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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를 시작할 때부터 내 주변에 예쁜 여자들이 얼마든지 널려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 나와 예술적 온도가 맞는 여자들은 없었다. 나는 늘 예술가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지는 것을 꿈꾸어 왔다. 나와 예술적 상승을 공유할 수 있는 여자말이다. 요코가 바로 그런 여자다.” ---- 존 레논.
이승우, 「객지일기」
지저분합니다, 하고 그는 말했고, 나는 정말로 지저분하다고 생각했지만 뭐, 괜찮은데요, 하고 대답했다. 그는 포도주병과 잔 두 개를 들고 바닥에 앉았다. “앉으세요.” 그는 앉은뱅이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책들을 바닥으로 쓸어내버리고 거기에 포도주잔을 놓았다. “보르도산입니다, 맛이 괜찮을 겁니다.” 그가 잔을 건네고는, 객지에서의 삶에 대해 주절주절 늘어놓기 시작했다. 객지에서 산다는 건 말입니다. 비유하자면 모래 바람 속을 걷는 것과 같아요, 몸을 친친 동여매고 눈도 감고, 그러니까 세상과 접촉하기 위해 자기를 여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세상과 접촉하지 않으려고 최대한 몸을 사려야 한단 말입니다, 참된 만남도 없고 휴식이란 더욱 없지요, 그러니까 짐을 풀고 못 살아요, 객지 생활 3년에 골이 빈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에요……라고 말했다가, 그런데 그럴 필요가 뭐 있어요? 유목민들 생각해보세요, 그 사람들에게는 객지 아닌 곳이 없고, 그렇다고 객지인 곳도 없어요, 정착이란 개념이 없으니까 유랑도 없는 거지요, 다만 세상이 있을 뿐, 그러니까 그 사람들은 언제든 어디로든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고, 어딜 가든 최소한의 짐만 소유해요, 진짜로 필요한 것만, 언제든 훌쩍 떠날 수 있게……. 오죽하면 자기들이 먹고 자는 집까지 가지고 다니잖아요, 집이란 움직이지 않는 거다, 땅에 붙박인 구조물이다, 그런 식의 우리 관념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유고 생활 태도이지요, 그렇게 생각하면 편해요, 고향이라고 객지보다 나으란 법도 없는 거고……하고 주워섬겼다. “선생도 여기가 객지인 모양입니다.” 그가 포도주를 입에 가져가기 위해 잠시 말을 중단한 틈을 이용해서 나는 한마디 했다.
茶兄 김 현 승(金顯承)
본관은 김해(金海). 호는 다형(茶兄). 평양 출생. 기독교 장로교목사인 아버지 창국(昶國)과 어머니 양응도(梁應道)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생애 및 활동사항]
아버지의 목회지(牧會地)를 따라 제주시에서 유년시절을 보냈으며, 7세 되던 해에 전라남도 광주로 이주하여 기독교계통의 숭일학교(崇一學校)와 평양의 숭실중학교를 졸업하고, 1936년 숭실전문학교 문과 3년을 수료하였다.
그 뒤 모교인 숭일학교 교사(1936), 조선대학교 교수(1951∼1959), 숭전대학 교수(1960∼1975),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1970) 등을 역임하였다. 문단활동은 숭실전문학교 재학 때 장시(長詩) <쓸쓸한 겨울저녁이 올 때 당신들은>이 양주동(梁柱東)의 추천으로 ≪동아일보≫(1934)에 게재되면서부터 시작된 이후, 낭만적 장시 <새벽은 당신을 부르고 있읍니다>(1934)·<새벽 교실(敎室)> 등을 계속 발표하였다.
1953년부터 광주에서 계간지 ≪신문학 新文學≫을 6호까지 간행하였으며, 이때의 시로 <내가 나의 모국어(母國語)로 시(詩)를 쓰면>(1952)이 있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기독교정신과 인간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내용을 시로 형상화하여 독특한 시세계를 이루었다. 제1시집 ≪김현승시초 金顯承詩抄≫(1957)와 제2시집 ≪옹호자(擁護者)의 노래≫(1963)에 나타난 전반기의 시적 경향은 주로 자연에 대한 주관적 서정과 감각적 인상을 노래하였으며, 점차 사회정의에 대한 윤리적 관심과 도덕적 열정을 표현하였다.
