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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리감투
야생동물은 저마다 생존을 이어가는 보호본능이 있다. 털이 촘촘한데다가 부드러워서 목도리와 모자로 인기가 좋았던 오소리는 청각과 후각이 예민하고 몸집에 비해서 힘이 세지만 자기보다 덩치가 큰 동물이 나타나면 죽은 체 한다고 한다.
사람들은 오소리가 나타나면 서로 먼저 잡으려고 쟁탈을 벌이기 마련이었다. 돼지를 잡을 때, 돼지의 내장 중에 가장 맛있는 부위인 오소리감투를 먼저 먹으려고 눈치를 보는 것과 같다. 서로 먼저 차지하기 위해 다투는 모습이 벼슬자리를 두고 쟁탈을 벌이는 것과 어원이 비슷해서 흔히 감투를 좋아하는 약삭빠른 사람을 빗대어 오소리감투를 썼다고 부른다.
세상에는 오소리감투를 시작으로 별의별 감투가 많다. 어떤 감투를 썼는가에 의해서 인생의 성공 여부를 평가하는 잣대로 삼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는 여태까지 드러낼만한 감투를 쓴 적이 없다. 국가 기관은 물론 일정한 조직을 갖춘 회사에서조차 직위를 나타내는 수식어를 사용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남자로 태어난 대가를 치르느라 군복무를 하는 동안 성명 앞에 붙은 ‘병장’을 끝으로 계장, 과장, 팀장, 부장처럼 어떤 접두어조차 달아본 적이 없다. 선거에 출마를 하거나 경쟁자를 따돌리기 위해서 이력서의 빈칸을 채우려고 한다면 난감할 것이다.
감투를 쓴 일이 없어서 내세울 일도 없지만, 감투로 인한 이해관계가 없기 때문에 누구와 이러쿵저러쿵하는 싸움에 말려들 이유도 없다. 굳이 들춰낸다면 감투 비슷한 직함을 딱 한 번 사용한 적이 있다. 전형적인 관변단체인 바르게살기운동본부의 말단 조직인 동사무소 소속 바르게살기위원회 위원장이었다. 국가 기관에 편재된 조직이기는 하지만 삶에 도움을 받을 수 있기는 고사하고 시간과 호주머니를 털어내야 하는 직함이다. 일정한 자격 요건이 필요 없고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자리여서 알아주는 사람이 있을 리도 없다.
그 때, 내 나이 40대 초반이었다. 어느 날 동사무소의 공무원 중 제일 높은 분이 찾아왔다. 내가 살고 있는 동사무소의 동장이다. 동장 직함은 대부분 평생 공무를 수행한 원숙한 공무원이어서 상당한 감투이다. 연세가 지긋한 동장은 동사무소에 편제된 조직 중에 공석이 있다고 하면서 협조를 바란다고 한다. 위원장을 맡으라는 것이다.
나는 국가기관을 담당하는 조직의 근처에 얼씬거려 본적이 없는데다가 관변단체에 대한 거부감까지 갖고 있어서 펄쩍 뛴 것은 물론이다. 감투를 쓴 이력이 없는데다 다른 사람들한테 본이 될 만큼 바르게 살고 있지도 못한 터이다. 그러나 감투를 쓴 사람 앞에 저항할 수 있는 힘조차 없는 터에 순종할 수밖에 없었다. 보수 기질에 어수룩한 내 모습이 동장한테는 강점으로 비친 모양이다.
주어진 임무라는 것이 한 달에 한 차례 동사무소 공무원들과 식사 겸 환담을 하거나 관청에서 주최하는 행사장에 동원되어 한 나절 혹은 하루를 온전히 바치는 것이다. 사시사철 헐렁한 차림새로 다니다가 그 때마다 정장 차림을 해야 해서 행동이 여간 거북스러운 게 아니었다. 머리에 맞지 아니하는 헐렁한 모자를 쓴 것처럼 거북스럽기가 그지없다.
단체와 관련된 행사와 모임 등으로 인하여 내 삶의 자리를 비우는 시간이 많아졌다. 무엇보다 민망한 것은 동사무소의 수장인 동장부터 모든 직원들이 나를 볼 때마다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인사를 할 때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꼭 필요한 민원서류를 발급하거나 용무를 보러 동사무소를 방문할 때면 얼굴이 달아오르곤 했다. “위원장님, 의자에 편하게 앉아 계십시오. 말씀만 하시면 즉시 처리해드리겠습니다.”한다. 어떤 이는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이 주변에 많으니 무슨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느냐고 실눈을 뜨고 바라보기까지 한다.
