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 호 : 135 / 145 등록일 : 2000년 10월 02일 17:41
등록자 : 아니그래 조 회 : 6 건
제 목 : [대본] 난파 / 김우진作
[제목] 난파(難破)
[페이지] F01
'94 공연예술아카데미 제6기
수료발표공연작품
난파(難破)
원작:김우진
일시: 1994년 11월 23일~11월 29일
장소: 문예회관 소극장
[페이지] F02
'94 공연예술아카데미 제6기
수료발표공연작품
난파(難破)
원작:김우진
일시: 1994년 11월 23일~11월 29일
장소: 문예회관 소극장
[페이지] 001
Ca-ro Nome! 잊지 못할 네 이름 !
내 가슴 속 깊이 들어온 !
네 이름 그리워라 !
가슴에 불지르고,
마음에 끄지 못할
사랑의 불꽃을 준!
잊혀질 새 없이
이내 맘 그리워라
아! 죽을 때에도
네 이름 부르련다 !
살아 있을 동안도
이 내 맘 그리워라.
네 이름만 부르련다.
죽어 가는 그때에도 !
살아 있을 동안도 이 내 맘 그리워라.
아! 아! 그리워
네 이름만 부르련다,
네 이름만 부르련다.
죽을 그 시간에도,
죽을 그 시간에도
오 네 이름 부르련다.
부르련다 !
죽을 그 시간까지도
까지도! Caro Nome! Caro Nome!
네 이름 그리워라
내 가슴에 불지르고
마음에 끄지 못할
사랑의 불꽃을 준 !
Caro Nome! Caro Nome!
[페이지] 002
등장인물
시인
부(父)
동복제(同腹弟)
이복제(異腹弟)
악귀
신주(망령)
의사
제1우(友)
제2우(友)
제3우(友)
큰 갈레오토("El Gran Galeoto" from joes Echegaray)
모(母)
백의녀(伯依女)
비의녀(緋衣女)
제1계모
제2계모
데3계모
제4계모
비비(Vivie in "Mrs. Warren's Profession"by G. B. Shaw)
카로노메("Caro Nome" from "Rigoletto" by G. F. Verdi)
[페이지] 003
[막] 제1막
커다란 조선식 집 앞. 마당, 밤, 흐린 달빛
[모] (흰 옷, 유령처럼 점점 자세가 나타나며 걸어온다.) 아들아. 내가 너를 낳고
제일 미워하는
아들아.
[시인] (발가벗고 창백한 몸으로 나타나며)흥. 제일 미워한다면서 왜 그리 자주 불
러내수.
[모] 하늘을 보렴. 더러운 것도 비치지만 어여쁜 것도 비치지 않든? 또 불평만 말고
내 빰에
입맞춰다구.
[시인] (입맞추며)입맞추면 어찌도 이리 내 마음이 두근거립니까.
[모] (깜짝 놀라며)두근거리다니 ? 또 날 욕할 테로군.
[시인] (소리를 버럭 지르며)난 어머니를 욕하오. 저주하오. 이 인간을 왜 이모양으
로 만들어 냈소.
당초에 고만두든지 그렇찮으면 어여쁘게 곱게 흠없게 모든 것에 꼭 들어맞도록 만들
어보지. 그러구도
어머니라 하오?
[모] (웃으며)글세 내말을 못알아듣는군. 내가 너를 낳기 전에 아이를, 즉 네형을
둘이나 나서
죽였대도 그래. 그 두 아이야말로 너보다는 잘나고 어여쁘고 튼튼하고 똑똑하고 영
리하고 귀여웠지.
그러기에 내 너를 낳고 나서는 산욕(産褥) 위에서 너를 보고서 어찌 역정이 나던지
고만 돌아누어
버렸구나. 젖
[페이지] 004
도 안 주구 고만 돌아누어 버렸구나.
[시인] (픽 웃으며)그래서 개나 물어 가라고 워리 했구료. 못나고 어여쁘지 않고 약
하고 어리석고
밉고 한 아들을 ! 왜 그때 개 아구리에다 집어 넣지 않았수 ?
[모] (만져 주며)그렇게 마음 비꼬은 소리를 들으면 내 맘은 더 흡족해 지는 구나.
너를 그렇게
만들어 내려고 네 형을 둘이나 죽였다. 모든 것이 약속이 있다. 약속 밑에서만 고통
이 있지. 고통이
있어야 인생이 아니냐 ? 그 증거로는 네 동생 동복제를 보렴.
[시인] (속 아픈 소리로) 저주 받을 어머니 !
[모] 그렇지. 네 형이 잘못해서 죽은 것이 아냐. 내가 애밴 동안에 네 아버지의 욕
심을 채워 주려고
한 짓이지. 하나는 배어서 여섯 달만에 떨어지구 하나는 나면서 송장 ! 하하하하 옹
굴지지. 통쾌하지.
[시인] 왜 그러면 나머저 안 죽였소 ?
[모] 글쎄 밤낮 되풀이 하던 소리를 또 지껄이라는 말이냐 ? 너를 만들려구 한 짓이
래도 그래 ! 너를
만들려구 네 형을 둘 죽였대도 그래 !너는 네 형도 아니구, 네 아우도 아니구 네 아
버지나 네 어머니,
즉 나도 아니란 말을 못 알아 듣겠니 ?
[시인] (벌벌 떨며)오오오오.
[모] 춥거든 내 품속으로 들어오렴. (안으려 한다. )
[시인] (벌떡 나서며)날 얼어 죽으라구 옷을 벗겨 놓고는 또 안아 주려구 그 게 무
슨 심장이요 ?
[페이지] 005
[모] 이것 봐라. 사람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완전을, 신을, 하느님을 찾지. 완전하다
면 왜 이리 이
사회가, 생황이 나오겠니 ? 버나드쇼가 네게 가르쳐 준일이 있지? 천상낙원은 '우주
창조물 중에서
제일 심심하고 맛없는 곳'이라구. 네가 지금 거기 안 있기 때문에 거기를 가려구 하
지 않니 ? 그러나
네가 만일 거기 한 달은 고사하고 하루만 있어봐라. 고만 구역질이 나구, 시시하구,
텁텁하구,
낮잠이나 오구. 돌리면 단 과실이 저절로 입 안으로 궁굴려 들어오구, 쉴 새 없이
향기, 보들보들한
바람, 어둠도 없는 동시엔 빛도 없구, 악도 없는 동시에 선도 없구, 추도 없는 동시
에 미도 없구,
불선불의도 없는 동시에 선한 것 옳은것도 없단다.비열한 것도 없는 동시에 壯美(장
미)한 것도
없단다.모두가 심심텁텁한 무위의 공기,기운 빠진 생활이란다.
[시인] 흥, 쇼와 매우 좋아 지내는 모양이구료.
[모] 쇼뿐인가. 나는 인생의 본상(本相), 부단한 생명력과 부단한 진화에 대한 신념
이 있으면
누구든지 내 정인으로 삼는다. 일전에도 쇼가 찾아왔기에 이런 말을 했더니 고놈의
늙은이 말 좀
들어봐 ! 결혼하자구 ! 오호호호호.
[시인] 나보다 나은 두 형 같은 이나 만들기 위해서 끌어안아 주지 그랬수 ?
