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는 걷는 일이 많은 곳이다. 골목이 좁아 차를 타기도 애매한데다, 유적지끼리 서로 걸어서 10~15분이면 되는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침부터 로마 도보 순례를 시작하다 보면, 어느 순간 로마 시내를 죄다 걸어버린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물론 긴 구간은 버스나 전철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볼거리들이 바티칸에서 콜로세움 사이에 있으니 쉬엄쉬엄 골목길을 걷고, 한 두 정거장 전철을 타면 로마 순례는 순조롭게 막을 내린다. 스페인 계단은 트래비 분수에서 골목을 걷고, 도로를 몇 번 인가 건너면 된다.
스페인 계단에 다다르기 전에 눈길을 끄는 것은 명품 샵 들, 최소한 한 두 번은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유리창 사이로 보는 옷, 가방, 신발들이 유적지를 찾은 여행자를 유혹한다. 패션의 도시답게 개성적인 옷들, 디자인 감각이 살아 있는 것들, 손대기도 무서운 세계적인 명품들이다. 상점 앞을 두리번 거리다 갑자기 스페인 계단의 방향을 잃었다. 골목이 많은 로마에서는 흔한 일, 당황할 것은 없다. Piazza라 쓰인 작은 표지판을 금방 볼 수 있으니. 드디어 도착한 그녀의 계단. 퐁당퐁당 거리며 계단을 내려오고 아이스크림보다 더 달콤한 표정으로 아이스크림을 먹던 그녀가 아니었다면 이 공간이 그렇게 로맨틱한 곳이 되었을까.
이 작은 계단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안타깝게도 앞 도로가 공사중인지라 귀엽고 예쁜 분수를 볼 수 없다. 그래도 사람들은 행복한 표정으로 계단에 앉아 사진을 찍고, 이야기에 열중이다. 17세기에 스페인 대사관이 있었던 이유로 스페인 계단이란 이름이 붙었고, 로마 여행을 자주했던 영국인들을 통해 알려졌지만 가장 큰 공신은 오드리 햅번이었다. 그녀를 추억하며 계단에 앉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