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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신을 향한 사랑이라는 방을 일구지 않고서
세상에 들어간다면
그대는 점점 더 세상에 얽혀들게 된다.
세상의 위험과 슬픔과 눈물에 압도당하게 된다.
그대가 세속적인 것을 생각하면 할수록,
그대는 세상에 더욱 집착하게 될 것이다.
1882. 2.
M이 라마크리슈나를 처음 만난 것은 그의 생일이 며칠 지난 1882년 봄 날, 어느 일요일이었다. 라마크리슈나는 다크시네스와르의 갠지스 강둑에 자리 잡은 어머니 칼리 여신의 처소인 칼리바리 Kalibari에 살고 있었다.
M은 일요일이면 친구 시두Sidhu와 함께 바라나고레 Baranagore에 있는 수목윈들을 찾곤 했다. 두 사람이 프라산나 반네르지 Prasanna Bannerji의 과수원을 거닐고 있을 때, 시두가 말했다. “겐지스 강둑에 파라마함사가 사는 아름다운 곳이 있다더군, 자네 그곳에 가보고 싶지 않은가.” M이 그러겠노라고 말해서 두 사람은 곧바로 다크시네스와르 사원이 있는 곳으로 출발했다. 해질 무렵 사원 정문에 도착한 그들은 곧장 라마크리슈나의 방으로 향했다. 두 사람은, 나무 침상에 앉아 동편을 바라보고 있는 라마크리슈나를 발견했다.1 그는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채 신에 관해 말하고 있었다. 방안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는데, 모두 바닥에 앉아 깊은 침묵 속에서 라마크리슈나의 가르침을 경청하고 있었다.
M은 말없이 서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마치 거룩한 성소들이 한데 모여 있는 곳에 온 듯했다. 혹은 슈카데바Sukadeva 브야사의 아들이며 바가바타의 학자. 인도의 이상적 수도승으로 여겨짐가 직접 신의 말씀을 들려주고 있거나, 스리 차이타냐가 자신의 신도들과 함께 푸리 Puri 인도의 성지의 신을 부르며 그 영광을 노래하는 듯했다.
라마크리슈나가 말했다. “하리Hari 비뉴누 신의 다른 이름 혹은 라마의 이름을 듣는 순간 눈물이 나거나 머리칼이 쭈뼜 선다면, 여러분에게는 이제 형식적인 예배와 같은 헌신이 더 이상 필요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됩니다. 바로 그 때만이 여러분은 그런 의례를 하지 않아도 될 권리를 갖게 될 것입니다. 아니, 예배 자체가 저절로 사라져버릴 것입니다. 그때는 그저 라마나 하리의 이름, 아니면 단지 옴Om을 반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입니다.”
M은 놀라서 주위를 둘러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정말 아름다운 곳이로구나! 저 사람은 또 얼마나 매력적인 인물인가! 그가 쏟아내는 말들도 아름답기 그지없구나! 저기서 한 발짝도 움직이고 싶지 않다. 잠시 후 그는 먼저 주변을 둘러보고 난 다음 다시 와서 자리에 앉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시두와 함께 그 방을 나오던 M은 저녁 예배를 알리는 사원의 음악소리를 들었다. 징과 종, 북과 심벌즈가 어우러진 감미로운 음악이었다. 그밖에도 사원 남쪽 끝에 있는 나하바트 사윈의 음악 탑에서 들려오는 찬미가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음악소리는 갠지스 강 너머로 울려 퍼지다가 저 멀리 사라졌다. 포근한 봄바람에 꽃내음이 실려 왔다. 어느새 달도 얼굴을 내밀었다. 마치 자연과 인간 모두가 저녁 예배를 준비하는 듯했다. M과 시두는 열두 채의 시바 신전과 라티칸타 신전, 그리고 바바타리니 Bhavatarini 우주의 구원자라는 뜻. 성스러운 어머니 칼리를 가리킴 신전을 둘러보았다. 신상 앞에 드리는 예배를 지켜보면서 그의 가슴은 환희로 차올랐다.
라마크리슈나의 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두는 이 사원을 설립한 사람이 라니 라스마니라고 말해주었다. 이곳에서 신은 날마다 칼리, 크리슈나, 시바로서 경배되며, 또한 사원에 들어선 수도승과 걸인들의 배를 채워준다고 그는 설명했다. 두 사람이 라마크리슈나의 방에 다시 돌아와 보니, 방문이 닫혀 있었고 브린데 Brinde라는 일하는 여인이 문밖에 서 있었다. 영국식 예절이 몸에 밴 M은 무조건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그녀애게 물었다. “성자께서는 안에 계십니까?” 그녀는 “녜, 방에 계십니다.”라고 대답했다.
M: “그분은 이곳에서 얼마나 사셨습니까?”
브린데: “꽤 오랫동안 계셨지요.”
M: “책을 많이 읽으십니까?”
브린데: “책이요? 천만에요! 모든 책은 그분의 혀에 다 들어 있습니다.”
M은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는 라마크리슈나가 책을 전혀 읽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
M: “저녁 예배시간인 것 같은데. 들어가도 될까요? 우리가 몹시 뵙고 싶어 한다고 말씀드려 주시겠습니까?”
브린데: “그냥 들어가세요. 들어가서 자리에 앉으세요.”
방에 들어간 두 사람은 라마크리슈나가 나무 침상에 혼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방금 향을 피운 듯했고 방의 모든 문은 닫혀 있었다. M은 방으로 들어서면서 두 손을 모으고 스승에게 인사를 했다. 라마크리슈나가 앉으라고 권하자 시두와 M은 바닥에 앉았다. 라마크리슈나가 두 사람에게 물었다. “어디에 사는가? 어떤 일을 하지? 바라나고레에는 무슨 일로 왔나?” M은 질문에 대답했지만 스승의 의식이 이따금 다른 곳에 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얼마 후 M은 그것이 사마디라고 불리는 일종의 황홀경 상태라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낚싯대를 드리워놓고 앉아 있는 낚시꾼의 모습과 같았다. 물고기가 다가와 미끼를 삼키면 찌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러면 낚시꾼은 각성된 의식으로 낚싯대를 붙들고 찌에서 눈을 떼지 않고 강렬하게 응시한다. 그때는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는다. 라마크리슈나의 마음 상태가 그러했다. 나중에 M은 라마크리수나가 해질 무렵이면 종종 이런 상태에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M도 후에 목격하게 되었지만, 어떤 때는 외부세계를 완전히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기도 했다.
M: “선생님께서는 저녁 묵상을 하시려는 것 같은데, 저희가 자리를 비켜 드릴까요?”
