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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꿈은 일어나 날개를 달고]
현장 사진과 에세이가 주는 감동 플러스
김용재의 시로 읽는 대전 / 기획출판 오름(2010.11.05) / 값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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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문산 사랑
김용재
동춘당 선생은 봉황새가 춤추는 모습이라 하여
보문산을 봉무산(鳳舞山) 또는 봉산성이라 했다
조선시대 큰 학자 남분봉 선생은
봉소루(鳳巢樓) 이름짓고 예서 글 닦으셨다
전설은 하나같이 보물 묻힌 보물산이라 했다
그러나 젊은 여인이 머리 풀고 통곡하는 모습
또는 여인이 나체로 누워있는 모습이라 하여
우암 선생은 부채로 눈 앞 가리고 이곳 지나셨다
그래도 저래도 오늘은 대전 제일의 자연공원,
열한 개 동(洞) 거느리고 있으면서
등산길 많고 약수터 많고 절도 적지 않고
시루봉 정상에 서면 시가지 한 눈에 보이고
산성과 기념물, 기념탑, 전적비, 어린이 헌장,
시민헌장, 시비, 학덕비,자연보호비……
두루두루 모인 뜻 알게 된다
그래, 산 뿌리 산 길 밟다 보면
하루가 짧다 산 빛 문지르며 가슴 열리고
일어서는 산울림 하늘의 길상(吉祥)
한밭벌 달려서 가깝고 먼 소리
우뚝 치솟는 그렇게 사랑을 느낀다.
대전일보 2008.10.23
휴식 같은 산이 있어 우리는 늘 행복하다
보문산은 대전의 남쪽 중구의 중심부에 위치한 대전의 대표적인 산이며 시민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휴식처이다. 규모가 크고 그래서 공공의 투자도 많이 한 이 산은 특히 녹음공원이나 자연공원으로 이름이 높다.
보문정(寶文亭)이 있는 정상 시루봉 길을 비롯 10여 개의 등산길과 20여 개의 약수터가 있어 많은 사람이 즐겨 찾고 있으며 보문산성과 보문사지, 야외음악당, 전망대, 청년광장, 사정공원 등의 시설이 자연 속에 개방되어 있다. 시루봉이나 성 안에 있는 장대루에 오르면 광활한 시가지가 활력으로 다가선다.
여기 <보문산 사랑>은 보문산을 서술한 산문시이다. 산 뿌리 산 길 밟으며 복되고 운 좋은 기분 치솟는 그런 사랑의 느낌을 담는다면 보문산은 언제나 우리 곁에 연인으로 서 있을 것이다. 대전일보 2008.10.23. ▩
계족산 올라 보아라
김용재
계족산 올라 보아라
일상을 헤집고 꼭대기 올라 보아라
옷 벗은 노을 가득 안고
울렁울렁 대청호 물빛
순정이듯 숲 사이로 밀려오는 것
보고 또 살 속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계족산 올라 보아라
일상을 헤집고 꼭대기 올라 보아라
사랑 아직 검붉은 사직(社稷)
산성과 고분군, 봉화터 절터에
아득한 황홀의 목숨 살아나는 것
읽고 또 가슴에 새길 수 있을 것이다
계족산 올라 보아라
일상을 헤집고 꼭대기 올라 보아라
시간의 화살에 찍혀 무너진
노심초사 피어나는 싱그런 자유와 평화
다가서서 손에 쥘 수 있을 것이다
대전일보 2008.10.30
계족 산성 굽이마다 백제 숨결 대청호 물빛 어울림 참 좋구나
계족산(鷄足山)은 대전의 대덕구와 동구에 걸쳐 있는 높이 420m의 산이며 모양이 닭다리 같다 하여 우리말 그대로 닭다리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각종 체육시설과 등산로가 훌륭하게 구비되어 있고 일단 꼭대기에 올라가면 산디마을 · 비래사 · 봉황정 · 장동산림욕장 등이 방향표지판에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곳이 실제의 계족산성이다.
계족산성은 정상부에 테를 두르듯 돌을 쌓아 만든 산성으로 성 둘레가 1,037m이며 이 고장 최대의 산성으로 알려져 있다. 성내 시설로는 남문터 부근에 봉화대(烽火臺), 동벽쪽 낮은 지역에서는 우물과 저수지가 각각 확인되었고, 그 외에 장수의 지휘소였던 장대지(將臺址)를 포함하여 10여 개의 건물터가 발견되었다.