그가 추구하는 이미지들의 특징은 가을의 이미지로 많이 나타나는데, 덧없이 사라지는 비본질적이고 지상적인 가치를 상징하는 꽃잎·낙엽·재의 이미지와, 본질적이며 천상적인 가치를 상징하는 뿌리·보석·열매의 단단한 물체의 이미지의 이원적 대립으로 표현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가 표현한 시적 방법의 특징은 절제된 언어를 통하여 추상적 관념을 사물화(事物化)하거나, 구체적 사물을 관념화하는 조소성(彫塑性)과 명징성(明澄性)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후기 시세계로의 전환을 보여주는 제3시집 ≪견고(堅固)한 고독≫(1968)과 제4시집 ≪절대(絶對)고독≫(1970)의 시세계는 신에 대한 회의와 인간적 고독을 시적 주제로서 줄기차게 추구함을 보여준다.
1974년에는 ≪김현승전시집 金顯承全詩集≫을 펴냈고, 유시집(遺詩集) ≪마지막 지상(地上)에서≫(1977), 산문집 ≪고독(孤獨)과 시(詩)≫(1977)가 간행되었다. 문학개설서로는 ≪한국현대시해설≫(1972)이 있다. 1955년 제1회전라남도문화상, 1973년 서울시문화상을 받았다. 광주 무등산도립공원에 그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가을의 기도〉를 비롯한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한 시를 많이 썼다. 호는 다형(茶兄)·남풍(南風). 제주도와 광주에서 어린시절을 보내고 1926년 전남 광주의 숭실학교 초등과를 마쳤으며 평양 숭실중학교를 거쳐 1932년 숭실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했다. 1934년 장시 〈쓸쓸한 겨울 저녁이 올 때 당신들은〉·〈어린 새벽은 우리를 찾아온다 합니다〉를 양주동의 추천으로 〈동아일보〉에 발표하여 문단에 나왔다. 이어 1934년 〈동아일보〉에 암울한 일제시대 속에서도 민족의 희망을 노래한 〈새벽〉·〈새벽은 당신을 부르고 있읍니다〉 등을 발표했다. 1936년 숭실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하다가 1937년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투옥되기도 했다. 해방이 되자 〈내일〉(민성, 1949. 6)·〈창〉(경향신문, 1946. 5) 등을 발표했고 1950년대에는 기독교적인 구원의식을 바탕으로 하여 전쟁 뒤에 오는 허무·상실을 노래했다. 1955년 한국시인협회 제1회 시인상 수상자로 결정되었으나 수상을 거부했다. 1957년 첫 시집 〈김현승시초(詩抄)〉를 펴냈으며 한국문인협회 상임위원을 지냈다. 조선대학교·숭실대학교 교수를 지냈으며 1961년 한국문인협회 이사로 뽑혔다.
