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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리-법계계곡-유암폭포-통신골-천왕봉-중봉-마야계곡-순두류-중산리
2006년 5월 21일 (일) 맑음
같이한 사람들 : 본인 포함 4명
지난 1월1일 이 후
그동안 기맥이니 지맥산행에 열중하고,
또 경방기간으로 묶여서 갈 수도 없었던 지리산을 다녀오기로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지리산을 들어가면 포근하고 안정된 기분이 듭니다
그건 나뿐만 아니라 지리로 자주 향하는 산 사람들은 다 그렇지 않을까! 하는 혼자만의 생각이다
하기야 지다람 아우님 같이 일찍부터 오로지 지리산만 다니면서 지리산에 관한 세세한 부분까지 꽤 뚫을 수 있을 정도의 지리 매니아가 있기도 하지만 이 몸은 좋아하지만 한 곳에 안주(?)하지 못하고 이 것 저 것 두루두루 즐기고 섭렵(?)하는 스타일로 인해서 일 년에 몇 번 정도의 지리산행이 이루어 집니다
이번 산행도 경방이 풀린 5월초부터 이리저리 조율 하다가 이뤄진 산행 입니다
언제 부터인가 지리산을 찾으면 신세지며 같이하는 대구의 산길로 아우님과 이번에도 약속을 하며 한번도 오르지 못했던 통신골을 경유해서 천왕봉을 오르고 마야계곡으로 하산하는 원점회귀 산행을 계획하고 몇 사람들과 승합차를 이용하는 산행을 생각했다가 입질(?)하는 아는 산 사람들이 없어서 그냥 개인적으로 대중 교통편을 이용해서 다녀오기로 합니다
하기야 언제부터 내가 여럿과 어울리며 산을 다녔었다고, (^_^)
아니! 이 놈의 인터넷 상에서만 알리기만하지 유, 무선 전화를 이용하지 않으니 아무래도 가까운 사람들도 멀어지나 보다 하여튼
"형님 통신골 죽입니더 여느 지리산 계곡하고는 분위기가 다르다 아입니꺼"
지리산 어디든 좋지만 이 놈의 속물은 그래도 매번 어느 코스가 좋을까 어디로 내려갈까 그런 생각과 고민끝에 코스를 설정하고 지리로 향하게 된다
중산리로 들어가본게 언제 였더라!!!
중산리 입구를 들어서면서 그런 생각을 해본다
자그마치 9년이란 시간만에 중산리를 다시 찾은 모양이다
본시 사람이 많이 끓고, 도시화되고 정형화 된 것을 싫어하는 이 몸인지라 사람 많이 끓고 위락시설 행락시설이 많이 들어선 곳을 좋아하지 않는다 중산리는 그런 이유로 애써 피하고 싶은 곳 중의 한 곳이지만 그런 이유는 이유꺼리가 못 될 것이다
백무동 반선 화엄사 지구 대성골등 지리산 어느 곳이 그렇지 않은 곳이 있든가!!!
아마! 서울에서 접근하기가 백무동이나 반선등 보다 접근하기가 조금은 불편해서이지 않을까!!!
