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소환/벼(쌀)농사
들판을 걸었다. 아직도 걸으면 땀은 나지만 햇볕 따갑기는 덜하다. 들판은 어느새 벼가 고개를 숙이며, 황금빛으로 변해가는 중이다. 하긴 절기를 보면 23일이 추분이고, 다음달 6일이 추석이니 엣풍습에 따르면 햇곡식이 생각날 즈음이다.
올해의 벼작황은 좋아 보인다. 농약과 비료주는 것까지 (공동)기계영농에 의하니, 특별히 모자란 것이 없을 것이다. 다만 예전처럼 사람이 피를 뽑지 않아서 간혹 벼논인지, 피밭인지 구분 어려운 논도 있다. 그런 경우 위탁영농을 하는 농가에선 줄어든 수확을 두고 어떻게 배분을 하는지 모르겠다.
들판엔 공사현장에서 나오는 흙을 실어다 논을 밭으로 형질변경한 곳이 더러 있다. 그러나 말만 밭이지, 그들만의 놀이터가 되거나 황무지로 버려두어 농지가 훼손된 곳이다.
벼(쌀), 우리가 매일 먹고 생명을 유지해 가지만, 우리는 그것에 대한 영농이나 고마움을 생각해본 적이 몇번이나 있을까?
벼를 보면 어린시절 생각이 난다. 작은 논빼미들, 마을 사람들이 품앗이하여 모를 심고, 뜨거운 햇볕아래 김을 매고, 농약을 쳤다. 벼가 자라면 김매기하는 얼굴을 핥키고, 분무기에서 뿜어져 나온 농약 분말은 역바람을 일으켜 얼굴로 날아들면 숨이 막혀 자칫 위험에 빠져든다.
물관리와 참새 쫒기, 그리고 병충해 방제...다행이 가을 태풍을 피하면 그런대로 순탄한 가을 걷이가 되었다.
윤달이 들어 추석에 햇쌀밥을 먹을 수 있을때는 감개무량했다. 말인즉 조상께 제사를 지낸다지만, 없는 살림에 비린내 나는 갈치나 조기 한토막을 겯들여 먹는 맛은 말그대로 꿀맛이었다.
그러나 쌀농사를 지었다하여 여유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으로 자식들 학비며, 제사때의 제수를 사야하고, 아껴서 경조사비로도 충당했다.
보릿고개, 우리나라는 일제 점령기부터 1960년대까지 이어진 한국의 가난과 굶주림, 식량 부족을 상징하는 말로도 쓰였다. 당시 사람들은 보릿고개를 넘기 위해 초근목피(풀뿌리와 나무껍질)로 연명하기도 했다.
보릿고개, 그것은 햇보리가 날 때까지 넘기기 힘든 고개라는 뜻으로, 묵은 곡식은 다 떨어지고 보리는 아직 덜 여물어 식량이 부족하여 지내기가 어려운 상태. 또는, 그 시기. 맥령(麥嶺). 춘궁기(春窮期). 춘황(春荒)이라고도 하였다.
어머니가 아낀 쌀은 보리밥을 지을때 할아버지 할머니 밥그릇에 조금씩 섞었다. 그걸 바라보는 손주들의 눈초리, 할아버지 할머니는 차마 그 밥을 다 드시지 못하여 남기셨고, 당연히 손주들 차지가 되었다.
당시 농촌 현실은 여느 가정이든 생활이 어려우니 상급학교를 진학 하는 것은 다른 형제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결과였다. 결국엔 장남과 아들 우선, 가족애가 약한(? ㅎㅎ) 형제가 책보따리를 짊어졌다.
나는 중학교에 들어가자 어머니가 싸주시는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기가 죄스러웠다. 없는 형편에 매일 도시락 반찬을 만들어 내시는 것도 힘드실 것이라 생각했다.
다음부터 도시락 싸주시는 것을 안가져 가겠다하고, 점심시간엔 도서관으로 올라갔다. 그해말 나는 도서관에서 책을 제일 많이 읽었다며 다독상을 받았다.
배고픈 보릿고개, 다시 그 보릿고개가 닥쳐온다해도, 나는 세끼 밥만 먹어도 행복을 느껴야겠다고 다짐을 해본다.
내가 예전에 알고 있었던 벼품종은 농림6호(농육), 통일벼, 아끼바리였다. 그러나 농림6호는 품종개량에 실패를 하였는지, 지금은 근거를 찾아보기 어렵다. 나의 기억으론 분명 키가 크고, 이삭도 컸으나 태풍 등으로 도복(쓰러짐)이 심했다.
키가 작고 다수확 품종인 통일벼의 개발자는 육종학자인 허문회 교수이다. 그는 1964년 국제미작연구소(IRRI)에서 연구를 시작해 1971년 통일벼 품종을 완성했으며, 통일벼의 개발은 굶주렸던 한국의 쌀 자급자족을 달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아끼바리'는 일본쌀의 한 품종인 아키바레(秋晴, 추청벼)를 한국식으로 부르는 이름으로, 1960년대에 국내에 도입되어 수도권과 중부지방에서 널리 재배되었다. 고슬고슬한 식감과 밥맛이 좋아 오랫동안 밥맛 좋은 쌀의 대명사로 알려졌으나, 현재는 '추청'이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고, 해들·알찬미 등 국산 품종으로 대체되고 있다.
벼의 기원은 여러 학설이 존재하며, 가장 오래된 벼로 알려진 청주 소로리 볍씨가 발견되면서 한반도 기원설이 주목받고 있다. 과거에는 인도의 북동부와 중국 윈난 지방을 벼의 원산지로 보았으나, 소로리 볍씨의 발견으로 인해 기원전 12,000년~17,000년 전 한반도에서 단립종 벼 재배가 시작되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벼는 적절한 온도(이앙~분얼기 25~31℃, 이삭 팰 때 30~33℃), 물(전 생육기간 담수), 일사량, 적절한 양분 공급, 그리고 병해충 없는 환경이 필요한 작물이다. 특히 생육 단계별로 요구되는 조건이 다르며, 고온이나 저온, 가뭄, 과습 등 환경 스트레스에 매우 민감하여 생육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한국 벼품종은 수확시기에 따라 조생종, 중생종, 중만생종으로 나누고, 대표적인 품종으로는 새청무, 삼광, 영호진미, 신동진, 추청(아끼바레) 등이 있으며, 최근에는 '새청무'가 가장 많이 재배되고 있다. 벼 품종은 밥맛, 품질, 수량성, 재배 지역 등에 따라 특성이 다르며, 생산자와 소비자는 이러한 특성을 고려하여 품종을 선택한다.
벼의 생육 기간은 품종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120일에서 180일(약 4~6개월) 정도 소요되며, 조생종은 짧고 만생종은 길다. 벼의 생육 기간은 발아부터 성숙까지의 전체 기간을 의미하며, 품종, 재배 환경 등 여러 요인에 따라 달라진다.
2024년 우리나라 쌀(벼) 생산량은 최종 집계 결과 358만 5천 톤으로, 2023년(370만 2천 톤)보다 3.2% 감소했다. 이는 벼 재배 면적이 1975년 통계 작성 이래 역대 최소를 기록했고, 병충해 피해도 영향을 미친 결과이며, 쌀 생산량은 2021년 이후 3년 연속 감소하는 추세이다.
2024년 우리나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55.8kg으로, 전년 대비 1.1% 감소하며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는 1990년대 소비량의 절반 수준으로, 식생활의 서구화와 대체 식품 소비 증가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쌀을 원료로 사용하는 사업체 부문의 쌀 소비량은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