[모] 얘, 그런 말 마라. 나는 사람이 아닌 줄 아니? 난들 왜 너희들 원망을 얻을 이
런 어머니짓을
하고 있겠니. 내 속에서 올라오
[페이지] 006
는 참을 수 없는 충동이 나를 식히는 게지. 쇼 같은 이와 결혼만 해봐라. 그야말로
천지개벽이 생기지.
그러면 나두 죽어 소용없어지고 너 같은건 이 세상에서 존재가 없어지지.
[시인] (퍽퍽 울며)왜, 요 모양이에요. 왜 이리 아파요 !
[모] 우는 것도 못 우는 것보다는 똑똑하다만 저 바깥으로 나가서 현실을 보려므나.
그리고 나와
같이 불완전한 더러운 다를 인간들과도 싸워 보려므나.
[시인] 난 싫어요. 무서워요. 곳 무서워 못 견디겠어요. 왜 싸우라면서, 현실을 보
라면서 이렇게
불완전하게 날 만들어 줬소!
[모] 에잇, 귀찮은 자식 ! 불완전하니까 싸우란 말야 ! 그래두 몰라? 흐린 자식 !
[시인] (달려들어 치려한다. 그 순간에 모는 사라져 없어진다. 시인, 한숨을 쉬고
앉았다.)
[모] (다시 나타나며)또 이버릇을 하는 구나. 억만번 그래두 소용없어. 운명을 어떻
게 아니 ? 나를
좀 봐라. 나는 충실한 이 책무를 다하구 있는데, 너는 왜 그리 못난 짓을 하니 ?
[시인] (다소곳 해지며)내 두 형님을 찾아내 주우.
[모] 안 된다. 마지막 네 형이 죽어 나온 뒤 여섯 달만에 내가 너를 낳았구나. 그때
내 몸이 두
번이나 낙태한 뒤였지만 어떻게 너를 낳고 싶었겠니 ? 그러나 나는 악착스러운 너의
현실을 만들어 낼
충동이 벌써부터 있었구나. 했더니 마침 된 것은 네 아버지가 '신주', 즉 네 할머니
산소면례 때문에
근 이 년 동안을 당초에 여자와 가깝게 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러니 너를
[페이지] 007
배었을 때 나는 몸이 두 번 낙태 뒤에 억지로 네 아버지 정기를 받았구나. 유시(幼
時)로 유명하던 네
아버지의 정신력과 시적 통찰력을 받아 놓았으니 고맙지 않니 ?
[시인] 그러기에 말예요. 왜 그러면서도 나를 이렇게 미성업(未成業)으로, 그것도
흠점만 있게
만들어 냈냔 말예요.
[모] 그것이 세인이 부르는 운명이란다. 나로 해서는 단지 내 책무를 다했을 뿐이지
죽은 네 형들을
찾아 달라는 뜻도 내가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내 힘으로어떻게 하는 수가 있어야지.
내과
인과율(因果律)을 어떻게 좌우할 수가 있어야지.
[시인] 그러니 말이지요. 왜 구태여 내게 이런 인과율의 줄을 얽어 놓았느냐 말예요
[모] 그러니까 너란 것이 되지 않았니 ? 세상엔 장미한 것을 좋아 하지 않는 이가
없단다. 그러나
어떤 이는 그것만 가지고 비열한 것을 목마른 것처럼 구하는 이가 있다.
[시인] 내 눈앞에 그것을 가질 것 같습니다만 난 그걸 잡을 수가 없어요.
[모] 세상엔 용기를 칭찬하지만, 용기를 쓸 곳을 모르는구나.
[시인] 난 용기에 대한 철저한 신앙이 있지만 내 힘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아요.
[모] 세상엔 행복을 모두 구하려고 모든 것을 희생한다.
[시인] 난 행복을 싫어하면서도 행복을 미워하지 못해요.
[모] 세상엔 비열한 것을 타매(唾罵)하는 이가 있으면서 그것을 감히 행한다.
[페이지] 008
[시인] 나는 비열을 감히 행하지도 못하면서 그것을 미워합니다.
[모] 세상엔 희생을 숭배하면서 그것을 쓰레기통에나 집어 넣는다
[시인] 난 희생을 여간 미워하는 것이 아니지만 그것을 날마다 하고 앉았구료.
[모] 세상엔 쾌락을 좋아하면서 그것을 발길로 차 내버리는 구나.
[시인] 나는 쾌락처럼 좋은 것이 없지만 난 그걸 안 하려 합니다.
[모] 세상은 현실을 미워하면서도 그것을 달게 빨아먹고 앉았구나.
[시인] 나는 그것을 맛있을 것 같이 생각합니다만 그것을 빨아먹을 줄 모릅니다.
[모] 세상에 명예를 좋게 여기지만 그것에 똥만 칠하는 구나.
[시인] 난 명예처럼 귀한 것이 없는 줄 알지만 전혀 얻을 줄을 모릅니다.
[모] 세상엔 모두 천사와 셩현만 있지만 악착스러운 것과는 형제간이로구나.
[시인] 난 악착스러운 것을 정면(正面)해 볼 줄도 모르면서 어찌나 해보고 싶은지
못 견뎌 냅니다.
[부] (나타나며)왜 그리 욕만 서로 하고 앉았수. 너니 ? 내 아들이로군. 내 얼굴 좀
봐라. 주름잡힌
이 얼굴. 온갖 세상의 간난신고를 겪구,온갖 세상의 현실의 길을 지내 온 나를 좀
쳐다보렴. 보면 네
어미란 것과 같지 않아서 날 욕하지 않을 터이니.
[시인] (눈물을 흘리다시피)나는 인과율에 얽매인 사람이요. 당신이 나를 동정사(同
情事)를 만들구
싶으면 나에게 우는 그 불행한 얼굴을 보이지 마시오. 그리고 날 때려 주시오. 죽도
록 때려
[페이지] 009
주시오.
[모] 얘 좀 봐. 모두 잊었나 보다. 너 어렸을 적에 네 아버지한테 대설대로 종아리
얻어맞고 까무러
친 적을 모르니?
[부] 그렇지. 한두 번 아니구. 내가 혈기방장했을 때 내 손에 안 맞아 본 날이 하루
나 있었니 ? 너도
건망증이 대단하군.
[시인] 나는 이 건망증을 영광으로 생각하오. 그러나 매는 잊었어도 눈물은 잊을 수
가 없어요. 날
때려 달라는 말을 당신의 그'양반 가정' '신라성족(聖族)의 후예'라는 자만을 내게
서 뺏아 달라는
말예요.
[부] (달려들어 한 번 내갈기며)불효자 ! 모든 것이 효에서 시작하는 것을 모르니 ?
효 ! 서양놈
일본놈은 모르되 우리 조선사람은 충신도 효에서 치천하도 효에서 나오는 것이다.
[시인] (악에 복받쳐)우주가 당신 명령으로 도는 줄 아오 ? 늙은 허수아비가 !
[부] 이놈, 또 대설대로 맞아 보려니 ? 아직 기운은 있다. (달려든다.)
[시인] (칼을 빼어 달려들다가 탁 넘어지며)오 !
[모] (빙글빙글 웃으면서 둘을 보고 있다가)그렇지, 이게 내 책무야. 이걸 보려구,
이걸 보려구 !
작들 싸운다. 잘들 싸운다.
[부] 너두 내 매좀 맞아 봐라 ! ('악귀'나타난다. 부가 시인의 칼을 집어서 '악귀'
에게
달려든다.)이놈 ! 독사 같구 악마같은 놈 !
