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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매체 읽기
그림책을 공연으로 펼친다 <이야기꾼의 책공연>
박영란
그림책을 공연으로 펼쳐 보여 주는 곳이 있다. ‘이야기꾼의 책공연’(이하 ‘책공연’)이다. 도서관이나 학교, 기업 등에서 아이들을 위한 시간과 장소를 마련해 주면 공연을 펼쳐주는 사회적 기업이다. 아이들을 위한 공연은 유료이든 무료이든 가뭄에 콩 나듯 구경하기 쉽지 않은데 ‘책공연’에서는 다양한 공연이 준비되어 있다. ‘책공연’을 처음 알았을 때 ‘책을 모티브로 창작 공연을 하는 것일까? 책을 그대로 재현하는 공연일까? 책읽기에 흥미를 붙이지 못한 아이들을 위해 가볍고, 쉽게 풀어 보여 주는 공연일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참 재미있겠다, 보고 싶다는 생각이 앞섰다. ‘책공연’ 일정을 알아내 <마쯔와 신기한 돌>, <난 토마토 절대 안먹어>, <어처구니 이야기>를 볼 기회를 얻었다. ‘책공연’은 공연에 앞서 아이들과 몸 푸는 시간을 갖거나 책을 소재로 놀이를 한다. 책공연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지만 아이들을 기쁘게 해주는 것이 ‘책공연’의 근본 생각인 듯싶다. 얼굴에는 함박 미소를 띠고 손을 들어 공연자들이 손가락을 움직이며 “손가락을 꼼지락, 꼼지락” “머리에서 꼼지락, 꼼지락” “코에서 꼼지락 꼼지락” “옆 친구 겨드랑이에서 꼼지락, 꼼지락” 하면 손가락을 움직일 때부터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던 아이들은 ‘겨드랑이’라는 낱말만 듣고도 간지러움을 타는 듯 공연장이 ‘킥킥킥킥 까르르’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찬다. 때로는 율동으로 몸을 푼다. “깊은 산 연못가에 나뭇잎~♬” “깊은 산 연못가에 나뭇잎에 개구리~♬” “깊은 산 연못가에 나뭇잎에 개구리에 배꼽위에 점 하나~♬” 노래와 율동에 낱말이 추가되면서 실수는 폭소가 되고 폭소는 즐거운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실컷 웃고, 떠들고 몸을 움직인 아이들은 마음이 열리고 공연을 즐겁게 볼 준비가 된다. 그때 공연이 시작된다. 먼저 마스쿠스 피트터의 <마쯔와 신기한 돌>을 보면, 무대에는 회색 장막이 드리워져 있고 한쪽에는 음악을 연주하는 피아노와 연주자뿐이다. 아이들을 위한 공연이라기엔 무대가 좀 썰렁한 느낌이 든다. ‘끼룩 끼룩’ 공연자가 갈매기 모양으로 날갯짓을 하며 이쪽으로 저쪽으로 날고, ‘쏴아~ 쏴아~ 철썩’ 하며 아이들이 앉아 있는 곳까지 파도가 밀려온다. 파도는 아이들을 어루만지듯 스치며 다시 밀려 나간다. 아이들이 처음에는 갈매기와 파도를 유심히 바라보기만 하다가 파도가 다시 밀려오고 갈매기가 머리 위로 날기를 반복하자 아이들도 ‘끼룩끼룩, 쏴아, 철썩’ 하면서 호응한다. 이내 어린 관객들이 앉아 있는 곳은 바닷가가 된다. 조금 전의 파도와 갈매기였던 연기자들은 다시 쥐의 모습으로 변신한다. 쥐처럼 살금살금 조용조용 무대 위에 오른다. 두 손을 턱 아래 모은 채 말 대신 “찌지직”으로 대화한다. 네 마리의 쥐들은 먹이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이고 거기서 우스꽝스러운 몸동작을 하면 아이들은 여지없이 폭소를 터뜨린다. 아무런 도구 없이 ‘찌지직’과 얼굴 표정만으로도 배가 고픈지, 먹이를 찾아서 기쁜지, 음식을 나눠 먹는 착한 쥐인지, 심술이 많은 쥐인지 알 수 있다. 쥐들이 행복할 때는 경쾌한 피아노 건반의 울림, 싸움을 할 때는 무겁고 어두운 음악을 즉석에서 연주해 공연 현장의 감동을 더 높여준다.
『마쯔와 신기한 돌』은 받는 것이 있으면 주는 것도 있어야 한다는 기본 도덕을 쉽게 얘기하는 것일 수도 있고, 자연과 동물, 환경, 우주를 생각하는 심오한 책일 수도 있다. 어쩌면 아이들에게는 교훈적이고 감동적이어서 좋은 책일 수도 있지만 읽기에 따라 무거운 책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공연을 먼저 본 아이들이라면 두고두고 마음을 울리는 책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쯔와 신기한 돌』은 소품도 없고 말의 기교도 없는 마임에 가까운 공연이다. 아이들이 보기에는 좀 밋밋하다 싶은 무대였지만 공연 내내 생동감 넘치는 쥐들의 동작과 연기자들의 풍부한 표정이 그 빈 공간을 채우고도 남는 감동적인 공연이다. 『마쯔와 신기한 돌』은 그림책이 무척 특이하다. 책을 펼치면 두 갈래의 글이 나온다. 실재 책도 안에서 둘로 나뉜다. 행복하게 끝나는 이야기와 슬프게 끝나는 이야기. 빛나는 돌멩이를 가져오면 대신 다른 예쁜 돌을 바위섬에 돌려줘 바위섬이 오래 남는다는 이야기와 마쯔가 따뜻하고 빛나는 돌멩이를 찾자 친구 쥐들이 그 돌을 마구 가져와 신기한 돌을 지녔던 바위가 무너지는 내용이다. 책공연에서는 슬프게 끝나는 이야기를 무대에 올려 여운을 남긴다. 공연 끝부분에 연기자들이 아이들에게 묻는다. “바위섬에게 어떤 선물을 할까?” 공연자들의 질문에 아이들은 신이 나서 대답을 한다. 아이들이 공연을 얼마나 즐겼는지 보여 주는 반응이다.