이 산에 자주 가건만 꼭대기에 오른 것은 오직 한 번, 그러나 발가벗은 노을과 대청호 물빛의 어울림, 산성에서 떠올리는 옛 조국 백제의 아득한 황홀의 목숨, 그리고 손에 쥐고 느끼는 싱그런 자유와 평화…….
이것이 오늘 문자로 알리는 졸시 <계족산을 올라 보아라>이다.
쓰는 고통만큼 느끼는 기쁨이 있는 것인가 또 자문해 본다. 대전일보 2008.10.30. ▩
남간정사
김용재
밤낮없이 하늘 열려 있었다
하늘 아래 어느 세상이거나
정신 하나 꼿꼿하고
의지 하나 참으로 대범한
참스승, 나라의 큰 선비
예서 오래 슬기 닦았다
서걱대는 역사의 전면에서
차가운 한 시대 이끌었고
때로는 초야에 칩거하면서
사색의 글로 삶의 자양분 공급하였다
그렇게 뜨거운 마음
그렇게 장대한 여유
배움터 남간정사 기둥 세웠다
이 건물 대청 밑으로
샘물 흘러 연못에 간다
가슴 질러 뜻에 닿는
실팍한 이승의 삶 그리며
연못에 눈빛 담근다
햇살 한 겹 숨결 찾아서.
대전일보 2008.7.10
햇살 한 겹의 숨결 같은 정신
우암 송시열(1607-1689)선생은 조선후기 문신이며 도학가이며 정치가다. 노론의 영수로 이조판서·우의정·좌의정 등을 지내며 일생을 주자학 연구에 몰두하였고 기호학파의 주류를 이루었다. 28세부터 82세까지 50년간에 걸쳐 소명(召命)과 임명을 받은 것이 무려 109회이고 이에 응한 것은 26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888책으로 된 『조선왕조실록』에 한 사람의 이름이 3,000번 이상 나오는 것은 우암 한사람뿐이라고 한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나라의 대소길흉사에 우암이 관여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우암의 위치가 얼마나 중요했나를 파악할 수 있다.
우암사적공원은 선생의 글과 일대기를 모아놓은 『송자대전(宋子大全)』의 목판과 남간정사를 비롯 서원건물 8동과 유물전시관 등 주변의 조경과 더불어 대전의 명소로 꼽히고 있다. 특히 남간정사(南澗精舍)는 우암선생이 학문을 연구하며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으로, 뒷산 샘으로부터 내려오는 물이 건물의 대청밑을 통해 연못으로 흘러가도록 하였는데 이는 우리나라 건축조경의 백미로 일컬어진다. 남간은 양지에 흐르는 개울이란 뜻으로 주자(朱子)의 시 운곡남간(雲谷南澗)에서 따온 이름이라 한다.
전통윤리나 역사의 참교육, 그리고 세상 다스리는 지혜라고 할까, 가슴 질러 그 뜻에 닿는 이승의 튼튼한 삶을 꿈꾸며 햇살 한겹의 숨결 같은 선생의 정신, 남간정사에서 또 찾아본다. 대전일보 2008.7.10. ▩
풀잎에 이름 놓고
김용재
우리글 효심소설 『구운몽』아시는가
인현왕후, 장희빈,『사씨남정기』도 아시는가
대전시 전민동 명문거족 선비마을
서포선생 정려각, 문학비는 보셨는가
천둥소리 우르르 떨친, 그렇지요 걸작
태산준령 선구의 함성, 그렇지요 자랑
풀잎에 이름 놓고, 이곳 잠시 다녀들 가시게
역사의 달빛 넘어 가슴도 한번 열어보시게.
대전일보 2008.8.21
「빛의 발자국」한국시문학문인회,2009
허망한 삶의 중압 무너뜨리다
유성구 전민동 허주촌(虛舟村) 선비마을엔 대전시 문화재자료 제7호인 김반과 김익겸의 묘가 왕릉처럼 유별나게 드러난다. 허주 김반(金槃:1580-1640)은 예학의 비조 사계(沙溪)선생의 아들이며 인조 때 문신으로 대사헌·이조참판 등 여러 관직을 거쳤고 죽은 후 영의정 벼슬이 내려졌다. 김반의 아들 익겸(益兼:1624-1636)은 인조 13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벼슬길에 올랐으나 다음해 정축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한 충신이며 죽은 후 역시 영의정 벼슬이 내려졌다.
서포 김만중(西浦 金萬重:1637-1692)은 사계의 증손, 익겸의 유복자로 숙종 때 문신이며 선구적 소설가로 걸출한 이름을 남겼고, 이곳 선영(先塋)주변에 전국의 선비들이 모인 서포기념사업추진위원회에서 조선 숙종 32년에 내린 정려의 집(旌閭閣)을 짓고 조각석상의 영정을 모셨다. 그 앞에는 좌측으로「문효공서포김선생휘만중효행숭모비」가 서 있고 우측으로「서포김만중 선생 문학비」가 서 있다.
