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의 귀재」 아버지 안병태
흔히 처자식 자랑을 하면 팔불출이라고 한다.
딱히 내세울 것은 없지만 가슴 속으로 부모를 추모하고 기리는 것은 자식된 공통된 심정이다. 더구나 이미 돌아가신 분인데. 살아계신 생전에는 그냥 평범한 부모였는데 나이가 들어 갈수록 지난 과거의 기억이 더욱 선명해지니 그냥 지나가는 말처럼 하신 말씀과 행동은 자꾸만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아버지에게 여쭈어 보고 싶은 이야기들이 정말 많은데 이젠 어찌해 볼 수 없는 흘러간 세월의 강물이다.
아버지는 경북 예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자신의 유아기 어느 시점부터 네 살 즈음 까지 뭔가 늘 자신이 외로운데 그 외로운 이유를 알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아 내게는 엄마가 없구나」 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고 한다. 언뜻 생각하면 이해가 가지 않지만 이웃과 교류가 단절된 외딴 두메산골에서는 막내인 아버지와 형제들만의 가족을 간난 애기는 생활의 전부로 받아 들여 어머니란 존재를 몰랐을 수도 있겠구나 싶기도 하다. 조모는 아버지가 간난애기 때 돌아가시고 네명의 형들과 손바닥만한 밭때기를 생계수단으로 조부는 힘겹게 가정을 영위하고 있었던 일제치하 1920년즈음의 이야기이다.
아버지는 자라서 그 지방 예천소학교로 진학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고학년이 되자 번번히 해가 기울어 가는데도 아이가 귀가하지 않는 날이 잦고 보니 걱정이 된 형들이 학교 교실로 찾아가 보면 담임선생은 보이지 않고 아버지가 교단에 서서 반 급우들에게 수학을 가르치고 있었다고 한다. 수업 중에 담임선생도 번번히 막히는 수학문제를 아버지가 척척 풀어 맞추니 아예 담임은 아버지에게 수업을 맡기고 자신은 제 볼일을 보러 돌아다녔다. 이처럼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수학(산수)에 남다른 재주를 발휘하여 작은 시골마을이지만 조금씩 수학의 귀재로서 불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4학년 어느 날 아버지는 일본인 교장선생에게 면담신청을 하였다. 「교장선생님 저는 이제 더 배울 것이 없어요. 6학년으로 월반 시켜주세요」 라고 떼를 썼다. 그러자 교장선생은 맹랑하고도 기특한 아이의 말에 지금까지의 성적을 확인했더니 전과목 모두 백점이었으므로 교장의 감동과 고무적인 선처에 힘입어 4학년 꼬마가 갑자기 6학년이 되었다.
그 당시는 조선인 대부분이 참으로 살기가 힘든 시기이었다고 한다. 나라가 빼앗겼으니 무슨 경제적 여유가 있었을까. 「아버지 이웃집 영철이네집 굴뚝에 어제부터 연기가 오르지 않아요」 라고 말하면 그 집은 쌀이 떨어져 굶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삶이 너도 나도 너무 힘들었던 조부는 어느 날 일생일대 모험을 감행하였다. 조부는 막내아들 아버지 하나에 비젼을 걸고 마지막 남은 조그마한 밭을 팔아 아버지를 일본으로 유학을 보내버린 것이다. 그리고 남은 4명의 자식들은 모두 남의 집 하인으로 보내 버렸다. 그런 이유로 남은 형들(큰아버지들)은 중국등 객지를 떠돌면서 일평생 내내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모른다. 아버지는 일본 오오이타깽(大分)에 소재한 사범학교를 다니며 학생신분으로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아버지 역시 유학생활 1년도 채 되지 않아 수중에 돈이 한푼 없이 다 떨어져 버렸다. 나중에는 잘 곳이 없어 개울가에서 잠을 자기도 하였고 수업이 끝나면 거리에 나가 붓을 메고 다니며 붓을 팔며 거리를 전전하였다.
어느날 거리에서 초라한 모습으로 붓을 팔고 있는 아버지를 목격한 학교 교장선생이 자초지종을 알고 아버지를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가 먹여주고 재워주었다. 그는 틈틈이 아버지에게 일본고문과 수학을 가르쳐 주기도 하면서 보살펴 주었다. 어쨌던 그 일본인교장 덕분에 아버지는 낭인의 생활을 벗어나고 많은 안정을 찾았는데 그 일본인교장은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나라의 최현배선생 같이 그는 당대 일본 국문학의 대가이었노라고 아버지는 몇 번인가 나에게 이야기를 해 주며 그를 회상하곤 했다. 이후 아버지는 열심히 수학하고 졸업하고 교사자격증을 취득하여 국내에서 바로 교직생활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는 일제치하의 어려운 시기에 교사로서 당당히 인생의 첫발을 내 디딜수 있어 다행스러웠다고 했다. 교사생활을 하면서도 동료 일본인교사와 평생 술담배를 하지 말자고 결의하여 아버지는 일평생 건강하게 지내는 등 한 인간으로서 절제심도 강했던 것 같다.
