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행 57.
잘 사는 섬나라, 싱가포르
*작은 도시 국가 .싱가포르
싱가포르 여행은 다분히 여행사의 홀림에 넘어간 감이 없지 않다. 적은 돈으로 그리고 짧은 시간에 3개국을 관광시켜 준다는 광고가 눈길을 끈 것이다. 가난한 서민의 입장에서는 해외여행은 시간과 돈에 비례한다. 그런데 싱가포르를 관광하면서 이웃나라인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를 함께 관광시켜준다고 하니 솔깃하지 않을 수 없다. 나중에 그것이 얼마나 어림도 없는 허구인가를 깨닫게 되었지만 우선은 적은 비용과 짧은 시간에 3개국 관광이라는 거창한 여행 광고에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인천공항에서 싱가포르행 비행기를 탄 것은 2002년 5월 22일이었다. 12시 25분. 인천공항을 출발해서 싱가포르에 도착한 것은 6시 45분이었다(현지시간 5시 45분). 그러니 비행시간은 6시간 20분 정도 걸린 셈이다. 싱가포르의 창이비행장에 내리자 첫 인상이 역시 듣던 대로 깨끗한 도시라는 느낌이다. 가이드의 첫 번째 주의는 휴지나 껌을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껌은 아예 씹지도 못하게 했다. 껌의 경우 엄청난 세금을 물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관광객들은 씹고 있던 껌을 뱉아서 따로 간직해야 했다. 그 외에도 실내. 외에서 담배 피우거나, 담배꽁초를 버리기나 쓰레기 버리기. 무단횡단, 공공장소에서 음식물 먹는 것 등도 모두 금지되며 어겼을 때는 많은 벌금을 물어야 한다고 한다.
도시의 작은 공원은 물론 길거리, 건물의 발코니에 이르기까지 온통 꽃으로 장식되어 도시 전체가 꽃밭처럼 보였다. 이렇게 가로수며 꽃밭이 잘 정비되어서 열대성 기후의 온도를 섭씨 2도 정도 낮출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잘 관리 되어서 그런지 싱가포르에 대한 선입관은 깨끗한 나라라는 인상이었다. 깨끗한 정치, 깨끗한 환경, 정직하고 친절한 공무원, 원칙주의 대로 움직이는 사회 등으로 선진국의 대명사 같은 느낌을 주었다. 치안 상태도 양호해서 심야에 밤거리를 활보해도 매우 안전하다. 전체 국민소득은 한국의 3배 정도.
싱가포르라는 이름은 14세기 수마트라의 왕자가 이 곳을 찾았다가 낯선 동물을 사자로 잘못 알고 ‘싱가푸라(Singapura)’라고 부른데서 유래한다고 한다. 곧 '사자의 도시'라는 의미다. 1819년 영국의 스탬포드 래플스가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를 견제하기 위해 이곳을 사들여 자유 무역항으로 건설함으로써 조그마한 어촌이던 이곳이 세계적인 무역항으로 성장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2차대전 중 잠시 일본에 점령되기도 했지만 줄곧 영국령으로 있다가 1965년 독립하여 이광요 수상의 지도 아래 번영한 국가로 성장하게 되었다.
싱가포르는 63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주롱 섬, 풀라 테콩, 플라 우빈, 센토사가 주요 섬이다. 본 섬의 중심에 위치한 싱가포르 강의 남쪽이 원래 도시의 발상지였으며 현재는 다운타운 코어로 불린다. 싱가포르는 계속적인 간척사업으로 1960년대의 580여 평방에서 현재는 700여 평방으로 확장되었다. 2030년까지 100평방을 더 확장하는 것이 정부의 목표라고 한다.
싱가포르의 면적은 서울보다 조금 크며 인구는 약 300만 명이다. 국민은 중국계(77%), 말레이계(14%), 인도계(7,6%), 기타 소수계(1,4%)로 구성된 다인종 사회로서 언어도 영어, 중국어, 말레이어, 타밀어가 공용어이며 행정어는 영어를 쓴다. 비록 작은 도시 국가이지만 아시아의 잠룡으로 불릴 만큼 국가 운용이란 측면에서 세계의 다른 나라로부터 부러움을 사고 있다.
이곳은 동남아 물류의 중심지로서 트럭에 실려 나가는 많은 콘테이너를 볼 수 있다. 환경에 각별히 신경을 써서 굴뚝이 없는 산업 예컨대 전자산업단지 같은 것이 잘 발달되어 있고 관광수입에 많이 의존한다고 한다. 소비재에 엄청난 세금을 물려서 담배 한 갑에 6.000원. 맥주 한 병 4000원 등으로 한국보다 서너 배 비싸다. 매우 검약하여 심야에 네온싸인을 보기 어렵다. 수돗물은 그냥 식수로 사용할 정도로 깨끗하다. 물은 대부분 말레시아에서 수입한다.
