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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이 시리즈는 3편으로 만들어진 트릴로지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이미 흥행 보증수표가 된 브랜드의 유혹을 떨쳐 버릴 수 없었던 제작사의 결정으로 2011년 제 4탄 ‘낯선 조류’가 개봉되기도 했습니다.
오늘 소개하는 ‘망자의 함(dead man's chest)’은 시리즈의 제 2탄으로 3편까지 감독을 모두 맡았던 고어 버빈스키 감독의 2006년 작품입니다(사진 1).
이 영화에서는 전편에 나온 주요 등장인물에다 데비 존스(빌 나이 분)라는 강력한 이미지의 인물이 추가되면서 그 재미를 한층 더해 주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기본 줄거리는 ‘망자의 함’으로 불리는 함과 이 상자를 열 수 있는 열쇠를 누가 먼저 차지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함에는 당시 바다를 지배하고 있는 괴물 선장 데비 존스의 심장이 들어 있는데, 이를 차지하면 데비 존스를 꼼짝 못하게 만들 수 있고 이는 곧 그를 통해 바다를 지배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데비 존스가 몰래 숨겨 놓은 이 함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잭 스패로우 선장(조니 뎁 분)이 가지고 있는 나침반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변수는 바로 이 상자를 열 수 있는 열쇠의 존재입니다. 열쇠 역시 데비 존스가 몰래 숨겨 놓았는데 이것만은 그 이외에는 장소를 알 방법이 없습니다.
영화는 전편에서 서로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 윌 터너 (올랜도 볼룸 분)와 총독의 딸 엘리자베스(키이라 나이틀리 분)가 결혼식을 앞두고 있는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그때 전편에서 일개 해군 장교였던 커틀러 버켓(톰 홀랜더 분)이 크게 출세를 하여 작위를 받은 버켓경의 신분으로 영국 동인도회사의 책임자가 되면서 군대를 이끌고 나타납니다.
그는 윌과 엘리자베스에게 과거 해적 선장인 잭 스패로우의 탈출을 도와준 죄로 사형에 처한다는 영국 본국의 체포 영장을 보여 주며 이들을 강제로 감옥에 가둡니다. 그리고는 버켓은 윌에게 잭 스패로우를 찾아 가서 그가 가지고 다니는 나침반을 자신에게 갖다 주면 둘을 사면시켜 줄 것이라고 회유합니다.
윌로서는 베켓의 약속을 그대로 믿기 어려웠지만 엘리자베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잭을 찾아 나서는 길 이외의 다른 방법은 없었습니다. 그가 잭을 찾기 위해 토투가(해적들의 섬)로 향한 후, 엘리자베스 역시 총독인 아버지(조나단 프라이스 분)의 도움으로 간신히 감옥에서 탈출하게 되나 대신 아버지는 체포되고 맙니다.
한편 잭은 데비 존스와 맺었던 약속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갖 힘을 쓰고 있었습니다. 잭은 과거에 데비 존스에게 그를 해적선 블랙펄의 선장으로 만들어 주면 그 후 100년 동안 데비 존스가 선장으로 있는 플라잉 더치맨에서 노예선원으로 일할 것을 약속했던 것입니다. 잭은 궁리 끝에 어떻게 해서든지 망자의 함과 열쇠를 둘 다 손에 넣어 데비 존스를 협박할 무기로 삼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그로서는 함을 찾을 수 있는 나침반은 가지고 있었지만 열쇠를 찾는 일만은 참으로 난망한 일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잭은 어느 날, 노예 선원으로 즉시 일하러 오지 않으면 데비 존스의 괴물 부하(크라켄)가 그를 응징할 것이라는 협박을 듣게 됩니다. 문어와 비슷한 형상을 하고 있는 초대형 괴물 크라켄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는 잭은 공포에 질려, 즉시 부하들에게 육지로 향할 것을 명령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찾아간 어떤 섬에서 잭과 그의 부하들은 그곳 식인종 원주민들에게 모두 잡히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그 사이 윌은 잭을 찾아 수소문 끝에 한 섬에서 블랙펄을 보았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곳을 찾아 간 윌은 천신만고 끝에 사로잡혔던 잭과 그의 부하들과 함께 그 섬에서 블랙펄을 타고 빠져 나오는데 성공합니다. 배에서 숨을 돌린 윌은 잭에게 엘리자베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그의 나침반을 줄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자 잭은 나침반을 줄 테니 그 대신 어떤 귀중한 열쇠를 찾아 줄 것을 윌에게 부탁합니다.
