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lf-Inquiry Before the Job Interview
| Gary Soto
Did you sneeze?
Yes, I rid myself of the imposter inside me.
Did you iron your shirt?
Yes, I used the steam of mother’s hate.
Did you wash your hands?
Yes, I learned my hygiene from a raccoon.
I prayed on my knees, and my knees answered with pain.
I gargled. I polished my shoes until I saw who I was.
I inflated my resume employing my middle name.
I walked to my interview, early,
The sun like a ring on an electric stove.
I patted my hair when I entered the wind of a revolving door.
The guard said, For a guy like you, it’s the 19th floor.
The economy was up. Flags whipped in every city plaza
In America. This I saw for myself as I rode the elevator,
Empty because everyone had a job but me.
Did you clean your ears?
Yes, I heard my fate in the drinking fountain’s idiotic drivel.
Did you slice a banana into your daily mush?
I added a pinch of salt, two raisins to sweeten my breath.
Did you remember your pen?
I remembered my fingers when the elevator opened.
I shook hands that dripped like a dirty sea.
I found a chair and desk. My name tag said my name.
Through the glass ceiling, I saw the heavy rumps of CEOs.
Outside my window, the sun was a burning stove,
All of us pushing papers
To keep it going.
취업면접 전 자기에게 묻다 | 게리 소토
재채기는 했습니까?
네, 내 속에 있는 사기꾼은 없애 버렸습니다.
셔츠는 다렸습니까?
네, 어머니의 미움을 스팀으로 썼습니다.
손은 씻었습니까?
네, 개인위생은 너구리한테 배웠습니다.
무릎 꿇고 기도했더니 무릎이 통증으로 답했다.
목양치질을 했다. 내가 누군지 보일 때가지 구두에 광을 냈다.
중간이름을 써 이력서를 부풀렸다.
면접 장소로 일찌감치 걸어갔다.
태양은 전기스토브의 동그란 열선 같았다.
회전문의 바람 속으로 들어서며 머리카락을 토닥였다.
경비원이 말했다, 당신 같은 사람은 19층이라고.
경제는 상승세다. 미국 도시의 광장마다 깃발들이
나부꼈다. 엘리베이터를 타며 내 눈으로 목격한 것이다.
나 말고는 모두 직업이 있으니 엘리베이터는 텅 비어 있었다.
귀지는 파냈습니까?
네, 식수대에서 질질 떨어지는 멍청한 물소리에서 내 운명이 들릴 정
도로.
매일 먹는 옥수수죽에 바나나는 썰어 넣었습니까?
소금 약간과 입 냄새에 좋으라고 건포도도 두 알 넣었습니다.
펜은 챙겼습니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을 때에야 손가락이 심심할 걸 알았습니다.
악수한 사람들의 손은 더러운 바닷물 같은 땀으로 흥건했다.
의자와 탁자가 있었다. 내 이름표엔 내 이름이 있었다.
유리 천장을 통해 CEO의 육중한 엉덩이를 보았다.
창밖엔 태양이 불타는 스토브였고,
우린 모두 요식 행위로
시간을 날리고 있었다.
[작품읽기]
면접을 ‘서로 대면하여 만나봄’이란 사전적인 뜻으로만 이해하면 이 행위에
관계되는 사람들 상호간에 어떤 객관적인 평등 관계가 존재하거나, 전제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 쉽다. 얼굴을 보는 일이든 말을 나누는 일이든, 실제적인
관점에서 면접은 결코 상호성에 기초하지 않는다. 보자고 하는 사람이 있으니
얼굴을 내미는 것이 면접이다. 피 면접자가 면접자를 소환하는 경우는 드물다.
면접자는 피면접자의 암묵적인 동의하에 그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공간으로
불러낼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면접자는 피면접자의 이름, 신분, 주소, 학
력 등 숱한 정보를 갖고 있지만 피면접자는 면접자에 대해 대개 무지하다. 결
코 공정한 게임이 아니다.
면접에 도사리고 있는 이러한 불평등은 면접에서 오가는 말이 기본적으로
질문과 대답으로 극명하게 갈린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질문하는 쪽은 계속
질문만 하고 대답하는 쪽은 계속 대답만 하는 것이 면접의 규칙이다. 그래서 면
접을 당하는 것은 결코 유쾌한 경험이 아니다. 취업면접은 그 중 최악이다. 면
접자는 마음대로 물을 수 있지만 피면접자는 마음대로 대답할 수가 없다. 상대
가 나의 생존수단을 틀어쥐고 있다고 믿는 한 나의 언어는 자유로울 수가 없다.
비굴한 긴장과 자기통제가 취업면적의‘백미’다.
