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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경요집 제7권
12.4. 권도연(勸導緣)
오직 이 거만한 마음은 백흑(白黑)에 다 통한다. 지혜 있는 사람이거나 어리석은 사람 그 누구도 변하지 못하며 부호이거나 천하거나 간에 똑같이 지니게 된다. 다만 가벼운 것은 버리고 무거운 것만 따지는 속가 사람들이 더 심할 뿐이다.
또한 어떤 이는 부질없이 제가 아름답다고 말하면서 어질고 재주 있는 이를 비평하고 거룩하고 덕 있는 이를 나무라고 헐뜯는다.
일체 속인[白衣]들은 하루 종일 이런 일을 행하면서 일찍이 단 하루라도 부끄러워하거나 표현하는 일이 없는데, 마음으로 훌륭한 도를 구하되 물러나서는 자기 자신을 반성해야 한다.
그런 까닭에 외서(外書)에서 말하였다.
“힘써 착한 도를 사모하면 몸을 편안하게 할 수 있고 힘써 효도와 공순해지기를 흠모하면 부모와 친척을 평화롭게 할 수 있다.”
또 어떤 군자는 석교(釋敎 :佛敎)를 숭상하여 따르고 받들어 닦고 실천하며, 정직하고 어질며, 물러서고 사양하며, 청렴하고 삼가하며, 믿고 순종한다. 모두가 다 전생에 식은 품성(稟性)이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니, 이런 것이 도(道)를 닦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또 어떤 출가한 사람은 성인의 가르침에 의지하지 않고 계율을 어기고 범하며 배우지 않아 아는 것이 없으니 속인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도인과 속인은 형상이 다르다.
계율을 범함에 있어서 드물고 잦음이 있고 마음에는 밝고 어둠이 있으며, 잘못에는 가볍고 무거움이 있다.
그러므로 출가한 사람은 아직 범하기 전에 생각마다 도에 들어가나니, 그러면 선한 업이 이미 몸에 배어 복의 터전이 두터워진다.
비록 미세한 악이 있다 해도 곧 부끄러워해서 고친다면 어느 누구도 경동(傾動) 할 수 없을 것이며,
만약에 사소한 부끄러움이었다 하더라도 곧 다시 맑고 깨끗하게 될 것이다.
만약 속가에 있는 사람에 대해 논하자면
몸은 부끄러워함이 없는 자리에 머물고 마음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는데에 있으며, 아내와 자식을 기르면서 재색(財色)과 오욕(五欲)만 집안에 가득하고 냄새나고 매운 채소와 술과 고기는 구하는 대로 얻을 수 있다.
애욕과 더러운 정이 깊어 잠시도 버릴 때가 없고 악한 인연과 함께 살고 있으니 어찌 그것을 변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곧 밝고 어두운 길이 나누어지고 검고 흰 것이 현격하게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밝은 것은 어두운 것을 없앨 수 있으나 어두운 것은 밝은 것을 없앨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조그만 등불의 밝음도 이미 커다란 어둠을 깨뜨리나니,
출가한 사람은 비록 조그만 잘못을 범하더라도 과거에 이미 밝음을 이루어 놓았으므로 실로 그 광명이 빛을 더할 수는 없겠지만 본래의 밝음이 항상 비출 수 있는 것이니,
마치 그릇에 심지를 둠으로써 그 업을 영원히 편안하게 할 수 있는 것과 같다.
또 출가한 사람이 악을 짓기가 극히 어려운 것은 마치 배가 육지로 가는 것과 같으며,
속가에 살고 있으면서 허물을 일으키기 쉬운 것은 마치 바다에 배를 띄우는 것과 같다.
또 출가하여 도를 닦기가 쉬운 것은 마치 바다에 배를 띄우는 것과 같고
속가에 살고 있으면서 복을 닦기가 너무도 어려운 것은 마치 육지에서 배를 가게 하려는 것과 같다.
배는 비록 같지만 경유하는 곳이 다르기 때문에 더디고 빠름이 같지 않나니, 닦고 범하는 것의 어렵고 쉬운 것도 또한 이와 같다.
나고 죽음에 물들기는 쉽고 선한 법을 이루기란 어렵나니, 일찍이 스스로 제도받기를 구하고 힘써 세속 벗어나기를 사모하라.”
또 『현우경(賢愚經)』에서 말하였다.