라마크리슈나: (사마디에 잠긴 채) “아닐세. 저녁 묵상이라고? 아니야 전혀 그런 게 아니네”
잠시 대화를 나눈 다음 M은 라마크리슈나에게 인사를 하고 그곳을 나왔다. "다시 찾아오게.“ 라마크리슈나가 말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M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이렇듯 나를 끌어당기는 그 고요한 모습이라니. 그 사람은 누구인가? 사람이 학자가 되지 않고서도 위대해질 수 있는 걸까? 정말 놀라운 일이다. 다시 그분을 만나보고 싶다. 다시 찾아오라고 말씀하셨지. 그래, 내일이나 모레쯤 다시 가보아야겠다.
M이 라미크리슈나를 두 번째로 만난 것은 아침 8시 그의 방 남동쪽 베란다에서였다. 스승은 이발사가 막 도착하여 면도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직 날씨가 쌀쌀했기 때문인지 테두리가 붉은 두더지가죽 숄로 몸을 감싸고 있었다, M을 보자 스승이 말했다. “다시 왔군. 잘했어. 자. 여기 앉게.” 그는 웃고 있었다. 말을 할 때는 조금 더듬는 듯했다.
라마크리슈나: (M에게) “어디 사는가?”
M: “캘커타에 삽니다.”
라마크리슈나: “그럼 이곳에서는 어디에 머물고 있지?”
M: "바라나고레에 사는 저의 누이 이산 카비라주의 집에 있습니다."
라마크리슈나: “오, 이산의 집에? 그렇군. 케샤브의 건강은 어떤가? 몸이 매우 좋지 않았었는데.”
M: “네. 저 역시 그렇게 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좋아지셨겠지요.”
라마크리슈나: “내가 케샤브의 회복을 위해 어머니 여신께 코코넛 열매와 설탕을 바치며 기도드리겠다고 약속했었지. 그래서 이따금 새벽에 일어나 어머니 여신께 기도한다네. ‘어머니여. 케샤브가 다시 회복되게 해주소서. 케샤브가 없다면 제가 캘커타에 갈 때 누구와 대화를 하겠습니까?’라고 말이야.
혹시 캘커타에 오는 미스터 쿡Mr. Cook이라는 사람을 아는가? 그는 어떤 사람이지? 그가 가르침을 편다는 것이 사실인가? 한번은 케샤브가 나를 기선에 태워주었는데, 그 미스터 쿡이라는 사람도 함께 있더군.”
M: “네. 선생님. 저도 그렇게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가르치는 곳에 가 본 적은 없습니다. 그 사람에 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라마크리슈나: “프라타프Pratap의 형제가 이곳에 와서 며칠 묵은 적이 있지. 딱히 할 일이 없다며 이곳에서 살고 싶다고 말하더군. 아내와 자녀들을 장인에게 맡겨두고 왔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 그는 일가를 거느린 가장이었어! 그래서 나는 그에게 가장의 의무를 다하라고 했네. 생각해 보게 그는 여러 자녀를 둔 아버지가 아닌가. 이웃 사람들더러 그의 자녀들을 먹이고 양육하란 말인가. 그런데 그는 다른 사람이 자기 아내와 아이들을 부양한다는 걸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어. 그러니까 그들을 장인에게 떠맏겼겠지. 나는 그를 심하게 꾸짖은 다음 일자리를 찾아보라고 했지. 그랬더니 스스로 이곳을 떠나갔다고 하더군. 참, 결혼했는가?”
M: “네”
라마크리슈나: (움찔하며) "오. 람랄2! 이런, 이 사람이 결혼했구나."
M은 마치 무시무시한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물끄러미 바닥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결혼하는 것이 그렇게 잘못된 일이란 말인가?’
스승의 말이 이어졌다. “자녀는 있나?”
이제 M은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 “네, 선생님. 아이도 있습니다.” 몹시 서글픈 목소리로 라마크리슈나가 말했다. “오, 이런! 아이까지 있다니.”
이런 식으로 내몰린 M은 아무 말도 못하고 앉아 있었다. 자존심이 상했다. 몇 분 후, 라마크리슈나가 다정하게 그를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본인도 알겠지만, 자네는 훌륭한 영적 자질을 지녔네. 나는 사람들의 이마나 눈 등을 보면 그걸 알 수 있지. 어디 말해 보게. 아내는 어떤 사람인가? 지혜로운 사람 jnani인가, 아니면 무지한 사람인가?”
M: “나무랄 데 없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지혜가 모자란 것 같습니다.”
스승: (사뭇 불쾌한 듯이) “그러면 그대는 지혜로운 사람이고!”
M은 그때까지 지혜와 무지의 차이를 알지 못했다. 그는 지혜를 책과 학교로부터 얻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 훗날 그는 이러한 자신의 어리석은 생각을 버렸다. 신을 아는 것이 지혜이고 신을 모르는 것이 무지임을 배웠던 것이다. 라마크리슈나가 큰소리로 ‘그러면 그대는 지혜로운 사람이고!’라고 소리쳤을 때, M의 에고는 다시 한 번 큰 타격을 입었다.
스승: “좋다. 그대는 형상을 지니면서 또한 형상을 지니지 않는 신을 믿는가?”
다소 당황한 M은 속으로 생각했다. ‘사람이 형상을 지닌 신을 믿으면서 어떻게 형상이 없는 신을 동시에 믿을 수 있을까? 그리고 무형의 신을 믿으면서, 어떻게 신이 형상을 지녔다고 믿을 수 있을까? 이 두 가지 모순된 생각이 동시에 진리일 수 있을까? 우유처럼 흰 액체가 검은색이 될 수도 있는 걸까?’
M: “선생님. 저는 신이 형상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스승: “아주 좋다. 어느 쪽이든 믿음을 갖기에 충분하다. 그대는 형상 없는 신을 믿는다고 했다. 옳은 생각이다. 하지만 단 한 순간도 그것만이 옳고 다른 것은 틀렸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형상 있는 신은 형상 없는 신만큼이나 진리임을 명심하라. 그리고 그대 자신의 확신에 철저히 몰입하라.”
신에 대힌 상반된 두 관념이 모두 진리라는 주장은 M을 당황하게 했다. 책을 통해서는 이런 것을 전혀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의 에고는 세 번째 일격을 당했다. 그럼에도 아직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는지, 그는 스승과 좀 더 논쟁하려고 했다.
M: “선생님, 만일 어떤 사람이 형상 있는 신을 믿는다고 할 경우. 그렇다고 해서 그가 믿는 신이 진흙덩어리는 아니질 않겠습니까?”
스승: (말을 가로채며) “왜 진흙이 어때서? 진흙도 영의 형상 Image of Spirit일세.”