윌은 어쩔 수 없이 열쇠를 찾기 위해 잭과 함께 먼저 여주술사 티아 델마(나오미 해리스 분)를 찾아가서 플라잉 더치맨의 위치를 파악합니다. 그러나 위험을 감수하고 플라잉 더치맨에 접근한 윌은 오히려 데비 존스의 부하들에게 사로잡히는 신세가 되고 맙니다. 그리고 마침내 나타난 데비 존스의 모습은 문어의 얼굴과. 게의 팔다리를 한 참으로 기괴한 형상의 사람이었습니다(사진 2). 윌은 데비 존스에게 열쇠에 대한 이야기는 숨기고 단지 잭 대신 왔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 말을 듣고 데비 존스는 블랙펄로 잭을 찾아 갑니다. 그리고는 잭에게 노예 선원으로 정 오기 싫다면 사흘 이내에 윌 이외에 99명의 목숨을 더 가져 오라고 말합니다. 데비 존스의 요구에 응하기 위해 잭은 온갖 잡동사니 인간들이 들끓고 있는 토투가 섬으로 가서 선원 모집을 핑계로 희생양들을 고릅니다. 그리고 거기서 윌을 찾아 그곳까지 온 엘리자베스를 만납니다. 여기에다 1편에서 해군 지휘관으로 나왔던 제임스 노링턴 제독(잭 데이븐포트 분)이 직위를 잃은 비참한 상태에서 등장하여 블랙펄의 선원으로 합류하게 됩니다.
잭은 이들과 함께 마침내 나침반을 이용하여 망자의 함이 있는 섬으로 향합니다.
한편 플라잉 더치맨에 사로잡힌 윌은 그 배에서 노예선원으로 일하고 있는 아버지를 극적으로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도움으로 데비 존스가 몸 안에 지니고 있던 망자의 함 열쇠를 몰래 빼 돌려 배에서 탈출합니다. 그러나 우연히 윌을 구출하게 된 한 상선은 크라겐의 무서운 공격을 받고 침몰하고 맙니다. 이 와중에서 윌 만은 간신히 다시 플라잉 더치맨에 숨어들어 살아남게 됩니다. 그리고 데비 존스는 잭 스패로우의 의도를 눈치 채고 망자의 함을 지키기 위해 함을 숨겨 둔 섬으로 배를 급하게 향하게 합니다. 이 덕분에 윌도 자연스럽게 훔친 열쇠를 지닌 채 그 섬으로 갈 수 있게 됩니다.
결국 문제의 섬에서 합류하게 된 주요 등장인물들은 데비 존슨의 심장을 둘러싸고 일대 활극을 벌이게 됩니다. 잭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윌은 존스의 심장을 찔러 죽여 아버지를 살리려고, 노링턴은 그것을 버켓에게 가져다주고 자신의 직위를 도로 되찾기 위해 서로 결투를 시작합니다(사진 3). 여기에 엘리자베스, 잭의 두 부하, 그리고 뒤따라온 데비 존스의 부하까지 심장 쟁탈전에 합류하면서 싸움은 더욱 복잡하게 전개됩니다. 그리고 결국 노링턴이 최후로 데비 존스의 심장을 확보하고 나중에 버켓에게 자신의 복권을 조건으로 갖다 바치게 됩니다.
자신이 데비 존스의 심장을 확보하였다고 착각한 잭은 결국 자신이 속힌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블랙펄은 플라잉 더치맨의 함포 사격과 크라겐의 잔인한 공격을 받게 됩니다. 결국 잭은 남은 인원들과 블랙펄을 버리고 보트로 탈출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런데 잭이 함께 도망가면 크라겐이 끝까지 추격할 것을 우려한 엘리자베스는 잭을 속여 그의 손을 배 기둥에 손을 묶어버립니다. 그리고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잭이 자기들을 위해서 스스로 용감하게 배에 남기로 하였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잭은 결국 무시무시한 크라켄의 입속으로 삼켜져 블랙펄과 운명을 함께 하고 맙니다.
