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드 톰슨은 캠핑카를 소유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세계 최대 캠핑카 제조업체를 일구어냈다.
캠핑카 하면 뉴욕 맨해튼과는 거리가 멀다. 무게 11t, 전장 12m가 넘는 이동주택을 주차할 공간이나 구입할 만한 연령층도 없다. 웨이드 톰슨(Wade Thompson ·63)이 세계 최대 캠핑카 제조업체 토르 인더스트리스(Thor Industries)를 경영하기 위해 택한 장소가 바로 맨해튼이다. 톰슨은 그랜드 센트럴 역 인근의 한 오피스 빌딩 6층에 위치한 방 3개짜리 사무실에서 일한다.
사무실은 이동주택 에어스트림(Airstream) 사진들로 장식돼 있다. 톰슨은 드넓은 하늘과 황금 들판이 아닌 인파로 북적이는 거리와 깜박이는 교통신호등을 내려다본다. 그는 1977년 캠핑카 제조업체를 처음 인수한 이래 줄곧 생산현장에서 벗어나 근무해온 CEO다. 당시 오하이오주 버틀러에 있는 한 피자 가게 위층의 원룸형 아파트에서 뉴욕을 오가곤 했다.
톰슨에게 별난 점이 또 있다면 캠핑카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탁 트인 도로에서 야외용 접이식 의자까지 뒤에 매단 대형 차량을 운전하는 것은 그의 스타일이 아니다. 전장 3.6m의 개조한 2004년형 미니 쿠퍼(Mini Cooper)를 타고 코네티컷주 니앤틱에 있는 전원주택으로 2시간 질주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톰슨은 지난 20여 년 사이 10개 캠핑카 제조업체를 하나로 통합했다.
토르는 85억 달러 규모의 캠핑카 시장에서 점유율 23%를 기록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캠핑카 수요는 곧 폭증할 것으로 보인다. 노년층으로 탈바꿈하는 미국의 베이비붐 세대 덕이다. 흔히들 걸핏하면 시너지효과 운운하곤 하는데, 톰슨은 좀더 근본적인 원칙을 고수한다. 경쟁과 현금이 바로 그것이다. 그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인수한 기업들은 놀라울 정도로 독립적이다.
원래의 경영진이 개별적으로 운영하며 토르의 다른 사업부들과 경쟁한다. 톰슨은 자신과 비서 한 명뿐인 맨해튼 사무실에서 토르 전체를 지휘한다. 이는 다국적 기업 타이코(Tyco)에서 볼 수 있었던 합병방식과 분명 다른 것이다.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한 마디로 보수다. 토르의 각 사업부 최고 경영진은 해당 부문 세전 수익 중 15%를 가져간다. 제한은 없다.
현장 근로자들은 시간제가 아닌 생산대수에 따라 보수를 받는다. “모든 경영진이 토르를 자신의 통제 아래 놓인 자신의 기업으로 생각했으면 좋겠다. 실적이 안 좋으면 보수도 적다. 반면 실적이 좋으면 보수에 상한선은 없다.” 톰슨이 들려준 말이다.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따르면 지난해 토르 계열사 경영자 6명이 톰슨보다 많은 보수를 받았다. 지난해 톰슨은 110만 달러를 벌었다. 그의 3배나 되는 보수를 챙긴 경영자도 몇몇 있었다. 톰슨은 “토르에서 누군가 1년에 500만 달러를 벌었다면 정말 기쁜 일”이라며 “보수는 경영실적을 바탕으로 지급된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실이다. 톰슨이 보유하고 있는 토르 지분 31%는 5억1,500만 달러에 상당한다. 토르 주가는 98년 이래 450% 상승했다. 업계 평균 170%와 비교할 때 엄청난 수치가 아닐 수 없다. 토르가 수익을 내지 못한 해는 없었다. 80년대 후반 침체기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실 톰슨은 당시 흑자 유지를 위해 2년 동안 무보수로 일했다. 지난 5년 동안 토르의 매출은 연평균 18% 성장해 지난해 16억 달러에 이르렀다. 순익도 연평균 26% 늘어 지난해 7,9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신규 사업도 탄탄한 듯하다. 오하이오주 잭슨센터에 있는 토르는 6개월 주문 잔액이 4억9,900만 달러로 지난해보다 83% 상승했다고 최근 발표했다.
