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외 3편
윤 미 경
너에게 묻느라 지친 내 물음표의 점을 챙겨 들고
그랑자트섬으로 떠날 거야
운 좋게 일요일 오후에 도착한다면 엉덩이가 불룩한 빨간 모자를 쓴 여자의 양산에 닿을지도 모르지 아니면 검은 개 꼬리 끝에 앉을지도
빨갛거나 노랗거나 푸르거나 초록 점들 어디든 숨을만해서 다른 곳에서 굴러들어온 점이란 걸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거야 쉼 없는 질문으로 지쳤던 내 점에게 이만한 휴양지란 또 없을 테니 점들의 혼합과 분화 사이에서 느긋하게 굴러 다녀보려고 해
선착장에 배가 도착하는지 가끔씩 보려고 해
남겨 두고 온 물음표의 몸통을 다그쳐서 행여 네가 나의 행선지를 찾아낸다면
네가 그랑자트섬으로 기꺼이 와준다면 그 수 많은 점 중에서 내 점을 찾아낸다면 나는 못 이기는 척, 너를 따라나설지도 모르지
하지만 현실은 그림 같지 않아서
물음표는 답을 얻지 못하고 그랑자트섬은 너무 멀고
나는 망설이는 중이야
이 점을 네 이름 옆에 마침표로 놓을까
그러면 너와 그림 같은 이별을 완성할 수 있을까
앗, 월요일이야
귀뚜라미 한 대 놔드릴까요?
그녀의 발에 귀뚜라미가 들었다 귀뚤귀뚤 울음소리로 걷는다 발이 귀뚜라미 울음소리로 뜨거워질 때라는 건, 그녀가 달빛을 흠뻑 들이켰을 때다 달빛에 취한 그녀는 혼자 아름다워져서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지경이 된다
발은 땅을 무턱대고 날아올라서 도무지 내려올 줄 모르고 우주를 유영하는 그녀, 달빛이 수금지화목토천해명을 차례대로 밟고 내려온다 아, 명왕성이 있던 자리에선 안주 몇 개 낚아와 오도독 씹는 소리가 있었던가
몸은 허공에 있으나 발은 저만치서 뜨거워졌고 어디쯤에 흘리고 온 그녀의 복숭아뼈는 혼자서 뒹군다
달빛의 농도가 묽어지는 새벽이 오면 그녀는 침대 밑에서 발을 찾아들고 없어진 복숭아뼈의 부재에 골몰한다 누군가의 주머니에 담겨있던 복숭아뼈가 돌아와 제자리를 찾는 기적은 정규적으로 일어나고 어느 행성에서 묻혀왔는지 모를 검댕이는 말갛게 씻어 낸다
달빛은 오늘도 찬란할 예정이어서
그녀의 맨발은 오늘도 귀뚜라미 한 대 들일 테다
고난의 시제
간혹, 땅은 예고 없이 90도로 일어선다
무엇 때문에 융기하였는지 설명도 없이 고난은 현재시제로 덮친다
오늘의 길을 걷던 작은 여자 하나 우뚝한 각도에 갇혀 길을 잃었다 물 한 병 없이 슬리퍼를 신고 나선 길이 문득 산이 되었으니 여자는 이제 산을 버텨낼 수밖에 없다
맨발에 물집이 잡히고 목마른데 물길을 열어주지 않는 돌산, 짙은 안개마저 고난을 돕는다 해가 지고 밤이 되어도 고난은 현재진행형으로 끝나지 않고 여자는 몸을 눕힐만한 자리 하나 발견하지 못한 채 끝없이 올라갈 뿐이다
겨우 꼭대기에 올랐으나 내려가는 길은 추락에 가깝다 날개가 돋을 리 없는 겨드랑이를 껴안고 온몸을 굴린다
어리석음의 시제 역시 현재다
융기를 벼르는 산맥은 얼마든지 있다는 명심은 매번 허술하여 여자는 오늘도 슬리퍼를 신고 물병도 없이 길을 나서는 중이다
자주, 땅은 360도로 돈다
거미줄
새벽의 뼈를 만나다
지난밤, 공들여
숨겨두었을 뼈들이 즐비한 새벽
나무의 겨드랑이
의자의 사타구니
풀어헤친 풀들의 머리카락 사이에
밤을 빌어 숨기기 좋았던 뼈들이
새벽이슬의 밀고로
투명하게 검거됐다
날개를 가진 작은 것들의
무수한 사체들이 뼈 사이에서 장렬한
새벽, 산책길이
장지를 향해 열려 있다.