반 십 년이 지났을까. 개구리가 냄비 속에 들어가 있다가 물이 서서히 끓어오르면 적응을 하려고 체온을 높이다가 결국은 배를 하늘로 드러내어 죽어버리는 삶아죽는 개구리(Boiling frog)가 눈앞에서 어른 거렸다.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 사직서를 제출했다. 처음에는 홀가분하면서도 그것도 감투라고 머리가 썰렁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 뇌리에서 사라져 버린 지도 오래 되었지만 그 때를 생각하면 몸에 뜨거운 물을 끼얹은 듯 얼굴이 화끈거린다.
감투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삶을 이어가기 위한 필수품이다. 감투를 잘 쓰면 삶에도 유익할뿐더러 본래보다 품위도 돋보이고 멋스럽게 보인다. 그래서 좋은 감투는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소망이기도하다. 그러나 오소리감투의 유래처럼 쟁탈을 벌이면서까지 감투에 대한 욕심을 내다보면 삶아죽는 개구리 꼴이 되기 십상이다. 어쩔 수 없이 감투를 썼다면 청각과 후각이 예민하지만 덩치가 큰 동물 앞에서 죽은 체하여 자신을 보호하는 오소리를 생각할 일이다. |
첫댓글 감투를 쓰면 누구나 깐뵈지 않고 좋은 게 더 많으니까 목숨을 걸듯 쓰려는 것이겠지요.
인간의 3대 욕심 중에 명예욕이 성욕이나 식욕보다 더 왕성한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
감투 욕심이 없는 회장님의 청정한 심성이 이 시대 명예욕 때문에 제 명대로 못 사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경종이 됐으면 합니다.
볼일 없는 주제에 넋두리를 늘어 놓았습니다.
그저 민망할 뿐입니다.
'감투' 저도 써 본 경험이 있습니다. 어찌나 무거운지 목아지가 부러질 뻔 했는데도 기어히 감투를 탐했던 지난 일들이 떠오릅니다. 지금은 모든 감투를 스스로 벗었거나 벗김 받은 상태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후배 녀석이 감투 만들기에(선거)도움이 되어달라고 한달 남짓 졸라댑니다. 사무장과 회계책임자를 감당해 달라는 겁니다.(믿을 사람 선배 뿐이라는 달콤한 사탕도 내밀면서)고심 중입니다. 죽은 체 할 것인지... 선생님 글 잘 읽었습니다. 건강하시죠?
이태호선생님, 졸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감기로부터 해방되셨지요. 저도 이틀전에야 몸살로부터 벗어났습니다. 제가 끝나자마자 식구차례가 되었습니다.. 독감 예방 접종을 하고부터 감기를 모르다가 처음이었습니다. 가끔은 통증도 겪어봐야 한다는 생각도 듭니다.
해헌선생님은 아직 하실 일이 많으십니다. 유종의미를 거두시기를 빌겠습니다.
요즈음도 삶아죽은 개구리가 될 감투에 눈이 충혈된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선생님이야말로 아주 좋으신 감투 쓰셨네요. '회장님' 앞으로 2년 동안 아무도 빼앗아가지 못할 거예요.
감명 깊게 잘 읽었습니다. 우리 회장님 짱이십니다.
오소리는 잡식성 돌물로 고구마 감 등 못 먹는 것이 없지요
가을 내내 먹고 살찌운 오소리는 바위 위에서 떨어져 몸이 아프면 더 먹고 굴 속으로 들어 간답니다.
집단 서식을 하는 오소리는 들어가는 굴이 있으면 비상구가 있어서 침입자가 오면 피하는 곳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입구에 나무로 불을 피우고 인근에 연기가 나오는 곳에서 개와 함께 기다리면 오소리 7-8마리가 나오는데 개와 싸우면 장관이지요 살이 쪄서 개가 물으면 자국도 안 나는데 오소리가 물으면 개는 지는 싸움을 하는 겁니다.
이때 사람이 합동 작전으로 오소리를 잡는 데 기름은 화상에 즉효지요
어려서 오소리 잡는 이야기예요 너무 아는체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