[악귀] 네가 내게 아저씨뻘이 된다만 너는 서자가 아니냐 ! 이놈 네 어미년 항문에
서 너 같은 놈이
나왔기로 종손 없어 질 줄 아니
[페이지] 010
! (말리러 온 제1계모에게 칼로 머리를 찍는다.)
[제1계모] (찔찔 움면서 달아나며) 이 몹쓸 귀신 ! (나간다)
[부] ('악귀'에게 덤비며)이놈 ! 이 악귀 ! 내 칼 맞아라 ! 하다 못해 죽은 백골까
지 파먹는 놈 !
[악귀] (큰 힘으로 부를 잡아 동댕이를 쳐 내 붓친다.)이 간(奸)한 놈 ! (이 때 '신
주' 들어온다. )
[부] (다시 벌떡 일어날 때 위기일발)아무리 악돌하기로 네 놈에게 질 줄 아니 ! 이
놈 ! ('악귀'
달아난다.)
[신주] 오, 내 아들! 내 아들 ! 네가 향항(香港)가 있을 때 너를 못 보고 죽은 한만
없으면 왜 모두
잊어버리지 않겠니 ? 우리 모자 고부를 제집 개보다도 멸시한 것쯤이야 왜 못 잊겠
니 ! 내가 남의
첩으로 들어간 것이 잘못이지.
[부] (달려들어 붙들고 퍽퍽 울며)어머니 ! 이 불효자를, 어머니로 하여금 철천지한
을 먹게 한 이
불효자를 ! 나는 소위 나라 망하게 되는 줄 안 그 시간에, 만사가 허사가 된 줄 안
그 시간에 어머니를
찾아 다녔습니다. 불효의 속죄를 하려구 돈을 모으고 아내를 여섯이나 얻구 어머니
를 수천 리
타향에까지 뫼셔다가 면례하고 산소 밑에서 종신할려구 했습니다. 그러나 나같은 청
렴정직한 나를 왜
지금까지도 저 '악귀'가 달려드는지 모르겠습니다.
[모] (나타나며)여보, 당신 어머니가 당신을 날 때 그때에 벌써 저것은(시인을 가리
키며)저애를
약속하고 나온 것이요. 뭘 그런 잔소리를 하우.
[페이지] 011
[부] 수천리 타향에서 어머니를 면례해 온 그 해 구월에 저 애가 나온 것을 가리켜
하는 말이오 ?
[모] 잘 아시는구료. (시인을 부르며) 네 아버지 말 좀 들어 보렴.
[부] 그렇소. 아들아, 내 가슴 속을 알아 다우. 나는 충군보국도 못한 죄인인데 어
머니에게
철천지한을 머금게 한 불효자로구나. 충군보국, 요새 말로 사회봉사할 유위지인(有
爲之人)은 너 외에
오늘 사회 다른 청년들 중에서두 또는 우리 자손 중에서두 있겠지만 오늘 너는 내
아들, 원한 머금은
네 할머니의 손자가 아니니 ?
[신주] 아들아 손자야. 너희들은 다만 아들노릇 손자노릇이 첫 의무다.
[모] 에구, 시어머니두 ! 아녀요. 시인이 먼저 문제가 되어야 합니다. 그 애 아버지
는, 당신 아들은
단지 남보다 더한 정력,재능,천재, 통찰력을 가지고 사나운 폭풍속을 걸어온 여객과
같이 험상스러운
꼴, 무서운 꼴, 흉악한 꼴을 지내어 온 성공사에 불과하지 않소 ? 관갈(管葛)의 재
조와
나파륜(奈巴倫)의 힘과 백이숙제의 청렴을 가진 선수에 불과하지 않소 ? 그러나 모
든 약속 밑에서 나온
저 애야말로 이 쟁투의 장본인이외다.
[시인] (모에게 달려들어)흉악한 어머니 ! 정말(丁抹)의 왕자 모양으로 그때의 관절
이 위골(違骨)이
된 것을 어떻게 해요.
[모] 그러니까 말이지. 그러니까 살아가는 게지. 네 아버지는 그렇게 살고 너는 이
렇게 사는 것이
아니니 ?
[시인] 날 이 쟁투에서 벗어나게 해줘요.
[페이지] 012
[부] (깜짝 놀라며)안 되지. 안돼! 이 늙은 애비 얼굴을 좀 봐 ! 주름 잡힌 얼굴,
온갖 세상의
험상스러운 꼴을 겪구 온갖 현실의 가시길을 지내온 나를 좀 봐라.
[시인] (피해서 모에게 달려들며)난 싫어요. 그 얼굴을 동복제에게나 가져 가시구료
[부] (하는 수 없이)아 불쌍한 놈. 허기는 개가 너보다 낫지. 꾀 있구, 약발르구,
눈치 있구, 남
비위 잘 맞추구.
[시인] 아들 노릇에 차별이 있어 씁니까.
[모] 동복제가 낫지, 얘 동생이.
[신주] (고개질을 하며)안 된다. 안돼. 시인은 시인 되기 전에 내 손자, 내 아들의
자식 노릇을 해야
한다.
[시인] (자빠져 운다.)오오오오.
[모] (좋아 뛰며)옳군 옳아 ! 내가 간섭 아니 해두 저런 늙은 유령이 앉아서 머리털
을 잡어다니니까.
시 (벌떡 일어나 달아나려 하낟. 그때 뒤에서 베르디[Verdi]의 리골레토[Rigoletto]
중의 Aria"Caro
Nome"(Gualliey Malde!대신에 Caro Nome).처음은 아주 soto voce로. 시인은 깜짝 놀
라 멀거니 서서
듣고 있다가 그만 엎드러 진다.)아, 어머니 ! 저 소리가 뭐예요. 저 소리가 뭐예요.
[모] (부와 신주는 질색을 한다. 모는 깔깔 웃으며)되었군 ! 되었어 ! 이것이 사람
이야. 시인아,
나가서 이름 부를 사람을 구해라.
[시인] (가슴이 터질 듯한 소리로. 그러나 환희에 못 이기는 듯)아, 내게 힘만 줍시
오. 힘만. 모든
것을 정복시킬 !
[페이지] 013
[모] (조소하며) 그러면 만사가 평범하게 끝나게? 안 된다. 그 대신에 어서 나가봐
라. 어서 나가 봐.
[막] 제2막
[장] 제1장
울창한 삼림 속. 봄. 옴예 세인 광선. 고도[琴(금)] 소리와 꾀꼬리 우는 소리.
[백의녀] (나오며)봄. 꾀꼬리. 춤.
[시인] (따라 나오며 그녀의 손을 잡으려고 한다.)그러니까 이 손을 잡아 줘요.
[백의녀] (손을 채고 피해 가며)고만두라니까 그러네. 이 손에서는 검은 피가 흘러
요.
[시인] 그 피를 내가 마셔도 좋아요. 당신손만. (잡으려고 따라 간다.)
[백의녀] (달아나며)안 돼요. (돌아다보고 웃으면서)날 따라오슈. (둘이 나간다.)
[모] (옥색빛 옷. 나온다.)아, 내 아들. 저러니까 병자가 위태하단 말이지. 병든 이
에게는 죽음이
제일 안전야. 병은 바칠우스.
[신주] (나오며 따라오는 의사를 보고)속히 좀 와서 봐 주슈. 우리 손
[페이지] 014
자가 폐병 든 여자에게서 전염이나 아니 했는지.
[의사] (모에게 가까이 오며)이 양반이요 ?