주술사 티아 델마의 거처로 돌아 온 일행은 블랙펄과 잭을 잃은데 대해 침통해 합니다. 티아 델마는 이런 그들에게 유령이 살고 있는 ‘세상의 끝’까지 갈 용기가 있으면 잭과 블랙펄을 다시 이 세상에 오게 할 방법이 있다고 말합니다. 못내 죄책감에 빠져 있던 엘리자베스를 포함하여 윌과 모든 일행이 이 모험에 동참하기로 찬성합니다.
그러자 그들을 이끌고 새로운 모험에 나설 선장으로 1편에서 블랙펄의 선장으로 나왔던 바르보사가 위층에서 내려오면서 영화는 끝을 맺게 됩니다.
이 영화에서는 제목대로 데비 존스의 심장이 들어 있는 ‘망자의 함’이 줄거리의 핵심을 이루고 있습니다(사진 4). 물론 심장을 떼어 놓은 사람이 살아서 움직인다는 설정 자체는 그야말로 판타지 영화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이지만, 상자 안에서 여전히 박동을 하고 있는 심장에 대해서는 약간의 의학적 추가 설명이 필요합니다. 심장이 우리 몸 밖에서 스스로 박동한다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일까요? 정확한 정답은 ‘예스 앤드 노’입니다. 먼저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심장은 골격근과 비슷한 형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우리 의사와는 관계없이 자동적으로 지치지 않고 수축·이완을 반복하는 특수한 근육입니다. 이를 통해 심장은 우리 몸 구석구석에 피를 보내어 생명을 유지하게 만드는 핵심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이런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심장 자신도 스스로 피의 공급을 받아야 합니다. 심장이 이렇게 스스로를 위해 피를 보내는 혈관 통로를 관상동맥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심장이 일단 절제되면 관상동맥의 피 공급이 중단되면서 심장은 즉시 박동을 멈추게 됩니다. 심장이식에서 심장 공여자의 심장이 수혜자의 가슴에 이식되기 전에 잠깐 동안 살아 있을 수 있다는 것도, 그 동안 심장세포가 살아 있다는 것이지 심장이 박동하고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런데 문제는 몸 밖으로 절제 되어 나온 심장이 박동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실제 이런 장면들은 인터넷 동영상으로도 쉽게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도대체 어찌 된 일일까요? 흔히 랑겐도르프 심장(Langendorff heart)이라고 불리는 의학적 실험 목적의 심장이 바로 그 정체입니다(사진 5).
19세기 말부터 생리의학자들은 심장에 관련된 각종 생리 현상을 실험실 수준에서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적출된 심장이 일정 기간 박동 상태를 유지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노력했습니다. 이중에서 독일의 생리의학자 랑겐도르프(Oskar Langendorff; 1853-1909)가 포유류의 심장을 이용한 박동 체외심장 연구에 결정적 공헌을 함으로서 이 장치에 오늘날까지 그의 이름이 붙여진 것입니다. 당시 랑겐도르프는 주로 고양이 심장을 실험에 사용하였는데 그밖에 개나 토끼의 심장도 이용했습니다.
그러나 랑겐도르프 심장이 영화에서의 데비 존스 심장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심장의 박동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앞서 말한 관상동맥에 산소를 포함한 특수 영양액을 인위적으로 공급해 준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해서도 영화에서처럼 오랜 기간 몸 밖에서 심장을 살리는 것은 불가능한 것은 물론입니다.
요약하자면 적출된 심장이 몸 밖에서 여전히 박동을 유지한다는 점은 같지만 ‘데비 존슨의 심장’이 순수 판타지라면 ‘랑겐도르프의 심장’은 엄연한 과학이라는 것입니다. 굳이 데비 존슨 심장의 장점을 꼽자면, 일시적인 랑겐도르프 심장에 비해 영원히 박동할 수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단 영화에서처럼 도난을 당하지만 않으면 말입니다.^^
출처 : 서울대학교병원 흉부외과 김원곤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