M은 ‘영의 형상’이라는 말의 의미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선생님,” M이 스승에게 말했다. “진흙 형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신이 아니라고 설명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진흙 덩어리를 예배하는 동안에도 신을 생각해야지 진흙 덩어리를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쳐야 합니다. 진흙을 예배해서는 안 됩니다.”
스승: (날카롭게) “그것이 바로 그대처럼 캘커타에 사는 사람들 취미지. 그들은 사람들을 가르치려 하고 빛을 가져다주려고 하지. 그러나 한번쯤 멈추고 어떻게 하면 스스로 빛을 얻을 수 있는지 생각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는 그대 자신은 누구인가?
우주의 주인이신 신만이 사람들을 가르칠 것이다. 그분만이 우리를 가르칠 것이다. 그분이 우주를 창조하셨고, 해와 달을 만드셨고, 인간과 동물 그리고 다른 모든 존재들을 만드셨다. 또한 모든 피조물이 살아갈 방편을 주시며, 자녀에게 부모를 허락하셔서 사랑으로 그들을 양육케 하셨다. 신께서 그 많은 일을 행하시니, 그런 분께서 사람들에게 지신을 섬기는 방법도 알려주시지 않겠는가? 사람들에게 가르침이 필요하다면, 신께서 직접 스승이 되실 것이다. 그분이 바로 우리 안에 계신 안내자다.”
“진흙 형상을 섬기는 것이 잘못이라고 하자. 그 형상을 통해 기도를 받는 존재가 오직 신임을 그분이 모르실 것 같은가? 그분은 그런 예배를 오히려 기뻐하실 것이다. 왜 그대가 그런 문제로 인해 골치를 썩어야 하는가? 그대는 먼저 자신의 지혜와 헌신을 위해 매진해야 할 것이다.”
그제야 비로소 M은 자신의 에고가 완전히 깨졌음을 느꼈다. 그는 생각했다. ‘그렇다. 저분은 진리를 말씀하셨다. 내가 다른 사람을 가르쳐야 할 필요가 어디 있는가? 과연 나는 신을 알고 있나? 나는 진정 신을 사랑하는가? 「내 한 몸 누울 곳도 마땅히 없으면서, 함께 지내자고 친구를 부르고 있다」는 속담이 정말 맞구나. 신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면서 오히려 남을 가르치려고 하다니.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이것은 남에게 가르칠 수 있는 수학이나 역사, 문학이 아니다. 그렇다. 이것이야말로 신의 깊은 신비다. 저분의 말씀이 내 폐부를 파고드는구나.’
스승: “그대는 진흙 형상을 경배하는 것에 대해 말했다. 바록 그 형상이 흙이라 할지라도, 그런 예배 또한 필요하다. 신께서는 몸소 다양한 형태의 예배를 우리에게 허락하셨다. 우주의 주인이신 그분은 지혜의 수준에 따라 각 사람에게 맞도록 이 모든 형태를 적절히 마련하셨다.
어머니는 여러 자녀들의 소화능력에 맞게끔 다양하게 음식을 조리한다. 어떤 여인에게 다섯 명의 자녀가 있다고 하자. 생선요리를 할 경우, 그녀는 서로 다른 자녀의 입맛과 소화능력에 따라 생선죽, 생선 조림, 생선 튀김과 같이 다양한 요리를 준비할 것이다. 이해하겠나?”
M: (겸손하게) “네. 선생님. 그런데 어떻게 해야 제 마음을 신에게 붙들어 맬 수 있겠습니까?”
스승: “신의 이름을 반복해서 부르고, 그분의 영광을 찬미하게. 그리고 이따금 신께 헌신한 사람이나 성자들을 찾도록 하게. 밤낮 세상의 일이나 세속의 의무와 책임에만 몰두해 있다면, 마음은 신을 생각할 수 없지. 시간이 날 때마다 고독 속으로 들어가 신을 생각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고독 속에서 명상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그 마음을 신께 붙들어 두는 일이 처음에는 몹시 어렵다. 어린 묘목을 심을 경우, 반드시 그 주위에 울타리를 세워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가축들이 모두 먹어버릴 테니까.
명상에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자신의 일을 하는 동안 신을 생각하거나, 자기 집 골방에서 신에 대해 명상하거나, 숲 속에 들어가 신을 묵상하는 것이 그것이지. 또한 그대는 실재하는 것과 실재하지 않는 것을 항상 분별해야 한다. 신만이 실재하는 영원한 본질이다. 그 밖의 다른 모든 것은 실재하지 않는 것, 즉 일시적인 것이다. 이것을 분별함으로써 인간은 마음으로부터 일시적인 대상들을 털어내야 한다.”
M: (겸손하게) “세상에서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스승: “그대 의무를 다하게. 하지만 마음은 항상 신을 생각하도록 하게. 아내와 자녀와 부모 등 모든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고 그들을 위해 일하게. 그들이 그대의 가장 소중한 사람인 것처럼 대해 주게. 그러나 그대 가슴 깊은 곳에서 그들이 그대의 것이 아님을 알도록 하게.
부잣집에서 일하는 하녀는 집안의 온갖 일을 한다. 하지만 마음은 언제나 시골에 두고 온 고향집 생각으로 기득 차 있다. 그녀는 주인의 자녀들을 마치 자기 자녀처럼 키운다. 심지어는 주인의 자녀들을 ‘나의 라마, 나의 하리’라고까지 부르지만, 그녀의 가슴속에는 그들이 자기에게 속한 존재가 아님을 분명히 알고 있다. 거북이는 물 속에서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하지만 거북이의 생각이 어떤 곳에 쏠려 있는지 아는가? 줄곧 알 낳을 모래사장을 생각하고 있다. 세상에서 떠맡은 의무를 다하게. 단, 그대 마음은 언제나 신을 향하도록 해야 한다.
먼저 신을 향한 사랑이라는 밭을 일구지 않고서 세상에 들어간다면, 그대는 점점 더 세상에 얽혀들게 된다. 세상의 위험과 슬픔과 눈물에 압도당하게 되지. 그대가 세속적인 것을 생각하면 할수록, 그대는 세상에 더욱 집착하게 될 것이다. 먼저 손에 기름을 바르고 그 다음 인도 빵 나무 열매를 자르게. 그렇지 않으면 손에 열매의 끈적끈적한 액체가 묻을 걸세. 이처럼 먼저 신의 사랑이라는 기름을 손에 발라 안전하게 한 다음 그대의 두 손을 세상의 의무에 담그게.
그러나 신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고독 속으로 들어가야 하지. 우유에서 버터를 얻으려면. 우유를 어두은 곳에 두어 어느 정도 굳혀야 하네. 우유를 미리 휘저어버리면 우유가 굳어지지 않으니까. 그런 다음에는 다른 모든 일을 제쳐두고 조용한 곳에 앉아 굳은 우유를 저어야 해. 그럴 때라야 버터를 얻게 되지.