두번째 시집 〈옹호자의 노래〉(1963)는 자연과 인생에 대한 종교적인 사색을 노래했는데 잘 알려진 〈가을의 기도〉 등 가을 연작시와 신적(神的) 세계질서에 대한 열망과 자유를 노래한 〈지상의 시〉 등을 실었다. 한국문인협회 시분과 위원장과 부이사장을 지냈다. 1968년 고독을 시의 주제로 삼은 〈견고한 고독〉과 1970년 〈절대고독〉 등의 시집을 펴냈다. 〈견고한 고독〉은 간결한 시 형식을 취한 데 비해 〈절대고독〉은 비유·상징과 어려운 말을 자주 쓴 것이 특징이다. 〈절대고독〉은 신의 존재를 느낄 수 없을 만큼 개별화된 현대인의 삶의 고독감을 노래한 것이다. 1973년 서울특별시 문화상을 받았고 1974년 〈김현승 시전집〉을 펴냈다. 1975년 숭실대학교 채플 시간에 기도하다가 고혈압으로 죽었다. 유고시집으로 〈마지막 지상에서〉(1975), 산문집으로 〈고독과 시〉(1977)·〈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1984), 저서로 〈한국 현대시 해설〉(1972)·〈세계문예사조사〉(1974) 등이 있다. <브리태니카>
*호를 다형이라 지었을 만큼 커피 좋아했다는 김현승 시인
가을의 기도
김현승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다형 김현승 시인의 40주기 추모시낭송회.>
시 ‘가을의 기도’를 비롯해 ‘눈물’ ‘견고한 고독’ ‘마지막 지상에서’ 등으로 잘 알려진 다형 김현승 시인의 40주기 추모시낭송회가 열린다. 1975년 4월 11일 타계한 다형 김현승 시인의 40주기를 추모하는 시낭송회는 4월 3일 오후 6시 서울시 상도로 숭실대 베어드홀 103호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1934년 ‘쓸쓸한 겨울 저녁이 올 때 당신들은’과 ‘어린 새벽은 우리를 찾아온다 합니다’를 동아일보에 발표하며 문단에 나온 김현승 시인은 이후 활발한 시작 활동을 펼치며 한국문학사에 ‘가을’과 ‘고독’이라는 독자적인 시의 영역을 개척했다. 시인 박두진은 김현승의 시적 성취에 대해 “가장 고도한 정신을 가장 순수한 정신으로, 가장 순순한 정신을 가장 인간적인 것에 둔 김현승 시인은 기독교적 시 정신에 바탕한 현대시의 서정성을 획득하고 구축한 지대한 업적을 남겼다”고 평가했다.
이번 추모시낭송회를 준비하고 있는 정우영 시인(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은 “단순히 김현승 시인 타계 40주기라고 하여 추모 시낭송회를 마련하는 게 아니다”며 “김현승 문학의 또 다른 면모를 조금이라도 더 알리기 위해 추모시 낭송회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이는 김현승 시인을 더 이상 협의의 범주인 ‘가을’과 ‘고독’, ‘기독교’에 머물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 강형철 시인(숭의여대 교수)은 “이번 추모시낭송회를 통해 사람을 사랑하고 생명을 존중하는 시인으로서의 김현승을 새로이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김현승 시의 의미 확장을 기대했다.
플라타너스
김현승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타너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란 하늘에 젖어 있다.
너는 사모 할 줄 모르나 플라타너스 너는 내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늘인다.
먼 길에 올 제 호올로 되어 외로울 제 플라타너스 나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이제 너의 뿌리 깊이 나의 영혼을 불어 넣고 가도 좋으련만 플라타너스 나는 너와 함께 신이 아니다.
이제 수고로운 우리의 길이 다하는 오늘 너를 맞아 줄 검은 흙이 먼 곳에 따로이 있느냐 플라타너스 나는 너를 지켜 오직 이웃이 되고 싶을 뿐 그곳은 아름다운 벌과 나의 사랑하는 창이 열린 길이다.
고백의 시詩 / 김현승 나도 처음에는 내 가슴이 나의 시였다. 그러나 지금은 이 가슴을 앓고 있다.
나의 시는 나에세서 차츰 벗어나 나의 낡은 집을 헐고 있다.
사랑하는 것과 사랑을 아는 것과는 나에게서는 다르다. 금빛에 입맟추는 것과 금빛을 캐어내는 것과는 나에게서 다르다
나도 처음에는 나의 눈물로 내 노래의 잔을 가득히 채웠지만, 내 노래의 잔을 비우고 있다. 밝고 투명한 유리잔으로 비우고 있다.
나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얻으려면 더욱 얻지 못하는가,
아름다운 장미도 아닌 아름다운 장미와 시간의 관계도 아닌 그 장미와 사랑의 기쁨은 더욱 아닌 곳에, 아아 나의시는 마른다!
나의 시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 나의 시는 둘이며 물이 아닌 오직 하나를 위하여, 너와 나의 하나를 위하여 너에게서 쫓겨나며 나와 함헤 마른다! 무덤에서도 캄캄한 너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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