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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1. 울산두레교회 주일예배
좋은 선택이 모여서(살전 5:16-22)
어느 나라든지 왕궁에는 좋은 것들만 모여 있습니다. 왕궁에는 세숫대야 하나까지도 문화재입니다. 거기에는 좋은 것만 모여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쓰레기장에는 어디를 뒤져봐도 쓰레기밖에 없습니다. 쓸만한 것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삶도 좋은 것만 모아서 있으면 왕궁과 같이 되고, 버려야 할 것만 모아서 있으면 쓰레기장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들이 원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11) 하나님께서 주시는 좋은 것들을 잘 모아서 살아가는 것이 복된 삶을 살아가는 비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좋은 것이고 무엇이 나쁜 것인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잘 한 일보다 못한 일을 더 많이 떠올리면서 살아간다면, 고마운 일보다 서운한 일을 더 많이 마음에 담아 두고 있다면, 좋은 말과 축복의 언어보다는 나쁜 말과 원망의 말들을 더 마음에 담아두고 있다면, 선한 일을 행하기보다 악한 일에 참여하고 있다면 우리의 삶은 좋은 것을 선택한 것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좋은 것을 다 빼버리고 나면 나쁜 것만 남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좋은 것만 선택한다면 나쁜 것이 들어올 틈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함께 읽은 말씀에서 이렇게 전합니다.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21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전해주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받드는 삶은 좋은 것을 취하고 나쁜 것을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는 것을 선택하는 삶입니다. 복음서를 볼 때, 마르다와 마리아 자매는 예수님을 집으로 초청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각자가 좋아 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마르다는 음식을 정성껏 준비하여 예수님을 섬기고, 마리아는 예수님 발 앞에서 그의 말씀을 경청했습니다. 두 사람 다 자신이 선택한 좋은 것에 집중하고 있을 때에는 기쁨이 있었고 만족하였으며 행복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을 정성껏 대접하고 있던 마르다는 마리아를 보는 순간 속이 상했습니다.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예수님 마리아에게 저 좀 도와주라고 하세요.” 그러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이와 같이 주님의 마음은 우리가 좋은 편을 선택하고, 그 선택한 것에 만족하며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십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의 삶에 주어진 모든 것들 가운데 좋은 것을 선택할 줄 아는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좋은 것을 선택하고 나쁜 것은 하나 둘씩 정리하여 내다 버리는 가운데 우리의 삶이 아름답고 선한 것으로 가득 채워지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와 같이 살아가려면 우리는 무엇이 좋은 것인지를 아는 깨달음과 분별이 있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좋은 것을 붙들고 놓지 않으려는 의지도 있어야 합니다. 특별히 오늘 함께 읽은 말씀에서는 좋은 것을 선택하는 길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으로 좋은 것을 분별하고 선택하는 도움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1) 항상 기뻐하라.
사람의 감정 가운데는 좋은 감정과 나쁜 감정이 있습니다. 좋은 감정에 사로잡히면 기분이 좋다고 하고, 나쁜 감정에 사로잡히면 기분이 나쁘다고 합니다. 좋은 감정은 만족함, 안심, 친근함, 신뢰감, 확신과 같은 것입니다. 반면에 나쁜 감정은 분노, 미움, 원망, 시기, 멸시, 창피함, 모욕감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쁨은 좋은 감정가운데 최고입니다. 모든 좋은 감정은 기쁨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안 좋은 감정이 기쁨과 연결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좋고 기쁜 것은 있어도 화가 나는데 기쁜 것은 없습니다. 인정받는 것 같아서 기쁜 것은 있는데 창피하면서 기쁜 것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루를 지나는 동안에도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수많은 감정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이 한 시간 동안에도 좋은 감정과 나쁜 감정들이 왔다 갔다 합니다. 그런데 함께 읽은 말씀에서는 “항상 기뻐하라”(16절)고 하였습니다. 항상 좋은 감정을 가지라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좋은 감정에 집중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감정은 우리의 얼과 관련이 있습니다. 영혼과 연관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영혼이 나타난 모습을 얼굴이라고 합니다. 얼굴이 밝으면 영혼도 밝고, 얼굴이 상해 있으면 영혼도 상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의 얼, 영혼은 얼굴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사십일 동안을 함께 할 때 모세의 얼굴에서 빛이 났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스데반 집사가 순교하기 전 유대인들의 공회에서 심문을 받을 때였습니다. “사람들이 주목하여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더라.”(사도행전 6:15)고 말씀합니다. 믿음은 우리의 영혼을 통하여 감정을 다스리게 되고 우리 속에 있는 감정은 얼굴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좋은 감정을 품고 살면 얼굴빛이 밝아집니다. 그것은 기쁨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 가운데 기뻐 할 수 있는 조건을 찾고,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가장 큰 기쁨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기쁨은 세상에게 얻는 기쁨과 비교 할 수 없는 참된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항상 기뻐하는 삶의 비결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삶입니다. 시 17:15절에서 말씀합니다.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뵈오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시편 17:15) 또 시 31:16절에서 말씀합니다.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추시고 주의 사랑하심으로 나를 구원하소서.”(시편 31:16) 주님의 얼굴은 시적인 표현입니다. 그것은 주님과 가까이 지내는 삶을 말합니다. 우리의 삶이 주님을 등지지 않는 모습을 말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향한 얼굴을 돌리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모세와 같이 변화산의 예수님처럼, 스데반집사처럼 우리의 얼굴이 주님을 아는 빛으로 충만해지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얼굴에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가득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은혜, 성령의 충만하심을 생각하는 기쁨이 항상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과 가까이 지내는 삶에 이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가까이 지내는 사람의 영혼이 가지는 충만한 기쁨이 얼굴로 나타나는 복된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2) 쉬지 말고 기도하라.