*주요 관광지와 센토사 휴양지
싱가포르는 고도로 발달된 시장기반 경제를 가지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수출입을 통한 무역에 의존하여 발달하여 왔다. 그리하여 싱가포르는 런던, 뉴욕, 도쿄에 이은 세계에서 4번째로 큰 외환시장을 가지고 있다. 관광산업이 발달하여 연간 9천만여 명의 관광객이 싱가포르를 방문한다고 한다.
주요 관광지로 우선 싱가포르의 도심인 오차드 로드를 들 수 있다. 현대적이고 화려한 대규모 쇼핑센터들이 약 2km 구간에 걸쳐 늘어서 있다. 스캇 로드와 탕글린 로드가 교차하는 지역에는 각종 특급호텔뿐만 아니라 여러 종류의 바(Bar)와 클럽 등 유흥시설이 몰려있다. 매년 여름과 연말에는 쇼핑센터들이 대규모 세일행사를 벌여 전국각지로부터 관광객이 몰린다고 한다.
머라이언(Merlion) 공원도 주요 관광지다. 머라이언(Merlion)상은 싱가폴 시내 남쪽 앤더슨다리 부근에 있다. 싱가포르를 찾은 관광객이라면 적어도 한 번쯤은 머라이언 공원을 찾게 된다. 상반신은 사자(라이언), 하반신은 물고기 모양을 한 머라이언은 싱가포르의 상징이다. 마리나만을 바라보는 위치에 높이 8m에 달하는 하얀 머라이언상이 서 있다.
시청, 대법원 청사 같은 건물은 서울의 관청건물과 별로 다르지 않다. 차이나타운, 인도 거리, 아랍거리 등도 있지만 별로 큰 인상을 주지는 못했다. 관광객들의 관심은 오히려 음식문화에 더 쏠려 있었는데 이곳은 미식가의 천국이라 할 만큼 다양한 음식문화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가볍게 외식을 즐기려면 도시 곳곳에 위치한 호커센터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정부가 먹을거리 노점상과 포장마차들을 한데 모아 영업하게 했던 것에서 시작된 호커센터에서는 중국, 인도, 말레이시아 등 싱가포르만의 다양한 음식문화를 한자리에서 경험할 수 있다. 강력추천 메뉴로 칠리 크랩을 꼽을 수 있다. 매콤한 칠리 양념의 게 요리는 한국 사람들의 입맛에도 잘 맞는다.
그러나 한국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것은 몽골리안 바비큐다. 이것은 철판 볶음식 뷔페요리인데, 관광객이 스스로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양고기를 알맞게 선택하고 거기에다 여러 야채와 소스를 자신의 입맛에 맞게 선택한 뒤에, 요리사에게 주면, 요리사가 철판에 볶아서 접시에 담아준다. 싱가포르만의 독특한 향료와 느낌이 그대로 전해지는 음식으로서 우리의 입맛에 맞았다.
싱가포르 정부가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서 의욕적으로 마련한 볼거리가 새 공원이나 식물원 같은 것들이다. 그 중 ‘주롱새 공원’이 유명하다. 이 공원을 여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파노레일(Panorail)」이라 불리는 모노레일을 타는 것이다. 이 모노레일은 공원 전체 코스를 구석구석 돌며 다양한 구역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준다.
‘주롱 새 공원’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인상적인 조류 사육장이다. 관람객들에게 즐거움과 동시에 산교육의 기회를 제공해 준다.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이곳은 600여종이 넘는 8000여 마리의 새들이 서식하는 공원으로 자연 그대로의 환경에서 새들을 사육하고 있다. 앵무새를 비롯한 새들의 쇼도 준비되어 있다. 특히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곳이다. ‘송버드 테라스’에서는 새의 노래를 들으면서 아침식사를 즐길 수 있다. 펭귄퍼레이드’ 구역은 남극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5종류, 200여종의 펭귄의 안식처이며, 50여종의 바다새들도 함께 서식하고 있다. 색깔이 화려한 큰부리 앵무새와 코뿔새도 볼만하다. 또한 동남아시아 조류 사육장에는 동남아시아의 적도부근 정글에서 온 100여종의 새들이 살고 있다. ‘앵무새천국’에는 100여종이 넘는 많은 앵무새들이 있다.