1997년 8월 11일 새벽
그랬었다!!! 끄적거려놓은 기록과 낡은 기억을 애써 더듬어보니 내 백두대간 종주의 시발점이된 지리산 종주를 들어간답시고 서울에서 마지막 버스로 진주에 도착해서 그 당시 35.000냥의 택시비로 중산리로 들어왔더니 태풍과 호우주의보가 내렸으니 계곡에 있는 야영객들은 모두 내려오라는 안내방송이 새벽공기를 가르며 시끄럽게 들려오던 그런 상황이었을 때 갔으니 자그마치 9년만이다
"아니! 방송소리 안 들리세요 이미 들어간 사람들 다 내려오라고 방송중인데 못 갑니다"
"아저씨 저 지금 올라가서 성삼재까지 가야하거든요 서울서 계획하고 내려와서 못간다면 말도 안됩니다 아저씨 나 게속 따라다니면서 말리지 못할 것 아닙니까? 나는 아저씨 못봤고 아저씩도 이 사람을 못 본겁니다 이 몸은 올라가야 합니다 제 말뜻 아시겠쥬"
만류하는 공단 직원을 설득시키고 비 내리는 중산리 매표소를 떠난 기억인데 이 후 처음 찾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게 이렇게 사설이 길어집니다
"지리산에 살다 지리산에 묻히는 것이 소원이다"
지리산 산신령 우천 허만수(許萬洙)
33 세에 지리산 세석고원에 들어와 초막을 짓고 생활하고 지리산 곳곳에 안내판을 설치하고 샘터를 개발 및 보수, 수많은 사람들의 인명구조 및 안내로 한 평생을 바친 사람인데 산이 좋아 가족도 버리고 홀로 살며 산에서 여생을 마친 진정한 산꾼 이라는데 1976년 6월 60세 되던 해에, 세석 철쭉꽃 등지고 홀연히 사라졌다함 사람들은 그가 칠선계곡, 도장골, 신선너덜에서 숨졌으리라 추측하지만 지리산과 늘 함께 살아왔던 그의 최후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한다
매표소 인근의 여러 건물들도 세월이 흘렀으니 달라진 건 당연하겠지만 하여튼 해발 637m의 중산리 야영장의 이정목 옆에는 천왕봉 5.4km 장터목 5.3km를 가르키고 있지만 그거야 어느 곳을 통해서 가느냐에 따라서 다르겠지,
그 들머리에 바로 우천 허만수 선생의 추모비가 자리하고 있다
칼바위
조선 태조 이성계가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자가 지리산 어느 큰 바위 아래서 은거중이라는 그 소문을 듣고 이성계는 부하에게 그 목을 베어오라 명령하고,
선비를 발견하고 칼로 쳤더니 갈라져 유암폭포 아래 홈바위가 되고 그 칼이 부러지며 2km 위인 여기에 날아와 꽂혀 지금의 칼바위가 되었다는 전설,
중산리 깃점으로 로타리 산장이나 장터목으로 오를 때 지나는 곳이다
출발 20분 쯤 지나서 로타리산장과 법천골 코스와 갈라지는 지점에 도착하니 이미 땀은 비 오듯 쏱아진다
잠시 땀을 닦으며 숨을 고르려니
아저씨 천왕봉까지 얼마나 걸립니까?
아이고 ~~ 얼마나 왔다고... 벌써 저러시남!!!
어느 산이나 사람 많은 산에서는 꼭 저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다니깐!!!
하루 전 많이 내린 비로 수량이 많아진 법천골을 요란한 소리를 내며 시원한 한기를 뿜어주니 아침 먹으며 소주 반병 이상을 마셔 무거운 발걸음이지만 그래도 한결 부드럽고 여유롭고 한가한 산행이다
그렇게 놀며 여유롭게, 그렇지만 그렇게 한가한 발걸음을 한 건 아니었지만 산행시작 1시간여 만에 도착한 넓게 시야가 터지면서 너덜 바위들이 널려있는 홈바위교에 도착하니 제석봉 남동릉이 보이면서 지리산 다운 면모들이 보여진다
지리산 3개도에 걸쳐있는 방대한 지리산을 그냥 바깥에서 보면 육중하고 두르뭉슬하고 그냥 육산같이 보여 지지만 그 속에 들어서면 곳곳에 날카로운 발톱을 감춘 바위들이 짙은 밀림에 감추어져 있다
다리 아래 그늘에 앉아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휴식을 가져본다
홈바위교를 지나면 5분 여의 시간이 걸린 곳에는 중산리에서 3.7km 칼바위에서 2.4km 장터목 대피소까지는 기껏 1.6km밖에 남지 않았다는 이정목이 있고,
바로 그곳에는 유암폭포가 그 멋진 자태를 하고있다
유암폭포는 10m 높이의 기름칠 한 듯, 미끌미끌한 바위인데 폭포에 기름이 떠오르는 현상도 자주 나타나고 있어 유암 폭포라 일컷는 모양이다
아마! 통신골을 오르다보면 보이는 녹물 같은 것들...이 묻은 바위들과 용암층같은 바위들 때문인지? 그건 지리산 매니아들이 더 잘 알 것이다
그렇게 멋진 장관을 자랑하는 유암폭포를 뒤로 하고 철 난간도 한번 지나고 3~4분 지나면 바로 장터목으로 향하는 주 등로를 버리고 통신골로 들어서는 초입부가 나타나며 저 위로 멋진 전경들이 펼쳐진다
神과 通한다 하여 통신골로 불린다하는 설도 있고 천왕성모가 천신의 정기를 받은 곳으로 알려져 있고,
해발 1.200m 지점부터 통신골로 들어서는데 바로 천왕봉 일대부터 급하게 흘러내린 계곡이라서, 급한 벼랑과 좁은 협곡으로 이루어진 형태의 계곡이라서,
또한 구멍이 숭숭 뚫린 그런 용암층같은 바위라서 그런지 평소에는 거의 건 계곡이나 마찬가지의 수량이 별로 없는 통신골 이지만 하루 전 태풍경보와 함께 많이 내린 비로 인해서 많은 수량을 흘러내리는 통신골을 오르는 우리는 어쩌면 복 받은 것이 아닌가!