아버지는 만년에 대구고등학교 교장. 도교육위원회 원장을 역임하였지만 그래도 일평생 가장 보람된 시기는 대구에 소재한 경북고등학교 수학교사로서의 시절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 당시의 교육분위기는 지금과 달리 서울의 경기고등학교 서울대학교에의 진학을 집착하지 않았으니 지방의 인재들은 지방소재의 학교에 만족했다. 경북고등학교 경남고등 부산고등 광주일고 제주일고 오현고 대전고등 모두 기라성 같은 인재가 모인 지방의 명문고들이었다. 그 당시 지방고등학교 중에는 서울대학에 200명 이상이 합격하기도 하였으니 지방명문고의 실력과 프라이드는 대단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이들 수재들과 정열적으로 학문에 꽃을 피웠고 교육 그 자체가 인생의 최고 기쁨이었다. 아버지는 수학 중에서 특히 기하학에 특출한 재능을 발휘하였다. 이웃학교 수학선생들도 문제가 막히면 아버지에게 달려왔다. 그 당시 경북지역에서는 「수학문제가 막히면 경북고등학교 안병태선생을 찾아라」라고 할 정도로 이름이 높았다. 문제가 풀리지 않아 골치를 썩이는 문제도 아버지는 참 쉽게 산뜻하게 풀었으니 아버지는 수학에 만은 타고난 재능이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어릴 때부터 보아온 아버지의 기억은 이른 새벽부터 아버지는 늘 자신의 책상에 반듯하게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버지는 늘 명랑했고 활발했고 남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밤에 손님(거의가 선생님)이 찾아오기라도 하면 아버지 방에서는 늘 웃음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를 대단하다고 생각한 기억이 없다. 아버지는 나에게 그저 평범한 부모일 뿐이었다. 나의 대학 1년시절 아버지를 처음으로 인식한 것은 아버지가 대구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할 때 심부름차 처음으로 아버지를 찾아 갔을 때 흰 와이셔츠 차림에 넥타이를 단정하게 메고 교장석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아버지를 보는 순간 처음으로 아버지가 평소의 모습과 달리 참 보기 좋았다는 느낌을 가졌다. 부모의 모습이 보기 좋을 때 자식의 가슴에 새겨지는 영향은 참으로 클 터인데 나는 왜 진작 일찍 그 모습을 보지 못했을까.
아버지가 서울로 출장차 상경하면 늘 찾아와 곁에서 동행해 주는 이가 있으니 그가 서울대학교 헌법학의 대가 김철수교수이었다. 물론 그는 경북고등학교시절 아버지의 제자이었다는 인연이 있지만 제자들 중에서도 아버지는 그와 가장 가깝게 지냈던 것 같다. 아버지가 운니동 운당여관에서 묵을 때 처음으로 나도 김철수교수를 뵌 적이 있다. 그는 좀 퉁퉁한 모습에 검은 안경을 끼고 잠바차림이었으니 교수차림에 좀 어울리지 않을 만큼 소탈하다는 기억이 남아있다. 그 분도 지금은 타계하였지만 일평생 아버지를 사랑하고 아껴주신데 대한 감사의 마음이 절실하다.
가장 가슴 아픈 일은 교사의 아들로서 학교성적으로 아버지를 한번도 기쁘게 해 드리지 못한 점이다. 자신은 그 지방의 수재들과 수학문제를 풀고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는 밤새워 토론하면서 학문의 꽃을 피웠는데 정작 집에 돌아와 학교에서 만난 수재들과 자신의 아들을 비교하였을 때 얼마나 절망하고 낙심하였을까. 부모에게는 자식이 살아가는 희망이요 버팀목인데.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
내가 만들어 낸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인지 모르지만 「역경을 뛰어넘은 수재」들과 자꾸만 비교가 되기 때문이다. 지금도 일본어강의를 한다고 흑판앞에 서면 자꾸만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 나이에 이제는 아무런 소용도 없는 공부라는 것을 밤새워 하는 까닭은 모두 아버지에게 대한 그리움 때문이다.
「아버지. 아버지는 불행하게 된 형님들을 그 분들이 돌아가실 때까지 끝까지 뒷바라지를 하시더군요. 저의 대학시절 저의 하숙방에 찾아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伊豆の踊り子』를 저에게 가르쳐 주셨던 그날은 저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이었습니다」
[저서]
1. 중학수학1(연학사. 1965)
2.日本語の接辞に関する研究(啓明大学校 大学院.1984)
3. 일본문법(학문사. 1986)
4. 빠르고 알기 쉬운 속셈(삼한출판. 1989)
5. 생활수학: 새로운 속셈비법(삼한. 1989)
6. 교무수첩(겨울나무. 1998)
7. 逆風に飛び立った子ら-韓国老教師の回想
(スリ-エ-ネットワ-ク.2000)
8. 교육부문 국민훈장(목련장 1981) 수상
첫댓글
훌륭한 부모님을 두셨습니다.
어찌 부모 소중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만은,
가끔 부모님과 잘 지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안계신 뒤 후회하지 말고 잘 지내시라고...
감사합니다. 아직 어머님이 살아계시니 얼마나
좋으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