보타닉가든이라고 불리는 식물원은 3천여 종의 열대, 아열대 식물로 가득하다. 식물원이라고 하나 원시림과 흡사하다. 도심과도 가까운 이 공원은 52헥타르의 방대한 부지위에 원시림과 프렌지페니, 장미, 관상용 식물 등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전 세계 희귀종을 비롯하여 수천종의 식물들이 이곳에 있는데, 이는 싱가포르 식물원의 풍성함과 다양함을 잘 나타내 준다. 난초 재배 지역에는 20,000여 난초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특히 '국립난초공원'은 광활하게 펼쳐진 지상 재배구역, 수중전시, 그리고 중남미에서 온 이국적인 종류도 보여준다. 이밖에 새로운 명소로는 '야자수 계곡'과 '에코 호수' 그리고 '심포니 호수'에서 열리는 야외 콘서트 등을 꼽을 수 있다.
센토사 섬(Sentosa) 휴양지는 싱가포르 정부가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의욕적으로 개발한 곳이다. "센토사"는 말레이어로 "평화와 고요함"을 뜻한다. 싱가포르의 남쪽에 위치하며 동양 최대의 해양수족관을 비롯하여 분수 쇼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예쁜 난꽃을 가꿔놓은 오키드 가든, 아시아 사람들의 생활상을 그대로 재현한 아시안 빌리지 등 다양한 볼거리가 많다. 그 밖에도 어린이들을 위한 ‘판타지 아일랜드’, 넓고 흰 모래사장이 펼쳐지는 센트럴 비치와 자전거 하이킹을 즐길 수 있는 코스, 볼케이노 랜드 등 센토사 섬은 ‘작은 놀이왕국’이다.
그 중의 하나인 ‘언더 워터 월드’는 해저 세계의 신비와 감동을 즐길 수 있다. 바다 속의 풍경이 다채롭고 신비롭다. 그래서 꿈을 꾸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83미터 길이의 아치형 특수 아크릴로 짜여진 터널에서 천천히 이동하면서 유유히 노니는 해양생물들을 직접 육안으로 볼 수 있다. 거대한 산호초군과 열대의 각종 물고기들. 심해의 상어와 자이언트 가오리가 무시무시하다. 머리위로 지나가는 거대한 거북이도 만나고 물고기 떼들의 군무도 즐길 수 있다. 그 밖에도 곰치, 뱀장어, 스톤 피쉬, 라이언 피쉬같은 어류들도 가까이에서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다. 암석으로 만들어진 터널이 수중 동굴로 내려가도록 되어있는데, 그곳에는 바다 가재와 불빛 없이도 먹이를 사냥할 수 있는 다람쥐 물고기 같은 동굴주거 생물들이 있다. 또 위장술에 능한 스톤피쉬, 긴지느러미 섬계, 악명높은 가시관 불가사리 등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해양 동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말레이시아의 조호 바루와 인도네시아의 바탐(Batam)
조호 바루는 싱가폴의 중심부에서 북쪽으로 약 26km 떨어진 말레이시아 반도의 최남단에 있는 도시로 조호르 주의 주도이다. 조호르 해협을 사이에 두고 싱가폴과 상대하고 있는 국경 도시다. 말레이 특급이 달리는 철도와 도로가 통하는 전장 약 1040m의 철교에 의해 연결되어 있다. 시내에는 왕궁과 회교사원, 아름다운 정원, 키가 큰 열대수가 줄지어 선 도로 등이 있으며 고도의 분위기가 넘친다. 1,855년 술탄, 아부 바카루에 의해 건설이 시작된 도시라고 한다.
코즈웨이는 말레이시아와 싱가폴의 두 지역을 연결하는 다리로서 싱가폴에서 조호주로 들어오는 관문이다. 4년 동안의 공사 끝에 1924년에 완성되었다. 길이 1056m다. 코즈웨이는 교통의 연계수단이며 통신의 수단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왔다. 그리고 코즈웨이 다리에 커다란 수도파이프를 설치함으로써 조호주로부터 싱가포르에 물을 제공하는 수도교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에서 나는 원유를 수입해다가 싱가포르 정유공장에서 정유하여 비싼 값으로 되파는데 이 때의 송유관도 코즈웨이 다리에 설치되어 있다. 말레시아의 물가가 싱가포르의 절반 정도. 환율도 절반. 싱가포르 휴양객들은 대부분 이 다리를 지나 말레이시아에서 주말을 보낸다고 한다.
술탄 아부 바카르 왕실 박물관은 조호 바루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관광명소다. 건축양식과 내부 장식이 유명하다. 1886년 술탄, 아부 바카루에 의해 건립된 왕궁으로 이스타나 베사이 궁전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공식행사에 사용되는 공식저택으로 내부에는 역대 술탄의 의장과 장식품, 무기 등의 수집품이 있으며 주위는 아름다운 이스타나 정원으로 되어 있다.