멀리서 올려다보면 너무 가파른 폭포지대가 보이니 도저히 올라갈 것 같지 않지만 물이 흐르고 있는 바위조차도 밟아도 미끄럽지 않고,
잡을 곳 많은 턱진 바위들이라 성큼 성큼 쉽게 올라설 수 있어 너무 좋다
거기에다가 서로의 등산화 바닥이 엑스 그립이니 제트 그립이라 미끄럽지 않다고 자랑들을 하며 성큼 거리며 오르지만 빠르지 않은건 주위 절경을 수시로 즐기고 사진도 찍으며 오르기 때문이다
통신골로 들어선지 30분이나 지났을까!
하기야 시간이 무슨 소용 있을까! 놀며 즐기며 오른 것이니 그렇다는 거다
좌측으로 거대한 폭포가(비가 왔기 때문이고 평소면 물이 없을 것이다)있는 갈라지는 합수점 계곡을 지나서 계속 오름이다
좌측 폭포가 있는 골자기는 아마! 제석봉 부근으로 올라지지 않을까 싶다
다시 폭 좁은 협곡 같은 골자기를 이리저리 걷기 좋은 쪽으로 오른다
4~50분 정도가 지났을 때 우측으로 또 폭포 같은 지대가 나타나며 합수점이 나타나면서 오르다 보니 어라! 갑자기 계곡의 폭이 좁아지고 수량도 줄어들며 모양새가 지저분해진다
나도 이상하다 싶었지만 몇 번의 경험이 있는 산길로가 잘못 들어선 것 같습니다
우측의 폭포 쪽으로 올라야 우리가 목표한 쪽입니다
그렇게 우측 사면을 가로질러 내려서니 바로 조금 전 그 폭포 상단부가 되면서 아주 드넓은 계곡이 펼쳐지고 저 아래 우리가 걸어왔던 계곡이 가파르게 내려다 보인다
주위에 널려 있는게 곰취지만 도대체가 난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다
두릅이나 더덕도 내 발에 채이거나 내가 지나는 곳에 보여야지 건드리지 일부러 몇 발자국만 들어서도 되는 곳만 되어도 그런 수고(?)가 싫다
일출봉 능선도 보이면서 그 아래 사태지역도 보여집니다
통신골 들어선지 1시간 20분 정도 지났을까!!!