더 나아가 고독 속에서 신을 명상함으로써 마음은 지혜와 평정과 헌신을 얻는다. 하지만 그런 마음일지라도 세상에 몰두하면 곧바로 추락하고 말지. 세상에 있으면 사람은 오직 ‘여인’과 ‘황금’3만 생각하게 되거든.
이 세상은 물이고 마음은 우유다. 우유를 물에 부으면 우유는 물과 뒤섞여 버린다. 순수한 우유를 더 이상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우유를 굳힌 다음 그것을 저으면 버터가 된다. 그때는 버터를 물속에 넣어도 물위로 뜰 것이다. 그러므로 고독 속에서 영적 훈련을 수행하여 지혜와 사랑이라는 버터를 얻도록 하라. 비록 그대가 버터를 세상이라는 물속에 둘지라도 버터와 물은 서로 섞이지 않을 것이다. 버터는 물 위로 뜰 것이다.
이와 함께 그대는 분별력을 길러야 한다. ‘여인’과 ‘황금’은 일시적인 것이고, 신만이 영원한 실체이다. 인간이 돈으로 얻는 것이 무엇인가? 음식, 옷, 집, 그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 것들을 통해서는 신을 깨달을 수 없다. 그러므로 돈은 삶의 목적이 될 수 없다. 이것이 분별의 과정이다. 이해하겠는가?”
M: “네. 선생님.”
스승: “생각해 보라. 돈이나 아름다운 육체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가? 이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가장 아름다운 여인의 육체일지라도 뼈와 살, 지방 그리고 여타의 성분으로 이루어졌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인간이 왜 신을 버리고 모든 관심을 그런 것에 기울여야 한단 말인가? 왜 그런 것을 위해 신을 망각해야 하는가?”
M: “저도 신을 볼 수 있을까요?”
스승: “물론이다. 가끔씩 고독 속으로 들어가 신의 이름을 부르고 그 영광을 찬미하며 실재하는 것과 실재하지 않는 것을 분별하도록 하라. 이것이 신을 만나기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이다.”
M: “어떤 상태에 있을 때 신을 볼 수 있습니까?”
스승: “갈망하는 가슴으로 신께 울부짖으라. 그러면 반드시 신을 보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아내와 자녀를 위해서는 커다란 통이 넘칠 정도의 눈물을 흘린다. 돈을 위해서는 헤엄쳐도 될 정도의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신을 생각하며 우는 자는 아무도 없다. 간절한 마음으로 신을 향해 울어라. 갈망은 동이 터오는 새벽과 같다. 새벽이 지나면 해가 떠오르기 마련이다. 간절히 바란다면 반드시 신을 볼 것이다.
신은 세 가지 끌림을 한데 모아 그 힘을 온전히 신께 드리는 경건한 자에게 자신을 드러낸다. 세 가지 끌림이란, 세속적 소유물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끌림, 자녀에 대한 어머니의 끌림, 남편을 향한 정숙한 아내의 끌림이다. 만일 이 세 가지 끌림을 한데 모은 힘으로 신을 향한다면 그 사람은 신을 만날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녀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 남편에 대한 아내의 사랑, 재물에 대한 세속인의 사랑과 같다. 사랑의 이 세 가지 힘, 즉 대상을 향한 갈망을 한데 모아 그것이 모두 신을 향하게 하라. 그러면 반드시 신을 보게 될 것이다. 간절히 원하는 마음으로 신께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M이 세 번째로 스승을 찾아온 것은 일요일 오후였다. M은 이 놀라운 사람과의 두 번의 만남을 통해 매우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 이후 그는 줄곧 스승에 대해 생각했고, 영적 삶에 대한 심오한 진리를 아주 쉽게 설명하는 그의 방식에 매료되었다. M은 전에 그런 인물을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었다.
라마크리슈나는 작은 침상에 앉아 있었다. 방에는 휴일을 맞아 스승을 방문한 헌신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M은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와도 친분이 없었다. 그래서 방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스승은 미소를 띤 채 헌신자들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스승은 특히 나렌드라나트 훗날의 스와미 비베카난다라는 젊은이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열아홉 살의 그 젊은이는 대학생이었는데 브라흐모 사마주를 자주 찾는 사람이었다. 스승의 눈은 빛났고, 말에는 영적인 기운이 가득했으며, 얼굴은 신의 사랑을 입은 자의 표정을 담고 있었다.
대화 내용은,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이들을 멸시하는 세속인들에 관한 것인듯 했다. 스승은 세상에 사는 그런 수많은 사람들에 대해, 그리고 그들을 대하는 방법에 관해 말하고 있었다.
스승: (나렌드라에게) “이 문제에 대해 그대는 어떻게 느끼는가? 세속인들은 영적인 사람들에 관해 온갖 험담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코끼리가 길을 갈 때 들개나 작은 짐승들이 짖어대며 한바탕 소동을 피우지만 코끼리는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사람들이 그대를 비방한다면, 그대는 그들을 어떻게 생각할 참인가?”
나렌드라: “개가 짖는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스승: (미소 지으며) “아니다. 너무 앞질러 가지 마라. (웃음) 신은 만물 속에 거하신다. 그러나 그대는 오직 선한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야 할 것이다. 악한 마음을 가진 자는 멀리하는 것이 좋다.
신은 호랑이 안에도 계신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대가 호랑이를 껴안을 수는 없다.(웃음) 그대는 호랑이 또한 신의 현현이라면 왜 호랑이를 피해야 하는지 물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대답은 이렇다. 호랑이를 보면 도망치라고 말하는 사람 역시 신의 현현이다. 그러니 어찌 그 사람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떤 숲 속에 많은 제자를 거느린 성자가 한 명 살고 있었다. 하루는 제자들에게 만물 속에 깃들여 있는 신을 보라고 가르치고는, 모든 자들을 향해 머리 숙여 절을 했다. 그의 제자들 중 하나가 번제燔祭에 쓸 땔감을 구하러 숲으로 갔을 때, 갑자기 커다란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달아나라! 미친 코끼리가 달려온다.’
다른 제자들은 모두 얼른 그 자리를 피했지만 땔감을 구하러 갔던 제자는 코끼리 역시 신의 형상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도망갈 이유가 없다고 여긴 그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서 있다가 코끼리를 향해 절을 하고 찬미의 송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코끼리 몰이꾼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도망치시오! 도망쳐.’ 하지만 그 제자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코끼리는 그 거대한 몸집으로 그를 덮쳐 한쪽으로 밀쳐내고는 제갈길로 갔다. 온몸이 멍들고 상처 입은 제자는 의식을 잃은 채 땅바닥에 누워 있었다.
