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솔사 둘레길 걷기
이광수
연례적으로 실시하는 창원문협 봄 둘레길 걷기 행사가 5월이 저무는 27일 있었다. 올해는 조금 먼 곳으로 코스를 정해 사천시 곤명면에 소재한 다솔사 둘레길과 물고뱅이마을 둘레길을 걷기로 하였다. 9시에 창원종합운동장 앞에 가니 20여명이 와서 몇몇 늦게 도착할 회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25인승 중형버스라 4명의 여유좌석이 남았다. 10여분을 기다려 4명이 도착하자 목적지로 향해 출발했다. 중형버스라 의자도 비좁고 차내 여유 공간도 없어 답답했다. 가는 도중 전임 김시탁 회장이 탑승하였을 땐 좌석이 없어 스페어 의자에 앉았다. 조금은 불편하고 찝찝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시가지를 벗어난 버스는 곧장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봄꽃들의 향연이 시들한 늦봄이지만 물오른 나뭇가지에서 움트는 연두 빛 새순이 뿜어내는 싱그러움이 우리를 반기며 차창을 스쳐 지나갔다. 다솔사까지는 천천히 가도 두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라 남강휴게소에 정차해 볼 일을 보며 잠시 휴식을 취했다. 어딜 가나 주말이면 나들이객들로 휴게소는 붐빈다. 봄철 등산복으로 화려하게 차려입은 상춘객들의 얼굴엔 여행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떠 있었다. 나가면 즐겁고 들어오면 답답한 현대인의 삶은 고속도로 휴게소의 들뜬 분위기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잠시 숨을 돌린 일행을 태운 버스는 11시가 채 못 되어 곤명 IC에서 우회전해 다솔사 가는 길로 진입했다. 15분 후에 목적지인 다솔사 경내 주차장에 도착했다.
다솔사는 나와도 인연이 깊은 절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해마다 단풍이 곱게 물드는 10월 말경이면 꼭 한 번 들렀다. 다솔사의 규모는 작지만 아담하고 웅숭깊은 절이다. 통일신라 지증왕 때 창건된 유서 깊은 고찰로 20여년 전만해도 절 진입로가 비포장 상태였으며 절 관리도 다소 허술해서 인적이 뜸했다. 나는 그런 고즈넉한 분위기가 좋아 자주 찾았다. 이 절은 지증왕 때 창건 후 몇 대 왕을 거치며 중수했으나 임진왜란 때 불에 탄 절을 숙종 때 다시 재건했다 그 후 1914년 일제 때 화마로 불타 그 이듬해 지금의 절 모습으로 재 건립되어 새롭게 단장했다. 나와 이 절과의 인연은 전국 8미리 소형영화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맺어졌다. 아마추어 취미소형영화클럽의 회원으로 전국을 로케이션 하러 다니다가 이곳 다솔사의 경치가 좋다는 말에 배우들을 데리고 합동 촬영대회를 가졌다. 그 후 매년 절을 찾게 되었다. 특히 10월말 경 핏빛으로 물드는 다솔사의 단풍은 이 절을 다시 찾게 하는 매력 포인트이기도 하다.
다솔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범어사의 말사로 대웅전, 대양루, 나한전, 천왕전, 요사채를 비롯한 10여동의 건물이 봉명산 자락에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다. 풍수지리학으로도 명당자리의 조건을 두루 갖춘 길지다. 소설가 김동리 선생이 ‘등신불’을 이곳에서 탈고하였으며, 한용운 선생이 일제강점기 때 이곳에서 수도하였다고 전한다.
다솔사 경내 주차장에 차를 세운 일행은 대양루, 대웅전 등을 먼눈으로 완상하고 곧장 오늘의 목적지인 다솔사 둘레길과 물고뱅이마을 둘레길을 걷기 위해 봉명산 등산로를 따라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못가서 몇몇 다리가 부실한 회원들이 중도 하차하는 바람에 일부 회원만 둘레길을 따라 걸었다. 나는 온 김에 봉명산(해발 408미터)정상에 올라 볼 생각으로 곧장 산 정상으로 가는데 다른 일행이 물고뱅이마을 둘레길을 향해 좌쪽으로 가는 바람에 나도 가던 발길을 돌려 헐레벌떡 뜀박질을 해서 일행을 따라 잡았다. 40여 분을 걷다가 회장을 비롯한 회원들이 오늘은 일부 회원들이 동참하지 않았으니 이 정도로 걷고 훗날 물고뱅이마을 둘레길을 걷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 의견에 동의하였고, 유턴해서 다솔사 둘레길을 따라 하산했다.
