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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의 다섯 번째 멤버, 필리핀
"미합중국 정부는 필리핀 제도 내 어떠한 군사적 또는 비군사적 개입에도 책임이 없었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임을 이 자리에서 천명합니다."
- 미합중국 제34대 대통령 토머스 E. 듀이, 1950년 연두교서 연설 中.
다른 가맹국들과 달리 필리핀은 1943년 2월 5일 미국의 급작스런 조치로 인해 독립한 뒤 범아연합에 가입하는 수순을 밟았다. 전후 미군이 최종적으로 철수하면서 정권을 잡은 크리산토 에반겔리스타의 필리핀 사회협동당과 그 무장조직인 후크발라합(Hukbalahap)은 무상몰수-분배에 기반한 급진적 토지개혁안, 그리고 국가주도의 산업육성안을 내세웠다.
그러나 구 지배층인 지식인들(일루스트라도스), 대지주들, 그리고 친미 군벌들의 저항 역시 만만치 않았다. 1946년 필리핀은 사실상의 내전 상태에 빠져들었으며, 범아연합에 도움을 청했다. 이후 4년간 벌어진 일련의 사태는 사실상 범아와 미국의 대리전처럼 진행되었고, 듀이 대통령이 지원중단을 선언한 1950년에 이르러서야 일단락되었다. 반공전선의 지도자 중 한명인 라몬 막사이사이가 전향한 것은 전세가 기울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사태 중 병사한 에반겔리스타의 후임으로 비센테 라바 박사가 필리핀 협동공화국의 주석직에 올랐고, 루이스 타룩, 후안 펠레오, 라몬 막사이사이 역시 토지개혁의 완수와 산업화에 각각 배당되었다.
이 과정에서 필리핀 협동공화국이 사실상 범아연합 원년 4개국, 특히 만주의 체제를 벤치마킹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초대 국가주석 비센테 라바는 부숙경 의장을 수 차례 초청해 국가운영방침에 대한 고견을 나누기도 했다. 1950년대 말부터 원년 4개국 및 태평양 도서정부들의 연방 통합안이 논의될 무렵, 정권을 넘겨받은 라몬 막사이사이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연방에 초대받아야 한다”는 지상목표를 세우고 적극적 행보에 들어갔다. 에스페란토어의 교육강화, 해군력 양성 등은 모두 이 시기에 이루어진 것.
결국 1962년 10월 1일 범아시아협동주의공화국연방(PACF)이 출범할 때, 필리핀 역시 그 일원으로 참가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현재 필리핀 지역의 소득수준은 조선이나 일본 등에 비해 낮은 수준이지만, 점점 격차가 좁아지고 있으며 발전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알려져 있다.
특별 기고: 누산타라의 경제발전과 리콴유 노선
“우리는 재판 없이도 사람들을 단속할 수 있어야 한다. 무정부주의자든, 맹목적 애국주의자든, 종교적 극단주의자든. 이를 해내지 못하면 국가는 파멸에 이를 것이다."
- 리콴유, 1972년 12월 7일 방콕 범아연합의회 연설에서.
수카르노, 툰쿠 압둘 라만에 이어 누산타라 협동주의 공화국 연방의 제3대(1962~1990) 국가주석을 지낸 리콴유는 누산타라를 넘어 범아시아연합 전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정치가였다. 국가주석직에서 은퇴하고 나서도 선임장관, 연방대표회의(상원)의원 등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그는 “기술협동주의Techno-Cooperatism”라는 새로운 분파의 국가체제를 축조한 장본인이다. 만민의 상생과 복지를 추구했던 기존 “판차실라 노농협동당”의 노선에서 과감히 이탈한 리콴유는 “모든 이가 동등한 자원투입과 복리를 누리는 것은 사회 전체의 낭비”라고 주장해 취임 직후부터 대단한 논란을 빚었으며, 일본의 정치가이자 범아연방의 법무장관을 지낸 ‘시나 에쓰사부로’로부터 ‘가네다주의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명암이 극명히 갈리는 통치방식에도 불구하고, 누산타라 연방이 리콴유 재임시기를 기점으로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루었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는 없다. 몇몇 비판자들은 그러한 성과가 수카르노-라만 시기의 제반정책에 근거한 것이며 리콴유는 그저 ‘과실을 따먹은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나, 이를 입증할 방법은 전무하다.
리콴유가 주장한 “기술협동주의”는 언제나 ‘최대의 효율, 최적의 환경을 조성할 능력이 있는 엘리트’의 양성을 국가의 최우선과제로 삼는다는 특징이 있다. 그 예로 누산타라 전역에는 마치 프랑스의 그랑제콜(Grande École)을 연상케 하는 국책 엘리트 교육기관들이 존재하며, 이 기관들은 3년에 한번씩 엄격한 정기심사를 통해 실제로 탈락 및 승격된다. 연방 내 모든 학력지표는 오로지 상위 10%의 성과가 어떠했는 지에만 치중되어 관리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이러한 ‘과학적 관리체계’를 유지할 엘리트의 충원은 국가의 지상과제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또한 리콴유는 일찍이부터 정보통신기술에 지대한 관심을 쏟고, 이 분야의 최선두주자인 범아연방과의 밀접한 산학협력을 주도했다. 크고작은 무수한 섬으로 구성된 누산타라 연방의 특성 상 그 특유의 사회통할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정보처리기술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1978년 출범한 ‘국가통합신경망(NINA)’은 원시적인 형태로나마 각 지역의 행정, 산업, 사법 데이터를 중앙에 연계시키는 데 성공했고, 이후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은 그 흐름을 더욱 가속시켰다.