소식을 들은 스승과 다른 제자들이 달려와 그를 숙소로 옮겼다. 몇 가지 약의 도움으로 그는 얼마 후 의식을 되찾았다. 어떤 제자가 그에게 물었다. ‘코끼리가 오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왜 피하지 않았는가?’ 그러자 그가 대답했다. ‘하지만 스승께서는 신이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을 포함한 모든 것들의 형태를 취하신다고 말씀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달려오고 있는 것은 바로 코끼리 신이라는 생각이 들어 도망치지 않았네.’
이 말을 듣고 스승이 말했다. ‘아들아, 그대 말이 맞다. 코끼리 신이 달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몰이꾼 신은 그대에게 피하라고 말했다. 모든 것이 신의 현현이라고 생각했다면 왜 몰이꾼의 말은 믿지 않았는가? 그대는 몰이꾼 신의 말에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다.’ (웃음)
경전에 보면 물 또한 신의 형상이라고 적혀 있다. 그러나 어떤 물은 예배를 위해 사용되고, 어떤 물은 세수를 하기 위해 사용되며, 어떤 물은 설거지를 하거나 더러운 옷을 세탁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세탁에 사용되는 물은 음료수나 예배용으로는 사용할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신은 분명 모든 사람의 가슴속에 들어 있다. 거룩한 사람이든 거룩하지 않은 사람이든, 의로운 자든 의롭지 않은 자든, 모든 이들 안에 거하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경한 자들, 사악한 자들. 불결한 자들과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된다. 그들을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 중 일부와 말을 주고받을 수는 있겠지만, 그 이상의 관계를 맺지 않는 것이 좋다. 신께 헌신한 자는 그런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있어야 한다.”
헌신자: “선성님, 만일 악한 사람이 해를 입히려 들거나 실제로 해를 입힌다 해도, 저회는 잠자코 있어야만 합니까?”
스승: “세속에 몸을 담고 살아가는 사람은 악한 사람들로부터 지신을 방어하기 위해 분노를 나타내 보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자신에게 덮칠 피해를 예견하고서 미리 남에게 피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
이 이야기를 들어보아라. 목동들이 소떼를 몰고 가는 목초지에 무서운 독을 지닌 뱀이 살고 있었다. 모두들 그 뱀을 두려워해서 매우 조심했다. 어느 날 한 수행자가 그 목초지를 따라 걷고 있었다. 목동들이 그에게 달려가 말했다. ‘존경받는 분이시여, 그 길로 가지 마십시오. 저 너머에는 무서운 독사가 살고 있답니다.’ ‘괜찮다, 착한 아이들아.’ 수행자가 말했다. 나는 뱀이 무섭지 않다. 나는 몇 가지 만트라 주문를 알고 있다.’ 그리고는 풀밭을 띠라 계속 걸어갔다. 하지만 목동들은 뱀이 무서워서 그를 따라가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뱀이 고개를 치켜들고 재빨리 그를 향해 움직였다. 뱀이 가까이 다가오자 그는 만트라를 외웠다. 그러자 뱀은 마치 지렁이처럼 그의 발아래 엎드렸다. 수행자가 말했다. ‘뱀아. 왜 너는 사람들을 해치려고 하느냐? 이리 오너라. 내가 너에게 성스러운 말을 가르쳐주겠다. 이것을 반복해서 외우면 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러면 너에게서 포악한 성격이 없어지고 종내는 신을 깨닫게 될 것이다.’
수행자는 뱀에게 성스러운 말을 알려주고 영적인 삶으로 인도해 주었다. 뱀은 스승에게 절을 하고 이렇게 말했다. ‘존경받는 분이시여, 어떻게 해야 제가 영적 수행을 할 수 있겠습니까?’ 수행자가 대답했다. 내가 가르쳐준 성스러운 말을 반복해서 외워라. 그리고 아무도 해치지 말아라. 그리고는 떠나기 전에 내가 다시 너를 보러 오겠다.’고 말했다.
며칠이 지나자 목동들은 이제 그 뱀이 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목동들이 돌을 던져도 뱀은 전혀 화를 내지 않았다. 마치 지렁이처럼 행동했다. 하루는 목동 하나가 뱀에게 다가가 꼬리를 잡고 빙빙 돌리다가 몇 번이고 땅에 세게 내리친 다음 멀리 던져버렸다. 뱀은 피를 토하고 의식을 잃었다. 기절을 했던 것이다. 뱀이 죽었다고 생각한 목동들은 뱀을 두고 떠났다.
힌밤중이 되어서야 정신을 차린 뱀은 천천히 그리고 간신히 몸을 이끌고 자기 굴로 돌아왔다. 뼈들이 부러져 도무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여러 날이 지나고 뱀은 가죽만 남을 정도로 앙상하게 변했다. 가끔씩 밤에 먹이를 찾아 굴 밖으로 나왔는데, 목동들이 무서워 낮에는 굴 안에만 있어야 했다. 스승으로부터 성스러운 말을 받았기 때문에 뱀은 아무 것도 해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흙과 나뭇잎과 나무에서 떨어진 열매를 먹고 살았다.
일 년 후, 수행자가 다시 와서 뱀의 안부를 묻자 목동들은 뱀이 죽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스승은 그들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는 뱀이 영적 생활에 입문하게 된 그 성스러운 말의 열매를 얻기 전에는 죽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스승은 뱀이 있던 곳으로 가서 여기저기 뒤지며 자신이 뱀에게 준 이름을 불러 보았다.
스승의 목소리를 들은 뱀은 굴에서 나와 경의를 표하며 스승에게 절을 했다. ‘어떻게 지냈느냐?’ 수행자가 물었다. ‘잘 지냈습니다. 스승님.’ 뱀이 대답했다. ‘그런데 네 몸이 왜 그렇게 여위었느냐?’ 스승이 다시 묻자 뱀은 이렇게 말했다. ‘존경받는 분이시여, 당신께서 저에게 아무도 해치지 말라고 명하셨기 때문에 그동안 저는 나뭇잎과 땅에 떨어진 열매만을 먹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여윈 것 같습니다.’
뱀은 의로운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화를 낼 수가 없었다. 목동들이 자기를 거의 죽일 뻔했던 일조차 완전히 잊고 있었다. 수행자가 말했다. ‘네가 이렇게 된 것은 단지 먹이가 부족해서 만이 아닐 것이다. 분명히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좀 더 생각해 보아라.’ 그제서야 뱀은 목동이 자신을 땅바닥에 팽개친 일이 생각났다. ‘네 스승님. 이제 기억났습니다. 하루는 목동들이 와서 저를 집어든 다음 땅에 내동댕이쳤습니다. 그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저의 내면에 어떤 엄청난 변화가 있었는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제가 사람을 물거나 해치지 않는 것을 그들이 어찌 알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스승이 큰소리로 말했다. ‘세상에! 너야말로 어리석구나! 너는 자신을 보호하는 법을 모르고 있다. 내가 너에게 명한 것은 사람을 물지 말라는 거였지, 위협하는 소리까지 내지 말라는 게 아니었다. 왜 쉿쉿거리며 그들에게 겁을 주지 않았느냐?’
