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훤당기념사업회 정기총회 5월29일 개최
‘한훤당의 道學에 대한 試探’ 학술발표회도 가져
한훤당선생기념사업회(회장 정원용) 정기총회가 2011년 5월29일 일요일 대구시 중구 장관동 소재 담수회관 2층 대강당에서 열렸다.
대구광역시 사무관으로 봉직하는 돈희 종친의 사회로 진행된 총회는 정원용 회장의 인사말씀, 류시권 사단법인 담수회 회장과 백용 차종손의 축사 등 내빈 축사에 이어 경과보고, 임원보선, 감사보고, 결산보고, 예산(안)승인 등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정기총회의 하이라이트는 ‘한훤당의 도학(道學)에 대한 시탐(試探)’이라는 주제로 열린 제2부 학술발표회.
문학박사 홍우흠 영남대 명예교수겸 사단법인 모산학술재단 이사장이 연단에 나와 강론을 폈는데 왜 한훤당 김굉필 선현이 동방오현의 수현으로 조선 최고의 도학자이셨는지를 명쾌하게 풀어나갔다.
도학(道學)에 대한 시탐(試探)은 공자(孔子)의 손자 자사(子思)가 쓴 중용(中庸)의 첫 구절부터 시작됐다.
天命之謂性이요 率性之謂道요 修道之謂敎니라
천명지위성이요 솔성지위도요 수도지위교니라
「天이 명한 것을 <性>이라 하고, 性을 거느려 나가는 것을 <道>라 하고, 道를 닦음을 <敎>라 일컫는다.」
道也者는 不可須臾離也니 可離면 非道也라
도야자는 불가수유이야니 가리면 비도야라
「道라고 하는 것은 잠시도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다. 떠날 수 있으면 道가 아니다.」
유교가 지향했던 목표, 요(堯)·순(舜)·우(禹)·탕(湯)·문왕(文王)·무왕(武王)·주공(周公)·공자(孔子)·맹자(孟子)·주자(周子)·정자(程子)·주자(朱子) 가 추구해온 태평성대의 이상향은 대동사회(大同社會)였다. 도학(道學)은 이렇게 이어져온 유가(儒家)가 계승 발전시켜온 학문이며, 도학을 이어온 계통을 도통(道統)이라 했다.
조선에서는 한훤당 선생이 도통(道統)의 길을 걸으며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를 위한 우주관과 인생관을 확립한 완전무결한 도학자(道學者)였기 후학들이 문묘에 종사토록 임금님께 상소를 올렸다고 했다..
경현록에 수록된 상소문 「관학청종사문묘소|館學請從祀文廟疏」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기술되어있다.
『김굉필은 기국(器局)이 단정하고 성행(性行)이 깨끗하며, 성인의 학문에 뜻을 철저히 가져 힘을 기울였으며, 몸을 가짐은 위의(威儀)가 있고, 일을 처리함은 법도가 있으며,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는데 있어서는 어디든지 경(敬)으로서 하며, 사람을 가르침에 있어서 간절히 타이름은 지성(至誠)에서 우러났으며, 배우러 오는 사람이 있으면 모두 먼저<소학>과 <대학>으로 가르치어, 규모가 정함이 있고 절목(節目)이 차례가 있으며, 인도하며 가르치기를 조금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어지러운 때를 만나 환란을 겪어도 이에 대처하기를 태연히 하였으며, 독실함과 공경함을 조금도 해이하게 하지 아니하여 죽은 다음에야 그만 두었습니다. 그 문하에서 배운 사람들은 이 도학의 꼬투리를 듣게 되어 그를 태산(泰山)과 북두(北斗)에 견주었으며...(중략). 임금님께서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고 풍화를 선양하고자 하시는 것도 그 실은 김굉필(金宏弼)의 힘에 기인한 것입니다.』
홍우흠 박사는 한훤당선생의 유문이나 자료가 부족하고 경현록에 수록된 유문 또한 17首에 불과하여 그 분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음을 실토했다. 그러면서 한훤당선생이 도학자임임을 실증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자료로 그 분의 유문이자 유일한 부(賦) '秋毫可竝旅泰山賦(추호가병여태산부)-'추호를 태산에 겨눌 수 있다'를 제시했다.
발표자는 이 글이야말로 한훤당선생을 이해할 수 있는 산 자료라고 소개했다. 선생의 부(賦)는 북송대(北宋代)의 주돈이(周敦頤 1017-1073)부터 시작된 송대의 신유학을 통달한 다음 이태백(李太白)의 시를 성리학 이론으로 분석한 것이라며 왜 한훤당 선생이 도학자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라고 강조.
발표자는 결언(結言)을 통해 “한훤당은 소학(小學)의 실천을 통해 순선무악(純善無惡)한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본연지성(本然之性)을 따르고자 진심갈력(盡心竭力)하였고, 유가(儒家)의 경전(經典)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도통(道統)의 최종목표인 대동사회(大同社會)를 이룩하고자 수양을 했고 제자를 길렀다”고 했다. 그래서 “한훤당은 고려의 충신 정몽주를 이어 도학자로서 갖추어야 할 요건을 완전무결하게 충족했기 때문에 조선의 조야가 이구동성으로 선생의 학문을 「道學」이라 하고, 조선조(朝鮮朝) 도학(道學)의 조종(朝宗)으로 문묘종사(文廟從祀)를 청원(請願)하기에 이르게 되었다”라는 말로 道學의 試探을 멈췄다. 이제 본격적인 탐구 및 연구활동이 지속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가져본다.
홍우흠박사가 발표중에 되풀이하여 강조하는 말이 있었다.
“선현(先賢)을 숭모, 추모해야 하지만 이제 그 방법과 목적이 달라져야 합니다. 한훤당, 퇴계, 남명 선생하니까 모여서는 안된다. 그 개인을 추모하기 보다는 그 분이 어떤 일을 했는지를 배워서 그 분이 하신 일을 기억하고 추모해야 합니다. ”
사단법인 한훤당기념사업회 학술발표회의 주제가 된 '도학(道學)에 대한 시탐(試探)' 내용 전문은 우리 대종보 카페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