[모] (뒷걸음하며)천만에 ! 병을 볼 줄은 알면서 왜 사람은 못 알아보수!
[신주] 병자를 갖다 대는 것은 네 직무이지. 그러면 의사는 다만 청진기를 대어 볼
뿐이야. (시인이
죽어 가는 백의녀를 들처업고 나온다. 의사 에게)내 손자 왔소. 아, 하느님 내 손자
를 살려 줍시사.
[시인] (업드려 백의녀의 반 송장 위에 얼굴을 대고 운다.)이 흰옷을 벗어요. 꾀꼬
리가 다 뭣이요.
붉은 피를 빨게 해 줘요. 시커멓게 탄 가슴 선지피 속으로 날 집어 넣어 주. (모에
게 손가락질 하며)저
여편네가 미워 ! 저년 얼굴을 안 보게 해 줘요. 영구히 안 보게.
[백의녀] (간신히)에잇 ! 고약한 ! 나는 3년 전에 죽은 내 동생 얼굴 보는 것이 다
시 없는
기쁨이지만 당신은 당신 어머니가 있지 안허우. (절명)
[시인] 너까지 ! 오 ! (신주 달려 들어 시인의 가슴을 억지로 헤친다. 의사 가 와서
청진기를 대어
본다. 안심된 듯이 웃는다.)
[모] (벌떡 일어나서 큰 소리로 웃으며) 오호호호호, 그러니까 말이지. 내 아들이지
내 아들. 너는
살았다. 저까짓 여자가 네 운명을 !
[시인] (칼을 빼어 들고 모에게 달려든다. 그만 기운이 다해 넘어진다.)아 !
[페이지] 015
[의사] (신주에게 예[禮]하며)나갑시다.
[신주] (기쁜 얼굴로)아, 조상의 영들이여 ! 고맙습니다. (의사의 뒤를 따라 나간다
)
[시인] 어머니, 나는 당신 품 속으로 들어가기를 원합니다. 죄다 내버리고 영원한
침묵 속으로.
[모] 날 찌르지도 못하고 벌써 기운이 진했니 ?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있어야지. 너
아버지에게 가
물어보렴. (시인, 할 수 없는 듯. 그러다가 고만 목 매려고 허리띠를 나뭇가지에 건
다.)네 손으로
결산(決算)붓칠 수 있거든 해봐.
[부] (나온다.)이 늙은 얼굴을 보렴. 주름 잡힌 관지뼈가 나오고, 온갖 간난신고에
껍질이 된 이
얼굴을 !
[시인] 난 안 속아요. 안 속아 ! (목을 걸려고 한다.)
[부] (달려와 붙들며)내말을 잘 들어야한다. 너는 눈이 있어도 볼 줄을 모르는구나.
[시인] 나이는 먹어 가면서도 눈은 점점 검어 가오 그려. 날 좀 보게해 줘요. (모에
게)튼튼하게,
씩씩하게 어머니를 보게 해 줘요. (운다)
[부] 그러니까 네 애비 얼굴을 좀 자세히 들어다보렴.
[시인] 난 저런 '신라 성족의 후예'가 되려면 적어두 7,80년 전에 살아 있어야 합니
다. 그이가 선
길과 내가 선 길 사이에는 태평양이 있습니다. 어떻게 넘어 뜁니까. 아, 그러나 어
머니. 나는 뛰다가
죽기를 원하오. 그런데 뛰지도 못합니다. 당초에 눈앞이 안 뵈이는 것을 어떡
[페이지] 016
해요.
[모] (와서 만져 주며)내 아들아, 내가 낳고 제일 미워 했던 내 아들아.
[시인] (달려들어)오 어머니.
[모] 죽은 네 형들이 얼마나 너를 보고 싶어 하겠니 ! 그렇지만 너는 너다. 언제까
지든지 너다. 가가
되어야 한다. 죽든지 살든지 간에 네가 네 눈을 떠야 한다.
[시인] 또 이 소리 ! (발길로 차 내부치려 한다.)이 흉측한 !
[모] (살짝 몸을 피하며)또 이 버릇이군 ! 그렇게 주저하면 내가 달아 날 줄 아니 ?
[시인] (곤두박질하며)지옥 ! 살생 ! 파멸 ! 저주 !
모 (달아난다.)오호호호호호.
[부] (금잔을 네주며)자, 이 술을 마셔라. 마음을 가라 앉혀 보렴. 이것은 밥은 되
지 못해두 네에게
힘을 준다. 네 애비가 아니면 누가 이런 것을 줄줄 아니 ?
[시인] (받아 마시며)오, 아버지. (주린 개모양으로 마신다.)
[모] (가까이 덤벼들어 낙담한 듯이)오 그것은 ! (하는 수 없는 듯이)흥, 그것두 좋
지. 아들아. 내가
낳아서 제일 미워하는 내 아들아 ! (무대 어두워 지면서 Caro Nome 소리 Moderato로
) 나가거라.
저소리를 따라. 네 눈을 뜨기 위해, (부, 질색을 한다.)
[시인] (벌벌 떨며)오, 어머니!
[페이지] 017
[막] 제2막
[장] 제2장
카페 집 자그막한 방. 간소한 장치 위에 석회광. 극의 진행에 따라 이 빛이 명멸해
져야 한다.
[제1우] 해면(海綿)같은 게야. 사람이란. 정한 물도 빨아들이지만 더러운 물도 빨아
들이는 것이
아니야 말야.
[제2우] (술을 훅 마시고)아하하하하, 그리게 말이지. 얌전한 개가 그럴 줄이야 알
았나, 하느님 아닌
우리들이 !
[제3우] 아마두 저러다단 솔적없이 죽을걸. 이대로 우리가 본체 만체 할 수 있나 ?
[동복제] (슬쩍 웃어 보고)적어도 자네가 동무가 아니냐 말야.
[제3우] 그렇지, 그래 ! 죽마고우라니 !
[제2우] 이것 술 취했나. 우리가 남의 linson에 상관이 뭐야.
[제1우] (동복제를 보고)여보게, 자네가 먼저 일어서야 하네.
[동복제] (교활하게)자네가 먼저 일어서게. 남 들먹이지 말고.
[제2우] 다 고만 둬. 술이나 마시세.
[비비] (1890년대의 검소한 영국 중류계급의 검소한 여대학생복)여러 신사 양반들,
시인이 어디
있는지 가르쳐 줄 수 있소 ?
[제1우] 뭐야 ? 당신은 어디서 왔소 ?
[제2우] (비비를 위아래 훑어보면서)이건 웃음거릴세 그려. 어디 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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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비비] (동복제에게)시인을 찾아 줄 이는 당신 뿐이오.
[동복제] (웃으며)그렇지만 당신은 대체 뭘하러 여기 왔소 ? 시인을 찾으려고? 그이
가 내 형이지만
당신 청을 들어 줄 이가 누구요.
비. 이 우인(友人)들은 다 자기네들 술 먹기 위해 하는 이야기니 소용 있소. 나 ?
나는 누구든지
간에 상관 있소 ? 자네에게 약속하오. 하시겠소 ?
[동복제]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끄덕거린다.)
[비비] (달려 들어 동복제의 손을 깨져라 하고 되게 잡아 흔든다.)그렇지 ! Thank y
ou ! (변개같이
교의를 탁탁 치워 가며 안으로 있는 방 도어를 두드린다. 연다. 정면으로 침대 위에
시인. 그옆에
비의녀, 흰 간호부복을 위에다 둘렀다. 그 실내는 달빛같은 창백색의 광선. 앞 방의
석회광은 점점
어두워진다. 주저하는 동복제에게) 자, 들어 가슈.
