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콜
2009030016남지혜
그곳을 가기위해 입구의 계단을 하나하나 올라가는 나의 발걸음을 따라 나의 맥박은 평소보다 빨라지기 시작한다. 입구에 도착해 자동유리문에 비친 나의 모습을 가다듬고 사람들로 붐비는 로비를 빠르게 지나가 1층에서부터 다시 계단에 발을 올리면 나 자신조차 놀랄 정도로 설레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며 아까보다 더 빨리 펌프질하는 심장에 부족한 산소를 보급하기 위해 크게 숨을 들이키고 내쉰다. 그 과정을 반복하다 목적지인 3층에 다다르면 공급했던 산소가 급격히 소진되어 화끈거리는 느낌을 목 뒷부분부터 얼굴까지 단숨에 받게 된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턱 근육을 팽팽하게 당겨 경직상태를 유지한다. 서둘러 발걸음을 옮겨 목표물을 발견해서야 온 몸의 긴장이 파도처럼 한 순간에 떠내려가 다리를 타고 끔찍하게 쥐가 났던 것이 풀린 것 같은 안도의 기운이 퍼지면서, 목표물을 열고 부드럽기도 하고, 손때가 타 바스락거리는 느낌이 나거나 특수한 소재로 만들어져 촉감이 살아있는 그 질감을 손끝으로 느끼면 그때서야 나의 머리가 내가 있는 곳을 인지해 소개팅보다도 더한 설렘을 도파민과 아드레날린을 통해 즐거움으로 바꿔준다.
이것이 내가 도서관에 갈 때마다 경험하는 것이다.
애증관계인 우리 자매님의 말씀을 빌리자면, 일명 ‘북어보다도 메마른 감성의 소유자’로 불리는 본인이 이런 감정의 변화를 겪고 있다는 것과 그 대상이 5학년 때까지 기피해야할 것 1위인 ‘책’이라는 사실은 스스로도 항상 놀랍고 새삼스럽다.
‘막내’라는 막강한 지위를 이용해 선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를 영악하게 이용했던 나는 집안에서 가장 큰 혜택을 받으며 초등학교 4학년시절을 무사히 마치고 5학년에 올라가게 되었다. 그때 부모님께서는 고학년이 되는 막내딸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머리가 아프셨는데, 예의범절에 대해서는 나무랄 데 없는 아이가 유독 독서를 장려하는 부모님의 말씀은 매번 안드로메다로 귀양을 보내고 친구들과 놀러 다니는 것이 문제였다. 집에 있는 수많은 전집들을 국과수에 보내 지문 조사한다면 나는 용의자 선상에서 바로 제외될 수 있을 정도였기에 부모님께서는 책에 있어서는 유치원만 간신히 졸업한 내가 학업을 따라가기 위해서라도 독서습관을 바로잡아야한다고 생각하셨다. 인중이 안보일 정도로 입술을 내밀고 뾰로통한 표정으로 ‘나 잡혀왔소’란 푯말을 미간의 주름으로 표현한 막내를 아랑곳 않고 어머니는 서점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셨다. 처음 몇 번은 책 읽는 소파에 앉아 퍼즐맞추기 놀이만 했다. 어머니께서 한가득 내가 읽어야하는 책들을 골라오셨지만 눈앞에 개미가 지나가는 걸 본 것처럼 한 번 쓱 흝은 뒤 ‘네 갈길 가소’하고 다른 퍼즐놀이를 찾아 헤맸다. 그러기를 반복하던 어느 날 어머니께서는 단단한 결심을 하시고 평소보다 무게감 있는 발걸음으로 내 손을 잡고 서점으로 향하셨다. 이제는 자주 가서 자연스레 퍼즐코너로 시선이 고정되는 나에게 어머니께서는 모아이상보다 더 굳은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네가 원하는 것으로 무엇이든지 그림보다 글자가 많은 책 1권만 골라와. 그럼 집에 바로 갈거야.”귀가 솔깃해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활자가 더 많은 책들이 있는 코너로 갔고 아니나 다를까 순전히 표지와 삽화가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그 책을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가는 내내 왠지 모를 뿌듯함이 내 맘속에 싹텄고 놀러갈 때만 나오는 허밍이 코에서 음표처럼 흘러나왔다. 집에 와 책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저녁을 먹으러 방을 나서는 순간, 갑자기 ‘근데 이거 무슨 내용이지?’란 궁금증이 떠올랐다. 밥을 한 술 떠 입에 넣고 ‘저거 표지에 있는 여자애 울고 있던데, 왜 울고 있지?’, 나물반찬이 서투른 젓가락질로 잘 안 잡히는 것에 인상을 쓰면서 ‘이거 왜 이렇게 안돼! 아 여자애 옆에 남자애는 무섭게 생겼던데 둘이 좋아하는 사인가?’ 저녁을 먹는 내내 책의 표지그림에 있는 인물들에 대한 의문들이 아침드라마로 변해가자 밥을 먹는 손길이 빨라지기 시작했고 가장 빨리 그릇을 비운 후 방으로 달려가 책의 표지를 보았다.
