전 구간에서 자칫 잘못하다간 갓길로 곤두박질치기 십상이다.
임무 수행 중에 숨만 거두지만 않으면 다행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선배는 모기업에서 인수한 콘도에 일자리가 날 것 같다는데 가게를 정리하는 부담에서 조금은 떨칠 수 있었으면 싶다.
오래 전부터 가보고 싶던 문화교육들살이(cafe.daum.net/dulsari) 대안학교에 가 본다.
(평화로운 교정에 잠시 살고 있는 당나귀와 오래된 이승복 동상.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교실과 아이들의 텃밭)
(기숙사와 야외 식탁으로 사용되고 있는 쉼터)
전신이 난산초등학교였는데 교사와 학생,학부모들이 함께 배우는 노력이 곳곳에 배어 있다.
밴드를 구성할 정도로 악기 하나 쯤은 다룰 줄 알고,
텃밭도 가꾸고, 같이 자고 같이 먹고, 맘껏 뛰 놀며 참된 지식을 쌓아가고 있는 학교.
다만 교무실겸 도서관이 한 방에 있다는 점이 안쓰럽다.
계절 학기에 이 곳에 다녀간 타학교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다는 후문이다.
내게도 따스했던 유년의 기억이 있었던가?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지만 그래도
먼 훗날 이 곳을 졸업한 아이들에겐 행복한 회상의 한 자락으로 남겨지지 않을까?
6월 24일 목요일 흐림
어제 지갑을 분실한 여파에서 아직도 헤매고 있다.
카드가 재발급되려면 1주일 이상 걸릴텐데, 선배로부터 빌린 돈을 홀딱 다 써버리다니.
주유부터 하고 볼 걸 그랬다.
왜 그리 조심성이 점점 없어져갈까?
집사람의 퉁박을 받으면서도 외려 짜증을 내지 말라고 맞서고 있는 내가 정말 부끄럽다.
나보다 훨씬 더 힘들고 답답할텐데,
위로는 못해줄망정.....
오후 2시, 농산물산업유통 및 마케팅 과정 개강에 참석.
전문가답게 명쾌하게 강의를 펼치는 윤선 박사,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신뢰감이 쌓이는 수업이다. “문제는....” 이라는 말이 삶의 방향을 복잡하고 어렵게 만든다는 말이 맘에 와 닿는다. 나보다 내 생산품을 사 줄 소비자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첫 화두...
말로만 떠들고 기억에서 지워 버린 민망함이 들킨 것 같아 낯이 화끈화끈,
반성모드의 지속이다.
구전마케팅에서 만족한 소비자는 3명에게
불만족한 소비자는 11명에게 전파를 한다는 통계가 정설이란다.
말 보다는 글로써 전파하는 것이
글 보다는 사진으로, 사진보다는 동영상, 동영상보다는 만남을 통한 체험이 더 효과적인 신뢰 획득의 수단이라고....
교통사고에 대한 불안보다 식품 안전사고에 대한 불안감이 더 빈번하고 크다는 점도 새삼 알게 된다.
실례로 새우깡의 생쥐 사건 보도나 채소에 잔류하고 있는 농약 뉴스 등은 여전히 대중의 뇌리에서 지워지고 있지 않고 있음이다.
6월 25일 금요일 장마 다시 시작
비가 흩뿌린다.
불면이 사라졌던 밤을 보내고 나니 몸이 한결 가볍다.
저녁에 제주 모임에 갈 요량으로
청소를 하고, 과수원에 들러 본다.
조만간에 전정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간만에 포구에 다시 나가 본다.
어찌 된 일인지 광진호가 보이질 않는다.
오늘은 조업을 나갔을 것 같아 놀멍걸으멍 가게에서 기다려 보기로 했다.
음료와 막걸리, 그리고 간편한 먹거릴 판매하고 있다.
모녀가 주인이었다. 작년에 올레를 돌 때는 없었던 곳이라
어떤 사연이 있을지 궁금했던 터였다.
아저씨를 일찍 사별하신 모양이다.
많이 힘드실텐데....
장사는 여의치 않다고 하신다.
올레꾼들이 많이 지나가기는 하지만 매상하곤 거리가 멀다고..
공공화장실인 것처럼 아무 거리낌없이 사용하는 건 결례가 틀림없다.
최소한 고마움의 표현이라도 해야할텐데,
개인의 것을 빌려 사용하는 올레꾼들의 태도가 아쉽다.
가게 앞으로 이어진 해안도로가 수용되지도 않고 개발도 되질 않으니
가장이 없는 집의 고단함이 속히 해결될 방안이 마련되야 할 것 같다.
오늘도 결국 조업을 안 나갔나보다.
바야흐로 장마가 시작되는 바람에 배를 서귀포 항으로 피항시킨 한 모양이다.
여전히 빗줄기가 사납다.
남주고 앞에서 운영중인 서귀포종합골프연습장 박철순 사장이란 분의 도움으로 지갑이 돌아왔다.
하지만 분실 신고를 한 탓에 주유조차 할 수 없는 형편이다.
결국은 양키님의 차량에 의지해 모임에 참석하기로 한다.
화북동 굽네치킨에 도착한 시각이 7시 40분 정도.
정각이 될 쯤 해서 치킨집 사장님인 혼저옵서님이, 연이어 블루문님이 러브포에버님을 모시고 등장.
제일 가까운 함덕의 하르방님 내외는 지각이셨다.
(생활비 10만원을 차용했다.^^)
서귀포에서 모이자는 나의 어설픈 주장은 메아리로 돌아가고,
한달에 한 번 정도 모여서 오름에 가자는 제안과 공동 사업에 대한 제안도 오갔다.
제주시에 있을 때는 몰랐었는데,
서귀포로 넘어 가야한다는 사실이 2차를 발목잡고 만다.
시간을 더 갖고 싶은 아쉬움을 접고 양키님의 차량에 다시 탑승,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복귀했다.
빗소리가 귀에 따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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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허 점 점 `이제 제주인이 다되어가시는 듯합니다 미 백배 입니다
감사합니다..더 노력하겠습니다.^^
멋진 사진까지 함께 올리니 참 좋네요. 들살이학교 사진도 참 좋고~~~
지갑을 돌려 받을 수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맞습니다.천만 다행이지요. ^^ 제주의 정직한 마음을 알고 있었지만, 점점 더 빠져 드는 느낌입니다. ^^
언제한번 올레갈때 다들 뵙구싶네요.^^*
회장정리라지만 그래도 만남의 기대가 더 큰 법이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