「취업면접 전 자기에게 묻다」의 화자에게는 오늘이 그런 경험을 해야 하는
날이다. 그는 면접 건물에 들어 서기 전 세 번, 들어선 후 세 번, 예행연습을 한
다. 그런데 그 질문과 대답들이 너무나 생뚱맞다. 면접에 대한 긴장감과 초조함
을 유머로 이완시키려는 시도인 듯하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면접자가
그런 황당한 질문을 할 리가 만무하다는 점이 의외로 중요하다. 화자가 그 회사
에 채용된다고 해도 “육중한 엉덩이”를 가진 CEO는, 자기가 뽑은 사람이 재채
기에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고, 어머니의 눈총을 다리미의 에너지로 쓰고, 개인
위생을 너구리한테 배웠고, 귀지를 파낸 다음 허접한 낙수에서 운명의 소리를
듣고, 건포도 두 알이 입냄새를 개선시킬 거라 믿고, 엉뚱한 순간에 기억력이
발동하는 개성있는 인간임을 알지 못할 것이다. 사실 알 필요도 없다. 이윤추구
가 생존윤리인 기업에서는 개성이나 관계보다 집단성과 목적이 우선한다.
과연 이 화자는 취업에 성공할 수 있을까? 시인은 독자들의 시선을 면접 직
전의 장면까지만 인도함으로써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마치 장난기가 발동하여
독자들에게 면접관 노릇을 하려는 것 같다. 답을 맞히면 ‘소토’라는 기업에서
먹고 살 수 있는 기회를 주고 틀리면 딴 시인을 알아보라는 듯이 말이다. 물론
이 시의 초점은 화자의 취업 여부에 있지 않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한 독자 나
름의 추측은 시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윤곽을 가늠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필자의 눈엔 이 구직자의 성공 가능성이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면접장소
로 나서기 전 화자가 자신에게 던지는, 유머로 포장한 첫 질문과 대답은 인간관
계에 대한 그의 윤리의식을 드러낸다. “ 재채기는 했습니까? / 네, 내 속에 있는
사기꾼은 없애 버렸습니다.” 여기서 ‘사기꾼’은 영어의 ‘imposter’를 번역한
것으로, 그냥 사기꾼이 아니라 ‘타인의 이름이나 신분을 사칭하는 사기꾼’을
뜻한다. 그렇다면 화자는 ‘내가 아닌 나를 보여주지는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
는 셈이다. (이 뼈있는 유머가 허풍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연극으로 말하자면
이것은 독백 내지 방백에 해당된다.) 이 구직자는 써도 되고 안 써도 되는 중간
이름(middle name)을 써놓고 이력서를 부풀렸다고 생각할 만큼 고지식하다.
상승세를 타고 있는 경제 속에서 자기만이 실업자인 것에 대해 그는 큰 불만이
없다. 오히려 그를 거슬리게 하는 것은 전기스토브 같이 뜨거운 태양이다. 델
것 같은 태양을 시원한 건물 안에서 쳐다 볼 수 있다는 것이 취업의 유일한 기
쁨인 것처럼.
회사 사람들의 손이 “더러운 바닷물 같은 땀으로 흥건했다”는 화자의 느낌
역시 그의 취업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떨어뜨리는 증거다. 화자의 말은 액면 그
대로 받아들이기에 비논리적이다. 시원한 건물 안에 있던 회사 사람들의 손이
아니라 전기스토브 같은 태양을 머리에 이고 면접 장소까지 걸어온 화자의 손
이 그래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자가 그렇게 느낀 이유는 둘 중 하나
일 것이다. 그가 너무 긴장하여 자신의 땀을 상대의 것으로 착각했거나, 아니면
“더러운 바닷물 같은 땀”이 더러운 이윤추구에 사로잡힌 자본주의의 더러운 욕
망의 상징으로 쓰였거나. 화자는 여전히 면접 장소에 머물며 내키지 않는 요식
적인 절차에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창밖이 “불타는 스토브”에 익을 지경이니
그렇게라도 시간을 보내는 것이 행복일지 모른다.
[작가소개]
게리 소토 (Gary Soto 1952~ )
미국의 시인. 캘리포니아 프레스노에서 멕시코 이주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많은 멕
시코 이주 노동자 가정의 아이들처럼 유년 시절 농장과 공장에서 일했다. 그 와중에 어네
스트 헤밍웨이, 존 스타인벡, 로버트 프로스트와 같은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문학적 소양
을 키웠다.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를 특별히 존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때 UC-버
클리에서 시를 가르치기도 했다. 남을 위해 봉사하는 것을 좋아하여 영어와 서반아어를
자원봉사로 가르치기도 했다. 테니스, 정원 가꾸기, 여행, 과자 굽기 등 취미가 매우 소박
하다. 그의 시는 멕시코 이주 노동자 정체성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소설가 조이스 캐롤
오츠는 그의 시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했다. “게리 소토의 시는 폴라로이드 사진에 쓴 연
애편지 또는 지나가는 차에서 순식간에 들이는 음악처럼, 재빠르고, 익살맞고, 기운 나게
하고, 가슴 아프도록 미덥다. 햇빛 조각 같은 미의 조각이며, 삶의 맥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