서포선생은 정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경기 암행어사를 거쳐 동부승지, 예조참의, 공조판서, 홍문관대제학을 역임하였고 한문소설을 비판하며 참된 우리 문학을 주장하는 국제적 걸작의 국문 소설을 썼다. 『구운몽』은 민씨의 폐비설을 반대하다가 남해로 귀양가 있을 때 지은 소설로 어머니의 외로움을 달래드리기 위한 효심이 바탕이 되었고, 인간의 모든 부귀영화와 공명이 일장춘몽임을 제시하고 있다. 『사씨남정기』는 숙종이 계비인 인현왕후를 퇴출하고 궁녀 장희빈을 왕비로 맞아들인 데 대해 왕의 마음을 뉘우치레 하려고 지은 것이라 알려져 있다. 일부다처제에서의 사랑 싸움, 권선징악 등의 주제의식이 융합되어 있다 할 것이다. 그 외에도『서포만필』『서포집』『고시선』등 문학적 공적이 크고 높다.
서포선생을 추모하며 허망한 삶의 중압 무너뜨리고 역사의 가슴도 문학의 가슴도 나의 가슴도 열어보자는 생각이 <풀잎에 이름 놓고>를 아우르는 말이 될 것이다. 대전일보 2008.8.21.▩
고우나 고운 핏덩이의 사랑
김용재
저 새벽 별빛 큰 줄기와
눈빛 모두고
방방곡곡 겨레의 가슴마다
나라 얼 심기
참으로 쓰리고 아련한 나날이었네
콩죽이나 나물죽으로 연명하며
붉고 진한 역사의 숨결
덥썩 움켜잡고
닐니리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무너지는 마음 세우고 또 세우곤 했네
망명의 땅 청도에서
그리고 상해의 북경에서
쟁취하는 독립의 정신 깃발로 높이고
나와 나 아닌 자, 투쟁의 역사를 익히고
‘고우나 고운 핏덩이’의 사랑 꽃피우고
그 사랑 의무와 보람으로
뜨겁게 불을 밝혔네
그러나 차가운 철창
한 많은 인생의 막은 내리고
흘러간 세월 멍멍한 우리들의 땅에서
선생의 삼간 초가집 우러르며
혼불찾기, 우린 머물러 있었네
<중도포커스>1996.9월호
김용재 시집「머물러 있던 시간의 비상(飛翔)」,2002
대전일보2008.8.14
간절한 조국 독립, 울렁이던 외침
나는 네 사랑/ 너는 내 사랑/ 두 사랑 사이 칼로써 베면/ 고우나 고운 핏덩이가/ 줄줄줄 흘러 내려오리니/ 한 주먹 덥석 그 피를 쥐어/ 한 나라 땅에 고루 뿌리니/ 떨어지는 곳마다 꽃이 피어서/ 봄맞이 하리.
단재 신채호(1880-1936)선생의 대표시 <한나라 생각>의 전문이다. 1910년 4월 중국으로 망명한 수 상해에서 쓴 이 시는 조국과 민족에 대한 애정을 피 뿌리듯 뜨겁게 보여주며 꽃피는 독립의 봄맞이를 염원하는 간절함이 배어 있다.
<고우나 고운 핏덩이의 사랑>이란 제목은 단재선생 싯구에서 인용했으며 광복 50돌 기념 독립지사 유적 순례시로 1995년에 이미 발표한 작품이고 나의 시집『머물렀던 시간의 비상』(2002)에 수록되어 있다.
선생은 온 몸으로 민족을 위해 헌신한 독립유공자이자 진보적 사회혁명가였고 선각적인 언론인이며 사학자였으며 문필가였다. 1928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중국 여순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1936년 2월 21일 57세의 나이에 옥사하였다. 중구 어남동 도리미 마을에 생가가 복원되어 있고 대전광역시에서 건립한「단재신채호선생상」과 고령신씨 대종회에서 건립한「단재신채호선생유허비」가 선생의 정신을 전하고 있다. 대전일보 2008.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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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의 말
대전이 나에게 준 詩
나는 대전을 사랑한다. 고향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대전이 나에게, 내면 가득 시심을 길러주었다는 것이 더 큰 사랑의 근원이 된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말 뿐인 그 말의 등걸을 꺾고 감히 사랑한다는 가슴의 말을 앞세웠다.