[동복제] (들어가 시인 얼굴에 키쓰하고 있는 비의녀를 잡아떼며)이 거머리 ! 고만
피 빨구 그
흰옷을 벗어 내버려.
[비의녀] (억지로 옷을 벗는다.) 이것이 정직 일까요.
[시인] (허공을 잡아 다니며)누구야 ! 누구야 ! 뺏는 것은 !
[동복제] (시인은 위로 하며)나예요. 나.
[시인] 왜 왔니?
[동복제] 형님을 구원하려구. 저년이---
[비의녀] (동복제의 소매를 잡아 당긴다)나두 정직한 옷을 입었으니까 당신두 정직
하게 하슈.
[페이지] 019
[시인] 구원 ? 나가거라 ! 인비인(人非人) !
[동복제] 아녀요, 다만 저년이---
[비의녀] (동복제를 시인에게서 잡아 떼려 하며)이녀는 뭣이 아녀요. 당신은 날 따
라오셔요. 시인을
구원할 이는 따로 있어요.
[동복제] 나는 약한 사람 ! 오 ! (비의녀에게 몸을 주고 넘어진다.)
[시인] 저게 무슨 짓이야 ! (일어나려 하며) 이 개들 ! 도야지들 !
[동복제] (시인에게 쫓겨가려다가 비의녀에게 제지당한다.)오 형님 ! 나 개가. 도야
지가 될 테니
혀님은 성한 사람으로 되구료. 성한 사람으로, 성한 사람으로, 개, 도야지, 개.
[비비] (제3우에게)자 어서 들어 가요 !
[제3우] (쫓아들어가서 동복제에게)이것 보게. 인제 다 되지 않았나. 자 나가세. (
비의녀를 흘겨
자빠뜨리고 나서 동복제의 손을 끌어서 데리고 나간다.)
[시인] (다시 일어나 와 가지고 키스하려는 비의녀를 잡아 당겨 끌안으려다가 졸지
에 명렬한 힘으로
내갈긴다. 그녀는 얼굴을 가리고 바깥으 로 달아난다.) 오, 어머니 ! 어찌하면 좋아
요 !
[모] (들어 오며)그러기에 너의 아버지가 주던 금잔을 마시지 말았으면 좋았지.
[시인] (모의 손을 붙들며)허지만 주는 것을 어째요. 그 술이 제일이라구. 그것 외
엔 나에게 보수 줄
것이 없는 것 처럼 내밀어 주니 아니 받아 먹을 수가 있어야지요.
[모] 그도 무관한 것은 아냐. 밥보다는 못해두 힘은 붙여 준다구. 오호호호호.
[페이지] 020
[시인] (벌떡 일어나 칼로 찍으려 한다.)이년 !
[비비] (뚱어 들어가며)이건 왜 이러슈. (약빠르게 시인을 잡아 뉘며)내 말 들어요.
착한 애 !
세상이란 널판 뛰는 것에 불과해요. 오르거나 내리거나 죽거나 살거나 죽지 않고 살
려면 한 번
튼튼하게 씩씩하게 일광처럼 밝게 살아보지 않으려우?
[모] (비비를 보고는 점점 뒤로 물러서며 형체가 없어진다. 여전한 웃음소리와 같이
)오호호호호.
[시인] (일어나며)당신은 어디서 왔소 ?
[비비] 나 ? 당신 어머니 속에서 왔소. 또는 당신 속에서 나왔소. (시인이 부정하려
한다.)그것이
싫으면 어떤 늙은 애란인(愛蘭人)머리 속에서 나왔다고 해둘까. 어디서 왔기로 상관
있소.
[시인] 아하. (냉정해지며) 당신하구 저 계집하고 무슨 원수나 되우 ?
[비비] 아냐. 하지만 내 친구는 되지요. 예전에는 원수였을런지두 모르지만 지금은
내 친한
동무예요.
[시인] 그런데 왜 저렇게 달아나우. 햇빛에 녹아 가는 눈 모양으로.
[비비] 모르지요. 나는 그녀에게 비하면 아주 젊으니까 혹시 또 자기를 해치지나 아
니 할까 하고
무서워하는지도 모르지. 난 그녀가 옆에 있어도 형제 같은 친한 생각은 나되, 신에
먼지 한 점 묻는
것만치도 나에게는 아무 관계없어요.
[시인] 왜 나한테 왔소 ? 우리 어머니를 찔러 죽이려고 하는데 왜 당신이 나와 말리
시요 ?
[비비] (일어나 방 안을 왔다갔다 하고 나서는)그 까닭을 내가 어떻게
[페이지] 021
알겠소. 나는 젊게 살고 있기 때문에 어디든지 가구 싶으면 가보구 구경하구 싶은면
구경하구, 쌈
말리구 싶으면 말리구 돌아 다닐 뿐이지요. 다만 살아 가면 고만 아니요.
[시인] 이기주의오 그려.
[비비] 이기주의 ? (깔깔 웃으며)어디서 그런 명사를 집어 넣었소. 허지만난 남을
때릴 줄은 몰라요.
남 때리지만 아니하면 날 모두 친절히 해줍디다.
[시인] 친절 ? 온정이 사람을 멸망케 하는 것이오.
[비비] (좀 냉정하게)당신이 시인인줄 알았더니 시인이 아니라 나운[Noun 명사] 뿐
이오 그려. 나는
시는 모르지만 이 한 말은 당언하겠소. 당신을 괴롭게 하는 것은 운명, 이상, 로맨
스, 의(義)외다.
[시인] 운명을, 이상을, 로맨스를, 의를 잊어 버리는 시인은 개천에나 집어 넣어라
[비비] 사람이란 군두 뛰는 거예요. 중간에 머물러 있지를 못해요. 오거나 가거나
하는 수 밖에는.
당신은 지금 금잔 금빛 술에 취했소. 정신을 번쩍 띄게 냉수 한 그릇을 마셔 보구
[시인] 우리 어머니는 어떻게 하구. 날 낳고도 제일 미워하는 우리 어머니를.
[비비] 어미니는 어머니 아녀요 ? 왜 당신이 될 까닭이 있소 ? 신에 묻은 먼지만큼
도 상관없게 생각
하시구료.
[시인] 어떻게.
[비비] 이기주의랬지 ? 온정이랬지 ? 이름은 무엇이든지 좋소 나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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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으로 어머니는 비엔나에 가 있거나 브다페스트에 가 있거나 브류셀에 가있거나 상
관할게 뭐예요.
어머니 대신에 기숙사. 사랑대신에 시가(cigar)--- 나로 해서는 그러면 고만 아뇨 ?
어머니보다,
가정보다, 기숙사의 생활이 어떻게 자미있다구. 난 오노리아 법률사무서에 들어가서
도 이렇게
지낼테예요.
[시인] 어떻게 ?
[비비] 외출까지도 운동이라는 목적 외엔 아니 하겠소. 노동해서 삯받아 먹어야지.
몸이 피곤해지면
소파에 드러누워서 시가나 피우고 위스키도 좀 마시구. 탐정소설이나 읽구, 야단스
럽고 못 알아들을
음악 회나 전람회 대신에 알기 쉽구 재미 있는 활동사진이나 구경 다니구.
