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이 모든 것, 머리가 좋다는 등으로
키워진 사람들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바라는 추구심과 생활 노력의 일념력(一念力)은,
그러한 지식과는 관계없이,
우리 영도자(靈道者)의 지도령(指導靈)들에 의해 그 길은 열려 간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도,
당시의 유태교나 다른 종교, 학자, 정치가 등의 박해 속에서,
많은 동지들과 신리의 전도에, 정혼(精魂)을 기울인 것이다.
이 제자 중에는, 과거세에 인도 시대의 석가의 제자였던 생명도 있었다.
가섭의 셋째 동생으로 쿠난다인 바울로가 그것이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리(神理)를, 멀리 로마까지 포교하여 갔다.
신리를 설(說)하는 빛의 천사들은,
한 장소에, 집중적으로 육체를 갖고 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원인은, 저 세상, 실재계에서, 완전하게 만든 시나리오로써,
우리가 인간의 현실 생활에 몰두하고 있기 때문에,
깨달을 수 없었던 것뿐이다.
우리 영도자(靈道者)가 신리(神理)의 강연회를 열려고 할 때,
몰려드는 사람들은 관계가 있는 친구, 지인의 관계로부터, 자연히 집합하여 오듯이,
유(類)는 유(類)를 부른다는 법칙은, 이러한 때에도 살아있다.
인연의 실, 우리가 인간 사이에서 그것을 자각했다면,
결코 자기 보존이나, 자아아욕으로만 내달리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덧붙여, 우리의 현상계와 실재계의 그룹은,
대부분 아가샤계로써, 예수. 모세. 석가는,
이 그룹의 상상단계 빛의 대지도령이다.
그리고 다른 천체에도, 다른 그룹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광물도 동물도 식물도,
같은 지역에 집단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무슨 증거일까?
만상 만물,
자연의 법칙을 무시하여,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유(類)는 유(類)를 부르고, 친구는 친구를 부른다는 법칙은,
우리 인류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만상 만물은 이 구조에 따르고 있다.
육체적인 물질계에서도,
민족이라고 하는 유(類)가 세계의 인류를 구성하고 있듯이,
인간이 다른 동물과 동거하고 있다고 하는 것은 거의 없다.
새는 새의, 또 개미 등도 동종의 집단에 의해 생활을 영위하고,
각각의 특징에 응한 환경이 신불에게서 주어져,
자연 속에서 자손, 종족의 보존이 이루어져 있다.
그 외의 수많은 생물도, 이 지구상에서 모두, 유(類)는 유(類)를 부르는
이러한 법칙에 따라 보존되고 있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서,
다른 생물의 지배자로서 사물을 생각하고, 만들어내고,
이성을 갖고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에 따라서는, 약육강식의 동물적인 성격도 갖고 있다.
동물의 대다수는, 자신의 배가 만족하고 있으면,
다른 동물에게 공격을 가하는 것은 적다.
그것과 비교하여 인간은, 생활에 만족하여도,
또한 사욕을 버릴 수 없어, 타인을 희생시켜도 자신만을 생각하려고 한다.
마음이 가난한 것이다. 천한 것이다.
인간은, 이 세상을 떠날 때, 아무것도 저 세상에 갖고 갈 수 없는 것이다.
자신에게 만족할 줄 모르는 인간은,
동물 이하라는 것을 알아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마음의 위대함을 깨닫는 것에 의해,
인류는 모두 형제라는 것을 알 수 있고,
육체는 인생 항로의 타는 배에 지나지 않는다고 안다.
그러한 혼을 닦는 노력에 의해, 인간은 종족 차별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우주적 국가, 지구인으로서의 품성을 갖추어 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육체의 지배자인 우리의 마음의 세계에서는,
같은 그룹에 의해, 대다수가 전생 윤회를 하고 있다.
결국 동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그 시대의 동급생인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육체주(肉體舟)도, 또한 혼의 그룹도,
유(類)는 유(類)를 부르고 친구는 친구를 부르는 법칙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과학에 있어서도, 이것과 비슷한 법칙에 따르고 있는 일례를 들어보자.
전자(電子)의 경우인데,
M형 반도체의 봉의 한쪽을 발열시키는 것에 의해 온도의 경사가 생긴다.
그 때문에 전도하는 전자는,
저온 측에 마이너스가 모이고
고온 측에는 전도의 전자를 저온 측에 보낸 후,
모체 원소나 첨가 불순물의 이온에 의한 플러스의 전하(電荷)가 나타난다.
즉, 고온에서 저온 측으로 향하는 전해(電解)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고온 측에서 저온 측에로,
전자의 흐름을 멈추고 평형을 유지하고 있다.
A와 B 사이에 전위차(電位差)가 생겨,
온도의 차가 작은 범위의 경우는, 기(起)전력에 비례한다.
이처럼, 온도의 변화와 기전력(起電力)의 관계가 보이고 있고,
극미의 세계, 전자도, 유(類)는 유(類)를 부르는 법칙에 따라서,
(+)와 (-)에 의해 생기는 기전력(起電力)을 생산해 내는 것을 알았다고 생각한다.
또 태양전지도, 같은 관계에서,
빛의 에너지와 열에너지를 이용하여,
(-)의 대전부(帶電部)와 (+)의 대전부로 나뉘어, 동류가 모여지고 있다.
태양의 중심은, 2만 5천도의 온도로,
표면온도는 6천 도로 간주되고 있다.
태양에서 지구에 보내지는 에너지는,
이 파장 별 복사열을 더해 구해진다.
이것을 태양 상수라고 말한다. 1㎠ 당 1분간에,
200칼로리ㅡ (140m Watt / ㎠ )이다.
단, 지상에서의 태양의 빛 에너지는,
대기 속을 통과할 때에,
대기 중의 탄산가스 CO, 먼지, 수증기, 물방울 등으로 산란하거나
흡수를 받아 감소되어,
태양이 바로 위에 있을 때에도, 100mW/cm2 정도가 된다.
이처럼 열과 빛의 에너지를 이용하여, 태양전지가 만들어진 것이다.
온도와 전자라고 하는 것의 움직임도,
(-)와 (+)도, 유(類)는 유(類)를 부르는 법칙에 따르고 있다.
구름과 같이 (+)의 전하가 집중되어 있는 곳에는,
(-)의 전하는 없다. 온도의 차에 의해,
(-)의 전하는, 자신의 환경을 만들고 있다.
벼락도 전하를 띠고 있는 구름이, 바람이나 그 대류에 의해,
(+). (-)의 에너지의 충돌로 발생하고 있다.
이처럼 대자연계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를 가르쳐 주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신리이기 때문에 그렇게 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사회의 자본주의 집단, 혹은 마르크스주의 집단 등도,
이러한 대자연의 법칙에 따라, 사상적 구분의 존재로 되어 있다.
하지만 주의, 주장은 인간 자신이 만든 것이다.
우리는, 자연계의 현상 속에 (+)나 (-)가 있어도,
부조화한 진동이나 외부적인 힘이 더해지지 않으면,
항상 중화(中和)를 유지하여, 조화를 이룬 사회를,
스스로의 힘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할 터이다.
첫댓글 아리송 하지만 잘 읽고 담압ㅎ려 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