둘레길 걷기는 포기한 대신 다솔사 경내 곳곳을 구경했다. 대양루, 대웅전, 요사체 등을 둘러보고 단체 기념촬영을 했다. 다솔사 대웅전에 모셔진 불상은 다른 절과 달리 와불(누운 불상)이다. 와불 뒤편 벽이 뚫려있어 절 뒤에 세워진 연꽃 봉오리 석탑과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절을 찾는 사람들은 절 뒤 연꽃 봉오리 석탑을 향해 기도를 하는데 영험이 있다고 들었다. 대웅전 뒤편에 잘 가꾸어진 다솔사의 차밭은 이곳 자생의 야생차밭으로 하동차 만큼 유명하다. 예전엔 야생 차나무가 띄엄띄엄 심겨져 스님들이나 절을 찾는 사람들에게 음료로 제공할 정도의 규모였다. 그러나 절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차 맛이 알려지자 본격적으로 제배하여 근사한 차밭으로 바뀌었다. 경내를 둘러본 일행은 출출해진 배를 채우기 위해 미리 예약한 곤명시장 내 한식집에 들러 푸짐한 점심식사를 하였다.
다솔사 여행은 둘레길 걷기를 염두에 두지 않을 경우 절 진입로 입구에 있는 샘터 주차장에 차를 세운 후 솔 숲길을 따라 그윽한 솔향기를 들이 마시며 20여분 걸어서 절 갱내로 들어오는 게 좋다. 다솔사 경내에 들어와 10여 채에 이르는 대웅전, 대양루, 암자들을 두로 돌아보면 1시간 정도 걸린다. 절 구경은 이 정도로 끝내고 절을 나와 곤명 IC 사거리에서 차로 20여 분 걸리는 비토섬을 방문하는 것이 좋다. 이곳은 일찍부터 임해 관광지로 개발한다고 한 때 부동산 투기 바람이 불기도 했다. 육지와 섬을 연결한 다리 하나를 건너면 비토섬이다. 비토섬 끝자락 해안가에 있는 횟집에서 싱싱한 회와 해산물 요리로 허기진 배를 채우는 게 제격이다. 특히 석양으로 물든 비토섬 끝 사천만의 낙조는 그저 그만이다. 다솔사 탐방은 여럿이 가는 것보다 연인 끼리나 부부가 호젓하게 하루 일정으로 다녀오기 좋은 여행코스다. 봄도 좋지만 절 단풍이 고운 가을은 더 좋다. 창원에서 그리 멀지도 않아 당일치기 여행지로 권하고 싶다.
비록 물고뱅이마을 둘레길 걷기는 못했지만 모처럼의 늦봄 나들이가 그런대로 즐거운 하루였다. 어딜 가든 여행은 일상에서 찌든 스트레스를 훌훌 털어버릴 수 있기에 고생을 감수하고서라도 떠난다. 자기 발로 걸을 수 있을 때 부지런히 걸어서 추억 쌓기를 많이 해야 노년이 외롭지 않다. 나이 들면 추억을 먹고 사는 게 우리 같은 필부필부의 여생 아닌가. 가을이 성큼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 배낭하나 둘러메고 완행열차에 몸을 싣고 혼자 떠나는 가을여행이 기다려진다.
* 물고뱅이: 물을 가두어 두는 곳이라는 뜻. 고뱅이는 고방(창고)의 변형 사투리
첫댓글 봄날 다녀왔던 5월의 둘레길 걷기 후기가 절기가 바뀐 가을의 문턱에서 올라왔네요. 그래도 잊지 않고 후기 올려 주심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