당선소감
시에 닿은 작은 점 하나
윤 미 경
목련이 한 움큼 설익은 봄을 쥐고 있었고 화단은 뾰족뾰족 돋 아나는 연두빛 화농으로 몸살을 앓습니다. 사방으로 봄의 기운을 전하느라 바쁜 와중에 당선이라는 반가운 연락을 받았습니다.
동화를 쓴 지 벌써 십여 년, 내 이름의 책들이 쌓여가는 동안 언제부턴가 목마름을 느꼈습니다. 동심에 젖어 아이들의 이야기 를 짓고 귀 기울이며 동화를 엮어가던 중 문득문득 느낀 갈증.
아이들의 눈높이에 갇혀 발산하지 못한 문장들이 목구멍을 간지럽혔습니다. 묘사를 덜어내고 가볍고 담백한 문장들 속에서 기승전결을 쫓는 사이, 납작하게 짓눌린 나의 이야기들이 말입니다.
탈출구를 찾기 시작하던 즈음, 몇 권의 시집을 읽었고 일렁이는 마음이 멀미를 시작했습니다. 날마다 시집을 필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을 시와 함께 열고 하루의 틈을 시들이 메꾸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시가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감히 시라고 끄적이는 이것들이 누가 되지 않을까, 몹시 두렵습니다.
안경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한때 미술 선생님이었다가, 화가가 되었고, 동화작가였다가 드디어 시에 당도했습니다. 인생의 어떤 전환점에서 그저 나의 목소리가 이끄는 곳으로 향했으나 매번 고단했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막막함이 두렵기도 했습니다만 이제 어떻게든 책임져야 할 순간임을 깨닫습니다. 성심과 성의를 다하여 휩쓸려가 보겠습니다.
부족한 작품에서 작은 싹을 발견해주신 《시와 경계》와 심사위원께 깊은 감사와 고마움을 전합니다.
당선작
맨발 외 3편
최 하 나
촐랑, 촐랑, 무수한 맨발들이
뛰어들었다
운동장에 비가 오고 있다
리베르 탱고 색소폰 연주처럼
여기도 찰박 저기도 찰박
발가락을 떼었다 붙였다 하며
누에보 탱고를 좋아한
하얗고 포동포동한 발들이
피아졸라의 변화를 감지한 것처럼
운동장 물속에서 춤을 추었다.
뛰노는 맨발들 곁에
자유 자유 자유
반도네온 소리에
나도 어느새 촐랑촐랑 찰박찰박
뛰어 들어갔다.
미싱
오버로크 한 번에 500원을 받았다.
무거운 스팀다리미를 종일 들면
짙은 어둠처럼 짓눌러오는 어깨의 통증
먼 산 소나기 몰아오듯 쏟아졌다
밤은 매일 오듯 가난의 실오라기들
거미집 같았다, 밤마다
재봉틀로 거미줄을 걷어냈다.
