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지널부터 Z, GT, 그리고 슈퍼에까지 모두 레귤러로, 단순히 찔끔찔끔 참여한 정도가 아니라 정말 모든 드래곤볼 애니들에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한 애니메이터는 그리 많지 않은 편입니다. 해봤자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정도의 숫자죠. 오늘은 그 드래곤볼 애니의 산증인들 중 한 명인 ‘시마누키 마사히로’에 대한 글입니다.
‘세이가샤’의 동화가로서 닥터 슬럼프에 참여하며 커리어를 시작한 시마누키는 불과 몇 년 후인 드래곤볼의 19화에 들어서부터 원화가 역할로 승급되어 당시 세이가샤의 작화 감독이던 ‘타케우치 토메키치’ 밑에서 작업하게 되었습니다. 시마누키의 강점으로는 열이면 열 모두가 그의 이펙트를 언급할 것입니다. 특히 땅이나 바위의 파편들이 화려하게 튀기는 장면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데요.
Z에서 등장인물들의 전체적인 비주얼이 날이 갈 수록 날카로워짐에 따라 캐릭터들을 둥글게 그리는 스타일을 가진 타케우치가 작화 감독의 자리에서 밀려나게 되는 건 예정된 수순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시마누키는 당시 세이가샤의 또 다른 신성 ‘히사다 카즈야’와 함께 돌아가면서 작화 감독 역할을 맡게 되었고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죠. 세이가샤는 주요 전투씬이 있는 회차마다 투입되었으며 시마누키는 늘 그 중심에 있었습니다. Z가 끝나고 GT가 시작됨에 따라 시마누키는 Z 때와는 달리 작화 감독을 맡는 일 없이 줄곧 히사다 밑에서의 원화가에 머물렀습니다.
GT의 종영 후 닥터 슬럼프 리메이크판에도 참여한 시마누키는 세이가샤를 떠나고 토에이 전속 애니메이터로서 1999년부터 2014년까지 원피스에 몸을 담았습니다. 원피스 팬들에게 그닥 좋은 평가는 못 받았지만요. 그러나 시마누키는 드래곤볼과의 인연을 이어나가며 계속해서 여러 드래곤볼 게임 오프닝에 참여하였고 신들의 전쟁과 부활의 F에선 보조 작화 감독까지 맡게 되었습니다. 이런 시마누키가 슈퍼로 둥지를 옮기는 건 당연했고 8화의 작화 감독으로서 공식적으로 슈퍼에 데뷔했는데요. 다만 사실 시마누키는 스케줄 문제로 2화와 4화에 급하게 투입되어 원화들을 수정해야 했으며 엔딩 크레딧에는 이름이 올라가지도 않았습니다.
드래곤볼에 돌아온 시마누키는 과거 90년대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예전의 슬림하고 날카로운 스타일 대신 캐릭터들의 얼굴형은 아주 넓으며 둥근 모습이었고 그의 스타일에는 원피스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있었죠.
시마누키가 다시 드래곤볼에 적응하는 데엔 시간이 필요했고 드디어 미래 트랭크스 편에서 그것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얼굴형이 정상으로 돌아왔을 뿐만 아니라, 캐릭터 디자이너 ‘야마무로 타다요시’의 스타일을 따르지 않고 과거처럼 광대뼈 쪽 명암을 곡선으로 그리며 캐릭터들의 생김새에 깊이를 더했습니다. 시마누키는 슈퍼의 핵심으로 거듭난 듯 보였고 당연히 팬들은 앞으로도 시마누키가 좋은 활약을 펼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시마누키는 힘의 대회에 들어서자 기복이 매우 심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잘 그릴 때와 못 그릴 때의 편차가 매우 컸고 딱히 작화체가 미래 트랭크스 편 때와 달라진 건 아닌데 왠지 깊이가 이전보다 떨어졌었는데요. 우주 서바이벌 편을 기점으로 슈퍼의 퀄리티가 제법 나아진 데에 비해 정작 좋은 모습을 보이던 시마누키의 기대 이하의 활약은 팬들로서는 매우 아쉬울 수밖에 없었죠.
시마누키의 최대 약점은 단연 액션 시 캐릭터들의 포즈입니다. 시마누키의 전투씬을 자세히 보면 캐릭터들의 동작이 사람보다는 마치 로봇처럼 부자연스럽고 뻣뻣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이것은 예전부터 액션 애니메이터로서 시마누키의 치명적인 약점으로 꼽혀온 문제점인데요. 시마누키는 늘 이러한 점으로 인해 그와는 정반대로 캐릭터들의 역동적인 포즈에 강점이 있던 히사다 카즈야와 비교를 당하기도 했으며, 시마누키는 그 대신 주먹 한 방 한 방에 임팩트 프레임을 넣어 타격감을 살리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드래곤볼스러운 액션에 힘을 주었습니다.
그나마 과거엔 이 임팩트 프레임과 특유의 화려한 이펙트가 시마누키의 약점을 커버해내고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캐릭터들의 자세한 모션 하나하나로부터 시선을 분산시킬 수 있었으나, 이후 드래곤볼과는 다른 전투 연출 방식을 가진 원피스에 참여하게 되자 시마누키는 더이상 공격에 묵직한 타격감을 살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시마누키가 드래곤볼 슈퍼로 드래곤볼에 다시 돌아왔을 때는 캐릭터들의 어색한 몸동작이 임팩트 프레임 없이 적나라하게 팬들에게 목격되었으며 혹평을 들어야 했죠.
시마누키 마사히로는 디지몬에 참여 중인 상당수의 슈퍼 스탭진들과는 달리 슈퍼에서 맹활약을 펼친 바 있는 ‘투 용서’와 함께 현재 다시 원피스 팀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드래곤볼 팬들은 시마누키는 됐으니까 투 용서만 양보해달라고 입장이고, 원피스 팬들도 딱히 시마누키를 작화진에서 중요히 평가하지는 않는 편이라 개인적으로 많이 안타깝게 생각하네요. 그나마 이펙트는 여전히 준수한 편이라는 건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