톰슨은 운전형 캠핑카 제조라는 더 큰 무대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운전형 캠핑카는 상대적으로 싼 견인형보다 제조 ·판매가 더 힘들다. 견인형 캠핑카 시장은 현재 토르가 장악하고 있다. 운전형 캠핑카 시장에서 토르는 강력한 경쟁업체 위네베이고(Winnebago)와 정면 충돌하게 될 것이다. 46년의 역사를 지닌 위네베이고는 운전형 캠핑카만 판매한다. 위네베이고의 CEO 브루스 허츠키(Bruce Hertzke)는 “최고 품질로 최고 수익을 올리는 업체가 되고 싶다”며 “시장에 끼어들고자 덤비는 경쟁사가 있어도 위네베이고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토르를 은근히 겨냥했다. 위네베이고의 매출액순이익률은 6%로 토르를 1%포인트 앞서고 있다.
토르가 탄생한 것은 지난 80년의 일이다. 당시 톰슨과 친구 피터 오스웨인(Peter Orthwein)은 종합식품업체 비어트리스 푸즈(Beatrice Foods)에 적자로 허덕이는 에어스트림을 팔라고 설득했다. 대신 인수대금 750만 달러를 비어트리스 푸즈가 모두 빌려주는 조건이었다. 당시 캠핑카 업계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가솔린 자동차가 봇물을 이룬 79년 캠핑카 시장 규모는 반으로, 이어 80년 다시 반으로 줄었다. ‘토르’는 톰슨과 오스웨인의 성(姓) 알파벳을 합쳐 만든 이름이지 게르만 민족 신화에 나오는 뇌신(雷神)에서 따온 것은 아니다.
톰슨과 오스웨인은 그야말로 헐값에 에어스트림을 사들였다. 이후 캠핑카 시장은 몇몇 침체기를 제외하고 꾸준히 성장했다. 지난해의 경우 성장률 5%를 기록하며 28만9,000대가 팔렸다. 앞으로 저금리 시대가 계속 이어질 경우 캠핑카 시장의 성장세도 지속될 전망이다. 미국의 베이비붐 세대가 캠핑카 구매 연령층으로 진입하고 있다.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이 쏟아져 나오면서 이동주택을 견인할 수 있는 차가 수백만 대로 늘었다. 미국인들은 테러 ·전염병 ·유로화 강세에 대한 공포로 휴가를 집에서 보내야 했다.
뉴질랜드 웰링턴에서 어린 시절을 보낼 적부터 톰슨은 뉴욕에서 사는 것과 기업인이 되겠다는 두 가지 소원이 있었다. 톰슨이 9세 되던 해 부모가 사준 백과사전 속 맨해튼 마천루 사진에 넋을 빼앗기고 말았다. 뉴욕에 매료된 그는 뉴욕대 경영대학원으로 진학했다. 그리고 67년 뉴욕에 영원히 눌러앉았다. 70년대 후반 톰슨은 한 업체에서 기업개발 업무를 맡고 있었다. 그러던 중 ‘대차대조표가 꽤 괜찮은’ 업체를 하나 발견했다. 그 업체가 바로 캠핑카 제작사였다. 그는 친구 오스웨인과 함께 그 업체를 매입했다. 톰슨은 “이해하기 쉬운 업종이었다”며 “당시 캠핑카에 대해 아는 것은 없었지만 기업가로 출발하는 데 안성맞춤이었다”고 들려줬다.
3년 뒤 톰슨과 오스웨인은 에어스트림을 매입했다. 이렇게 해서 토르가 탄생한 것이다. 당시 에어스트림은 세전 손실 1,200만 달러를 기록하고 있었지만 톰슨과 오스웨인이 인수한 지 1년 만에 순익 100만 달러를 내는 업체로 탈바꿈했다. 해고당한 직원은 없었고 품질도 향상됐다. 그 덕에 품질보증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 타이밍도 절묘했다.
