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니가 약 100년전에 장파, 중파대에 의한 무선전신의 실험을 개시, 유명한 대서양 횡단의 통신실험에 성공하자, 미국, 영국외에 세계각국에서도 많은 아마추어무선사나 기업등에서 상업통신을 위하여 長波, 中波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때에는 무선국의 허가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혼신문제가 많이 발생했다.
이때 아마추어가 사용할 수 있는 파장은 200미터 이하 (15Mhz 이상), 트렌스 입력 1KW 이하로 정해졌다.
이것이 후에 아마추어무선에 대한 단파대 개척의 단서가 됬다.
1920년대에 들어와서 라디오방송이 급격히 보급되어 사실상 라디오방송국의 영향으로 일반 무선통신국간에 많은 혼신이 발생했다.
여기서 방송법이 개정되어 주파수의 사용기한, 무선면허의 교부,갱신, 양도수속등이 명문화 되었다.
또 이때부터 아마추어에 의한 단파대의 개척이 이루어져, 1921년 11월에는 Radio Club America의 아마추어국 1BCG국에 의해서 영국의 스코트랜드간에 파장 160M (1.8 MHz)에 의한 On way 대서양 횡단 QSO에 성공했고,1923년 11월에는 W9UZ, W4CF, K6BJ에서 8AB (프랑스)간에 파장 103M (2.9Mhz)에의한 대서양 횡단 QSO에 성공하는 등 점차 통신거리가 신장되어 갔다.
1927년 부터 호출부호앞에 처음으로 국가를 표시하는 국제부호가 부가 되어 1AW는 W1AW등으로 표시하게 되었다.
당시의 아마추어 무선가들은 불굴의 정신으로 실험에 몰두하여 기술적 파이오니아로서 지위를 확립해 가고 있었다.
*******그후 전리층의 작용에 의해서 파장이 짧은 단파대가 소전력으로 원거리 통신이 가능하다는 것이 아마추어에 의해서 실증되었다.*******
당시 장파의 무선통신은 대전력을 필요로 한 것에 비해, 간단하고 소규모 설비로 세계각국과 충분히 통신이 된다고 하는 것은 실로 획기적인 대 발견이어서, 상용통신도 단파전성시대로 이행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 공적에 의해서 아마추어무선에서는 많은 주파수가 할당되었다.**********
당시의 아마추어 무선가는 전부 모-스통신을 사용했가 때문에 모-스통신은 아마추어무선의 원점이 되었다.
미국은 1914년 5월에 Hiram Perey Maxim (W!AW)에 의해서 ARRL (American Radio Relay League)이 결성되었다.
그후 1925년 4월에는 IARU (국제아마추어 무선연합)도 창설해서 Maxim이 회장에 취임하여 폭넓은 아마추활동을 통해 아마추어 무선계의 육성에 기여했다.
*지금 KT나 각 이통사에서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주고 주파수를 사고 있다. 우리 아마추어가 사용하고 있는 주파수는 우리 선각자들의 공로로 공짜로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감사해야할 일이다.*
1926년 6월 일본 아마추어무선연맹 JARL이 설립되자 영문으로 설립선언문을 전세계를 향해 타전되었다.
한국에서는 1955년 4월 20일 서을대학교 공대생들이 중심으로 연맹설립을 결의하여 동국무선고등학교 (지금의 광운고등학교)에 KARL 간판을 달고 이듬해인 1956년 4월21일 서울대 문리대 당당에서 참립총회를 열어 정식으로 출범하였고, 서울대생, 일반동호인 약 40명이 참석하여 초대이사장으로 공부처 기감으로 계신 이인관씨를 추대하였다.
이인관초대 이사장님은 후일 HL1BX 과기처장관을 역임하신 서정욱 박사를 사위로 맞아 드렸다.
나는 그 당시 해군 현역으로 있었기때문에 마음은 콩밭에 가 있었으나 참석은 못 하고 UC홛동만 열심히 하다가 내가 전역한 1958년제3차 총회부터 참석을 하였다.
첫댓글 귀중한 옛날의 자료입니다.
즐겨 읽기에 좋은 글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오엠님글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대선배 오엠님도 UC 활동하셨군요. 에피소드 부탁해도 될까요?
창립 초기 연맹에 대한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