비록 리콴유주의는 2000년대 들어 ‘낡은 것’, ‘개혁의 대상’ 심할 경우 ‘적폐’라는 취급을 받으며 예전의 위상을 잃었지만, 시스템 자체를 갈아엎는 수준의 개혁은 그 누구도 시도할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리콴유는 퇴임 직전 차후 국가주석의 임기를 7년 단임으로 못박아두었고, 이는 이미 뿌리박힌 체제를 뒤엎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설령 시간이 주어졌더라도 더 나은 대안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 지 역시 의문이다. 19년형 바이러스성급성호흡기증후군, 소위 ‘코로나-19’ 판데믹의 확산 당시 누산타라의 국가시스템은 전 인민을 손톱보다도 더 작은 하나의 IC칩으로 관리, 동선을 추적하고 감염원을 확인해 즉각 봉쇄 및 격리조치를 가해 범아연방이나 중화민국 등에 비해 효과적인 대처를 가능케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리콴유에 비판적 입장을 견지해온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전 국가주석, 그리고 안와르 이브라힘 현 국가주석 역시 “그의 통치를 비판할지언정 시스템 자체를 비판할 수는 없다”는 말을 남길 정도였다.
기술협동주의는 범아연방, 특히 1960년대부터 70년대 일본과 조선에서 테크노크라시의 대두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반대파들의 지속적인 견제에도 불구하고 중심인물인 이케다 하야토, 가야 오키노리, 최규하, 노신영 등은 끊임없이 ‘행정중심국가’에 대한 선호를 피력한 바 있으며, 이는 실제로도 정책에 적지않게 반영되었다. ‘과학 컬트’의 과도한 입지상승을 억제하고자 한 다나카 가쿠에이 혁명수호청장의 견제로 그 붐이 오래 가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내년은 리콴유 주석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건전하고 활기찬 누산타라 연방의 인민이라면 이 해를 기점으로 삶의 변화를 기획해보는 것은 어떨까?
특별기고자 : 조코 위도도 과학적사회주의협회 이사.
비운의 함선, "가오슝급 미사일순양함"
개요
1956년 설계를 시작해 수 차례의 설계변경을 거치며 1977년 진수, 1979년부터 취역한 ‘가오슝급 미사일순양함’은 연방해군의 흑역사이자 ‘내놓은 자식’으로 기억된다. 다사다난한 “부산함 스캔들”이 육해군의 대규모 구조조정과 내부개혁으로 마무리되고 난 뒤, 자존심에 상당한 스크래치를 입게 된 연방해군에서는 절치부심하여 신시대 방공구축함 개발사업, 이른바 P호 군함 사업을 시작하였다.
함선의 초기 컨셉은 세계 최초의 슈퍼캐리어이자 1950년대 당시 미 해군의 상징이었던 포레스탈급 항공모함과 그에 따른 해상 방공 부문의 취약성을 보완하기 위한 방공구축함이었다. 5인치 함포 2문, 적절한 대공화력, 2연장 2기의 어뢰발사관 등을 갖춘 4,000톤 급의 이 초기설계는 35노트의 준수한 항행속도와 적절한 건조비용을 통해 함대 방공망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장대한 삽질의 시작
그러나 1958년 미 해군이 그간 기밀로 취급하던 ‘노틸러스 원자력잠수함’을 공개하자 해군 수뇌부는 비상 논의를 거쳐 이 방공구축함의 대잠능력을 신장해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어뢰발사관이 강화되고, 그것도 모자라 LH-5 청설모 대잠헬기 2대를 이착륙할 수 있는 헬리패드가 추가되었다. 6,000톤급의 중-대형 구축함이 된 것이다.
이대로 기공이 이루어지려나 싶던 때, 또 다시 비상사태가 발생했다. 1961년, 당시만 해도 친소 사회주의 정권이었던 바디아 공화국군이 동지중해에서 소련제 테르밋 대함미사일로 이집트 협동공화국의 구축함 ‘엘 알라메인’을 격침한 이른바 “엘 알라메인 쇼크”가 일어난 것이었다. 엘 알라메인 호는 본래 연합함대의 아카즈키급 7번함인 ‘시모츠키’였기에, 이것이 연방해군에게 주는 충격은 더욱 컸다. 또 소집된 비상회의에서는 놀랍게도 P호 구축함에 ‘더 강력한 미사일화력’을 곁들이자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렝교 함대지/함대함미사일을 설치하기 위한 공간, 그리고 더 강화된 화력을 뒷받침하기 위한 부무장이 추가, 함선의 규모는 8,500톤으로 증가하였다.
