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나가르주나
[Nāgārjuna, Nagarjuna, 龍樹]
출생-사망 | 150년 추정~250년 추정 | | |
대표분야 | 불교철학 | | |
대표이론 | 공사상 | | |
대표학파 | 중관학파 | | |
대표저서 | 중론 | | |
관련철학자 | 지의 | | |
나가르주나의 생애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문헌으로는 다음 세가지가 있다.
① 쿠마라지바(344-413)가 지은 <용수보살전(龍樹菩薩傳)>
② 티베트의 부톤(1290-1364)이 저술한 <불교사>에 포함된 나가르주나 관련 기사
③ 티베트의 타라나타(1575-1615)가 저술한 <불교사> 가운데 나가르주나에 관한 서술등이다.
고대의 인물에 대한 기록이 흔히 그러하듯이 나가르주나의 전기 역시 신화적으로 채색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②와 ③의 경우가 심해서 어디까지가 역사적 사실이고 어느 부분이 허구적 전설인지 가려내기가 어렵다. 비교적 그 정도가 덜한 쿠마라지바의 <용수보살전>을 중심으로 나머지 전기와의 공통 부분 등을 참고해서 그의 생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나가르주나는 바라문 계급 출신으로 남인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했기 때문에 바라문들이 베다를 낭송하는 소리를 듣고 바로 그 문장을 암송하고 뜻을 이해했다. 그는 다방면에 재능이 있었는데 천문, 지리, 예언 등 여러 가지 비술을 체득하고 있었다. 세상의 깊은 진리를 통달했다고 생각한 그는 친구들과 함께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고자 은신술을 익혔다. 그들은 방술을 이용해서 왕궁에 들어가 궁중의 미녀들을 모두 범했다. 몇 달 후 후궁가운데 임신한 사람이 생기자 왕은 범인을 잡을 것을 명령했다. 마침 지혜로운 신하가 있어 침입자들을 처단할 수 있었으나 나가르주나만은 용케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나가르주나는 비로소 욕망이 고통의 근원이며 재앙의 뿌리라는 것을 깊이 깨닫고 출가하였다. 그는 경, 율, 논, 삼장을 독송하고 는 또 다른 경전을 찾았으나 얻지 못했다. 히말라야에 들어가 한 늙은 수행자로부터 대승 경전을 전해 받고 즐겨 암송하고 그 뜻을 이해했으나 아직 완전히 통달하지는 못했다.
이후 나가르주나는 인도 전역을 편력하면서 경전을 구해보는 한편 외도의 논사들이 주장하는 교의를 논박하고 복종시켰다.
외도의 제자가 나가르주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스승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一切智人]인데 지금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있습니다. 제자를 자처하는 것은 자신에게 부족한 점이 있음을 자인하는 것입니다. 만약 스승께서 부족한 것이 있다면 일체지인이 아닙니다.”
그 말은 들은 나가르주나는 굴욕감을 느끼고 교만한 마음을 냈다:
“이 세상의 가르침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뛰어나기는 하지만 아직도 철저하지 못한 점이 있다. 그러한 것들을 바로 잡고 보완하여 바른 법을 널리 편다면 또한 옳은 일이 아니겠는가?”
이리하여 나가르주나는 가르침과 계율을 [다시] 세우고 의복과 의식을 독자적으로 만들어 기존의 불교 교단과 약간의 차이를 두었다. 그는 홀로 수정으로 된 방에 거처하면서 새로운 계율과 의례에 따라 제자들을 받아들였다.
대룡보살은 나가르주나가 아만심에 차 있는 것을 보고 측은히 여겨 그를 바다 속으로 데리고 들어가 용궁의 칠보로 장식한 창고를 열어 대승의 경전들을 보여주었다. 나가르주나는 이것을 받아 석 달간 읽고 그 뜻을 두루 통하였고, 이윽고 여러 경전이 든 상자를 하나 얻어 본래 생멸이 없다는 무생의 법을 체득했다.
남인도로 돌아온 나가르주나는 외도를 복종시키고 크게 대승의 불법을 폈다. 여러 차례의 논쟁을 통해 많은 왕공과 장자, 브라만들을 불교에 귀의시켰다. 소승불교의 한 법사가 나가르주나에게 대해 앙심을 품고 있었다.
나가르주나가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내가 이 세상에 오래 머물기를 바랍니까?”
소승법사는 그의 장수를 바라지 않는다고 하자 나가르주나는 조용한 방으로 들어가 며칠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제자들이 문을 부수고 들어가 보니 매미가 허물을 벗은 듯이 죽어 있었다.
나가르주나가 세상을 떠난 지 백 년이 지났는데 남인도의 여러 나라에서는 그를 위해 묘를 짓고 부처님과 같이 공경하며 섬기고 있다. 그의 어머니가 아르주나라는 나무 아래에서 그를 낳았으므로 아르주나라고 하며, 용이 그의 도를 완성시켰으므로 나가[龍]라고 이름지었다. 이리하여 그의 이름이 나가르주나가 되었다고 한다.
그의 저술로는 <중론(中論)>이 가장 유명하다. 그외 <대지도론(大智度論)>과 <십이문론(十二門論)>도 지었다고 하고 이 세 문헌을 함께 불러 “삼론(三論)”이라고 부르며, 중국에서 4-5세기에 유행했던 삼론종이라는 종파의 이름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대지도론>과 <십이문론>이 용수의 저술인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학자들간에 논란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나가르주나 [Nāgārjuna, Nagarjuna, 龍樹]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