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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며>
벌써 이번 여행을 모두 끝내고 귀국하는 날이 되었다. 새벽 일찍 일어나(04:00) 세면을 마치고 짐을 정리한 다음 락규를 깨웠다. 새벽 5시 30분에 호텔을 출발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서두른 것이었다. 락규는 스스로 일어나지는 못했으나 깨우면 힘들어도 빨딱 일어나는 것이 기특했다.
마시다 남은 물 5병과 사용하다 남은 부탄가스 2통(사용하지 않은 부탄가스 8통은 운전기사를 줌)을 테이블에 가지런히 올려놓고 남긴 물건이 없는지 화장실과 방안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호텔 프런트로 나갔다. 일행 중 이미 2명이 나와 있었고 뒤이어 속속 나왔다. 출발할 시간이 되었는데, 2명이 보이지 않았다.
몽골에서의 마지막 날이라고 엊저녁에 쫑파티를 하면서 과음을 한 탓인 것 같았다. 함께했던 여자들은 나왔는데 남자 2명이 나오지 않은 것을 보면 여자가 더 강한 것인지, 아니면 남자가 술을 많이 마신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15분이 지연되어 버스가 출발했는데, 그 때까지 한명은 탔으나 한명은 짐정리 등으로 대기 중인 지프를 타고 오기로 했다.
엄청난 교통지옥이던 울란바타르가 이른 아침이라 신호대기만 하고 쭉쭉 잘 빠졌다. 아침을 먹지 않았다고 호텔에서는 샌드위치를 버스에 실어주었다. 공항에 거의 도착했을 때, 늦게 탄 한명이 핸드폰을 방에 두고 왔다고 해서 지프를 타고 오는 사람에게 전화를 했더니, 다 챙겨가지고 온다고 했다.
일행은 칭기즈칸 국제공항(Chinggis Khaan International Airport)에 도착(06:08)했다. 수화물을 붙이고 출국수속을 하기 전에 버스에서 나누어 준 샌드위치를 먹었다. 비행기 표를 보니 게이트 넘버가 없어 의아하게 생각했으나, 일행 모두가 없어 잘못된 것이 아님을 알았다. 락규는 여기에서 일행을 계속 안내한 앙카(가이드)와 함께 사진을 찍고 그와 작별했다.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안에 들어가서 면세점을 살펴보려고 출국수속을 했다. 락규는 앞에서 아무 문제없이 바로 나갔으나, 나의 작은 가방은 세 번이나 검색대를 통과시켰음에도 무엇인가에 걸렸다. 결국 검사원이 가방을 열어 여기저기를 뒤지더니 숟가락 통에 들어있는 포크와 젓가락을 찾아 압수했다. 락규의 수저를 같이 넣었더니, 그것마저 몽땅 압수당한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숟가락 통을 큰 가방에 넣었었는데 이번에는 칼만 큰 가방에 넣은 것이 실수였다. 락규는 자기의 젓가락을 압수당한 것에 대해 여러 번 아쉬움을 표시했다. 출국수속을 하고 안으로 들어오니, 면세점이 의외로 적었다. 비행기를 타러가는 문이 하나밖에 없어 비행기 표에 게이트 넘버를 적지 않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드디어 비행기가 울란바타르의 칭기즈칸 국제공항을 출발(08:50)했다. 고도를 잡고 비행기가 수평을 달리자 기내식이 제공되었다. 메뉴는 치킨라이스와 소시지라이스였다. 내 쪽에서는 치킨라이스라고 해도, 소시지라이스만 남았다고 그것을 주었다. 그러자 락규가 치킨라이스를 주문해서 그것을 나와 바꿔먹자고 했다. 락규가 소시지라이스를 좋아하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의 행동이 마음에 들었다. 락규는 오렌지주스를 나는 레드와인을 음료수로 마셨다.
식사를 마치자 눈을 감고 이번 여행을 되돌아보았다. 거친 야생의 땅 몽골은 흔히 문명과는 거리가 먼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는 차량으로 가득하여 교통체증이 심했고, 백화점이나 고층 건물도 많았다. 다만 고비사막이나 몽골 중북부의 시골지역은 지평선이 보이는 넓은 초원에 유목민 게르와 가축들만이 드문드문 보일뿐이었다.
