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 법주사 인연
-평택 모 건설현장 업무를 무사히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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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다니던 시절 부산에서 수학여행을 온 곳이다. 기억나는 것이라곤 경내에 황금색 치장을 한 금동미륵입상 뿐이다. 그런 법주사를 최근에 자주 방문하게 되었는데, 이번이 세 번째다.
2024년 9월에 시작한 공사 프로젝트가 마침내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퇴근했는데 마침 켜 논 TV에서 속리산 법주사를 보여주고 있었다. 주말이 다음 날이고 별 약속이 없던 난 오랜 공사 현장으로부터 해방감을 맛보고자 아내에게 속리산 법주사행을 타진했는데 바로 ‘좋아’라는 답변을 얻어낸 것이다(아내는 차로 집을 나서는 거라면 웬만하면 ‘좋아’라고 응답한다).
아내는 고향이 안성이라 초등학교 수학여행을 법주사로 왔다고 한다. 매사에 동작이 느린 아내라 이른 아침에 출발하겠다던 계획을 무산시켜 약간 갈등이 생기고 만다. 삐진 채 안방으로 들어간 아내를 얼른 달래 데리고 나와 차에 태운다. 그렇지 않다면 하루 종일 불편한 것은 물론이고 그 화가 풀리려면 또 몇 날이 걸릴 지도 모른다는 것을 이미 살아오면서 충분히 터득한 터라 아내도 못 이긴 채 하며 탑승한다.
두 시간 거리다. 날씨가 연일 무더워 시원한 새벽 시간인 6시에 출발해서 역시 시원한 시간대에 법주사를 방문하고, 빨리 내려와 점심을 집 근처 천안에서 해결하려던 계획이 좌초한 것이지만 아무튼 우리는 해방감 만끽이라는 정서면에서는 이미 충분히 일치한 터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대중가요를 흥겹게 따라 부르기도 하며 즐겁게 내달렸다.
주차장이 문제였다. 속리산에 다가설수록 법주사 입구에 가까운-일전에 사용하고 눈여겨 봐두었던-공원 안내소 주차장을 선점하지 못한다면 걸어서 한참씩 걸어야 하는 공영주차장에 밖에는 달리 주차할 수가 없어 슬슬 고민 아닌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마치 우리의 도착을 기다린 듯 한 자리가 비어있는 게 보인다.
날씨는 어제와 달리, 아니면 속리산 주변이 아침 시간에는 늘 이런 건지 안개가 낀 것처럼 살짝 흐려 걷기에 아주 그만이다. 우리는 마치 젊은 연인처럼 씩씩하고 활기차게 주변 상가들을 구경하며 발걸음을 내지르며 올라간다. 식당들이 문을 열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지만 우리와 달리 여름휴가를 맞아 일찌감치 숙박을 정하고 어젯밤을 가열차게 보낸 여행객들이 하나 둘 아침을 해결하기 위해 걸어나오는 모습도 보기 좋다. 때마침 인공폭포인 듯한 폭포 꼭대기에서 계곡물이 힘차게 굉음을 울리며 세차게 흘러내리는 곳에서 쉼터를 발견한 아내는 배낭에 함께 넣어온 과일을 간식으로 먹고 가자며 조른다.
오케이. 누구 말인데 거스를 것인가. 마마, 당연지사오니 그렇게 하옵소서. 가져간 방울토마토와 복숭아, 참외가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다. 역시 음식은 주변 뷰(View)와 분위기가 한몫을 하는 법이지. 요즘 들어 매사 식욕이 왕성한 아내를 위해 내려오며 갈만한 식당과 음식을 미리 알아보기 위해 마주치는 식당들을 샅샅이 뒤지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음, 저곳에서 산채비빔밥을 먹어야지, 가격은 얼마 정도일까.
두리번거리며 지나가다 보니 어느새 캠핌장과 적당한 폭의 계곡물이 보인다. 벌써 도착한 행락객들이 펼쳐놓은 다양한 텐트와 돗자리가 보이고, 색색깔의 고무 튜브를 몸에 걸친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들이 물에 들어가 ‘캬악’거리며 놀고 있다. 어른들로만 구성된 어떤 팀은 널따랗게 펼쳐 놓은 돗자리에 벌러덩 드러누워 하늘만 쳐다보고 있거나, 준비해간 음식을 펼쳐놓고 ‘먹는 게 남는 것’이라는 신조에 충실하듯 열심히 입을 우적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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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속에 자리한 한국의 모든 사찰이 그러하듯, 절로 올라가는 길은 양편에 울창한 나무로 된 숲이 대부분 자리해 그 사이로 걸어올라 가는 방문객들을 먼발치서 보노라면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이 된다. 우리는 그런 점을 감안해 차량 이동이 많지 않은 점을 눈치껏 파악, 차도를 이용해 걸어 올라가기로 결정한다.
피서는 바다보다 역시 계곡이나 산이라더니 산 정상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여간 시원한 게 아니다. 집에서 더위를 날려주는 에어컨 바람도 이 시원함에는 대적할 수 없을 것 같은 청량감까지 더해진 자연 바람이다.
우람한 일주문을 지나고 사천왕상이 보이자 전에 없이 고개를 숙이고 기도하고픈 마음이 생긴다. 이 곳을 지날 때면 늘 기도를 마다않는 아내를 따라 허리를 숙이고 두 손을 합장한 채 기도를 올린다. 왠지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문득 든 것이다.