그러므로 그대들도 사악한 자들에게 쉿쉿거려야 한다. 그들이 그대들을 해치지 못하도록 겁을 주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독니를 찔러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을 해쳐서는 안 된다.
신이 창조한 것은 실로 다양하다. 사람, 동물, 나무, 식물 등등. 동물들 중에 어떤 것은 순하고 어떤 것은 포악하다. 호랑이처럼 사나운 동물들도 있다. 또 어떤 나무는 감로수처럼 달콤한 열매를 맺고, 어떤 나무는 독성이 있는 열매를 맺는다. 이처럼 사람 중에도 선한 사람이 있고 악한 사람이 있으며, 경건한 사람이 있고 경건치 못한 사람이 있다. 그리고 신에게 헌신하는 사람이 있고, 세상에 집착하는 사람이 있다.
사람은 네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세속에 사로잡힌 사람,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 자유를 얻은 사람, 그리고 언제나 자유로운 사람이다.
언제나 자유로운 사람으로는 나라다Narada 같은 현자들을 꼽을 수 있다. 그들은 타인의 유익을 위해, 즉 사람들에게 영적인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 세속에 붙잡힌 사람들은 세상적인 것에 빠져 신을 망각한 자들이다. 그들은 실수로라도 신을 생각하지 않는다.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려는 지들이다. 그들 가운데 어떤 이는 세상 집착에서 벗어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벗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성자 마하트마 같이 자유를 얻은 영혼들은 세상, 즉 ‘여인’과 ‘황금’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그들의 마음은 세속으로부터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그들은 항상 신의 발치에서 명상한다.
물고기를 잡기 위해 호수에 그물을 던졌다고 하자. 어떤 물고기는 매우 영리해서 결코 그물에 잡히지 않는다. 그들이 바로 항상 자유로운 사람들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물고기들은 그물에 잡히고 만다.
어떤 물고기들은 그물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쓴다. 자유를 추구하는 자들이 바로 이들이다. 그러나 그렇게 몸부림치는 고기들 전부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매우 적은 수의 물고기들만이 그물에서 빠져나와 물속으로 풍덩 하고 들어간다. 그때 어부는 이렇게 소리 지른다. ‘저런! 큰 놈이 빠져 나갔다.’
한편 그물에 갇힌 대부분의 불고기들은 빠져나올 수도 없고, 빠져 나오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진흙이나 그물 따위로 파고들어가 그곳에서 가만히 있는다. 그리고는 생각한다.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다. 여기는 매우 안전하다. 그러나 이 가련한 물고기들은 얼마 후 어부가 자신들을 그물과 함께 끌어내리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이 물고기들이 바로 세상에 붙잡힌 자들이다.
세상에 붙잡힌 자들은 욕망과 탐욕이라는 족쇄로 세상에 묶여 있다. 그들은 손과 발이 다 묶여 있다. 그들은 ‘여인’과 ‘황금’이 자신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안전하게 해주리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자신들을 파멸로 이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세상에 붙잡힌 한 남자가 죽어갈 때, 그의 아내는 이렇게 묻는다. ‘당신은 이제 곧 떠나려는 군요. 그런데 당신이 나를 위해 해준 게 뭐죠?’ 임종의 순간에도 세속에 마음이 붙들려 있던 그는 램프가 밝게 타오르는 것을 보고는 ‘불을 낮춰요. 기름이 너무 많이 타잖소.’라고 말한다. 죽어 가면서까지 말이다!
세상에 붙잡힌 자들은 신에 관해서는 도무지 생각하지 않는다. 만일 그들에게 한가로운 시간이 주어지면 쓸데없는 잡담이나 어리석은 이야기에 빠지고, 부질없는 일에 몰두한다.”
방안에는 깊은 침묵이 흘렀다.
헌신자: “선생님, 그런 세속적인 사람을 도울 길은 없습니까?”
스승: “물론 있다. 그런 사람은 시간이 나면 성자들과 함께 있거나 신을 묵상하기 위해 고독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또한 분별력을 키워야 하고, 믿음과 헌신을 위해 신께 기도해야 한다. 어떤 사람이 믿음을 갖게 된다면, 그는 모든 것을 성취한 것과 같다. 믿음보다 더 위대한 것은 없다.
(케다르에게) 그대는 믿음의 놀라운 능력에 관해 들었을 것이다. 푸라나 힌두신화에 보면 절대자 브라흐만의 화신이자 바로 신 자신인 라마가 실론 섬으로 가기 위해 바다에 다리를 놓아야 했다. 하지만 라마를 믿는 그의 헌신자 하누만은 훌쩍 뛰어 바다 저편에 도착했다. 그에게는 다리가 필요 없었다. (모두 웃음)
한 번은 어떤 남자가 바다를 건너려고 했다. 비비샤나Bibhishana 실론의 포악한 왕, 라바나의 동생. 형과는 달리 라마의 충성스러운 헌신자였다.가 나뭇잎에 라마의 이름을 적어서 그 사람이 입고 있는 옷 한쪽에 매달아주고 이렇게 말했다. ‘무서워 하지 마시오. 믿음을 갖고 물위를 걸으시오. 하지만 조심할 것은, 믿음을 잃는 순간 당신은 물에 빠질 것이오.’ 그 사람은 어렵지 않게 물위를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자기 옷에 매단 것이 무엇인지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그것을 찾아 펴보니 라마의 이름이 적힌 나뭇잎이었다. ‘이게 뭐지?’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단지 라마의 이름일 뿐이잖아!’ 마음속에 의심이 들어오자마자 그는 물에 빠지고 말았다.
만일 누군가가 신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다면, 그가 비록 가장 흉악한 죄 소, 성직자, 혹은 여인을 살해하는 것과 같은를 지었을 지라도 자신의 믿음으로 인해 반드시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 그저 신을 향해 ‘오 신이여,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말한다면 그는 아무 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말한 다음 스승은 찬가를 불렀다.
내가 다만 두르가 성스러운 어머니 여신의 이름을 읊조리며 죽을 수 있다면
비록 나 몹쓸 인간이라 할지라도
오, 축복받은 분神이여, 당신이 어떻게 그때
내게서 자유를 거두어갈 수 있겠습니까?
