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분/소대용 소형 무전기 PRC-85K
1979년에 ADD에서 분/소대용 무전기 KPRC-6의 후속 모델로 미군에 의존하지 않는 손바닥 크기의 아주 작은 순수 국산 무전기 개발을 구상하게 되었다.
주파수 발생 방법도 트랜지스터 부품 회로에 채널 주파수에 맞는 수정진동자를 삽입하는 기존 방식이 아닌, IC(집적회로)를 사용하는 주파수 합성방식인 FSS(Frequency Synthesizer)가 요구되었다.
당시 KPRC-6는 우리 금성전기(GSEC)와 다른 방위산업체인 동양정밀(OPC)이 절반씩 나눠서 생산하고 있었다. 그래서 ADD는 GSEC와 OPC에게 새 무전기의 목표 규격만 제시하고 각 회사 나름대로 독자적인 무전기를 개발하도록 통제하면서 경쟁을 시켰다.
그 무렵 나는 생산부 시험실에서 송신부 반장으로 있던 고졸 병력 특례인 L을 5급에서 4급(대졸 초봉)으로 승진시켜 내 부서로 발령 내어 연구원으로 삼고 있었는데, L을 이 새 무전기 개발 담당자로 지정하여 함께 회로도를 만들어 가면서 시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FSS용 IC는 미국 모토로라 회사에서 나오는 MS-시리즈를 사용했다.
주어진 몇 달이 지나 양쪽 회사가 만든 시제품이 ADD로부터 중간평가를 받았는데, 회로는 GSEC가, 기구 제품은 OPC가 낫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런데, OPC가 GSEC의 회로를 따르지 못하겠다고 버티자, ADD는 두 회사가 여관을 잡고 함께 합숙하면서 닷새 내로 기구 및 회로의 통일과 합의를 보라고 요구했다.
우리는 합숙 사흘이 지나도록 기구 부분만 수정에 합의했고, 각사의 회로도 장점만 부각하면서 고집을 부렸다. OPC는 책임자가 부장이었는데, 자기나 나나 엔지니어의 자존심과 회사의 이미지 때문에 도저히 양보할 수는 없었다.
결국, ADD는 다시 기간을 정해주고 각자 알아서 최종 파일럿 제품을 제작하여 제출하라고 했다.
나중에 숱한 회의와 협의 끝에 OPC 케이스에 GSEC 회로가 내장된 제품으로 결정되었고 제품 명칭은 ‘PRC-85K’로 정해져, 허리에 차고 다닐 수 있는 소형 분/소대용 무전기로 개발되었으며, 제식 장비로 양산 납품되었다.
내 부서의 PRC-85K 개발 담당자였던 L은 15년쯤 뒤에 ‘LC 텍’이라는 개인회사를 차려 사장이 되었는데, 상호의 뜻을 물었더니 무선통신 고주파 공진회로에 사용되는 인덕턴스 L과 커패시턴스 C라며 웃었다.
그리고 다시 10년쯤 후에 SK텔레콤의 외주업체이던 ‘LC 텍’은 코스닥 시장에 상장되었고, L은 지금 개인 재산 100억대의 부자이다.
8. 다연장 로켓포 발사장치 BSP
국방과학연구소 ADD가 대전으로 이전하였고, 자주국방의 일원으로 4x9 배열의 36문 130mm 다연장 로켓 발사기인 K-136의 국산화가 추진되었다.
로켓탄은 한국화약, 포대는 HD, 탑재 차량은 KIA 등등하여 여러 방위산업체가 공동으로 참여했는데, 발사 장치인 ‘컨트롤 박스(Control Box) BSP’의 개발은 우리 회사에 할당되었다.
BSP는 포탄을 한 발씩 쏠 건지, 연속으로 여러 발을 쏠 것인지 등을 컨트롤하는 장비로 크지 않은 본체는 차량 외부에 부착되고 조종기만 차량 내부에 연결된다.
회로 부분은 특별히 어렵거나 복잡한 것이 아니어서 신입사원 한 명을 담당자로 지정해서 맡겼다.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수십 가닥의 전선과 장비의 연결 부위를 고무 재질로 몰딩하는 작업인데, 당시 국내의 수준이 열악하여 수십 번의 시험작업을 거쳐 아주 힘들게 성공시켰다.
1980년 어느 날, 충남 태안의 ADD 안흥 시험장에서 완성된 국산 다연장 로켓포 K-136의 시험발사가 있어 통보를 받고 참석했었다.
개발에 참여했던 방산업체 참석자들과 ADD 요원들 모두 시험장 내의 지하 콘크리트 벙커에 들어가서 작은 창틈으로 멀리 바다 위의 작은 섬을 주시하며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관계자는 혹시 로켓탄이나 차량이 폭파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당연히 벙커 속에서 관찰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섬 근처 해상에는 군함이 떠서 무전으로 시험장과 교신하는 소리가 벙커 내의 스피커에서 울려 나왔다.
처음엔 한 발이 나가는 단발 사격이 이뤄지고 목표지점에 정확히 떨어졌다는 무선 보고가 있었다. 숨죽이고 있던 참석자들이 함성을 지르고 박수로 환호했다.
이어서 두 발 연속 및 여러 발 연속 등의 시험이 차례로 이어졌고 개발은 대성공이었다.
그런데 그 며칠 후 내 부서 담당자였던 신입사원이 사표를 제출했는데, 퇴사 사유를 적는 난에 ‘상사에 대한 불만’이라고 적혀 있었다. 세상에나!
본인 얘기는 내가 너무 빡세게 일을 시켜서 힘들어 못 견디고 대학원 진학을 고려하며 그만둔다는 얘기였다.
그 사직서를 나의 부장님께 올렸을 때 호인이던 부장님이 싱긋이 웃으셨다. 부장님은 정보통신부(체신부)에서 근무하다가 우리 연구소에 부장으로 영입된 분이다.
나중에 그 친구가 독일 유명한 통신용 계측기 제조회사의 한국지사에서 잘 근무하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사회생활에서 은퇴하기 직전인 2014년에, 쉬고 있다며 내 개인회사로 찾아왔었는데, 나도 막 회사를 접기 직전이어서 함께 저녁 먹고 옛날의 얘기만 하다가 헤어졌다.
첫댓글 ㅎㅎㅎ ~ 상사에 대한 불만.
대단히 자신감 넘치는 부하였던 것 같아요.
하하, 네. 엄청나게 건방진 것 같아서 쥐어 박고 싶었는데 참았습니다.
K 대 출신인데 구레나룻 면도 자국 얼굴의 착하고 성실한 직원이었습니다.
@삼일 이재영 상사에 대한 불만
그 문구에서 거짓말을 모르는 진실성이 보여요.ㅋ ㅋㅋㅋ
@蘭亭주영숙 그러게요. 아무리 솔직해도 그렇지,
"사직서에 상사에 대한 불만이라 쓰면, 내 위에 부장, 연구소장이 결재하며 뭐라고 하겠어요? 엉? 그냥, 콱!" ㅎ
@삼일 이재영 혹 융통성이 없는?
@蘭亭주영숙 아닙니다. 처음 말씀하신 대로 자신감 넘치고 진실한 사람입니다.
대부분 떠날 때 좋은 게 좋다고 "의가사"로 적는데,
남은 동료들 생각해서 저한테 "직원들 오버로드 걸지 마세요"라고
소위 '총대 메고' 말한 거로 이해했습니다. 결재하는 윗분들도 보셨으니까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