몽골만큼 시골과 도시 주민들 간에 큰 차이를 가진 곳도 드물 것 같았다. 몽골 유목민들은 단순한 전통방식을 유지하는 반면, 울란바타르의 주민들은 풍요로운 미래를 위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몽골은 공산주의와 작별한지 고작 23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신생 민주주의 국가의 모범적 사례로 꼽혔다.
또한 몽골은 전체적으로 볼 때 아직 가난한 나라이며, 이 나라의 수도만 벗어나면 국가 기반시설과 설비가 많이 부족했다. 하지만 끝없이 펼쳐진 넓은 초원에 가축을 기르며 자연을 벗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유목민들의 모습이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이곳에서 어디 환경오염이나 자연보호라는 말을 쓸 필요가 있을까. 자연환경이 좋고 해발이 높은 지역이라 하늘은 낮게 드리워졌고 공기는 코가 시원하도록 깨끗했다.
이번 여행에서 특별히 느꼈던 점을 되돌아보니, 다음 몇 가지가 생각났다.
첫째, 마음에 항상 그렸던 몽골을 여행한 그 자체이다.
몽골제국은 후에 원나라가 되었지만,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큰 제국을 건설한 유일한 국가였다. 우리나라도 한 때는 원의 영향을 받아 제주도에서 말을 기르고, 혼례식에 원삼 족두리를 사용하는 등 문화를 공유하고 있었다. 또한 같은 알타이어족으로 몽골반점이 있는 것도 친근감이 가는 것이었다. 이런 나라를 여행하는 것이 마음을 기쁘게 했다.
둘째, 고비사막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린 것이다.
고비사막은 아무도 없는 거대하고 황량한 곳이었다. 하지만 이곳의 뿌리 깊은 공허와 지독한 고립이 여행자들을 유혹하는 요인이었다. 스마트폰과 페이스 북, TV , 신문 등 모든 통신과 뉴스와 단절된 채 철저히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셋째, 신비로운 고비사막을 여행한 것이다.
고비사막은 신비로 가득한 곳으로 드문드문 오아시스가 있었다. 더구나 바위, 협곡, 모래언덕, 누런 불모지, 공룡화석지 등에 수많은 이아기가 사막 전역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나무 한 그루, 바위 하나에도 나름대로의 전설이 담겨져 있어 여행객을 상상의 세계로 몰아넣었다.
넷째, 고비사막 및 시골지역의 도로포장에 대한 생각이다.
울란바타르에서 고비사막으로 가기 위해서는 중국으로 가는 포장도로를 가다가, 서쪽 갈림길에서부터 비포장도로를 달린다. 비포장도로여서 대중교통이 없고 지프만이 울퉁불퉁한 초원을 달렸다. 이 때문에 고비사막에 관광객이 적게 오고 보호될 수도 있었다. 몽골 중북부지방의 시골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물이 고였거나 푹 파인 도로에서는 운전기사가 초원으로 달려 새로운 길을 내고 있었다. 넓은 곳은 7~8개 노선이나 되었다. 포장이 된다면 초원은 보존될 수 있을 것이나, 관광객이 많아져 전반적인 환경오염이 심화될 수도 있다. 어떤 것이 고비사막 보호와 보존을 위해서 좋은지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다섯째, 고비사막 여행자 캠프의 시설이 좋아진 점이다.
여행 전에 자료를 보니 고비사막에서는 물 사정이 좋지 않아 세수를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물티슈를 많이 가지고 갔는데, 사막 어디를 가도 여행자 캠프는 물이 시원하게 나오지는 않았지만, 샤워장이 있었다.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여행업자들이 관광객 유치를 위해 신경을 쓴 것 같았다.
여섯째, 몽골인의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이다.