[시인] 기숙사에서만 커는 당신이니까 어려울 것은 없겠지만 난 어떻게 해요.
[비비] 글쎄 나 모양으로 지금이라도 이연(離緣)을 해버려요. 인연을 끊어 버려요.
그러면 날보고
달아나듯이 당신에게 어머니 권리는 못 내두를 테니까. 군두 뛰는 것으로만 알라니
까 그래 !
[시인] 당신은 제법 똑똑하구료.
[비비] 난 똑똑 소리도 안 내요. 남이 알아 주거나 못 알아 주거나 난 단지 내 생활
에만 열중합니다.
그것도 맹물같이 차게.
[시인] 허지만 내게도 그럴 힘이 있을까요.
[비비] 있구 말구요. 곤톱 끊는 것보다두 더 힘없이 어머니와 이연만해 버리면.
[시인] 해 보리다. 허지만 난 시인이예요. 보험통계서는 모릅니다. 양
[페이지] 022
도증서 만들줄도 모르고, 나는 과거를, 꿈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비비] 역시 손톱 끊듯이 끊어 버리시구료. 군두 뛰는 것과 마찬가지라니까.
[시인] 그렇게 될 수만 있으면, 그렇게 될 수만 있으면.
[비비] 자, 날 따라오슈. (Aria 'Caro Nome', allegro로)
[시인] (감동받은 듯이) 아.
(어두워 진다.)
[막] 제3막
해변, 모래밭 위. 별빛. 물결소리. 음침한 바람.
[모] (나오며)비비인가 바본가 웬 양고자년이 나오더니 그애가 일변해 지는구료. 제
어미는 모른
척하구.
[부] (따라나오며)그러기에 여자란 요물야. 동양사람의 창자가 길다니까. 남녀 부동
석이 아니냔
말야. 게다가 웬 서야년이 ?
[제2계모] (따라 나오며)그래도 아버지는 좀 아랑 주지 않하우.
[제3계모] (따라 나오며)원래가 효자의 아들이니까.
[제4계모] (따라 나오며)당신도 참 정신 차려요 !
[신주] (나오며)아들아 ! 며느리들아 !
[페이지] 024
[부] 허지만 내 생전 이야기야. 나 죽은 뒤에 제가 춤을 추든 지랄을 하든 상관 있
소.
[제4계모] 상관하려고 하면 되기나 허구 ?
[신주] 무엇인지 큰일이 생기나 부다. 이 심사 궂은 바람 봐 ! 왜 이리 떨릴까.
[제1계모] (나와서 신주에게)들어 갑시다. 감기 드시는데.
[신주] 난 차마 보지 않겠다. 아. (둘이 나간다.)
[모] (부에게)여보. 그애를 어데게든지 양고자년한테서 떼어야 하오. 그러지 않으면
끝이 어떻게
될지 누가 아우.
[제4계모] 에구 별 소리를. 어떻게 한 번 맘에 든 것을 잡아 뗀단 말예요.
[부] 뗄려고만 하면 왜 못해 ! 허지만 가만 뒤요. 기다리고 있으면 자연히 동양성현
의 가르침에
굻고할 때가 있지 ! (돌아 선다.)
[모] 옛, 당신도 참 ! 손톱 밑에 가시 드는 줄은 알고 염총에 쇠 쓰는 줄은 모르는
격이오 그려 !
[제3계모] 가만둬요. 다 제때가 있는 것이지. (나가며)난 빨래하다 둔 것이 있으니
까.
[제2계모] 그대로 둬요. 다 제 속이 있겠지. (나가며) 난 간장 담다가 둔 것이 있으
니까.
[제4계모] 자 들어갑시다. 감기 드시는데. (나가며) 아이고 이 몸이 언제나 편해질
까. 사나운 팔자.
[모] (부에게)이것 보셔요. 이번은 금잔 술도 소용 없는가 봐요.
[부] 그러기에 내 생전뿐이랬지. 내 생전 ! 알아 듣겠나 ? (모와 부 나간다.)
[페이지] 025
[이복제] (나오며)형님. 날 좀 어떻게 해 줘요. 이 가슴을.
[시인] (가슴 터지는 소리로)나는 시인이 아니니 ? 내 시도 수습을 못 하는데. 게다
가 아버지 얼굴
좀 보렴.
[이복제] (시인의 손을 붙잡으며)왜 피려는 꽃을 이렇게 틀어 감아야 합니까. 왜 제
멋대로 크게
가만두지 아니하면 못 됩니까.
[시인] 얘 그리도 너는 피려는 힘이나 있지 ? 또 뿌리에서 물이나 올라오지?
[이복제] 난 힘도 물도 양분도 없어요.
[시인] (냉정하게)그게 무슨 소리니 ? 힘이나 양분이나는 없다고 하자. 그래두 어머
니의 사랑이 있지
않니 ? 맹복적이라고 하지 마라. 사랑에서 힘이 나온다. 사랑은 맹복적이라구 값없
는 것이 아니다.
[이복제] 난 그렇지만 형님 모양으로 희생할 수가 없어요.
[시인] 글쎄 네게는 희생이니 무엇이니 문제가 되지 않는다니까. 이것봐라. 나는 어
머니 얼굴도
모르고 있다. 언제 여름인가. 어머니 생각하고 강가에 앉아 운 일이 있지 ?
[이복제] 저녁때 옛 고향 강가 언덕 위에 앉아서.
[시인] 손은 물에다가 집어 넣고.
[이복제] 먼 나라를 그리워 하면서.
[시인] 어머니 기억이란 다만 상여 떠나는 광경만.
[이복제] 그게 여섯 살 때 아니요 ? 그런데 왜 얼굴을 기억 못 해요 ?
[시인] (아픈 소리로)낳고 제일 미워하든 아들인데 그 어머니가 어떻게 기억에 드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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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제] (알아 차린 듯이)아 어머니의 사랑 !
[시인] 허지만 이것 봐라. 한 번 이렇게 되면 조만간 난항을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된
다.
[이복제] 누군가 말하지 않았소 ? 인생의 바다에는 암초가 둘이 있다구. 하나는 신.
[시인] 하나는 사랑. 그러니까, 조만간 이것에 와 부딪치게 되지.
[이복제] 신은 ?
[시인] 나는 언제까지든지 무신론자다. 비비더러 물어보렴.
[이복제] 사랑은?
[시인] 오, 누가 아니 ! (가슴을 쥐어 뜯으며)오, 누가 아니 ! 왜 이리 아플까.
[이복제] 그것 보슈.
[시인] 그러기에 이리 아픈게지. 하지만 군두 뛰는 것이 인생이란 것을 믿지 않는
것도 아니다.
[이복제] (따사로이)그럴까요 ? (아주 조소적으로) 그러면 왜 그리 가슴이 아픕니
[시인] (달려들어 어린애처럼 매달리며) 오, 이 능구렁이 ! 네 모양으로 길가에 주
은 사탕을 맛있게
먹어질 줄 아니 ! (이복제 달아난다.)
[모] (동댕이쳐져 있는 시인을 붙잡아 일으키며)이게 양고자 짓이니 ? 남 흉내려면
청국 사람 흉내가
났지. 이복제 모양으로.
[페이지] 027
[시인] 그게 무슨 소리예요 ?
[모] 잎이 피어야 꼿이 피지. 더구나 잎도 안 핀데서 씨를 받으려고?