옷감의 가장자리가 풀려버린 박음질처럼
좀체 풀리지 않는 가난은
교복의 이름표처럼 박히기도 했다
미싱은 돌고 돌아 책상을 만들고 노트를 썼다
가난 위에 박음질 치고
오버로크를 치고 블랭킷 스티치를 쳤다
엄마의 꿈도 풀리지 않도록 단단히 휘갑치기 했다
이제는 엄마가 칠판에 오버로크를 친다
아이들이 바늘땀처럼 또박또박
엄마의 미싱을 읽는다
교실에 미싱이 돌고 돈다
엄마의 손이 아이들의 꿈에
블랭킷 스티치를 친다
선풍기
할아버지는 배 열 척이 넘는 선주였다
남들 다 먹는다는 박카스 한 병도 안 드셨다는 할아버지
주문진항에서는 우리 할아버지 배를 타지 않은 이가 드물었다
꽁치 명태는 만선이었다
출항할 때마다 떡 찌고 고기 삶아 고사 지냈다
할머니의 일은 선원들이 먹을 국수를 삶는 일,
아궁이 밖으로 뻗치는 불기운에
땀방울조차 타들어 가고는 했다는 것인데,
그때마다 선풍기는 돌고 돌았다
우리 집 아이들은 스크류처럼 도는 선풍기보다
스크류바를 더 좋아한다
어머니는 한사코 아이들이 신일 선풍기 바람이
제일 시원하단다고 우긴다
선풍기 뒤에는 기류가 발생하지 않는 것을 어머니는 모른다
스크류바 아이스크림 맛의 뒤는 달콤하다
날개 부근의 공기를 흡입하여 날개 뒤쪽으로 밀어내는 선풍기
프로펠라 주변의 물을 끌어당겨 뒤로 내보내는 스크류 배
그 어디쯤서 발생한 난기류는
할아버지의 어선을 비행기처럼 날려버린 것일까
시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다는 퇴물 선풍기 한 대
여름이면 끌어안고 사시는 어머니
신일 선풍기의 나이는 40살이 넘었다 했다
그 옛날 주문진항 선주집의 유물이란다
강바람
섬진강 모래 펄에서 학춤을 춘다
대나뭇잎 훑어내 막퉁소 불며
푹푹 빠지는 발밑에 봄을 심었다
강물로 강물로 아래로 아래로
물푸레잎 사이 은어들 숨어들 때
새눈 부릅뜨기 시작한 매화나무 맹아리들
온몸 부르르 떠는 것이었다
앙상한 나뭇가지들 드문드문
붉고 야문 방울들이 맺혀있다
새눈이 가지마다 붙어
섬진강 미처 풀리지 않아도 바람에
일렁이는 갈대같이
견디고 맞닥뜨리며 트는 싹
불그레한 새눈이 핏방울 터지듯
폭폭 터지면
쌍계사 십리 길에 만개한 벚꽃
누군가 겨우내 얼려두고 갔을 이별 따위도
화개장터 국밥집에 말아먹으면
화계천 은어튀김처럼 부푸는 봄
도다리쑥국처럼 시원 향긋해지는 봄
강바람 뜨거운 입김에 노래하며
날아가는 학,
끝내 옛 겨울 울음도 덮었다.
당선소감
꿈을 향한 아름다운 동행
최 하 나
겨울과 봄, 계절의 경계에서 심신이 지쳐 있었습니다. 강은 찾아오 는 사람에게 오래 세워두기를 좋아하는 것 같았습니다. 섬진강가를 배회하던 중 《시와 경계》 시부문 당선 소식을 들었습니다. 시인이라 는 소리를 들어도 될지, 갑자기 발걸음이 무거워졌습니다.
강은 알고 있습니다. 마음 둘 곳 없어 찾아와 쏟아놓았던 말들을, 뜻대로 살아지지 않아 눈물 쏟으며 했던 그 말들을 다 기억하고 있습 니다. 소식을 들은 섬진강이 눈이 부시도록 공감해 주었습니다. 왔던 길을 되돌려 주며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다독여 주었습니다. 부끄럽 지 않은 시인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유년 시절, 인생의 모본이 된 어머니와 시를 쓴 경험이 있습니다. 내 詩의 시작이었습니다. 제자들과 감성을 공유하며 십 년에 걸쳐 열권의 시집을 엮었습니다. 어머니와 제자들은 제 부족한 시에 대한 열망의 버팀목이었습니다. 부끄럽지 않은 스승이 되어 꾸준히 좋은 시를 쓰고 싶습니다.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과 《시와 경계》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곁에서 끊임없는 질책과 격려를 던져주신 선생님들, 하동문인협회 문우들께 고맙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가족들 곁을 바삐 떠나신 아버지와 그 후로 이십여 년 동안 홀로 자녀들을 영글게 한 어머니께 기쁜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응원해 준 가족들이 더없이 고맙습니다.