수량도 줄어들고 사태지역이 나타나면서 저 위로 바위들이 보이면서 천왕봉 일대가 감지되면서 붉은 꽃들이 화사하게 자태를 드러낸다
와 ~ 진달래가 한창 이구나 보기 좋으네
헹님 지금 무신 진달래 겠능교? 철쭉이겠지
가까이 다가가더니 어! 참말로 진달래 맞네
바위와 어우러져 고도가 높은 지역에 피어있는 진달래는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바위와 어우러진 유난히 붉은 진달래 군락은 내 마음까지 붉게 물들이는 듯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저 위에서 헬기 한 대가 요란한 굉음을 울리며 허공에 멈춰있는 것이 보이니 죄 진 사람 지례 오금이 저린 양으로 가지 말라는 곳으로 우리를 잡으러 온 것으로 착각하고 납작하게 엎드리고 주시 한다 (^_^)
11시10분 정도
진달래와 바위 사이를 이리저리 피해서 올라서니 저 위로 많은 등산객 소리가 들려오고 구상나무 한 그루가 서있는 주능선 인근에 올라선다
서남쪽 연하봉(1.687m)너머로 촛대봉(1.703.7m)영신봉(1.651.9m)이 듬직하고,
영신봉에서 남쪽 삼신봉(1.284m)으로 흘러내린 육중한 남부능선이 시야에 들어오고 영신봉 저 너머 그 우측으로 하늘로 엉덩이를 까고 있는 모습의 서부 지리의 최고봉 반야봉이 희미하게 보인다
저 아래 우리가 올라섰던 통신골 하류부 홈바위교 일대는 마치 산사태가 난 것 같이 내려다 보인다
고사목과 바위가 어우러진 목책이 쳐진 주능선 상에는 아직도 많은 등산객들이 장터목 방향으로 향하고 바람도 거의 없는 천왕봉을 향한다
나나 산길로나 일 년에 몇 차례씩 지리산을 찾지만 천왕봉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건 다른 이유보다 언제 어느 시간에 올라도 엄청난 인파로 시끄러움 때문 일거다
뭐 그렇다고 이 좋은 지리산을 나 혼자 독식(?)하고자하는 고약한 생각은 아니다
그냥 그렇다는 거다 그래서 오지산행이나 사람 없는 한적한 곳을 찾는 것 아닌가
정상 일대 인근에도 붉은 진달래가 보기 좋고,
그 놈의 사람 들어간 사진도 아닌데 천왕봉 정상석 하나 제대로 찍어보지 못하는거야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연신 사진 찍어대는 인파 때문이다
어디 천왕봉 정상석 뿐이든가 설악산 대청봉 정상석 사진도 제대로 된 것이 하나 없다
북쪽 중봉 너머 하봉 쪽에서 흘러내린 초암릉도, 그 뒤의 두리 능선도 언제 보아도 정겨운 동부쪽 능선과 봉우리들이다
그런데 저 놈의 중봉 안부의 하얀 컨테이너는 아직도 보이네
벌써 몇 년째 아닌가!!! 중봉 인근의 사태지역을 인위적으로 복구 한답시고 공사를 하는 모양인데 에구머니나!!! 무슨 목책 같은 나무계단이 만들어져 있네
자연은 자연스스로 얼마의 시간이 걸리든지 스스로 치유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자꾸 만들고 가꾸고 정형화 시키면 그 것은 이미 자연이 아니다
10분 도 채 머물지 않고 중봉안부를 향해 가는 능선에는 예의 붉디붉은 진달래가 가지 말라 유혹을 하지만 이 몸은 마야부인을 찾아가야 한다네
구상나무가 서있는 바위 아래도 지나며 서쪽을 바라보니 오늘 따라 중북부 삼정산 능선은 왜! 저리도 높게 보이누? 그냥 뿌우연 박무 속에서 말이다
천왕봉 출발 10분 도 채 걸리지 않아서 안부에 도착하고 금방 동쪽 골짜기를 내려다보며 중봉샘에 도착하니 딱 정오가 되었네
천왕봉과 중봉 사이에서 남동쪽으로 흘러내린 능선,
그리고 써레봉과 황금능선이 흘러가며 그 사이로 급격하게 흘러내린 계곡이 중봉골, 용소골, 혹은 마야독탕이 자리하고 있다고 해서 마야계곡으로도 불리우는 골자기, 마야계곡이란 이름은 석가여래의 어머니이신 마야부인이 머물렀다는 전설에서 비롯됐다고 전해진다는 이 골자기로 오늘 우리는 내려갑니다
샘에서 내려서자 말자 급격한 벼랑들이 이루어지고 습기 낀 바위를 타고 흐르는 석간수와 이끼 낀 작은 폭포들이 초반에 반겨주고,
저 아래 깊고 깊은 골자기를 내려다보며 부지런히 발길들을 옮긴다
갑자기 어디선가 무슨 짐승이 달려가는 듯,
푸다닥 ~~ 와지끈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벙거지를 눌러쓰고 허연 구랫나루 수염의 치아는 거의 없지만,
그렇지만 얼굴색은 붉은 색을 띤 나이든 약초꾼이다
저 아래 어느 곳에서 초막을 치고 몇 십 년째 산다는 이 나이든 약초꾼께서 라이터를 잃어버렸다고 빌리자니 담배는 피지 않지만 예비로 가지고 다니던 것을 가지라고 건네주니 감사의 표시로 고지대서캔 당귀 한 뿌리를 건네주며 씹으라고 한다
흙 묻은 것을 대강 털어내고 잔뿌리를 씹으니
이 선생님 드실줄 아시네요
속이 더부룩하고 식욕이 별로 없다는 산길로 아우님 씹더니 금방 효과가 난다나!
