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강 스피치와 시낭송 문학의 집‧구로 2014. 3. 24. 월
울렁증
민문자
오늘은 울렁증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가슴이 울렁울렁하는 현상을 울렁증이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어떤 때 울렁증이 일어납니까?
우리는 가끔 생각지 않았을 때에 듣는 뜻밖의 희소식이나 비보에 가슴이 울렁울렁합니다.
가벼운 걱정거리가 생겼을 때도 가슴이 울렁거리지요.
어릴 때 과일이나 맛있는 음식을 엄마 몰래 먹을 때 들킬까 봐 가슴이 몹시 두근거리고 울렁댔어요.
상급학교와 취업, 그리고 면접을 볼 때, 합격자 발표가 있는 날은 얼마나 가슴이 요동을 쳤던가요. 그중에 운전면허 시험 칠 때가 가장 떨리더군요.
처녀 시절에는 멋진 남학생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거나, 반대쪽에서 걸어오다 옆을 스쳐 지나갈 때면 공연히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두 근 반 서 근 반 했지요.
또 배우자를 고르려고 맞선을 보러 나갈 때는 머리 모양과 옷매무새를 고치며 거울을 연신 들여다보고 가슴이 얼마나 두근두근 울렁울렁했던가요.
손자 손녀의 출생은 기뻐서, 사랑하던 친구와 존경하던 스승의 부음이 날아왔을 때는 슬퍼서 가슴이 울렁거렸어요.
아버지를 일찍 여읜 저는 어렸을 때 성격이 너무 소심하고 겁이 많은 시골소녀였습니다. 어른 앞에서 이야기하려면 시작하기 전에 가슴이 답답하고 쿵쾅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인천에서 사업하시던 숙부가 자주 내려오셔서 홀어머니와 우리 형제를 도와주셨습니다. 어느 날 숙부께서 오신다는 소식에 만나 뵈면 ‘………………’이렇게 이렇게 말해야지 하고 학교에서 돌아오면서 계속 연습을 했습니다. 언덕진 오솔길에서 작은아버지를 딱 마주쳤는데 얼마나 가슴이 울렁거리던지요. 책상과 사발시계를 저를 위해 사 오셨다는 말씀을 하시며 친절하게 대해주시는데도 가슴은 더욱 요동을 쳤습니다. 한달음에 집으로 뛰면서 가슴을 가라앉혔습니다.
그러다가 교육대학에 입학하고 ‘어떻게 강단에 설까?’ 걱정하던 저였습니다. 교생실습을 하고 교사생활을 수년간 했지만 여전히 남 앞에 서는 것은 울렁증이 도지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울렁증을 극복하기 위해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시낭송회에 참여합니다. 시낭송하면서 울렁증을 가라앉히는 일, 긴장의 순간을 즐기고 있습니다.
걱정거리 울렁증이란 대부분 심리적인 불안감을 극복하지 못했을 때 대인공포증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사람들 앞에만 서면 다리가 떨린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식은땀이 흐르고 속이 울렁거리거나 목소리가 갈라지고 두 다리를 덜덜 떨면서 할 말을 잊기도 하지요.
자주 무대에 서는 배우나 강단에 서는 강사도 처음에는 모두 울렁증을 겪는다고 합니다. 스스로 자신을 칭찬하며 여러 사람 앞에서 자주 말하는 연습을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떨 만큼 떨면 나중에는 떨지 않습니다.
용기가 있어야합니다. 스스로 ‘나는 할 수 있다.’ 외치며 자긍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울렁증을 극복할 것입니다.
오늘은 울렁증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김지향 시인 약력
△1938년 일본 규슈 출생, 경남 양산 김해에서 성장
△홍익대 국문과 단국대 대학원 서울여대 대학원 졸업(문학박사)△태극신문에 시 <시인 젊은 R에게>(1954) 세계일보에 시 <별>(1957) 등 발표로 작품활동 시작
단국대 한세대 한양여대 문창과 교수 등 역임
한국장로문학상 한국기독교문화예술대상 등 심사위원장 역임, 한국여성문학인회 제21대 회장
《한국크리스천문학》발행인△시집『병실』 『막간풍경』 『'한줄기 빛처럼』 『리모콘과 풍경』 『발이 하는 독서』등 20여권
에세이집『바람과 연기(演技)』 『사랑 더 깊은 사랑』 『빛과 어둠사이』 등 6권
시론집『한국 현대여성시인 연구』. 연구논문 20여편△회갑기념문집『내일에게 주는 안부』. 시력 50년 기념문집『김지향 시세계』 『나뭇잎이 시를 쓴다』(제자들이 엮은 시선집)
△시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기독교문화상 학술논문상(한양학원 개교48주년 기념) 홍익문학상 자유시인상 세계시인상(The Gold Crown World Poets award 가야금관상) 기독교문학상 한국장로문학상 빛과 구원의 문학상 교육부장관상 박인환 문학상 한국평화복지인물상 한국크리스쳔문학상 윤동주문학상 한국시인정신상 한국민족문학상(대상) 등 수상
차표 없이 온 봄 / 김지향
차표 없이도 불쏘시개 한 장으로 개찰구를
빠져나온 봄 한 덩이
마중 나온 뾰루지 같은
봉오리들에게 화덕 한 통씩 안겨준다
봉오리들은 일심으로 화덕에 불을 붙인다
지나가는 바람 한 필 끊어와 살 살 살
화덕 앞에서 밤 내 부침개를 뒤집는다
해가 하늘 기슭에 얼굴을 내민 뒤에야
뒤집힌 자기 몸을 본다
불침번으로 지켜준 나무에게 손을 흔들며
빵긋, 봉오리를 깨고 나온 진달래
만산에 활짝 불을 피운 봄 아침
녹슨 추억은 뒤로 밀리는, 햇살이 똑 똑
부러지는 빳빳한 젊음을 산새들도 아직은
어리둥절 구경만 한다
봄 편지 / 김지향
들 끝에서
조그만 나비 한 마리가
날아왔다
내 눈이 주워 먹었다
내 눈엔 뾰족뾰족
샛노란 개나리가 돋아났다
개나리는 시간마다
2. 4. 6으로 갈라져 흩어졌다
작년에 져버린
들 밖의 봄이
세상 속에 가득 깔렸다
나비는 봄의 배달부였다
추억 한잔 / 김지향
꿈통에 대못을 박고
다시는 열지 않기로 했다
나의 이 굳은 결의 앞에
기억의 스크린이
책장처럼 넘어간다
스크린 한 토막 뚝, 잘라내어
가슴의 가마솥에 넣고 천천히 끓인다
허름한 삶 한 자락이
조청처럼 졸아들어
추억 한 잔으로 남았다
한 잔 속에 가라앉아 타고 있는
비릿한 추억의 눈을
만지작거리는 나에게
꿈통에 박힌 대못이 크게 확대되어 왔다
성급한 나의 결의를
저항이나 하듯이
가을 바람 / 김지향
가을 바람은
불씨를 갖고 있다
바람이 건드리는 풀잎마다
불이 켜지고
풀잎을 따는 가슴마다
불에 덴다
가을 바람은 머리가 없고
가슴만 솟아나 있어
가을 가슴에 우리 가슴이 얹힐 때
우리는 없어져 버린다
세상은 온통 불덩이로 떠오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