몽골인은 자연을 길들이거나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함께 살아가는 그들을 둘러싼 전부이자 소중한 가치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몽골인의 자연에 대한 숭배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했다. 허공에 우유를 튀기는 것은 하늘에 양식을 바치는 것이고, “오보(주술적인 돌 더미)”에 돌을 던진 다음 세 번 도는 것은 땅에 감사하는 행위였다. 몽골에 총 65개의 보호구역이 있는 것을 보아도 이들의 의식을 알 수 있었다.
일곱째, 욜림암(독수리 계곡)의 웅장한 협곡이다.
욜링암은 으믄고비(남 고비)에 있는데, 인상적인 바위절벽과 좁고 그늘진 협곡이었다. 오아시스이여서 계곡에 맑은 물이 흐르고, 7월까지 얼음이 얼어있어 시원하다고 했다. 하지만 한 여름인 8월이라 얼음을 보지는 못했다. 이곳에는 누운 향나무가 있었고, 매의 먹이인 “조롱”과 “쥐토끼”가 많았다.
여덟째, 홍고링 엘스의 “노래하는 모래언덕”이다.
고비사막은 고유명사가 아닌 보통명사이다. 전 세계 사막의 70%이상이 풀이 있고 작은 돌도 있으나, 유입되는 수분보다 증발되는 것이 많아 고비사막이라고 했다. 몽골은 거의 고비사막이었다. 그러나 홍고링 엘스는 사하라 사막 같이 순수한 모래 언덕이었다. 게다가 바람이 불어 모래가 날리면서 들리는 소리가 노래 같았다. 몽골 고비사막의 핵심은 이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홉째, 공룡화석 발굴지 바양작(불타는 절벽)이다.
바양작은 넓은 초원에 있는 작은 언덕이었다. 여기에는 공룡과 알의 화석을 발굴하며 파헤친 모습이 적나라하게 그대로 들어나 있었다. 붉은 황토여서 저녁에 비치는 햇빛으로 더욱 붉게 보여 “불타는 절벽”이란 이름이 붙은 것 같았다. 처음 발견한 미국 탐험가 “로이 채프만 앤드루스”는 어떻게 이곳을 발견하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공룡화석이 발굴된 것으로 보아 예전에는 이곳이 사막이 아니라 나무와 풀이 있는 초원일 것 같았다.
열째, 폐허가 된 옹깅히드(사원)의 허무한 모습이다.
이곳은 강을 중심으로 북쪽과 남쪽에 사원이 있어, 둘을 합쳐서 옹깅사원이라고 했다. 수많은 사원에 천명이 넘는 승려가 있었으나, 공산주의 시절인 1939년에 무자비하게 파괴되었고, 200명이 넘는 승려가 처형되었다. 이를 증명하듯 크지는 않았으나, 지형을 따라 자리 잡았던 많은 사원 터가 가슴을 허전하게 했다. 만약 이것을 복원한다고 해도 예전의 사원은 아닐 것이다. “인생은 무상하고 형태가 있는 것은 반드시 없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한째, 역사적인 하르호링의 방문이다.
하르호링은 오르홍강 상류에 있고, 몽골의 중심이어서 전에부터 제국의 수도역할을 했다. 훈 제국(흉노족), 투르크 제국(돌궐족), 몽골 제국(원, 몽골족)의 수도였으나, 지금은 그 때의 번영과 유물은 간 곳이 없었다. 다만 몽골 제국의 수도였던 현시가지 남쪽 언덕에 있던“카라코롬”의 흩어진 벽돌 등 건축자재로 지은 “에르데네 조 사원”만이 옛 영광을 알고 있지만, 침묵을 지키며 108번뇌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열둘째, 쳉헤르 및 자르갈라트 온천시설과 관리의 열악함이다.
쳉헤르와 자르갈랑트 온천은 몽골에서 이름 있는 온천이었다. 온천물은 좋아보였으나 샤워시설이 고장 나고, 비품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또한 실내 온천탕과 노천탕의 관리가 부실해 물이 너무 식었거나 너무 뜨거워 이용할 수 없는 불편이 있었다. 관광객 유치를 위해서는 이런 것을 개선할 필요가 있었다.