그렇게 고백하기까지 나는 60여 년간 대전의 곳곳을 살피고 탐구하며 참 많이도 아파했고 싸움도 많이 했으며 안팎의 상처도 많이 안고 있다. 꾀면 넘어간다는 멍청도, 달래면 주저앉는다는 합바지, 걸핏하면 문화 불모지라고 망발 하는 저 객꾼들을 향한 강력한 주먹질을 위하여 나는 힘을 길러야 했고 그 힘의 살 속에 문학의 주사기를 꽂아야 했다.
그 때 대전의 힘으로 다가왔고 그 때 시가 사랑으로 다가왔다. 놓치지 않으려고 가깝게 다가섰고 빼앗기지 않으려고 다시 포옹을 했다. 그리고는 게으름 떨구며 몇 번이고 몇 날이고 찾아다녔고 보고 그리며 상상의 날개를 달아보기도 했다. 마음을 내 주는 연인이 참으로 많았다.
식장산 해맞이-한밭문화회-3·8민주의거기념탑-한밭종각-대전의 캐릭터 한꿈이-대전엑스포 마스코트 꿈돌이-대전의 새- 대전의 꽃 -대전의 나무-정부대전청사 (제1부) ==
대전8경 : 식장산 자연생태림-보문산 녹음-구봉산 단풍-장태산 휴양림-유성온천-엑스포과학공원-계족산 저녁노을-대청호수 (제2부) ==
대전의 역사인물(연대순):박팽년-김정-권득기와 권시 부자(父子)-송준길-송시열-김만중-송병선과 송병순 형제-신채호 (제3부) ==
대덕밸리-대덕연구개발특구-국립중앙과학관-모비우스의 띠-한국지질자원연구원(지질박물관)-대전시민천문대-한빛탑-과학공원(과학의 이용과 오용)-과학공원(과학의 터전과 시의 종자) (제4부) ==
선사유적지-만인산-국립대전현충원-대전보훈공원-뿌리공원-대전오월드-한밭수목원-대전문화예술의전당·대전시립미술관·이응노미술관(제5부)
갑천-계족산 장동삼림욕장-유림공원-남선공원-목척교&르네상스 목척교-대전0시-금강 (제6부) ==
이상 대전의 역사와 문화, 인물, 풍물, 유적, 명승지, 특히 과학을 배려하여 50여 글감을 선정하였고 그 글감을 대상으로 시로 읽는 대전을 그렸다. 아울러 대부분 직접 셔터를 누른 현장 사진과 에세이를 부가하여 일반 독자들이 시를 가까이 할 수 있도록 시도하였으며 그렇게 시로 대전을 읽을 수 있도록 기획을 하였다.
발로 쓴 시의 단순개념이나, 홍보용 시의 관용(官用)개념을 불식(拂拭)하고 소위 시로서의 문학성을 잃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노력하였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었음을 실토한다.
이제 다시 돌이켜 본다. 여기 대전의 시 한 편 한 편은 진정으로 대전이 나에게 준 귀중한 선물임을 깨닫는다. 그런 각성으로 나는 이 시편들을 모아 한 권의 시집으로 묶어 시민들 앞에 내 놓는다. 대전을 사랑하는 시민들께 그리고 고향을 사랑하는 국민들게 떠도는 대전의 시 한편 낚아보시라고 두 손 모은다.
2010년 10월
金容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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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재 金容材 시인
∙ 1944년 대전 출생
∙ 아호· 창운 蒼云
∙ 기성(원정)초·충남중·대전고를 거쳐 충남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음
∙월간《시문학》추천으로 문단 데뷔(1974∼75)
∙ 공주고·충남고 교사(역)
∙ 충남대·목원대 강사·우송(중경)대 교수(역)
∙ 대전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역), 재직중 전국대학신문주간교수 협의회 부회장, 전국교무처장협의회 부회장, 미국 USC객원교수, 대전충남북사립대교수협의회 회장(역)
∙ 호서문학회장, 한국문인협회 대전지회장, 한국시문학문인회 회장, 제17차 세계시인대회(태국·방콕)한국대표(2002), 제18차 세계시인대회(미국·플레인뷰)한국대표(2004)
∙ 시집『겨울 산책』외 10권, 영문 영역시집『Even Being Pressed by Wheeis Never Die』외 3권, 기타 저서『창운 김용재의 시세계』외 20여권(공저포함)
∙ 대전광역시문화상, 한국현대시인상(한국현대시협),국제계관시인상(미국·UPLI)등 수상
∙ 현재 국제계관시인연합(UOLI)한국회장. 대전문인총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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