81년 캠핑카 업계가 안정되고 이듬해 회복세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대공황 전 자동차 산업이 그랬듯 당시 캠핑카 업계에는 군소업체가 난립해 있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75개 기업이 수백 개 브랜드를 판매하고 있다. 대신 진입장벽은 낮다. 먼저 섀시 ·엔진 ·변속기 같은 복잡한 부품을 구입한다. 그리고 목수 ·백관공 ·전기기사에게 섀시 위에 작은 집을 짓도록 한다. 대형 공장은 필요 없다.
톰슨은 캠핑카 제조업체를 계속 사들였다. 대개 매출 3,000만~4억 달러인 업체로 세전 이익의 5~6배를 지급했다. 부품 대량 구매로 각 사업부의 자재비를 최고 4%까지 절감했다. 캠핑카 제작비에서 자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60% 정도다. “토르는 조립업체이지만 규격 부품을 구매한다. 냉장고 제조업체는 두 개에 불과하다. 스토브 제조업체도 두 개다. 핵심은 소비자 기호에 맞게 제작해 제품을 차별화하는 것이다.” 톰슨이 귀띔한 성공 전략이다.
비결은 무엇일까. 각 사업부의 판매 ·제조 ·연구개발 기능을 따로 운영하는 것이다. 서로 경쟁하다 보면 각기 다른 특성을 갖춘 제품이 만들어진다. 독자적인 브랜드들로 무장한 토르는 같은 시장에서 여러 딜러에게 캠핑카를 판매할 수 있다. 제살 깎기식 판매나 딜러의 신경을 건드리는 일은 없다. 한 사업부에서 히트작이 탄생하면 성과는 해당 사업부 몫이다. 성과를 다른 사업부들과 공유하는 일은 없다. 어디서 들어본 듯한 방식일 것이다. 사실 제너럴 모터스(GM)가 이런 방식으로 운영된 바 있다. 시장을 장악하고 있을 경우 효과가 매우 뛰어난 방식이다. 하지만 운영비가 많이 든다. 저가 경쟁사가 등장할 경우 주의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GM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2001년 톰슨은 키스톤 RV(Keystone RV)를 1억5,100만 달러에 인수했다. 톰슨으로서는 최대 규모의 인수였다. 이를 계기로 그가 규모의 경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드러났다. 키스톤의 14개 브랜드 모두 자체 공장과 경영진을 보유하고 있다. 각 브랜드에 대한 결정권은 해당 경영진에게 있다. 키스톤의 부사장 윌리엄 페네치(William Fenech)는 “어떤 사업부에서 핑크색 제품을 만들고 싶다면 그렇게 하라고 말한다”며 “하지만 핑크색 제품을 해당 사업부가 자체적으로 팔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공장도 마찬가지다. 토르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대개 근로시간이 아니라 제품 출하대수에 따라 임금을 받는다. 공장마다 매출의 일정 부분을 챙긴다. 토르 측은 근로자들이 받는 비율에 대해 밝히지 않았다. 배관 ·전기 ·캐비닛 제조 ·마무리 작업 등 생산현장의 각 집단은 공장 전체 수입 중 일부를 차지한다. 작업속도가 느리거나 불성실한 근로자를 솎아낸다든지, 신속한 작업공정이나 감원 방법을 찾아내는 것은 현장 근로자와 팀장 몫이다. 일례로 배관팀이 인력은 한 명 줄이되 생산량에 변함없는 방법을 찾아낸다면 각자에게 더 많은 파이가 돌아가게 된다. 키스톤의 로널드 페네치(Ronald Fenech) 사장(윌리엄 페네치의 형)은 팀장이 연간 7만5,000달러, 근로자가 5만 달러를 가져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키스톤은 인수 후 1년 뒤 구매비 1,000만 달러를 절감했다. 키스톤은 큰 조직 속에서 정체되기보다 성장속도가 빨라졌다. 지난해 공장을 4개 신설했다. 올해 2개를 더 건립하면 모두 16개가 된다. 키스톤은 토르의 후방 지원 조직 덕에 한때 악화됐던 품질 ·서비스 재고 부품 분배를 개선할 수 있었다. “소기업의 강점은 기동력이다. 대기업에는 훌륭한 품질 ·서비스 같은 후방 지원 기능이 갖춰져 있다. 키스톤은 이들을 모두 확보하게 됐다.” 로널드 페네치의 말이다.