열셋째, 차강 호수와 흡스글 호수의 깨끗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차강 호수는 몽골에서는 보통 정도의 크기라 했으나 엄청 크고 깨끗했다. 이름이 “하얀 호수”란 것만 보아도 물이 깨끗하고 물고기가 많을 것 같았다. 흡스글 호수는 연어가 바다인줄 알고 성장할 정도로 크며, 전 세계 담수량의 1~2%를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 차강 호수만한 것이라도 있으면 좋게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넷째, 오시깅 으브르(폐의 계곡)의 사슴돌이다.
청동기 시대의 유적지인 오시깅 으브르에는 14개의 사슴돌이 있었다. 세계에 900여개의 사슴돌이 있는데 몽골에 약600개 있단다. 이것은 사각형의 긴 돌기둥으로 사면에 해와 사슴 모양의 무늬를 그린 것이었다. 해는 몽골에서 훈족(흉노족)을 “태양의 민족”이라고 부른 것에 기인한 것 같았고, 사슴은 어머니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여하튼 이 같은 유적을 잘 보존한 것도 몽골인의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것과 관계가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열다섯째, 몽골 자연사박물관을 보지 못한 아쉬움이다.
울란바타르의 몽골 국립박물관은 개략적으로 돌아보았지만, 자연사박물관은 수리 중이라 볼 수 없었다. 이곳에는 공룡에 관계되는 각종 화석과 몽골의 자연을 이해할 수 있는 수많은 동물, 새, 어류 등의 박제와 몽골에 있는 식물 및 몽골 탐험역사를 전시한다고 했다. 그러나 일행은 볼 기회를 상실하고 말았다.
열여섯째, 울란바타르의 교통체증 해소문제이다.
울란바타르는 성장하는 도시라 시골에서 인구가 모여들고, 고층건물들이 계속 들어서고 있었다. 그 때문에 시내 중심은 교통체증이 심했다. 도로가 좁은데 주차장시설은 좋지 않고, 주민들의 교통의식도 문제였다. 건널목에서 붉은 불이 켜졌는데도 틈만 있으면 건너고 있었다. 더 늦기 전에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교통소통대책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해 보았다.
생각을 마치고 쉬고 있는데, 머지않아 인천공항에 도착한다고 했다. 몽골은 막연히 멀다고 생각했는데, 비행기를 타면 3시간 30분 전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일행은 인천 영종도 국제공항에 도착(12:30, 몽골시간 11:30)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짐을 찾을 때까지 일행과 작별인사를 하고 락규와 함께 버스를 타고 부천 락규집으로 향했다.
지금까지 저의 몽골배낭 여행기를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려요. 이 글은 제가 보고, 듣고, 알고, 느낀 것을 중심으로 썼기 때문에 함께 여행하신 분들이라도 관점의 차이 때문에 다를 수가 있어요. 함께 여행하지 않고, 다른 팀이나 개인적으로 몽골을 여행한 분이라면 같은 곳에 갔더라도 다른 것을 볼 수도 있었겠지요.
저는 어디든 갈 때마다 여행기를 쓰지만, 점점 쓰는 것이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행 가기 전에 책을 사보기도 하고, 인터넷을 뒤지기도 하지요. 그러나 외국말을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다르게 쓰기도 하고, 통계자료도 기준연도가 틀리기 때문인지 다른 경우가 있어요. 특히 인터넷에 나온 자료는 서로 너무나 틀린 것이 많아 될 수 있는 한 사용하지 않는 편이지요. 인터넷에 나온 자료는 검증하지 않고, 자기가 아는 대로만 쓰기 때문이겠지요.
여하튼 현장을 다니면서 보고 사진을 찍으며, 여러 가지 자료를 살펴서 여행기를 쓰려고 노력했어요. 현장에서 구하지 못한 것은 자료를 찾았는데, 가능하면 여러 곳에 나온 공통적인 것을 사용하려고 힘썼어요. 통계자료는 내가 아는 것 중에 가장 최신 것을 사용했어요.
