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작가 진우석의 우리산 기행 <34> 합천 가야산
<가야산은 가야국의 신화가 내려오는 성스러운 땅이다. 가야산에 살았던 아름다운 여신
‘정견모주(正見母主)는 하늘신 ‘이비하’와 부부의 연을 맺고 옥동자 둘을 낳았다. 아버지인
천신을 닮아 얼굴이 불그레한 형은 대가야의 첫 임금 ‘이진아시왕’이 됐고, 어머니 여신을
닮아 얼굴이 갸름한 동생은 금관가야국의 ‘수로왕’이 됐다.>
가야산(1천430m)은 숨어 있다. 팔만대장경을 간직한 법보사찰 해인사의 자자한 명성 뒤에, 지리산에서 덕유산으로 이어진
웅장한 백두대간 능선에서 한 발짝 떨어져, 고구려ㆍ백제ㆍ신라가 자웅을 겨루던 삼국시대에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했던
가야국처럼. 하지만 가야산의 수려한 자태는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었다.
사진작가들이 덕유산에서 찍어온 일출 사진에서 태양은 소머리 같은 가야산 상왕봉(우두봉)에서 떠올랐고, 해인사가 아무리
넓다 해도 그 뒤로 수려한 암봉들이 바늘처럼 돋아났다.
가야산은 화려하다. 1천m를 훌쩍 넘는 높이에서 무수한 바위가 꽃처럼 피어나고 불꽃처럼 일어났다. 예로부터 가야산은
‘산형은 천하의 으뜸이고, 지덕은 해동 제일이다’고 했고,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은 “바위 봉우리가 줄줄이 이어져 마치
불꽃이 공중으로 솟아오르는 듯하여 지극히 높고 수려하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정감록’에서는 도읍지의 기운이 한양을 거쳐 계룡산으로 옮겨가고, 종국에는 가야산으로 들어온다고 예언하기도 했다.
가야산의 명소로는 덕유산 일출사진 속에서 해가 떠오르는 상왕봉, 최치원이 머물렀던 홍류동 계곡, 팔만대장경을 품은
법보사찰 해인사 등이 있다.
가야산 산길은 해인사를 들머리로 오르는 코스가 일반적이나 성주군 백운동을 들머리로 해서 암릉 구간을 오르며 만물상의
바위미를 즐기고, 이어 칠불봉과 상왕봉을 비교 감상하고 해인사로 내려오는 것이 최상의 코스다.
거리는 약 9㎞, 4시간 30분쯤 걸린다.
가야산 동쪽의 백운동 지구는 가야산성, 옛 금당사(金塘寺)의 여러 암자터 등의 문화유산과 만물상을 비롯한 수려한 암봉들이
어울린 유서 깊은 지역이다.
백운동 버스정류장에서 탐방안내소까지는 불꽃같이 타오르는 바위 봉우리들이 잘 보이는 구간이다. 안내소를 지나면 야영장이
나오고 이곳부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햇볕 잘 드는 호젓한 계곡을 20분쯤 가면 백운암지이고 제법 가파른 오르막을 20분쯤 더 오르면 서성재에 도착한다.
서성재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상아덤(서장대)을 만날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출입통제 구역이다. 상아덤은 가야국의 신화가
내려오는 성스러운 공간이다.
아득한 옛날, 가야산에는 성스런 기품과 아름다운 용모를 지닌 ‘정견모주(正見母主)’란 여신이 살고 있었다. 정견모주는 가야산
자락에 사는 백성들이 가장 우러러 믿는 신이었다. 여신은 백성들에게 살기 좋은 터전을 닦아주려 마음먹고, 큰 뜻을 이룰 힘을
얻기 위해 밤낮으로 하늘에 소원을 빌었다. 그 정성을 가상히 여긴 하늘신 ‘이비하’는 어느 늦은 봄날 오색구름 수레를 타고,
‘여신의 바위’란 뜻의 상아덤에 내려앉았다. 천신과 산신은 성스러운 땅 가야산에서 부부의 연을 맺고, 옥동자 둘을 낳았다.
형은 아버지인 천신을 닮아 얼굴이 해와 같이 둥그스름하고 불그레했고, 아우는 어머니 여신을 닮아 얼굴이 갸름하고 흰 편이
었다. 그래서 형은 뇌질주일(惱窒朱日), 아우는 뇌질청예(惱窒靑裔)라 했다. 형은 대가야의 첫 임금 ‘이진아시왕’이 됐고,
동생은 금관가야국의 ‘수로왕’이 됐다.