[시인] (벌떡 일어나 냉정하게, 그러나 힘있게)이것도 어머니 짓이오 ? 이까지도.
[모] 죽을 때까지.
[시인] 난 죽긴 일러요. 아직두 내 속에 맥이 뛰구 있어요.
[모] 흥, 의사에게 진단을 받아야 알 일이지.
[시인] (유성[流星]하나.)저것이 뭐예요. 저것이 뭐예요.
[모] 네 운명.
[시인] 오 ! 날 건져 줘요. 더 살구 싶어요.
[모] (웃으며)정말이니 ?
[시인] 난 인생이 군두 뛰는 것인 줄을 알구 싶어요. 난 더 한 번 알구 싶어요.
[모] 또 양고자년 하는 소리로군. 맘대로 해보렴. (나가려 한다.)
[시인] 어머니 말이 아프기는 해두 듣구 싶어요. 더 ! (모, 나간다.)아, 날 미워하
던 어머니까지 !
(멀리서 Caro Nome 소리. 시인 악통과 환희의 기대. 큰 갈레오토 들어온다. 큰 체격
아주 속[俗]다운
의장[儀裝]. 웃는다.)
[페이지] 028
[시인] 당신은 누구요?
[큰갈레오토] (역시 웃으며)나는 당신 어머니 명령으로 왔습니다.
[시인] 어머니 ? 우리 어머니 ?
[큰갈레오토] 당신을 낳고서는 제일 미워 하던 당신 어머니 말예요.
[시인] 흥, 사기가 또 하나 생기겠군.
[큰갈레오토] 공연히 그러지 말아요. 현실이란 것을 미워해서는 안 되오. 당신처럼
똑똑하니까.
[시인] 흥, 확실히 어머니가 보낸 게로군. (미운 듯이) 난 보기 싫소. 나가시오.
[큰갈레오토] 때가 되면 나가지요. 나갔다가 때가 되면 또 들어오지요. (Caro Nome
소리, 점점
가까워지고 커진다.)저 소리를 못 들으슈? 공연히 그러지 말아요. 별이 벌써 떨어졌
는데.
(무대 점점 어두워 진다. 암흑. 동시에 Caro Nome 소리 가까워오면서 무대 일시에
밝아진다. 모래는
차고 공중에는 바다 습기가 차 있다. 여전한 인물.)
[카로노메] (들어온다. 옥색옷으로 바꾸어 입은 비비. 시인에게 달려들어 끌어 안고
나서는 큰
갈레오토에게)왜 속히 소개하지 않았수. 이런 시인을. (시인은 멀거니 섰다.)
[큰갈레오토] 때가 되어야지. 때가 되면 모든 것이 만나지구 이별해지구 낳구 또 죽
어갑니다.
[카로노메] (억찬 조소로)왜 요 모양이야 ! 그 큰 몸뚱이를 해 가지구두
[페이지] 029
입대 그짓 밖에 못 해왔소 ?
[큰갈레오토] (태연스럽게)당신이야말로 왜 이모양이야 ! 나 때문에 만나게 되지 않
았수 ?
[카로노메] (시인에게)날 손 잡아 줘요. 아, 저 녀석 때문에 얼마나 습기 없는 땅에
서 바람을
쐬었든지 ! 난 인제 축축하고 살진 경주유치원에 들었습니다. 언제나 대학까지 마칠
는지.
[시인] (이상스러운 표정으로)당신 여학생이오 ?
[카로노메] (픽 웃으며)날 모르시오? 난 우리 어머니와 인연을 끊고 나왔지만 어두
운 밤중에 촛불
켤줄 이가 있어야지요.
[시인] (달려들어)아, 비비 ! 날 속였던 비비 !
[큰갈레오토] (빙긋 웃으며)때가 왔습니다. 난 나가겠습니다. 그러나 별이 벌써 떠
러진 줄을 잊지
마십쇼. 두분이 다.
[카로노메] (깜짝 놀라며)저게 무슨 소리야 ! 여보, 시인. 난 시를 몰라요. 가르쳐
주세요.
[시인] 몸뚱이는 크지만 하는 말은 다 되잖은 소리뿐이요. 그까짓 것 못 들은 척 하
구료.
[카로노메] (실망하며)못 들은 척해요 ? (시인에게서 떨어져 나오며 섭섭한 듯이)귀
로 한 번 들어온
것을 어떻게 못 들은 척 하란 말예요. 귀는 들으란 귀 아녜요 ?
[시인] (손을 잡으며)비비 ! 왜 이리 가슴이 답답하우. 그까짓 생각은 내 가슴 속에
다가만
넣어두십시오그려. 적어두 당신을 만난 이 순간은.
[카로노메] 허지만 내 귀에는 들리는데 어찌하란 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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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귀보다 가슴을 생각하구료. 참된 가슴 깊은 속을.
[카로노메] 참된 깊은 가슴 속 ?
[시인] 네 언제까든지 유치원에만 있을 수가 있소 ? 또는 오노리아 법률사무소에만
있을 수가 있소 ?
[카로노메] 그게 무슨 말예요.
[시인] 당신은 비비 아뉴 ?
[카로노메] 아녜요. 난 카로노메예요. 아, 그래서 날더러 하는 말이군. 가르쳐주니
고맙소이다.
(냉정히 절한다.)
[시인] (달려들어 껴안으며) 오, 내 카노로메 ! 카로노메 !
[카로노메] (기울어지며)아.
[시인] (뜨거워지며)비비 ! 아니 카로노메 ! 역시 내 카로노메 ! 카로노메 !
[카로노메] (몸을 수습한 후)정신 차리슈. 난 이 때문에 나온 게 아니예요. 난 습기
있는 강 위에서
다시 한 번 커지려고 나온 거예요.
[시인] 그러기에 비비랬지. 아 그러니까 한편으로는 비비두 되구. 또 한편으로는 (
그녀 가까이
들여다보고는) 카로노메.
[카로노메] (한심한 듯이)당신이 없었더면 난 비비가 되지 못했구료. 비비가 있었는
지 몰랐을 걸.
[시인] 또는 내가 당신이 아니었더면 카로노메를 찾고 있었던 것도 몰랐었겠지. 우
리 어머니 미움을
받다 못해서.
[카로노메] 쉿, 저 갈레오토 !
[시인] 무서울 게 뭐예요.
[카로노메] 무서울 건 없지만 귀찮지 않아요 ?
[페이지] 031
[시인] 귀찮다구 숨길 필요가 있소 ?
[카로노메] 필요는 없지요. 그렇지만 그자가 듣기만 하면 (가슴을 쥐며)아, 별이 떨
어졌다구 ! (벌벌
떤다.)
[시인] 그것 보슈. 당신도 괴롭지 않우 ?
[카로노메] (냉정해지며)아녜요. (한참있다가)나는 인제 습기 있는 땅으로 옮겨 심
은 나무예요. 참
양분되는 수기를 마음껏 빨아들여야 해요. 살아야 합니다. 튼튼하게 씩씩하게 살아
야 합니다.
[시인] 아, 그게 비비 말씀이구료. 그리고 또 인생이란 군두 뛰는 것 과도 같다구 ?
[카로노메] 그렇지요.
[시인] (두사람 침묵. 시인 냉정하게)나는 이 자리에서 곧 이지의 승리를 못 믿게
되었습니다.
[카로노메] 그게 무슨 되지 못한 소리요.
[시인] 그러나 사실을 어떻게 하우, 여름에 너무 성했다가 가을에 떨어지는 잎사귀
모양으로. 변할
수 없는 사실을.
