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3월부터 1년 동안 매주 2회 1시간 30 분을 운전하여 학교에 다니며
매주 1회 리포트를 제출하다 보니 몹시 피곤했다.
설상 가상으로 맹장 수술과 교통사고로 인해 심신이 매우 쇠약해졌다.
뿐만 아니라 창립 10주년 기념 부흥회 후유증으로 교회가 시끄러워졌다.
미국에서는 부흥회의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모든 일들
(강사 식사 대접. 강사 숙소에서 모셔오고 모셔가기. 관광
등등)은
보통 담임목사나 장로들과 권사들이 맡아서 한다.
그런데 40세 이하로 조직된 바울 선교회에서
창립 10주년 기념 부흥회의 모든 일들을
자신들이 맡아서 하겠다고 요청해왔다.
아마 강사 목사님이 젊은 분이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고맙게 생각되어 그렇게 하라고 해서 부흥회를 은혜롭게 잘 마쳤다.
(부흥회 강사는 얼마 전 작고한 손인식 목사로
손형식 목사의 동생. 대광, 고대 축산과 후배임)

이것이 화근이 되었다.
당회에서 평상시에 목사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던 한 장로가
“목사님은 이제 늙은이 들을 무시하고 젊은 사람들과 목회를 하려 합니까 ?”
하고 항의를 했다.
아마 이번 부흥에서 장로들이 소외 되거나 무시당한 기분이었던 것 같았다.
이 말이 알려지자 바울 선교회 회원들이 교회 마당에 모여
“목사에게 항의한 장로는 사퇴하라”외치며 성토하기 시작했다.
자연히 교회는 시끄럽게 되었다.
바울 선교회 회원들은 교회를 새로 하나 세우자고 제의 해오기도 했지만
거절했다.
심신이 매우 쇠약한 가운데
12월 말에는 두 가정의 장례식을 집례했다.
한 가정의 장례식은 비가 억세게 쏟아 지는 가운데 집례했다
장례식을 마치고 너무 피곤하여 자리에 누워 쉬고 있던 중
갑자기 “내가 병들어 눕거나 죽으면 가족과 교회 그리고 교인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갑자기 로뎀 나무 아래서 엘리야 선지자가 BURN
OUT(탈진 증후군)되어
자포자기한
상태에서 하나님께 “자기를 죽여 달라”고 죽기를
청했던 사실이 생각났다
(왕상 19:3-8).
엘리야의 갈멜산 대결(열왕기상 18:1-46)
이스라엘의
아합 왕 시대에 3년
6개월 동안 흉년이 들었다. 국가적 재난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가뭄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신(神)의 진노로 왔다고 생각했다.
아합
왕과 그의 아내 이세벨과 대부분의 이스라엘 백성은
이스라엘의
신(神)이 바알 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바알을 온전히 섬기지 못해서 바알이 진노하여
가뭄을
내린 것이라고 생각하고 가뭄 해결을 위해
바알에게
충성을 보이려고 여호와 하나님을 추종하는 자들에게 박해를 가했다.
그
때 하나님을 섬기던 많은 선지자들은 굴에 숨어 살았다.
그러던
중 엘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아합
왕을 만나 바알 과 여호와 중 누가 참 신(神)인지 대결하기 위해
바알
선지자 450인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과 백성들을 갈멜산으로 불러 모으게 했다.
엘리야는
백성들에게 누가 참 신인지 가리기 위해
제물을
놓고 기도하여 불로 응답하는 신을 참 신으로 인정하자는
제안을
하고 두 송아지를 잡아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서로
자기 신에게 기도하기로 했다.
먼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이
기도를 했다.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이여 응답하소서” 했지만 아무 응답이 없었다.
저녁
때가 다 되도록 까지 응답이 없었습니다 (22-29절).
엘리야가 백성들에게 12돌로 단을
쌓게 하고,
단
주위에 도랑을 파게 하고 단 위에 나무를 벌이고
송아지를
각 떠서 그 위에 올려 놓게 하고, 물 12통을
붓게 했다.
엘리야는
하나님께 간결하면서도 간절하게 기도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맹렬한 불이 내려와
번제
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사르고 도랑의 물까지 핥듯이 살랐다.
(30-38절).
결국 하나님께서 불로 응답하신 것이다.

엘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바알의 선지자를
잡되 그들 중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 하매
곧
잡은 지라. 엘리야가 그들을 기손 시내로 내려다가 거기서 죽이니라”
바알의 사악한 850
명의 제사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다(왕상18:40).
그러자 화가 난 이세벨 왕후는
엘리야를 잡아 죽이려 했다.
엘리야는
도망 갈 수밖에 없었다(왕상 19:3-8).
엘리야는 광야로 도망갔다.
왜 광야로 간 것일까?
죽지 않으려고, 살기 위하여 도망을 쳤다.