이 기록은 최치원의 ‘석순응전’과 ‘동국여지승람’에 전해오고 있다. 서성재에서 칠불봉으로 오르는 길이 가야산의 핵심 구간
이다. 급경사 바위지대가 많지만 위험 구간에는 철 계단이 잘 놓여 있고, 험난함에 비례해 만물상의 멋진 조망이 드러난다.
마지막 철 계단과 가파른 로프 구간을 돌파하면 대망의 칠불봉 삼거리에 올라붙는다.
여기서는 먼저 칠불봉에 들렀다가 상왕봉으로 가는 것이 순서다. 성주군에 속한 칠불봉의 높이는 1천433m로 합천군의 상왕봉
보다 3m가량 더 높다.
그래서 성주 사람들은 가야산 정상을 칠불봉으로 바꾸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칠불봉은 상왕봉과 불과 200m 거리에 있지만,
이곳에서 바라보는 상왕봉과 동성재 암릉이 빼어나게 아름답다.
그래서 상왕봉과 칠불봉을 비교 감상하며 어느 곳에 더 후한 점수를 줄지 생각해보는 것도 산꾼들에게는 큰 즐거움이 됐다.
칠불봉에서 암봉들을 우회해 안부에 내려서면 거대한 바위 덩어리인 상왕봉의 우람한 모습이 드러난다.
여기서 다시 철 계단을 올라야 상왕봉 정상이다. 상왕봉의 조망은 가야산의 축복이다. 왼쪽 멀리 아스라이 하늘과 맞닿은 곳에
지리산 천왕봉이 우뚝하고, 엉덩이 같은 반야봉의 펑퍼짐한 모습도 선명하다.
산줄기를 따라 오른쪽으로 시야를 쭉 따르면 다시 웅장한 산줄기가 이어지는데, 그곳이 덕유산이다. 지리산에서 덕유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이 한눈에 잡히는 것이다.
하산은 해인사 방향으로 잡고 가파른 길을 내려서면 투박한 돌부처가 길을 막는다. 얼굴이 닳아 거의 없어졌지만 잔잔한
미소는 입가에 남아 있다. 좋은 구경 잘했다고 감사의 절을 올리고 1시간쯤 계곡을 내려오면 해인사에 닿는다.
▨주변 명소
해인사 = 가야산 남쪽 자락에 깃든 해인사는 부처의 말씀(法)을 간직하고 있는 법보사찰로 한국 불교의 대표 성지다.
세계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 및 국보와 보물 등 70여 점의 유물이 가득하고, 승가대학, 승려, 규모, 수행 환경 등에서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해인사는 가야산을 뒤로하고 매화산을 앞에 두고 있어 주변 경관이 빼어나다. 홍류동 계곡 = 가야산 국립공원 입구에서
해인사에 이르는 약 4㎞ 계곡을 말한다.
계류에 비친 가을 단풍이 물까지 붉게 물들인다 하여 홍류동(紅流洞)이란 이름을 얻었다. 해인사 산문 언저리의 농산정
(문화재자료 제172호)과 낙화담, 분옥폭포 등 명소를 품에 안고 있다.
농산정 맞은편 바위 벼랑에 최치원 선생의 친필이 암각되어 있다. 합천8경 중 제3경으로 일컫는다.
▨가는 길과 맛집
자가용은 88고속도로 해인사 나들목으로 나와 백운동 지역을 찾아간다.
버스는 대구서부정류장에서 해인사행 버스가 오전 6시40분부터 오후 8시까지 하루 21회 4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백운동으로 가려면 해인사행 버스를 타고 가야면에서 내려 택시를 이용한다.
해인사 아랫마을인 치인리의 삼일식당(055-932-7254)은 담백한 사찰 음식을 내오고,
40년 전통의 백운장식당(055-932-7393)은 산채정식과 더덕구이가 별미다.
산행 후 백운동 가야산온천국민호텔(054-931-3500)에서 피로를 풀면 금상첨화다.
지하 620m 암반층에서 솟아나는 유황 온천 수로 수질이 부드럽고 매끄러운 게 특징이다.
<사진 설명>가야산 정상인 상왕봉. 왼쪽 멀리 웅장하게 솟구친 산줄기가 덕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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