이슬람 대사원은 모든 관광객들이 꼭 방문해야 할 곳 중의 하나다. 조호해협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한 웅장한 건축물이다. 무슬림이 아닌 일반인의 방문도 허용 된다. 이곳의 회교사원은 아부 바카르 술탄 이 사망 한 후 몇 년 뒤인 1900년에 완성되었고 그의 이름을 따서 사원의 이름을 지었다.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원 중 한곳인 이 사원은 제작에서 완성에 이르기 까지 총 8년이란 시간이 걸렸으며, 2000여명의 참배객을 수용할 수 있다.
다타란 반다라야는 조호의 술탄에 의해 1993년 12월 공식적으로 공개되었다. 이곳은 퍼레이드, 광장쇼등 각종 행사들이 개최되는 장소로서 대형 무대시설, 중앙의 황금색 돔, 분수와 이 지역에서 가장 커다란 시계탑등으로 하여 많은 관광객을 끌어 들이고 있다.
조호 아트 갤러리는 1910년에 완공되었다. 여기에는 특히 조호 주에서 발견된 오래된 문서와 같은 역사적인 예술품들과 말레이시아인들의 조상인 말레이인들에 의해 쓰여졌던 전통적인 공예품들이 소장되어있다. 소장품은 의복, 무기, 화폐, 서예 작품에서 도자기, 정교한 세공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우리는 왕궁과 박물관 등을 대충 들러보고 민속촌으로 안내 되었다. 명색은 민속촌이라고 하는데 전통악기와 음악 연주, 간단하고 조잡한 토산품이 전부였다. 식사시간에 맞추어 간단한 민속춤 공연이 있었는데 식당에서 관광객을 위해 만든 가설무대에서 즉흥적으로 보여주는 공연이라 특별한 볼거리는 못되었다.
바탐섬은 싱가포르에서 동남쪽으로 불과 2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 인도네시아 섬으로 싱가포르에서 페리를 타면 약 45분정도 걸린다. 바탐은 서울의 2/3의 면적인 415㎢으로 수마트라 동부 빈탄섬이 있는 리아우 주에서 비교적 큰 섬에 속한다. 싱가포르의 무역, 금융, 교통, 비지니스 서비스 시설과의 연관이 많은 전략적인 위치에도 불구하고 바탐섬은 1971년까지 개발되지 않았다. 이후에 인도네시아가 원유를 찾아 기지를 세움으로써 발전이 시작되었다. 오늘날에는 산업, 비지니스뿐만 아니라 관광산업도 함께 육성하고 있다.
새롭게 떠오르는 여행지 바탐은 해외로부터 찾아드는 많은 여행객들에게 인기 있는 관광지로 빠르게 발전하며 세계적인 수준의 골프코스와 많은 호화 리조트들이 들어서 있다. 그리하여 바탐을 비지니스맨이 선호하는 국제회의 장소로 만들어 가고 있다. 바탐은 주로 주위의 섬들에서 이주해온 토착 인도네시아인들이 중심이었지만, 그러나 산업발전이 빠르게 이루어지면서 현재는 인도네시아의 각 지역에서 돈을 벌기 위해 또는 투자 목적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점심식사 이후에 바탐 내의 원주민 마을로 이동했다. 원주민 마을이라고는 하지만 특별히 인상적인 느낌은 없었다. 그저 가난한 인도네시아의 시골 마을이란 정도의 인상이었다. 아프리카 원주민에게서 느껴지는 벌거숭이라든지 그런 원시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바탐섬의 원주민 마을 입구에는 조그만 유치원 건물이 있었는데 개화되고 있는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을 안에는 관광객들을 위한 가설무대가 있었고 거기에서 간단한 민속춤을 공연했다. 조호 바루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특별히 예술성이 있는 것이 아니고 몇 푼의 돈 벌이를 위한 즉흥적 무대여서 춤 내용도 단조롭기만 했다. 그러나 관광객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어울릴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그나마 웃음을 선물 받을 수 있었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마을에서 공연을 보고 팁을 내거나 커피 등의 상품을 구입하면 그 돈을 통해서 새로운 교육시설에 보탠다고 한다. 노점상 형태로 조잡한 물건을 팔고 있는 장사꾼들이 있었지만 사 줄만한 물건이 없었다.