“출가의 공덕은 그 복이 매우 많다. 혹은 남녀의 종들을 놓아주거나, 또는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주거나, 또는 제 자신이 출가하여 도에 들어가면 그 공덕이 한량없이 많아 어떤 비유로도 비교할 수가 없다.
출가한 공덕은 수미산(須彌山)보다 높고 큰 바다보다도 더 깊으며 허공보다도 더 넓다.
왜냐 하면 출가로 말미암아 틀림없이 부처님의 도를 이룩할 것이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왕사성(王舍城)에 어떤 장자(長者)가 있었는데, 그 이름이 복증(福增)이었다.
그는 나이가 백 살이 넘었으므로 집안 대소(大小)들이 싫어하고 천대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는 출가한 공덕이 한량없다는 말을 듣고 곧바로 부처님 처소에 가서 출가를 청하려고 했다. 그러나 부처님을 만나려 했지만 계시지 않자 곧바로 사리불(舍利弗)의 처소로 갔다.
사라불은 그 늙은 이를 보았으나 제도하지 않았다. 이와 같이 오백 아라한을 찾았으나 그들도 다 제도하지 않았다.
그러자 곧바로 사찰 문을 빠져나오다가 문지방에 서서 크게 소리를 내어 통곡하였다.
세존께서 돌아오셔서 갖가지 방법으로 그를 위로하고 달랜 뒤에 곧 목건련에게 그를 출가시키라고 하셨다.
그리하여 목건련은 곧바로 그를 출가시키고 그에게 계를 주었다.
그러니 그는 또 항상 나이 젊은 비구들의 핍박을 받자 곧 물에 몸을 던져 죽으려고 하였다.
목건련이 그것을 보고 신통력으로써 그를 건져 언덕 위에 올려 놓고 그 인연을 불어 알아낸 뒤에 목건련은 생각하였다.
‘이 사람은 나고 죽는 것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도를 증득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곧 그로 하여금 지극한 마음으로 스승의 옷자락을 꼭 잡게 하고는 허공으로 날아올라 큰 바닷가에 이르렀다.
거기에서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떤 단정한 한 여인을 보았다. 그런데 벌레 한 마리가 그의 입에서 나와 다시 코로 들어갔다가 또 눈으로 나오고 다시 귀로 들어가곤 하는 것을 보았다.
목건련은 그것을 보고도 그대로 버려두었다.
제자가 물었다.
‘이 사람은 어떤 여인입니까?’
목건련이 대답하였다.
‘이 사람은 바로 사위성 안에 살던 대살박(大薩薄)의 아내이다. 그녀는 용모가 단정하여 세간에 짝할 이가 없던 사람이었다. 그 부인은 늘 삼가목(三奇木) 위에 거울을 걸어놓고 얼굴을 비추어 보곤 하였다. 그렇게 스스로 제 얼굴의 단정함을 보다가 문득 교만한 마음을 일으켜 매우 애착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녀들 너무나 공경하고 사랑한 남편이 그녀들 데리고 바다에 들어갔다가 풍랑을 만나 배가 침몰하여 불에 빠져 죽어 물가에 밀려 나와 있는 것이다.
이 살박의 아내는 스스로 제 몸을 사랑했기 때문에 죽은 뒤에 다시 태어나 옛 몸 속에 있으면서 이 벌레가 된 것이다.
이 벌레의 몸을 버리고 나서는 큰 지옥에 떨어져서 한량없이 많은 고통을 받을 것이다.’
다시 조금 더 가다가 또 어떤 여인을 보았다.
몸소 구리로 만든 가마솥을 지고 와서 그 안에 물을 붓고 불로 끓여가지고는 옷을 벗고 들어갔다. 살은 익어 뼈에서 떨어져 나가고 꿇는 물에 뼈가 밀려 밖으로 뒤어 나왔다가도 바람이 불면 다시 사람의 모습으로 형성되곤 하였는데, 스스로 제 살을 먹고 있었다.
복증(福增)이 스승에게 물었다.
‘이 사람은 어떤 여인입니까?’
그 스승이 대답하였다.
‘사위국 안에 어떤 우바이(優婆夷)가 있었다. 그는 삼보를 공양하고 믿어서 어떤 한 비구를 초청하여 한 여름이 다 가도록 공양하였다.
그 때 어떤 언덕 위에 방을 만들어 거기에 살게 하고는 스스로 갖가지 향기롭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여종을 시켜 보내곤 하였다.