이 여행기가 함께 여행한 분들께는 심심하거나 궁금할 때 다시 찾아보는 추억의 상자로 활용하시고, 몽골을 알려거나 앞으로 가실 분들에게는 하나의 참고 자료가 된다면 제가 글 쓴 보람을 느낄 것 같아요.
끝으로 이번 몽골여행을 계획하고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노력을 아끼지 않은 천년친구에게 감사드려요. 그리고 열악한 환경에 잘 적응하면서 여행을 함께한 여러분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해요. 이상으로 이번 여행기를 끝내면서 다시 한 번 저의 여행기를 읽어주신 모든 들에게 감사드려요.
여러분 감사합니다! 그리고 건강하세요!!!
첫댓글 몽골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은 꼭 읽어 보아야 할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언젠가 몽골여행을 한다면 다시 읽고 참고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동안 글 올리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화음님 감사해요. 저의 글을 화음님이 몽골 갈 때 참고한다니 영광이예요~~~
17박 18일 동안의 여행기와 사진, 잘 보았습니다.
김경진님 감사해요. 계속 댓글을 달아주시고~~~
몽골 여행 대장장의 막이 내렸네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귀한 자료 두고 두고 천천히 읽어 보렵니다
감사합니다
혜전님은 올리다가 왜 중간에서 그만두셨어요.
여하튼 여러분과 함께한 몽골여행이 정말 좋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와우! 노력과 정성에 그저 감탄만 나올뿐입니다. 잊혀져가는 시간들을 잡아보려 애쓰지만 시간은 항상 세월이 되어서 어느날 문득 잊고 있음을 깨닫게 되더라구요. 백호님의 여행기가 두고두고 시간을 되새김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겠습니다. 성실함과 섬세함으로 남겨 주신 자료 정말 귀하게 읽겠습니다. 감사 드립니다. 전주에서
신난다님, 저의 글을 읽고 추억의 상자로 활용하시겠다니 감사해요.
잘 쓰진 못했지만 가능한 한 정확하게 쓰려고 노력했어요.
신난다님은 저와 함께 몽골여행을 하신 분 같은데 누구신지 잘 모르겠네요~~~
기록은 참으로 중요한거예요~
백호님의 여행기를 참고하여 저도 다녀 온길 더듬어 제 여행기를 마무리 할수 있을거 같네요!
참으로 자세한 지명과 역사 그리고 사진 다시 가질수 없는 추억의 시간들 상세히 올려 주심에 감탄이구요~
앞으론 백호님이 가시면 무조건 따라 나서야 할듯...ㅋㅋㅋ
저도 좋은 자료 남겨 주심에 감사요!!
진실님! 함께 여행하게 되어서 즐거웠어요.
앞으로도 다시 함께할 기회가 있겠죠~~~
상세한 여행기 쓰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무나 쓰는 여행기가 아니죠. 고생하셨습니다...
모두가 천년친구가 계획하고 이끌어준 덕분이죠~~~
정말 고생많으셨습니다. 덕분에 저희들은 몽골 여행을 두 번씩 하며 즐거웠습니다. ^*^ 감사했습니다. 늘 건강하세요.
편한세상님 항상 저의 글을 봐주어서 고마워요. 잘 계시죠~~~
마지막편을 오늘에서야 읽었습니다 자세한 내용들 참 도움이 많이 됩니다
제가 후기글을 쓴다는것은 부끄럽게 여겨집니다
서투리님의 미얀마여행기 잘 읽었어요~~~
몽골 가고 싶은데 다음에 기회 되면 ~~~~
나이스님 고마워요. 다음에 몽골에 가실 때 도움이 되면 참 좋겠네요.
대단하십니다
다른 분들에게 큰 도움이 될거예요
공명이님 고맙습니다.
코로나로 더 이상 움직일수 없는 요즘 몽골 여행을 회상해 봅니다
백호님 여행기를 쭉 읽다보니 기억이 새록새록나고 어떤 날은 전혀 기억에서 사라진 날도 있네요
우리 차가 고장나서 초원에서 기사들이 힘을 합쳐 8시간 동안 수리하던 날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후기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