원주민 마을에서 나와 중국식 사원으로 안내되었다. 절의 모양이 우리와는 많이 달랐다. 중국계 인도네시아 거주민들이 믿는 여러 가지 종파들의 불상을 한 곳에 모아 놓은 느낌이다. 사원 내부에는 공자, 유비, 관우, 장비, 조자룡, 불상이 배치되어 있었다. 사원 외곽의 탑에서는 중국인들이 복을 빌기 위해서 빨간 종이를 모아 태우고 있었다. 이 사원 내부에서는 도교, 유교, 불교, 기복신앙 등 중국계 거주민들이 믿는 모든 신앙을 모두 포괄할 수 있는 것이어서 중국식의 실리적인 느낌을 받았다.
과일을 구입하기 위해서 잠시 시장으로 이동했다. 가게 안 쪽으로 우리나라의 재래시장과 비슷한 모습이다. 열대과일과 향신료가 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상인들은 무료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있거나, 띄엄띄엄 돌아다니는 손님들에게 물건을 팔고 있었다. 또 일부 사람들은 담배를 입에 물고 마작에 열중하고 있었다. 호텔로 돌아오면서 가이드가 설명해 보이는 구릉에는 많은 주택들이 지어지고 있었다. 이곳도 빠르게 개발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곳의 호텔은 어디서나 마찬 가지로 현대식이다. 잠이 오지 않아 호텔 지하로 내려가니 바에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음악이 연주되고 술잔이 오갔다. 한국 관광객이 많아서인지 연주자들이 한국노래를 연주해 준다. 관광객들의 일부는 약간의 팁을 내고서 노래를 자청해서 부른다. 그리고 트위스트 같은 쉬운 춤들을 추고 있다. 한 잔 술에 얼큰해진 우리도 무대로 나가 그들과 어울렸다. 여행이란 이런 휴식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가의 분할과 주민들의 삶
싱가포르 여행은 여행사의 과장광고에 홀린 것이라는 표현을 했지만 실제로 우리가 관광한 싱가포르나 말레시아의 조호 바루, 인도네시아의 바탐 등이 비록 국가는 다르지만 그 분위기나 인종 등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니 이들 3개 지역은 사실은 하나의 나라라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런데 인간은 필요에 의해 이들 지역을 분할해서 제각기 다른 이름의 국적을 갖게 한다.
따지고 보면 이 지구촌은 모두 하나다. 각 지역에는 오랜 예전부터 그 곳에 태어나고 성장하며 살고 있는 주민들이 있다. 그들은 국적에 관계없이 옛날 살아온 모습 그대로 살아가고 있다. 태어나서 먹고 입고 결혼하고 그런 과정에서 그들은 자연스런 관습에 따라 생활한다. 그런데 여기에 정치가 개입하고 권력이 개입하고 그리하여 서로의 갈등을 부채질하고 상대편을 적으로 간주하여 전쟁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 지구를 오염시키고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암적인 존재가 인간 자체라는 것을 우리는 새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조호 바루의 원주민이나 바탐의 원주민들, 그리고 그들이 추는 민속춤은 우리의 시골 모습과 다르지 않다. 다만 이들이 보다 가난하고 남루하다는 정도가 차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1950년대의 어떤 모습과 유사하다. 그런 점에서 순수한 안목으로 볼 때 그들 모두가 우리의 이웃으로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싱가포르에서 조호 바루는 1.2킬로의 다리를 하나 사이한 거리다. 싱가포르에서 반탐은 배로 45분. 20킬로의 거리다. 바다를 하나 사이하고 있을 뿐인 이들 지역이 제각기 다른 국가로 나뉘어 있어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설혹 나누어져 있다 하더라도 그들의 삶에 이들 국경이 장애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들 지역의 분할은 그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의도와는 관계가 없다. 역사적으로 볼 때 소위 영웅이라고 일컬어진 역사적 인물들, 또는 통치자라는 이름의 임금과 그 외 정치인들. 이들의 필요에 의해 인위적으로 분할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전쟁과 분단, 투쟁과 살인 같은 부정적인 사회 현실을 가져오게 된다.
이들 지역을 돌아보면서 나는 우리자신도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무엇이 잘못되고 있는지를 성찰해 보고자 했다. 한국처럼 오랜 전통의 나라가 분단되어 서로 우스꽝스런 경쟁을 벌이며 서로를 적대하는 이런 구 세대적 모순은 하루 빨리 청산 되어야 한다. 세계가 하나로 되어 가는 오늘에 있어서 남과 북의 대결 양상은 세계의 웃음꺼리다. 그리고 인류가 만들어 놓은 허구적 이념의 희생이 아닐 수 없다. 세계의 놀림감이 되고 있는 우리 자신을 성찰하고 정신을 차려서 우리민족의 공존공영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