세 번째 설계변경은 “동맹의 역전” 사건이 벌어진 후 소련의 신예 순양함인 “카라급”에 대한 대응으로, 대공미사일과 대함미사일 발사관을 더욱 늘리고 그에 맞춰 엔진 역시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3년 뒤인 1969년 미 해군에서 10만톤급 이상의 원자력추진 슈퍼캐리어(니미츠급)를 건조중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수뇌부에 의해 벌써 네 번째 설계변경이 발생했다.
P호 구축함, 아니, P호 순양함이 이처럼 해군 수뇌부의 맛집이 되자 공군과 해병대 등에서도 ‘자문’을 명목으로 설계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미국과의 유사사태에서 괌, 웨이크 섬, 피지 등 도서지역에 대한 상륙전을 도울 명목으로 함대지화력을 강화하자는 제안, 이왕 헬리패드를 달았으니 A-18 수직이착륙 공격기를 이륙시킬 수 있게 하자던 공군의 제안 등… 물론 후자는 “그런 미친 짓은 절대 안된다”는 타카기 소키치 사령장관의 마지막 양심에 의해 공격헬기용 헬리패드 추가로 마무리되긴 했으나, 함선의 규모는 이미 16,000톤에 육박하게 된 이후였다.
신시대 해군의 상징에서 해군의 역적으로
이후 대잠/대함/대공 레이더의 업그레이드 등 사소한(?) 설계변경들을 거쳐 1977년 정식 기공한 P호 순양함에는 무려 “야마모토 후네스키급 미사일순양함”이라는 이름이 붙을 예정이었다. 이미 은퇴한 지 20년이 넘어 자서전 집필 등에 시간을 할애하던 야마모토 후네스키 원수는 경천동지하여 즉시 해군본부로 출동, “명명을 취소하지 않는다면 이 자리에서 내 X을 잘라버리겠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함선에 백화점을 차리다니, 며느리가 5시쯤 키즈카페에서 손주를 데려가면 되겠다”는 조롱 역시 덧붙여졌다.
결국 1979년 취역한 ‘가오슝급 미사일순양함’은 원래 12척의 건조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결론적으로 1번함 가오슝과 2번함 세부까지만 건조되고 전량 취소되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고 만다. 이 함선의 함포와 함대지미사일로 상륙지원을 하느니 차라리 항모에서 함재기를 하나라도 더 발진시켜 항공지원을 하는 편이 나았고, 대잠헬기를 이함시킬 거라면 역시 항모에서 이함시키는 게 백배 나았으며, 그렇다고 함대함 미사일전을 주력으로 삼기에는 딱히 그에 특화된 것도 아니었다. 그나마 쓸만하다고 여겨졌던 방공시스템은 타이콘데로가급 이지스순양함이 출현하며 완전히 구식이 되었으니, 가오슝급은 그야말로 연방해군의 계륵이자 ‘검은 양’이 되고야 말았다. 결국 손원일급 구축함에 의해 완전히 대체된 가오슝급은 기껏해야 견학용으로만 활용되다 1987년 연습함으로 전환되어 쓸쓸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한 가지 또 놀라운 것은 1975년 이 함선을 원자력추진 순양함(???)으로 개조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1986년 연방의회 해군 청문회에서 사민당 가이에다 반리 의원에 의해 공개되어 파문을 남겼다.
가오슝급 2척이 1992년 최종적으로 스크랩되고 나서, 야마모토 후네스키 제독은 다음과 같은 감상평을 남겼다고 한다.
“3개의 유방과 4짝의 엉덩이도 모자라 (검열)과 (검열)을 모두 달아놓은 흉측한 후타(검열) 괴물. 이 함선같지도 않은 함선에 이름이 붙여진 가오슝 시민들께 심심한 위로를 표함!”
첫댓글 이거 이미 본건데.
그런데 카라급만 있고 왜 뜨노급은 없나요?
보기 편하시라고 정리해서 올린 건데 중복이라 많이 불편하신건가요?
@E.E.샤츠슈나이더 아뇨? 그건 아니고 이미 본거라고 말한것 뿐이에요.
@카라멜 마끼아또 맥락없이 "이미 본거다"라고만 다시면 "새 글 떠서 보러 왔더니 왜 중복이냐"고 따지는 의미로 오해할 수밖에 없을 것 같네요...
@E.E.샤츠슈나이더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죄송합니다.
@카라멜 마끼아또 제가 봐도 따지는걸로 보이는...
진행자이실땐 조심하셔야...
가네다...보고있나...
자네를 능가하는 천재가 저기 있네...
이미지가 슬라바급이네요 ㅋㅋ
실제로 소련의 킨다급이나 미국의 몇몇 순양함은 균형이 안 맞아서(...) 문제가 많았다고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