여종이 그곳에 음식을 가져가다가 은밀한 곳에서 좋은 것은 가려내어 먼저 먹어치운 다음 그 나머지를 비구에게 주곤 하였다.
대가(大家)는 그것을 알아차리고 물었다.
〈네가 훔쳐 먹지 않았느냐?〉
여종이 대답하였다.
〈아납니다. 비구가 다 드시고 나머지를 저에게 주면 저는 그제서야 먹곤 하였습니다.
만약 제가 먼저 먹었다면 저로 하여금 세상마다 스스로 제 살을 먹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인연 때문에 먼저는 화보(華報)를 받있지만 나중엔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또 조금 더 가다가 어떤 살 나무[肉樹]를 보았다.
온갖 많은 벌레들이 그 나무를 에워싸고 그 몸을 갉아먹는데 빈 자리가 없었다.
그 나무가 울부짖고 통곡하는 소리는 마치 지옥에서 나는 소리와 같았다.
제자가 스승에게 물었다.
‘이것은 무슨 나무입니까?’
목건련이 대답하였다.
‘이것은 뇌리타(獺利吒)라고 하는 일을 경영하던 비구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재량권 때문에 스님들의 물건을 함부로 쓰면서 꽃ㆍ과일ㆍ음식 등을 속인(俗人)를 받는 것이요, 뒤에는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나무를 먹는 모든 벌레들은 바로 그 때에 그 물건을 받았던 사람들이다.’
또 조금 더 앞으로 가다가 어떤 한 남자를 보았다.
그 주변에는 짐승의 머리에 사람의 몸을 한 여러 사나운 귀신들이 손에 큰 활을 들고 있었는데, 세 쌍의 독화살은 화살촉마다 다 불이 붙어 있었다.
그들이 그 화살을 다투어 쏠 때마다 이 남자의 온몸은 다 불에 탔다.
복증이 스승에게 물었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목건련이 대답하였다.
‘이 사람의 전생의 몸은 큰 사냥꾼으로써 새와 짐승들을 많이 해쳤기 때문에 이런 고통을 받는 것이요, 이 뒤에 목숨을 마치면 큰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거기에서 또 앞으로 더 가다가 큰 산 아래에 칼이 꽂혀 있는 것을 보았다.
어떤 사람이 위에서 밑으로 떨어지면 칼이 그 몸을 마구 찔렀다. 이렇게 몸을 던졌다가는 다시 위로 올라가서 먼저처럼 하기를 쉬지 않았다.
복증이 스승에게 물었다.
‘이 사람은 또 어떤 사람입니까?’
스승이 다시 대답하였다.
‘이 사람은 왕사성 왕의 큰 장군으로서 용맹스러워 그 몸이 선봉(先鋒)에 처해 있으면서 숱한 사람의 목숨을 상하게 하고 죽였기 때문에 먼저 이런 고통을 받고 나중엔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또 조금 더 앞으로 가다가 어떤 뼈산을 보았다.
그 산은 높고 크기가 칠백 유순(由旬)이나 되었으므로 능히 해를 가려 바다를 어둡게 하였다.
그 때 목건련은 이 뼈산에서 한 갈비뼈 위를 왔다갔다 하면서 거닐었다.
제자가 스승에게 물었다.
‘이것은 무슨 뼈산입니까?’
스승이 복증에게 대답하였다.
‘그대는 알고 싶은가? 이것은 곧 그대의 옛 몸의 뼈이다.’
복증이 이 말을 듣고 나서 마음대로 놀라 털이 곤두섰고 두려움에 땀이 흘렀다. 그는 화상(和上)에게 말하였다.
‘이 말을 들은 저는 지금 심장이 찢어지려고 합니다. 부디 그 본말(本末)의 인연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목건련이 말하였다.
‘생사(生死)의 수레바퀴는 끝없이 돌아가고 있다. 션이거나 악이거나 간에 그 법을 지으면 그것은 언제고 없어지지 않고 반드시 그 과보를 받는 것이다.
옛날 과거 어느 때에 이 염부제(閻浮提)에 어떤 국왕이 있었는데, 그 이름이 범증(法增)이었다. 그는 보시하기를 좋아하고 기뻐하였으며, 계율을 잘 지키고 법을 들으며 중생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겨 그 목숨을 해치지 않있으며, 바른 법으로 나라름 다스리면서 스무 해를 지냈다.