17절에서 “쉬지말고 기도하라”(17절)고 말씀했습니다. 기쁨도 선택하는 것이지만, 기도하는 삶을 사는 것도 선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 종일 기도하면서 살수도 있고 하루 종일 기도 없이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떤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에 기도하면서 헤쳐 나올 수도 있고 기도하지 않고도 해결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 안에 있으려는 의식적인 행동입니다. 좋은 사람을 가까이 할 때 내게도 좋은 일이 있듯이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우리들의 일생에 얼마나 복된 일인지는 설명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그러므로 약 4:8에서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야고보서 4:8)고 말씀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있는 길입니다. 우리들은 항상 기도함으로써 언제나 하나님 가까이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일 분 간 15-20번 숨을 쉽니다. 운동을 할 때에는 호흡수가 더 증가하기도 합니다.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살아 있는 사람은 호흡을 중단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라고 말합니다. 기도의 횟수가 적어지면 영혼의 활동은 둔해지고, 기도의 횟수가 증가하면 영혼은 더욱 활발하게 움직입니다. 기도를 멈추면 영혼은 깨어 날수 없는 깊은 잠에 빠져들기도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육신이 잠을 자고 쉴 때에도 숨을 쉬는 것은 멈추지 않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은 육신의 호흡이 그런 것처럼 영혼의 숨을 멈추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은 무슨 일을 하든지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에도, 길을 갈 때에도, 운전할 때에도, 물건을 사거나 팔 때에도, 바쁜 일을 할 때에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능력과 지혜로 도와주시기를 바라면서 하는 것입니다.
두 나무꾼이 열심히 나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은 쉬지도 않고 나무를 했고, 다른 한 사람은 중간 중간에 쉬어 가면서 나무를 했습니다. 계산상으로는 쉬지도 않고 나무를 한 사람이 더 많은 나무를 베었을 것 같은데 놀랍게도 쉬어 가면서 나무를 한 사람이 더 많은 나무를 베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는 때마다 도끼날을 날카롭게 갈아주었기 때문입니다. 쉬지 않고 기도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을 말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더 크게 도약하기 위해서 몸을 수축시키는 것입니다.
사람은 숨을 쉬지 않고도 달리기를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짧은 거리를 달릴 때에만 가능합니다. 오히려 장거리를 경주할 때에는 반드시 규칙적인 호흡을 해야 합니다. 어떤 운동을하는 선수든지 장지구력이 피룡한 운동을 하는 선수들은 모두 호흡법을 훈련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기도하지 않는 삶보다 기도하는 삶에 더욱 힘이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맨 먼저 기도하는 것을 선택하는 삶이되시기 바랍니다. 하루의 시작도, 한 달의 시작도, 일 년의 시작도 기도로 열어 가시기 바랍니다. 기도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더욱 좋은 삶을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3) 범사에 감사하라.
우리들의 삶이 복되려면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트라이 앵글이 갖추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하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 할 수 있어서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18절) 감사하는 삶은 불행 속에서 행복으로 보는 눈을 뜨게 하며, 순간의 행복 속에서 영원한 행복을 발견하게 하는 것입니다. 특히,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보는 것의 전환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사람에게는 보는 습관이 있습니다. 우리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좋은 면보다는 나쁜 면을, 밝은 면 보다는 어두운 면을,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을 더 크게 보는 습관이 들어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모든 일에 감사하는 삶을 선택하면 세상을 보는 눈이 새로워집니다. 어두운 면보다 밝은 면을 보게 됩니다. 악한 사람보다 선한 사람을 보게 되고, 부정적인 조건보다 긍정적인 조건을 보는 안목이 길러지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는 우리들을 긍정적인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고, 희망을 가진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보는 것이 달라지면 삶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사건보다 중요한 것은 해석이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건 때문에 불행에 지는 것이 아니라 사건에 대한 잘못된 해석 때문에 비참해 진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미 일어난 사건들을 돌이킬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사건에 대한 해석뿐입니다. 그때에 그것을 해석하는 관점이 중요한 것입니다. 요셉은 그를 미워해서 팔았던 그의 형제들에 대해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용서를 베풀고 축복을 해주었습니다. 요셉에게는 사건과 해석 사이에 “감사라는 쿠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감사라는 쿠션 - 우리들의 딱딱한 삶에도 감사의 쿠션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겪는 모든 일에 대하여 신앙적인 반응을 하게 해 줍니다. 하나님의 섭리에서 해석하고, 반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감사입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한다는 것은 모든 일을 감사라는 쿠션을 통해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딱딱한 것도 부드럽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요셉처럼 사건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아픔과 고통의 상황 속에서도 도우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힘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좋은 것을 기대하는 데에서 생겨납니다. 삶의 태도와 가치관이,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믿음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환경 속에서도 우리들의 삶을 더욱 힘 있게 할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이야 말로 우리 삶의 큰 힘과 능력입니다. 어떤 조건 속에서도 감사함으로 말미암아 어두움 속에서도 밝은 빛을 가진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새 것과 옛 것,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쌓아두는 집과 같습니다. 좋은 것을 채우면 좋은 집이 되고 나쁜 것을 채우면 나쁜 집이 됩니다. 다람쥐는 밖에 나갔다 들어올대마다 도토리를 물고 들어옵니다. 그래서 다람쥐의 집에는 도토리가 가득합니다. 이처럼 내가 모아두는 것이 우리 집의 모습이며, 나의 삶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입니다. 성령이 머무시는 성전입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항상 좋은 감정으로 가득하고 우리의 얼굴에는 빛이 나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하나님과 친밀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여 힘 있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삶은 하나님이 주신 가장 큰 복입니다. 우리의 삶에는 좋은 것으로 가득 채워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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