심사평
상상력과 체험의 시적 거리에 선 두 주체
미디어는 인간의 의식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특히 대화형 인공지능 챗GPT가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시점에 시를 포함한 예술 일반이 어떠한 방향으로 흘러갈지 자못 궁금하다. 또 다른 형태의 문학의 죽음이 선언될지, 아니면 제3의 문예부흥이 일어날지 헤아리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볼 때, 긍정적인 답변보다는 부정적인 측면이 더 많은 것 같다.
예술의 환경이 점점 더 급변해가는 시점에 『시와 경계』는 윤미경의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외 3편, 최하나의 「맨발」외 3편을 등단작으로 내보낸다. 타라 농장의 스칼렛 오하라가 석양을 바라보며 내일의 태양이 다시 떠오를 것을 기약했던 것처럼, 『시와 경계』도 오늘에 만족하지 않고 내일을 밝힐 윤미경, 최하나 시인을 시의 아카데미로 초대한다.
말을 찾아 떠나는 시의 길은 결코 만만치가 않다. 물론 Chat GPT로 인해 시 쓰기가 더 쉬워질 수도 있겠지만, 시란 늘 실존과 결단 사이에서 하나의 선택만을 강요하게 되는데, 이는 시의 정전적 가치와 실험적 전위 사이에서 방황하는 시지포스의 반복적인 운동임을 자각하면서 자신만의 고유한 시적 정체성을 찾는 숙명의 전언임도 명심해야 한다.
상상력이 돋보였다. 뭐랄까? 대상과 시말 사이에 간격을 자유자재로 조정하는 폭이 상당히 컸고, 그로 인해 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태를 독자들에게 전달하는데, 이는 시가 가진 미덕, 즉 새로움을 향하는 시인의 열정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시는 저와 같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시인이란 자고로 자신만의 고유한 체험을 시말 속에 응고시키되, 최대한 신선한 언어감각을 육화시키는 임무를 가진 자이다.
특히 윤미경 시인이 전개한 일련의 시말운동은 그러한데, 이는 조르주 쇠라의 점표화법을 시적으로 고양시킨 것인 동시에 삶과 미적 상상력 사이의 균열을 “이별”의 전언으로 육화시키고 있다. 때론 귀뚜라미 보일러를 우주적 상상력으로 고양시키면서, 때론 “여자”의 삶에 매개된 “고난”의 흔적을 “현재진행형”으로 소묘하면서, 시인은 거미줄처럼 얼기설기 얽혀 있는 인간사를 자신만의 상상적 지평을 확장해가고 있다. 앞으로 더 좋은 시를 쓸 것으로 기대가 된다. 미래가 밝다.
상상력과 기억의 어디쯤에 머물다가 문득 실존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실존이 본질을 앞서는 이유는 끊임없이 기억을 통해서 시간의 파편들을 의식으로 끌어올려 존재의 의미를 반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최하나 시인의 당선작들이 그러한데, 이는 상상적 “자유”와 과거의 기억 사이의 거리를 실존의 언어로 봉합하면서, 자신만의 시말을 찾아가고 있다. 때론 “엄마”의 “오버로크” 미싱을 추억하면서, 때론 40년이 넘은 “할아버지” “신일 선풍기”를 유년의 상상력으로 재구하면서, 최하나 시인은 하동의 섬진강 “강바람”으로 “옛 겨울 울음”을 덮으며 매화꽃 피는 봄을 상상하고 있다.
윤미경, 최하나 두 분의 등단을 축하드린다. 앞으로 더 좋은 시를 쓰며 거듭나기를 부탁드린다.
- 이석준(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