잠시 후 반석이 있는 바위지대에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하는데 다시 헤어진 그 양반을 만나서 있는 음식을 건네주니 아예 캔 당귀 몇 뿌리를 건네준다
아이구 다 캔거 우리 주시면 안되지요 됐습니다
괘안습니더 그냥 주고 싶은 사람들껜 다 주고 싶고 돈 받을 사람은 다 받습니다
투박한 사투리로 연신 먹을 것 챙겨주어 고맙다는 인사와 골자기 지명들도 설명해준다
그렇게 느긋한 점심 식사도 즐기고 그 분과 작별도 하고 일어서서 발길을 재촉 하는게 아마! 13시30분 정도가 되었을거다
이 곳이 마야독탕인가? 하여튼 그런거 저러거 생각하지 않고 부지런히 달려 내려오기 바빴다
이제부터는 부지런히 하산을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서울로 향해야하는 발길도 바쁘지만 아까부터 날아온 문자에는 저 능선 너머 전북 땅 지리의 산내에서 남쪽 중산리로 마중 나온 지리산 귀신(?)노으리의 채근(?) 때문이다
몇 시쯤 내려오십니까? 매표소 근처에서 기다리겠습니다
글쎄 봐야 항상 바쁘게 얼굴만 보고,
지 놈이나 나나 살가운 대화도 없으면서 말이다
글쎄! 아무 연고나 관계도 없으면서 산 좋아한다는 인연으로 넷 상에서 만난지도 벌써 몇 년 되었고 오라비로 부르고 이놈아 하고 부르는 사이다
지리산과, 특히 반야봉에 얽힌 추억이 많은 제주도 출신의 비바리 노으리는 기어이 몇 년 전 부터 지리의 품에 안겨서 살아가고 있다
지리로 향한다는 소식이 들리면 그냥 잠시 얼굴 한번 보고 휙 하니 헤어지는 사이다
용소가 틀림없다
이곳 도착이 13시30분 경이고 이곳에서 또 느긋하게 여유를 부리고 출발이다
이 후 계곡과 상관없이 등산로를 따라서 계곡을 왼쪽 저 아래로 두고서 우측의 사면을 따라서 부지런한 발걸음을 옮긴다
한 시간 이상 사진도 기록하지 않고 부지런히 달려가니 등산로에서 살짝 벗어난 "순두류아지트”에 도착해서 아예 등산화도 벗어버리고 발을 담그며 유유자적 이다 ㅎ
그런데 초이의 등산화에서 거름(?) 냄새가 몸씨 풍긴다나 (^_^)
조금 전 어느 고약한 사람이 아무 곳에서나 툭 던지듯 방치한 지뢰(?)를 보면서 투덜대면서 지나며 조심하라던 적이 있는데 에구머니나! 주 지뢰만 조심했지 주변 지뢰 파편(?)을 밟은 모양이다 (부 지뢰는 두 개 정도 있었던 듯 ^^*)
하산하면 복권 사자 그런 경우가 그리 쉽게 생기는 것 아니잖아
이 몸의 이야기다
好事多魔라 했던가!!!