로뎀 나무
그런 엘리야가 살기 위하여, 자기 목숨을 구하고자 하여 그가 찾았던 도피처는 광야였다.
로뎀나무 아래의 엘리야
BURN OUT(탈진상태)이 된 엘리야는 광야의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청했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넉넉하다는 말은 할 만큼 해봤다는 뜻이다.
내가 하나님의 선지자로 하나님의 일을 할 만큼 해봤다.
그런데 더는 못하겠다. 그러니 제 목숨을 거두어 달라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종이 자살할 수는 없는 일이고, 살아 있으면서 하나님의 일을 안 할 수도 없고, 일을 하자니 속이 터져서 더 이상은 하나님과
같이 일은 못하겠고...... 그러니 죽여 달라는 것이었다.
엘리야가 광야의 로뎀나무 아래 앉은 것은
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죽음 시도하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생각 된다.

브엘세바
남쪽 신광야
성경 속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광야는
낮에는 뜨거움이 밤에는 추위가 가득한 땅이기도
하다.
그런데 로뎀 나무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달리 나무가 아닌 (대)싸리나무로
그늘을 제공하기에 넉넉하지 않다.
광야에서 그늘이 될 만한 나무는 로뎀 나무가
아니다.
로뎀 나무는 광야에서 잠시 동안의 그늘을
제공해줄 수 있지만,
그곳은 쉴만한 공간이 아니다. -
엘리야는 쉴 곳이 없어, 광야로 간 것일까?
광야에서 쉬기 위하여 그늘을 찾은 것일까?
그 그늘을 위해 로뎀 나무를 찾은 것일까?
아니다.
로뎀 나무를 찾은 엘리야가 선택한 것은 ‘쉼’이 아니었다. 그것은. 죽음이었다.
로뎀 나무 아래 앉은 것이나 그곳에서 하나님께 '죽여 달라거나,
로뎀 나무 아래 누워 자는 것에서 그의
비참한 심정을 엿볼 수 있다.
엘리야가 홀로 광야로 걸어 들어가 로뎀
나무 곁에 앉은 것은
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죽음 시도였다.
엘리야가 죽기 위하여 찾았던 땅은,
봄에서 여름 사이, 낮 기온이 50도를 오르내리던 뜨거운 광야였다.
죽겠다고 누워버린 엘리야.. ...
그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엘리야의 그 뜨거운 고통의 마음은 타오르고, 타 들어가고, 점점 불이 꺼져 가고 있었다.
그런 절박함과 절망가운데 있던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
그늘과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제공하셨다.
삶의 막바지까지 스스로 내달렸던 엘리야와
함께 하셨다.
하나님은 그 광야, 죽음의 자리에서도 ‘임마누엘’ 즉 함께해 주셨다.
그리고 엘리야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셨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왕상 19:15).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왕상 19:16)
말로만
듣던 burn out 이 필자에게도 찾아온 것이다.
그때 필자는
“모든 것 하나님께 맡깁니다.
저를 살리시든 죽이시든 마음대로 하세요.
저는 이 상태로는 더 이상 가정이나 교회나 교인들을
책임지지 못하겠습니다.
가정과 교회와 교인들은 하나님이 책임지세여”
하는 심정으로 임지도 없이 사임을 선언했다.
바울 선교회 임원들과 마지막 식사. 필자는 목에 Gips를 하고 있다.
7년 6개월 동안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었던 정 들었던 교인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필자 부부는 무조건 15일 계획으로 여행을 떠났다.
여행 기록(1993.3.3-3.
18)은 회고록(22)에 올리려 한다.

屈松
전나무는 쭉쭉 곧게 올리는 게 멋이라면,
소나무는 휘어져야 제 멋이다.
굴곡진 삶이라 하여 어찌 아름답다 하지
않으리요.
탄탄한 아스팔트 길보다 구불구불한 오솔길이
더 흙내 짙고 운치 있는 길임에랴.
휘어진 소나무는 키 큰 나무를 샘 내지
않고
자유롭게 공중을 나르는 새도 탐하지 않는다.
오직, 대지를 움켜쥔 채 오늘도 뿌리에 힘 주고 섰다.
새는 자유롭게 나르는 것으로 행복하지만,
나무는 평생을 붙박고 살아도 안정된 삶에 만족하며 살아간다.
우리도 저마다의 자세로 제 구도를 그리며
살아간다.
어떤 사람은 쭉쭉 뻗은 전나무 같은 삶을,
어떤 이는 온갖 풍상 겪으며 굴곡진 삶을 산다.
어느 것 하나도 귀하지 않는 삶이란 없다.
다만, 형태가 다를 뿐이다.
돌아 보면, 내 삶도 휘어진 소나무와 같았다.
크고 작은 일들로 이리 휘고 저리 휘면서
오늘의 삶이 이루어졌다.
희,노,애,락이
만들어 놓은 운치 있는 소나무다.
오 헨리의 말처럼, 인생이란 흐느낌과 훌쩍임과 미소로 빚어진 것.
때로는 울고 더러는 웃으며 살아온 삶이다.
굽이치는 거센 강물로 흐르다, 이제는 강 하류에 이른 나이.
언젠가는 너른 바다에 안길 편안함으로 오늘도 천천히 낮게 흐른다.
휘어진 소나무에 내 삶을 투영해 보는 아침이다.
<지희선의 창작실 - 포토 에세이
- 휘어진 소나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