차일드 로렌의 『난 토마토 절대 안 먹어』는 음식에 대해 까다로운 여동생에게 재미난 상상을 통해 음식을 먹게 하는 오빠의 이야기다.
〈난 토마토 절대 안 먹어〉도 무대가 무척 소박해 보였다. 한쪽에 피아노와 연주자 그리고 식탁보에 덮인 탁자가 전부다. 그리고 연두색 옷을 입은 오빠 찰리와 여동생 롤라가 등장한다. 동생은 표정부터 심술궂다. 엄마, 아빠는 오빠에게 동생의 밥을 챙겨 주라는 부탁을 하고 외출했다. 그렇지 않아도 음식 타박이 심한 동생에게 어떻게 밥을 먹일까 오빠는 고민이다. 동생은 당근, 콩 등에 이유를 붙여 먹기를 거부하고 양배추, 버섯뿐만 아니라 스파게티, 소시지 심지어는 바나나, 오렌지, 사과조차도 먹기 싫어하는 거식증 환자 같다. 오빠는 식탁 아래서 동생이 싫어하는 음식 재료들을 꺼내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때부터 음식 재료는 우주로, 산으로, 바닷속으로 여행을 시켜 주는 여행 안내자가 된다. 무대 위의 탁자는 마치 마술사의 보물 상자 같다. 식탁 아래서 온갖 야채와 도구들이 등장하고, 심지어 식탁보는 바다로 둔갑하고, 높은 산꼭대기도 된다. 아무것도 없던 곳에 무엇이 마구 생겨나고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는 마술쇼를 보는 듯한 공연이었다. 『난 토마토 절대 안 먹어』는 갖가지 음식 재료에 스토리를 만들어 읽는 재미가 쏠쏠한데 공연 또한 보는 재미가 좋았다. 박연철의 『어처구니 이야기』는 궁궐 지붕에 잡상(어처구니)이 놓이게 된 유래를 재미있게 이야기해 주는 그림책이다. 『어처구니 이야기』에는 다섯 어처구니와 하늘나라 임금, 손 등 등장인물들이 많은데 공연에 어떻게 올릴지 궁금했다. 〈어처구니 이야기〉 공연은 무대에 올려진 소품만으로도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옛날 한옥의 여닫이문이 나와 있고 거기에 부채, 붓, 새끼줄, 알 수 없는 모양의 탈들이 여럿 매달려 있다. 공연자는 연주자를 포함해서 모두 세 명이 전부다. 그 많은 등장인물들을 어떻게 소화시키려나 했더니 탈이 답이었다. 효율적이면서 재미있는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처구니 다섯이 등장해야 하는 곳에서는 그림자 영상물을 이용하기도 한다.
하늘나라 임금님은 연주자가 면류관과 수염을 달았다 붙였다 하면서 역할을 하고, 어처구니 와 손은 두 공연자가 탈을 바꿔 쓰면서 역할을 한다. 탈모양은 그림책의 그림과 닮았다. 손은 귀면화 모습을 하고 있고, 저팔계는 탈을 연기자의 엉덩이에 붙여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아이들은 여지없이 폭소를 터뜨린다. 붓이 수염으로 쓰이는 것도 재미있다. 두 공연자가 여러 등장인물의 역할을 하다 보니 대사가 많게 느껴지고, 공연의 짜임이 빡빡하고 연기자들이 힘들어 보인다는 느낌도 함께 들었다. 공연을 다 보고 나면 관객도 함께 손을 잡기 위해 숨차게 달려온 기분이 든다. 전통문화에 생소한 아이들에게 어처구니들과 손은 무척 흥미로운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아마도 30분의 짧은 공연이 아쉬워 도서관 문을 나서기 전에 책을 찾아보지 않았을까 싶다.
요즘은 공연도 최첨단을 걷고 있어 볼 때마다 새로운 기술과 무대 장치에 놀라곤 하는데 ‘ 책공연’은 소박하지만 각 그림책의 이미지에 어울리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이는 ‘책공연’내 20대 ~ 50대의 작업자들이 모여 매년 2~3권의 책을 선별해서 팀을 만들어 공동으로 작품을 만드는데 자체 무대 미술, 시각, 영상 작업자들이 있어 소품 개발도 함께한다고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공연은 공연 관련 전문가들, 도서관 사서 선생님, 기획자, 작업자들 앞에서 시연을 하고 객관적인 평을 받는다고 한다. ‘이야기꾼의 책공연’은 아이들이 공연의 매력도 알게 하고 책도 알게 하는 일석이조의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 편의 공연을 보는 내내 나 자신도 어른인 것을 잊고 많이 웃었고, 즐거웠다. 각 공연 모두 다른 스타일과 느낌이 참 좋아 앞으로 <백만번 산 고양이>, <종이 봉지 공주> 같은 공연들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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