[카로노메] 봄이 또 오지 안 하우 ? 나 모양으로.
[시인] 아, 이지의 환멸이라니까---그래도 날 모르시오그려.
[카로노메] (의아롭게)환멸 ?
[시인] (앞을 가리키며)저게 무엇인지 보이시오 ?
[카로노메] 암초
[시인] 그 옆에는 ?
[카로노메] 난파한 조각나무
[시인] 그 밑에는 ?
[페이지] 032
[카로노메] 사람과 재물과, 사람과 희망자, 정인과 구수(仇讐)와. (침묵)
[시인] 그리고 또 ?
[카로노메] (갑자기 시인에게 돌아서서)아, 이게 무슨 꼴이요. 날 이 구경 시키려구
불러냈소 ?
(냉정하게) 고맙습니다.
[시인] 불 안 켜진 등대 때문에 !
[카로노메] 아. (졸지에 떨며 얼굴에 손을 덮고)한편으로는 광명의 신이 날 부르고
앉은 것 같은데.
[시인] 또 한편으로는 암흑의 신이 부르는 소리가 나지 않소 ? 귀 잘 듣는 양반 !
[카로노메] 네. (다시 부르르 떨며) 오.
[시인] 그 오 소리를 난 믿지 못해요. (앞을 가라키며)저 등대 밑에 자빠진 사람은
구원을 받을 길이
없소. 물에 뜬 부표를 보고나니 자꾸만 다른 방향으로만 흘러가는 구려.
[카로노메] (달려들어 손을 잡으며)왜 그래요? 살아야 합니다. 인생이란 군두 뛰는
것과 같습니다.
살아야 합니다.
[시인] 예전에는 원리가 지도해 주었지만 인제는 사실이 끌어냅니다. 그러기에 난파
지요.
[카로노메] 힘써 보셔요. 부표를 잡아야 합니다.
[시인] 당신을 (가슴 터지는 소리로)불가능한 일예요.
[카로노메] 왜 그래요 ?
[시인] 첫째로는 시기가 늦어졌습니다. 때의 관절이 위골이 된 지가 오래였으므로.
[카로노메] 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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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둘째로는 빵 구하는 이에게 돌이요.
[카로노메] 내가 돌이 될까요. 깨물어 보구료.
[시인] 벌써 깨물어 봤소. 그런데 내 말 좀 들어 보슈. 인생이란 군두 뛰는 것인 줄
알았더니 인제
인생이란 <<0>>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달려 들어)아, 카로노메 ! 당신도 당신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줄을 잘 알고 있어요. 습기 있는 땅으로 모종된 것만 꼭 알고 있어요.
[카로노메] 그걸 꼭 믿으셔요 ?
[시인] 지금 이 자리서는. 허지만 인생은 <<0>>니까 내일 일을 어떻게 압니까. 땅은
살진 습지지만
또 무슨 해충이 와 들러 붙을지.
[카로노메] 본래 감추어져 있던 빛이 있습니다. 염려 마셔요. 그것만 믿어 주면 고
만 아녀요 ?
(심문하듯이) 날 믿으셔요.
[시인] 못 믿어요. <<0>>를 어떻게 믿어요. (얼굴을 가린다.)
[카로노메] (한숨)당신 어머니가 밉습니다. 개가 원숭이 미워하듯이 미워합니다. 지
금 그 년이 어디
있소?
[시인] 내 속에. 허지만 만날 필요가 있으면 나오겠지요. 안 부르더라도.
[카로노메] 날 믿어 주시오.
[시인] 무신론자의 별명은 못 믿는 자예요.
[카로노메] (악을 내어)당신 어머니를 만나게 해주.
[시인] 안 됩니다. 적어두 단신과 같이 있을 동안은.
[카로노메] (반가운 듯이)일평생 같이 있어 주구료. 그러면 고만 아니요 ?
[시인] 그럴 수만 있으면 ! 그럴 수만 있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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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로노메] (달려 들어 두 손을 잡으며)그러면 내가 잡고 안 놓아 줄테예요. 일평생
!
[시인] (손을 떨치며)오, 이 찬 손 ! 얼음같이 찬 손 !
[카로노메] 이건 왜 이모양이야 ! 시인은 이런 것이요 ?
[시인] 그러니까 <<0>>랬지. (한참 있다가)당신이 처음으로 당신 어머니 생각을 한
제가 언제요.
[카로노메] 왜 ?
[시인] 뒷담 옆 나무에 구렁이 올라 가는 것을 보았을 때가 아니요 ?
[카로노메] 아 - 냐. 날 다른 이가 남복(男服)시켜서 서당에 보낼 때예요. 성을 감
추려구.
[시인] 기억이 독이오. 당신 어머니인들 우리 어머니와 다를 줄 누가 단언 하겠소.
물결을 보지 말고
그 밑에 모래를 보세요.
[카로노메] 난 출가한 비비예요.
[시인] 그런데 왜 카르노메가 됩니까.
[카로노메] 그건 당신 허물 아녀요 ?
[시인] 우리 어머니 허물야.
[카로노메] 당신은 당신 어머니를 언제 처음 보았소 ?
[시인] 지각없이 껑충거리는 강아지 모양으로 강물에다가 첨지질하고 놀 때 강변가
로 어머니 상여
지나 가는 것을 구경거리로 보았올 때, 모든 운명의 첫 길이 강변가 나 혼자 앉은
앞으로 열리게
되었을 때, 하하하 (졸지에 크게)
[카로노메] 당신 어머니가 밉습니다. 잡아 뜯고 짝짝 줄기를 내어 고랑에다가 집어
던질 만큼
밉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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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순간적으로 커다랗게 웃으며)훌륭하오 ! 훌륭해 ! 언제까지 그렇게 훌륭하
시겠수 ?
[카로노메] 나두 언제까지 그럴 줄은 몰라요. 허지만 죽을 때까지 미워하겠습니다.
당신 어머니를
미워하겠습니다. 내가 살아 있을 동안은 !
(시인, 또 한 번 크게 웃을 때 졸지에 무대가 어두워진다. 그리고 나서는 별빛, 해
랑[海浪]. 멀리
난파선의 소훤요란[騷暄擾亂], 카로노메 소리 Allegro assI 로 섞이여 들린다. 제 1
막 모양으로
발가벗은 시인 혼자 앉아서 놀랄 때, 모.)
[모] 아하하하하. 그러기에 춥거든 내 품 속으로 드렁오랬지.
[시인] (달려들며)어머니 !
[모] 너를 낳고 제일 미워하던 어머니다. 오 아들 !
[시인] 날 데려가슈 ! 속히 !
[모] 때가 왔기에. 아하하하하. 아프지 않니 ?
[시인] 몹시 아파요. 허지만 고추장 같이 달아요.
[모] 약속은 다 끝났다.
[시인] 난파란 것이 이렇게 행복이 됩니까 ?
[모] 아버지 안 보겠니 ? 네 계모들을 ? 네 동생들을 ?
[시인] (밀며)불에 물예요. 날 혼자 빠지게 해주우. 아, 난파란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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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행복이 됩니까? 난파란 것이 이렇게 행복이 됩니까 ?
[모] 약속은 다 끝났다.
[시인] 그리고 카노로메 소리만 ! 카로노메 소리만 !
(더 큰 소요. 카로노메 소리. 별빛까지 사라지며 암흑.)
---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