속인의 눈에는 만사가 그러하듯 사찰 내에 있는 모든 게 그대로다. ‘금동미륵입상’은 전에 겨울에 왔을 때도 공사 중이더니 여전히 가설펜스가 세워진 채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지 공사 인부로 보이는 두어 명이 뭔가를 짊어지고 입상 주변을 돌고 있다.
늘 그 위용에 감탄이 절로 나는 ‘팔상전’을 올려다보며 그 건재함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지금보다 기술이 다소 떨어지는 그 시대에 저런 웅장하고 높은 건물을 어떻게 완공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져보기도 한다. 일단 가설용 비계를 저 높이만큼 주변에 설치했겠지. 그리고 기중기를 이용하거나 일일이 자재를 비계통로로 어깨나 손을 이용해 직접 들고 날랐을 것이다.
팔상전 뒤편에 자리 잡은 ‘대웅보전’도 그 위용에 있어서는 팔상전 못지않은 중후함을 뿜어낸다. 민간신앙을 끌어들인 ‘산신각’도 보고-아내는 들르는 곳마다 기도를 잊지 않는다(저 사람은 무슨 기도를 하는 걸까). 이미 몇 번을 보았지만 물리지 않는 한국의 아름다운 고건축을 대하듯 겸허한 마음으로 모두를 찬찬히 둘러보고는 조용히 사찰을 빠져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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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요즘 살이 불고 있다. 식욕이 왕성해진 탓이다. 전에 같으면 이왕 이곳까지 왔으니 산채비빔밥이나 산채정식을 먹자고 할 텐데 길을 내려가는 중 중국집이 보이자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배가 고프니 일단 들어가서 아무 거나 먹자며 조른다. 그리고는 들어서자 볶음밥을 시킨다. 기름진 음식이 댕긴 것이다. 주문을 하고 나니 얼굴 표정이 박꽃처럼 환해진다.
주문을 받은 여자는 홀 서빙을 담당하나 했는데, 조금 있다 주방을 돌아보니 보통 중국집 주방장인 남자는 없고 주문을 받은 여자가 열심히 커다란 후라이팬을 꽉 잡은 채 뭔가를 열심히 볶고 있다. 혼자 홀과 주방을 책임지고 있는 듯하다. 하긴 손님도 별로 없으니 혼자 감당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중국집 주방장이 여자라는 사실이 조금 신기하게 느껴진다. TV 프로그램에서 종종 유명한 여자 주방장이 소개되어 알려지긴 했지만, 텃세가 심한 중국집 주방은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여성의 몸으로 쉽게 꿰어찰 수 있는 영역이 아닌 곳이다. 정말 시대가 바뀌려나.
볶음밥을 담은 접시 두 개와 짬뽕 국물을 우리가 앉은 테이블에 내려놓는 것을 보며 말을 걸어 보니 사연이 조금 있다. 원래 사업을 하던 남편이 가산을 탕진하고 먹고살기 위해 속리산으로 들어오며 중국인 주방장을 우연찮게 구하게 되어 중국집을 열었단다. 귀한 주방장이라 월급을 꼬박꼬박 갖다 바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사시사철 계절에 맞는 옷도 사 입혀 가며 비위를 맞추었더란다. 그러면서 손님도 늘고 돈도 벌었다고 하는데, 손님이 많은 날에는 주방이 바빠 할 수 없이 기본적인 요리부터 어깨너머로 배우기 시작한 것이 웬만한 요리를 주방장만큼 만들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세월은 그렇게 흐르고 돈을 만족할 만큼 번 중국인이 귀국을 결정하게 되고만다. 올 것이 왔지만 여주인은 기분 좋게 보내주고 중국인은 집을 나서며 여주인에게 큰 절을 올렸다는 해피엔딩 후일담을 들려주며 사업은 접을 수가 없어 결국 자기가 직접 요리를 하며 운영하게 되었다며 전모를 밝혀준다. 자세히 보니 주인 여자는 체격이 남자만큼 다부지고 덩치도 있는 편이다.
-요즘 손님이 별로 없어 혼자 운영해도 그럭저럭 꾸려가요. 조금 내려가다 보면 중국집이 하나 더 있었는데 그 집은 얼마 전 문을 닫았어요.
세상을 벗어나 부처의 화엄으로 들어온다는 속리산 법주사 주변에 중국집이 있다는 것 자체가 조금 우스운 일이긴 하지만, 아침부터 오르내리며 보니 산채비빔밥을 만들어 파는 사찰 음식점뿐만 아니라, 일식집부터 시작해서 돈까스집, 피자집에 뷔페까지 사바세계의 온갖 음식들을 파는 다양한 가게들도 이색적인 풍경이 이 곳 속리산 법주사 주변에는 연출되고 있다. 종교의 세계화 혹은 이제 종교마저 K-불교가 세계로 뻗어나가려 하는 것인가.
-우리 이곳에 종종 오는데 다음에 언제 올지 모르지만 그때도 다시 찾을 테니 계속 장사하고 계시기 바랍니다.
나오며 인사 같지 않은 인사를 하니 버선발로 뛰어나오듯 따라 나온 여주인이 묻는다.
-어디서 오셨어요.
-천안요.
-그곳 불당동에 우리 친정어머니가 살아요. 이런 인연이.....
그렇다. 이것은 모두 인연이었던 것이다. 어제 퇴근하고부터 지금 이 시간 헤어지는 순간까지 엮어진 모든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