뭐 굳이 호사다마라고 까지 표현할 필요야 없겠고 오히려 스스로 재촉한 것 일거다
청소년 수련원으로 향하는 넓은 길을 만난 화장실이 있는 턱 위에 올라서서는
지겨운 시멘트길 지그재그로 따라 갈 일 있습니까 빙빙 돌더라도 임도길 따라서 가입시더
그려 어찌 가던지 이제 얼마나 남았다구! 그랴 그랴
생각 없이 좌측으로 휘도는 골자기로 내려서다보니 뭔가가 이상하게 꼬이면서 엄청난 산죽군락을 헤치면서 길을 찾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지만 그 것 또한 걱정없이 방향만 찾아서 잠시 헤치는 건 맨 날 하는 짓이 이런 짓(?)이 여서다 (^_^)
하지만 계곡은 멀리 떨어져 있고 이미 내려섰어야 할 시간임에도 끝없이 사람 키보다 더 큰 산죽군락을 헤치며 나가는데 은근한 짜증이 나기도한다
그러나 초반 잠시 족적 없는 곳에서 헤메이었을 뿐이지 길은 뚜렷한 상태라 그냥 말없이 부지런한 발길을 옮긴다 까짓 언젠가는 내려가 지겠지
아이구 ~ 그렇게 한 4~50분을 산죽 밭을 헬 ~헬 대며 내려서다보니 저 아래 시야가 터지면서 계곡 쪽이 보이는데 웬! 정복 입은 사람들 너댓명이 보이네
에구! 이곳이 들어와도 되는 곳인지 아닌 곳인지도 모른다 그냥 뒤돌아 빠꾸 오라이다 헉헉헉 ~
조금 전 우측으로 올라가는 계단길 보이는 곳으로 부지런히 올라가니 거참!
수련원에서 내려오는 시멘트 도로네!!!
젠장! 처음부터 그렇게 내려섰다면야 이렇게 자라보고 놀란 가슴 ... 안해도 되고,
산죽밭 헤치지 않았어도 되고, 흐 ~ 언제 좋은 길 찾아다녔던 몸들인가?
시멘트 길 살짝 내려서니 16시10분 정도가 되었고 바로 아침에 들어섰던 칼바위 쪽 입구고 매월 네 째 주일 경북도계 산행을 하는 산길로 아우는 같이 뛰는 일행들을 만나서 반갑게 인사 하는게 산꾼들 웬만하면 지리 설악에서는 만나게 된다는 것,
매표소 입구에는 지리산 속에 살고 있는 것이 어울리는 차림새의 노으리가 예의 뜨악한 말투로 오랜만에 만나는 나에게 노으리 식의 인사를 건넨다
어울리는 차림새는 무엇이고, 노으리식의 인사는 무엇인가?
작은 배낭 하나 메고 깨끗한 하얀 고무신을 신은 모습이 노으리의 모습이고,
전혀 살가운 표시를 하지는 않으면서 툭 툭 던지듯 반가움을 표시하는 노으리식 인사다
노을 이라는 괜찮은 닉네임을 소리 나는 대로 노으리로 바꿔버린 나에게 전혀 불만 없는 노으리
이젠 많이 늙은 것 같수다 배는 왜! 이리 나왔수? 하루방 다 됐수다
서울로 돌아갈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다
주차장 옆의 식당에서 동동주에 도토리묵 파전 시켜놓고 짧은 해후와 짧은 단어의 이야기만 몇 마디 오고가고, 산길로 능금님 잊지 않고,
그리고 내게도 하나 건네진 말린 표고버섯 봉투가 그 놈의 인정머리가 물씬 묻어나는 듯 하지만 나 역시 그리 살갑게 고마움이라든지 감사의 표시도 할 줄 모른다
돌아가는 길은 대체로 언제나 허겁 지겁이다
산길로의 차량으로 산청으로 왔으나 서울행 마지막 버스는 좌석이 없단다
막 달려오는 진주행 버스로 오히려 더 남쪽으로 후퇴(?)를 하고 난 후 진주에서 서울행 버스에 오르니 눈거플이 무거워져 오는데 산길로의 차량으로 함양까지 달려간 노으리의 문자에는 함양에도 서울행 버스가 있더라는 내용 이었다
그렇게 전혀 많지 않은 금년의 내 지리산 두 번째 산행은 끝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