내가 술 한 모금 훔쳤거나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죽였거나
혹은 여자나 암소를 살해하거나
그 모두가 사실이라 할지라도
이것들 중 그 어느 것도 내게는 아무 두려움도 남기지 않으니
그것은 자애로운 당신의 이름에 힘입어
사악한 나의 영혼이라 할지라도
브라흐만의 왕국에까지 오르기 때문입니다.
나렌드라를 가리키며 스승이 말했다. “그대들 모두 이 청년을 보라. 그가 이곳에 오면 바로 그렇게 된다. 그러나 그가 사원의 주랑 현관에서 놀 때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장난꾸러기 소년이 자기 아버지와 있으면 매우 점잖아지는 것과 같다. 나렌드라나 그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항상 자유로운 영혼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결코 세상에 붙잡히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은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내면 의식이 깨어나는 것을 느끼고 곧바로 신을 향해 나아간다. 그들은 오직 남을 가르치기 위해 세상에 나간다. 세상 그 무엇에 대해서도 애착이 없으며, ‘여인’과 ‘황금’ 따위에 결코 붙잡히지 않는다.
베다에 보면 ‘호마 새 homa bird’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 새는 아득히 높은 곳에 살며 그곳에서 알을 낳는다. 알은 낳자마자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하는데 너무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땅에 도달하는 데 여러 날이 걸린다. 알은 땅으로 떨어지는 동안 부화하여, 새끼 새가 된다. 어린 새는 떨어지면서 눈을 뜨고 날개가 자란다. 눈이 떠지자마자 그 새는 자신이 떨어지고 있고 땅에 부딪쳐 산산조각 나리라는 것을 알게 된다. 바로 그 순간 새끼 새는 즉시 높은 하늘에 있는 어미 새를 향해 비상한다.”
바로 그때 나렌드라가 방을 나갔다. 케다르, 프란크리슈나, M,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스승: “그대들도 알다시피 나렌드라는 노래, 악기, 연주, 학문 등 모든 분야에서 뛰어나다. 일전에는 케다르와 토론을 벌였는데, 케다르의 논리가 완전히 박살나고 말았다.” (모두 웃음)
모임이 끝나자 헌신자들은 사원 뜰을 거닐었다. M은 판차바티 방향으로 갔다. 그때가 오후 5시경이었다. 잠시 후 스승의 방으로 돌아온 M은 작은 북쪽 베란다에서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라마크리슈나가 몇 명의 헌신자들에게 둘러싸여 가만히 서 있었고, 나렌드라가 찬가를 부르고 있었다. M은 스승인 라마크리슈나를 제외한 그 누구에게서도 그렇게 감미로운 노래를 들은 적이 없었다. 라마크리슈나를 바라보았을 때 그는 깜짝 놀랐다. 스승이 시선을 한 곳에 고정시키고 전혀 미동도 하지 않고 서 있었기 때문이다. 숨조차 쉬지 않는 것 같았다.
어떤 헌신자가 M에게 스승이 사마디에 들어 있다고 말했다. M은 전에 그런 것에 관해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놀라서 할 말을 잊은 채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과연 인간이 신 의식에 잠겨 바깥세상을 완전히 잊어버리는 게 가능한가? 그런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면 그 믿음과 헌신의 깊이란 정말 대단한 것이 아닌가!’
나렌드라의 찬가는 이러했다.
오, 나의 마음이여, 하리 신을 명상하라.
흠 없으신 이 온전히 순수한 영이신 그를.
그분 안에서 빛나는 그 빛에 견줄 것이 없도다!
그 놀라운 형상은 영혼을 사로잡는다.
모든 헌신자에게 그는 얼마나 고귀한 존재인가!
청신하게 피어나는 사랑 안에는
백만 달빛의 광휘조차 부끄러울 아름다움이 영원토록 빛나고,
신의 형상의 영광은 번개처럼 빛나니
그 기쁨으로 머리카락이 곤두선다.
노래가 마지막 줄에 접어들자 스승의 몸이 떨렸다. 스승의 머리카락은 꼿꼿이 섰고, 기쁨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따금 스승의 입술이 미소로 벌어졌다. 스승은 ‘백만 달빛의 광휘조차 부끄러운’, 견줄 데 없는 신의 아름다움을 보고 있었던 것일까? 그는 영혼의 실체인 신을 본 것일까? 그런 상태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금욕과 수행, 어느 정도의 믿음과 헌신이 필요한 것인가!
나렌드라의 찬가는 계속되었다.
그대 가슴의 연꽃에서 그의 발을 예배하라.
마음을 고요히 하고 눈을 반짝이며 천상의 사랑으로
비길 데 없는 그 광경을 바라보라.
스승의 얼굴에 다시금 황홀한 미소가 피어났다. 몸은 종전처럼 전혀 움직이지 않았고, 내면의 놀라운 환상을 보고 있는 듯 눈은 반쯤 감겨 있었다. 나렌드라가 마지막 소절을 노래했다.
신의 사랑 그 환희의 마력에 붙들렸으니
오, 마음이여. 영원히 네 자신을
완전한 지혜와 순수 지복이신 그분께 잠기게 하라.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한 사마디의 광경과 거룩한 환희가 M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겼다. 그는 깊은 감동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영혼을 적시는 가락이 메아리처럼 이따금 그의 내면에서 울리고 있었다.
오 마음이여, 영원히 네 자신을
완전한 지혜와 순수 지복이신 그분께 잠기게 하라.
M에게는 다음날도 휴일이었다. 그는 오후 3시에 다크시네스와르에 도착했다. 라마크리슈나는 빙에 있었다. 나렌드라, 바바나트, 그리고 여러 명의 다른 헌신자들이 바닥에 깔려 있는 돗자리 위에 앉아 있었다. 그들은 모두 열아홉 내지 스무 살 정도의 젊은이들이었다. 라마크리슈니는 작은 침상에 앉아서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말하고 있었다.
M이 방에 들어서자마자 스승은 큰소리로 웃으며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 친구가 또 오는군.” 그러자 방안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함께 웃었다. M은 스승에게 머리 숙여 인사를 한 다음 자리에 앉았다. 전에도 그는 영국식으로 두 손을 모으고 스승에게 인사를 했었다. 그러나 그날 M은 전통적인 힌두 방식으로 스승의 발 앞에 엎드려 절하는 법을 배웠다.
이어 스승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에게 자신이 웃은 이유를 설명했다. 스승은 말했다. “어떤 사람이 한 번은 오후 4시에 공작새에게 아편 한 알을 먹였다. 다음날 정확히 같은 시간에 공작새가 다시 왔다. 그 새는 아편에 중독되어 또 한 알 얻어먹으려고 시간 맞춰 돌아왔던 것이다.” (모두 웃음)
M은 그것이 아주 적절한 예로 생각되었다. 집에 있을 때조차도 그는 라마크리슈나에 대한 생각을 잠시도 떨쳐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그의 마음은 항상 다크시네스와르에 있었고, 다시 그곳에 갈 시간만을 손꼽고 있었다.