제목은 <폭풍의 언덕>, 작가는 에밀리 브론테. 그날 그 책을 다 읽고 자느라 다음날 지각할 뻔했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그 책 속의 상황에 있는 것처럼, 캐서린이 공주병말기환자증세를 보일 때는 실제로 ‘웩’하는 효과음을 내주고 히스클리프가 좌절하는 장면에서는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그를 불쌍하게 여겨 동정의 마음이 샘솟았다. 브론테자매를 시작으로 독서의 흠뻑쇼에 도취되자 내가 학교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은 놀이터가 아니라 도서관이 되었고 중고등학교때는 다독상과 각종 독서와 관련된 상장들로 내 방을 장식했다. 처음에는 책에 편식이 심했지만 점점 책 자체에서 주는 지식과 그 수많은 감정과 생각의 향연에 손님으로 눈치를 보며 자리에만 앉아 있다가 어느새 VIP고객으로 환영받는 존재가 되어 그 즐거움을 만끽하게 되었다. 중학교때 ‘상실의 시대’를 읽으면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난 무라카미 하루키를 아는 여자야.’라는 걸 표출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대학생인 지금은 ‘구름빵’을 보고 동심과 그 상상력 자체에 감탄할 줄 알게 되었다. 작년에 휴학을 하고서 집 근처에 있는 도서관을 자주 갔지만 방대한 소장량을 자랑하는 대학교 도서관이 그리웠다. 복학하자마자 개강 첫날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렸고 수요일 수업이 끝나고 도서관에 가 책을 찾기 위해 컴퓨터로 검색을 하고 있는데, 옆에 친한 동기 오빠를 만났다. 반갑게 인사한 후 오빠가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무슨 책 보냐고 물었고 난 가방에 있는 친절한 복희씨와 미술분야 도서 한권을 빌렸다고 답하며 매번 ‘대출중’으로 나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1Q84를 검색하려고 엔터를 치려는 나의 손에 오빠의 이어지는 대사가 정지신호를 보냈다. “지혜야, 소설책 이런 거 다 소용없어. 이걸 뭐 하러 보냐? 지금은 시사경제를 봐야 돼. 이런 거 보지 말고 경제책이나 빌려.” 장담컨대 그때 오빠는 내 눈이 고양이보다도 커질 수 있다는 것에 적잖이 놀랐을 것이다. 컴퓨터에서 태연하게 그 말을 하는 오빠에게 시선을 돌리자 가장 먼저 시신경을 자극한 것은 오빠 왼쪽 옆구리에 있는 경제분야 도서였다. 화보다는 놀라움이 나의 머리를 헤집었다. 3층에서 1층으로 같이 내려가는 내내 나에게 경제도서 찬양을 한 오빠보다 책 자체를 대수롭지 않게 취급한 그 태도에 머리 한구석이, 깨끗하고 투명한 물에 새까만 물이 확산되어 오염된 것 같이 아파왔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는 말을 수많은 명사들이 했음에도 그 효과는 퇴색하고 변질되어 현대인들에게 책은 어떤 목적을 위한 하나의 수단 일뿐, 그 이상의 의미부여는 헛수고처럼 여기는 당연한 태도를 오감으로 인식하게 되자 ‘현실’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존재인지, 시대의 그 양면적인 흐름이 무대의 시작을 알리는 커튼이 서서히 올라가자 관객을 향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책을 읽으면서 느끼고 생각했던 그 모든 것들에 대해 ‘순수함’이라 정의했던 것이 부정 당하자, 공들여 준비한 무대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한 순간에 무너져 내렸고 텅 빈 객석을 바라보며 나는 폐허가 된 극장의 홀로 남은 관객이 되었다. ‘책’을 좋아했던 관객들은 ‘현실’을 새로운 시대의 주역이라 극찬하며 ‘책’을 ‘현실’을 위한 단역배우로 전락시켰다. ‘현실’이 연기하는 무대에서 관객들은 점점 ‘현실’적인 사고만을 중요시하게 되고 ‘책’의 역할은 점점 희미해져만 간다.
나는 기다릴 것이다. 시대역행적이라고 비난받더라도, ‘책’의 단 한 명의 팬일지라도 그가 주연이 되는 무대를 기다릴 것이다. 그 커튼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