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의 역사는 쓰이는 것보다 지워지지 않게 해야 생명력을 갖는다.
[시민포커스=조한일 기자]
투쟁이다
이소영
대학 가서 뭐 하냐며 책 대신 선택한 기술
허울 좋은 열정페이에 바닥난 통장 잔고
고치고 다시 고쳐도 절망에 찬 이력서
인문학 강좌 찾아가는 백발의 발걸음
편의점에서 혼자 마시는 참이슬에 미니족발
사표를 내던지고 나서 창업센터를 찾는 용기
재래시장 물건값은 절대 깎지 않겠다
갑질하는 기업 제품 결코 사지 않겠다
사소한 투정이 아니다
발버둥이다
고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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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서 보내는데 이력이 나는 세대다. 코로나라는 바이러스가 벌려놓은 빈부 격차와 외풍에도 이 난국에도 흔들리지 않는 계층들의 표정 관리라는 두 가지 현상이 파죽지세로 세상을 덮고 있다. 그 세상을 “살아가는 기술”보다 “살기 위한 기술”을 배워야 하는 삶의 정글에는 ‘열정’이라는 낙인이 찍힌 사람들이 있다. 온 나라가, 전 세계가 축제에 빠져 노점상들, 가난한 자들을 커튼 뒤로 몰아넣었던 88 서울올림픽이 열린 해에 시작된 신종 백신 ‘최저임금. 지금은 부작용도 생겼지만, 그보다 더한 치명적인 ‘열정페이’라는 돌연변이가 생겼다.
청년들은 신대륙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무슨 돈이냐?” 청년들의 노동이 착취되는 일터에서 구대륙 정복자들이 신대륙을 착취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이 신대륙은 15세기 말에 발견된(?) 가짜 신대륙과는 다른 정말 새로 생겨나는 신대륙인 것이다. 어떤 풀과 꽃과 나무가 자라고 어떤 생물들이 “희망에 찰”지 모르는 우리의 희망이다. 착취의 대상이 아니다.
왜 ‘기술’을 그토록 강조하고 “문송합니다”라는 자조적 신조어가 생겨나다 일부 구대륙들은 ‘백발의 발걸음’으로 귀소본능처럼 ‘인문학 강좌’를 찾아가야 하는가? 또 주사酒邪도 받아 줄 사람 없는 ‘혼술’과 ‘창업’이라는 아지랑이에 취해 ‘용기’를 내야 하는가?
시인이 ‘재래시장 물건 값은 절대 깎지 않겠다’로 표현한 청년들의 노동에 대한 대가를 기어코 깎고야 마는 칼 쥔 자들, 갑질하는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은 수없이 있었지만 “세월이 약”이라는 처방전도 없이 남발되는 자가 투약으로 시간이 흐르면 잊히는 것을 수없이 보아왔다. 칼 쥔 자가 무작정 칼을 뽑지 못하도록 칼집이라도 ‘발버둥’ 치며 붙들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투쟁이다.
투쟁의 역사는 쓰이는 것보다 지워지지 않게 해야 생명력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