한편 스승은 젊은이들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스승은 그들을 마치 친한 친구처럼 대했다.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방안 가득 울려 퍼졌다. 마치 즐거움을 파는 장터와 같았다. 이 모든 것이 M에게는 하나의 계시였다.
이따금 스승은 M을 쳐다보았다. M이 조용히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스승이 람랄에게 말했다. “너도 알다시피 M은 나이가 조금 더 많다. 그래서인지 더 심각하구나. 다른 젊은이들이 즐거워하는 동안 M은 조용히 앉아 있구나.” 당시 M의 나이는 스물여덟 살이었다.
오후 5시경 나렌드라와 M을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들이 떠났다. M은 사원 뜰을 걷다가, 라마크리슈나가 나렌드라와 이야기하고 있는 거위 연못의 둔덕 위로 오게 되었다. 라마크리슈나가 나렌드라에게 말했다. “이보게. 좀 더 자주 오게. 그대는 여기 온지 얼마 안 되었지. 사람들이 처음 사귈 때는 연인들처럼 자주 서로를 방문한다네. (나렌드라와 M이 웃음) 그러니 자주 와주지 않겠나?”
브라호모 사마주의 회원인 나렌드라는 자기가 한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었다. 그는 웃으며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다시 스승의 방으로 돌아왔을 때, 라마크리슈나가 M에게 말했다. "농부들이 쟁기질 시킬 황소를 사러 시장에 가면, 소의 꼬리를 건드려보고 약한 소와 힘센 소를 쉽게 구별할 수 있다네. 꼬리를 건드려도 힘없는 소는 바닥에 그냥 앉아 있지. 그러면 농부는 그 소가 힘이 약하다는 것을 알아채고는 절대 사지 않는다네. 그들은 꼬리를 건드리면 이리저리 펄쩍이며 활기를 보이는 그런 황소만을 고르지. 나렌드라가 바로 그런 황소와 같아. 그는 내면의 기백이 넘치는 사람이야.”
스승은 웃으면서 다시 말을 이었다. “세상에는 전혀 용기가 없는 사람들도 있다네. 그들은 우유에 풀어진 밥알처럼 흐늘흐늘하지. 내적인 힘이 전혀 없어!”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스승은 묵상에 들어갈 참이었다. 스승이 M에게 말했다. “나가서 나렌드라와 대화를 나누게. 그런 다음 그대가 나렌드라에 관해 생각한 것을 내게 말해주게.”
사원의 저녁 예배가 끝났다. M과 나렌드라는 갠지스 강둑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렌드라는 M에게 대학에서 공부하는 내용, 자신이 브라흐모 사마주의 회원이라는 사실 등에 관해 말했다.
밤이 깊었고 M이 떠날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는 집에 가고 싶지 않았고 대신에 라마크리슈나를 찾아가고 싶었다. 그는 스승의 말씀에 매혹되어서 그 말씀을 더 듣고 싶었다. 그런데 마침 스승이 칼리 신전 앞에 있는 나트만디르에서 홀로 걷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머니 여신의 형상을 모신 성소 양쪽에서 램프가 타고 있었다. 넓은 나트만디르에는 램프 하나가 밝음과 어둠을 뒤섞으며 신비스럽게 빛을 내고 있었고, 그 가운데 스승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잠시 주저하던 M은 오늘 밤 스승의 말씀을 더 들을 수 있는지 물었다. “오늘 밤에는 그만하려네.” 라마크리슈나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런 다음 무슨 생각이 떠오른 것처럼 말을 이었다. “나는 곧 캘커타에 있는 발라람 보세 Balaram Bose의 집에 갈 예정이네. 그곳으로 오게. 그러면 나를 만날 수 있지.” M은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스승: “발라람 보세를 아는가?”
M: “모릅니다. 선생님.”
스승: “그는 보세파라에 산다네.”
M: “알겠습니다. 찾아가겠습니다.”
M과 함께 홀 여기저기를 걷던 라마크리슈나가 M에게 물었다. “내 한가지 묻지. 자네는 나를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는가?”
M은 잠자코 있었다. 라마크리슈나가 다시 물었다. “나를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는가? 내가 신에 관해 몇 퍼센트의 지식을 갖고 있는 것 같은가?”
M: “'몇 퍼센트'라는 말씀의 정확한 뜻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결코 어디에서도 스승님의 그런 지혜, 몰아의 사랑, 신에 대한 철저한 믿음, 완전한 포기, 그리고 자유함 등을 보지 못했습니다.”
스승은 웃었다. M은 스승께 인사드리고 그곳을 떠났다. 그런데 사원 정문 에 다 가서야 갑자기 무언가가 생각나 라마크리슈나에게 다시 왔다. 스승은 여전히 나트만디르에 있었다. 희미한 불빛 속에서 스승은 홀로 존재의 기쁨 을 누리며 거닐고 있었다. 그것은 사자가 숲 속에 살며 혼자 거니는 모습과 같았다. 경이로움으로 M은 그 위대한 영혼을 조용히 살펴보았다.
스승: (M에게) “왜 다시 왔나?”
M: “선생님께서 저에게 찾아오라고 하신 그 집은 부잣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들여보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곳에 가지 않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그냥 이곳에서 선생님을 뵙는 편이 낫겠습니다.”
스승: “아니다. 왜 그렇게 느꼈나? 내 이름을 말하게. 그리고 나를 만나고 싶어 왔다고 하게. 그러면 그곳 사람들이 내게 데려다줄 거야.”
M은 고개를 끄덕이고 스승께 인사드린 다음 그 자리를 떠났다.
라마크리슈나의 방에는 큰 침대와 작은 침상이 놓여 있었는데, 잠을 잘 때는 큰 침대를 이용하고 방문객들이나 헌신자들이 와 있을 때는 작은 침상에 앉아 가르침을 폈다고 한다. - 옮긴이
라마크리슈나의 조카이며 칼리 신전의 사제.
라마크리슈나의 가르침에는 ’여인’과 ‘황금’이라는 단어기 영적 성장의 주요한 징애물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자주 등장한다. 스승이 즐겨 사용한 이 표현은 종종 잘못 해석되곤 했다. 스승은 이 표현을 통해 영적 성장을 저해하는 부정적 영향을 주는 ‘욕망’과 ‘탐욕’을 설명하려 한 것이다. 스승은 경건한 남성을 현혹시키는 성적 본능에 대한 구체적 개념으로서,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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