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갈피나무속 식물은 동아시아에 주로 분포하는 식물로 전 세계에는 약 35종류가, 한국엔 5종류가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중 제주에는 섬오갈피나무와 지리산오갈피나무가 분포한다. 특히 지리산오갈피나무는 약용의 자원식물, 한국 특산식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식물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리산오갈피나무가 기록된 역사에는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이름이 '한라산오갈피나무'가 될 수도 있었다는 점이다. 과연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을까?
지리산오갈피나무는 1924년 일본인 식물학자인 나카이 박사에 의해 아칸토파낙스 지리산엔시스(Acanthopanax chiisanensis Nakai)로 학명이 붙여지며 세상에 처음 알려지게 되었다. 학명에 사용된 '지리산엔시스'는 '지리산에 분포한다'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세상에 처음 밝혀지는 식물이 학명을 취득하게 될 경우에는 반드시 그 식물의 모습과 성질을 대표할 수 있는 한 장의 표본(정기준표본)을 정하고 제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아울러 참고했던 표본들도 모두 명시하게 된다. 지리산오갈피나무는 어땠을까?
나카이 박사는 지리산오갈피나무를 발표할 때 한 장의 '정기준표본'을 정하지는 않았다. 단지 제시한 관찰표본은 제주도 영실 1000m에서 타케트(Taquet)신부가 채집한 표본( 1908. 8. 17. no. 889), 제주 영실 1000m(Taquet no. 890), 제주 1000m(Taquet no. 5660) 그리고 나카이박사 본인이 지리산에서 1913년 7월 1일 채집한 표본(no. 369)을 제시하고 있다. 사실 제주 한라산에서 먼저 채집됐고 채집된 표본이 더 많은 셈이다. 그런데 왜 '지리산엔시스(chiisanensis)'라고 이름을 지었을까? 필자의 소견으로는 아마 나카이 박사가 직접 채집하며 확인한 지역이 더 각인됐을 것으로 생각된다. 만약 나카이박사가 한라산에서 먼저 채집하였다면 '한라산엔시스(hallasanensis)'로 명명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리산오갈피나무는 한라산의 일부지역에서 위협에 노출되어 단 몇 그루만이 자라고 있다. 오갈피나무속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김철환 박사는 나카이가 신종으로 발표할 때 사용한 표본이 채집된 지역을 특정하며 필자에게 말했다. "과거 백여 년 전에 기록된 식물의 기준표본 채집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종이 얼마나 될까? 현재가 사라지면 역사도 사라지게 된다. 이곳이야말로 식물애호가들의 순례지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