키스톤은 현재 미국 최대 견인형 캠핑카 제조업체다. 시장점유율은 2002년 16.4%에서 지난해 18.2%로 증가했다. 대놓고 자랑할 만도 하다. 키스톤 창업자로 현재 토르의 이사인 콜먼 데이비스(Coleman Davis)는 “키스톤이 토르에서 가장 뛰어난 사업체”라며 “토르의 일부 브랜드가 안이함에 젖어 있을 때 키스톤이 합류해 수준을 높였다”고 우쭐했다.
딜러들은 토르의 ‘기업 내 기업 구조’가 고객 요구에 부합한다고 평했다. 예컨대 어떤 바닥 장식재나 수납공간이 갑자기 인기를 끌 경우 디자인에 속히 추가할 수 있다. 미시간주 북부에 두 판매점을 두고 있는 마이클 번사이드는 “결재 절차가 간단한 게 토르의 강점”이라고 소개했다. 번사이드는 17년 전까지만 해도 토르의 경쟁사 코치멘(Coachmen)에서 근무했다.
톰슨은 재무에 관한 한 엄격하게 감독한다. 자본지출을 둘러싼 모든 결정은 그가 내린다. 각 사업부에 회계사를 해마다 여러 차례 보내 감사한다. 그가 유일하게 중시하는 것이 각 사업부로부터 아침 9시30분마다 받는 보고서 한 장이다. 보고서에는 현금 포지션 ·생산 ·주문 ·일력,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소매 매출 및 도매 출하 등 수십 개 수치가 적혀 있다. 이상 기미가 엿보이면 톰슨은 해당 사업부에 당장 전화한다.
톰슨은 대차대조표에 매우 집착한다. 토르는 부채가 전혀 없다. 따라서 시기만 무르익으면 과도한 차입 없이 원하는 기업을 인수할 수 있다. 톰슨은 끈질기고 인내심 강한 협상 전문가로 명성을 얻었다. 그는 지난해 9월 6만 달러를 웃도는 대형 캠핑카 전문 제조업체 데이먼(Damon)도 인수했다. 무려 8년을 기다린 끝에 얻은 것이다. 매입가 4,300만 달러는 이자 ·세금 공제 전 이익의 5.5배였다. 토르의 부회장 오스웨인은 “데이먼이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8,000만 달러 상당의 토르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그는 “토르가 데이먼에 자재 구매 전문 인력과 공장 업그레이드 자원도 제공 중”이라고 덧붙였다. 데이먼의 전 소유주 도널드 플레처(Donald Pletcher)는 불만이 전혀 없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당시 나는 불리한 입장에 있었다. 내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리라는 것을 톰슨은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그는 매입가를 과다하게 치르지 않기 위해 매우 신중히 행동했다.” 매각에 대한 보답으로 플레처는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최소한 이전만큼 돈도 벌고 있다.
톰슨은 최근 불거진 여러 기업 스캔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짜증을 냈다. 사실 그는 오랫동안 주주들의 권리를 옹호해왔다. 톰슨과 오스웨인은 양도 제한 조건부 스톡옵션을 거부했다. 토르의 재무 관련 보도자료에 문의 연락처는 ‘웨이드 톰슨과 피터 오스웨인’으로 기재돼 있다. 그들의 직통 전화번호만 옆에 달랑 나와 있을 뿐이다. 토르에 홍보 부서는 없다.
계약을 체결한 외부 홍보 대행업체도 없다. 몇 년 전 한 에이전시를 고용했지만 60일 만에 결별했다. 투자은행가 고용도 꺼리고 있다. 톰슨은 자신과 오스웨인 모두 “재무제표를 읽을 줄 안다”며 코웃음 쳤다. 토르와 관련된 최대 뉴스가 한 가지 있다. 톰슨은 지난 37년 동안 동고동락한 부인과 함께 올 여름 로키산맥 ·그랜드캐니언을 여행할 계획이다. 그것도 에어스트림을 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