그 동안에 한가하면 사람들과 함께 바둑을 즐겨 두었다. 그 때 어떤 사람이 법을 어기고 사람을 죽였으므로 신하가 그 왕에게 아뢰었다.
그러나 왕은 저녁 놀이에 빠져 있었으므로 예사롭게 대답하였다.
‘나라의 법대로 다스려라.’
그래서 곧 법률에 의거해 처단하면서 사람을 죽인 사람은 마땅히 죽여야 한다고 하고는 잠시 뒤에 죽여버렸다.
왕은 놀이를 마치고 신하들에게 물었다.
‘죄인은 어디에 있느냐?’
신하가 대답하였다.
‘죽였습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기절하여 땅에 쓰러졌는데, 물을 뿌리고 나서야 비로소 깨어나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였다.
‘궁인(宮人)들과 기녀(伎女)들과 코끼리ㆍ말ㆍ일곱 가지 보배 등은 다 여기에 있는데, 오직 나 혼자서만 지옥에 들어가겠구나.
내가 지금 사람을 죽였으니 마땅히 내가 바로 전다라왕(旃陀羅王)임을 알겠구나. 그러니 세세(世世)로 장차 어디로 갈 것인지를 모르겠구나.
나는 이제부터 결정코 왕노릇은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는 곧 왕의 자리를 버리고 산으로 들어가 스스로를 지켰다.
그 후 목숨을 마치고는 큰 바다 속에 태어나서 마갈어(摩竭魚)가 되었는데 몸의 크기가 길어서 칠백 유순이나 되었다.
모든 왕과 대신들은 스스로 그 세력만 믿고 백생들을 억울하게 한없이 살육했기에 목숨을 마치고는 대부분 큰 마갈어가 되어 온갖 벌레들에게 그 몸을 먹혔고 몸이 가려워 산에 비벼대면 벌레가 죽어 바다를 더럽혔으며 피는 백 리까지 흘러갔다.
그 고기는 한 번 자면 백 년 동안을 갔고, 굶주리고 목말라서 물을 빨아들이면 물이 입으로 흘러 들어기는 것이 큰 강물을 쏟아붓는 것과 같았다.
그 때 마침 오백 명의 장사꾼들이 바다에 들어가 보배를 캐다가 입을 벌린 이 고기를 만나 배는 어느새 그 입으로 나아갔다.
장사꾼들은 놀라고 두려워 모두 크게 소리내어 통곡하였다. 이윽고 고기의 입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그들은 동시에 같은 소리로 ‘나무불(南無佛)’ 하고 외쳐댔다.
그러자 고기는 부처라는 소리를 듣고 업을 다물었고 물이 잠잠해져 장사꾼들은 살아날 수 있었다.
그러다 그 고기는 배가 고파 죽어서 왕사성에 태어나 그대의 몸이 된 것이다.
그 고기가 죽은 뒤에는 야차와 나찰들이 그것을 끌어내어 바닷가에 두었다.
법증왕(法增王)이란 바로 지금의 그대로서 그대는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바다에 떨어져서 고기가 되었던 것이다.’
복증은 이 말을 튼고 나서 나고 죽음을 매우 두려워하면서 그 옛 몸을 보고는 법의 무상(無常)함을 깨달아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었다.”
또 『열반경(涅槃經)』에서 말하였다.
“집에 사는 것은 감옥과 같고 처자는 형들이나 자물쇠 같으며, 재물은 무거운 짐과 같고 친척(親戚)은 원수와 같다.
그런데 하루 낮 하루 밤 동안 깨끗한 금계(禁戒)를 받아 지니고 여섯 때[六時]로 도를 닦으며,
겸하여 해마다 늘 삼장재[三長齋]와 달마다 항상 육재(六齋)를 지내며,
채소로 맛을 절제하고 몸과 입을 단속하여 마음이 밖으로 치달리지 않아서 오로지 세속 벗어나기를 숭상하고 부처님 법을 높이 사모하여 굽어보고 우러러보기에 결함이 없고 앉고 눕기에 실수가 없으며,
밤에는 밝은 모양에 마음을 붙들어 매고 낮에는 깨끗한 법을 생각하며,
사문을 매우 공경하고,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세속을 이롭게 하라.
만약 이렇게 하면 비록 속가에 살고 있다 하더라도 고통을 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경전에서 말하였다.
“부처님 법이 끝나려고 할 때에 속인이 법을 보호하면 선(善)을 닦아 천상(天上)에 태어나는 것은 마치 허공에서 눈이 내리는 것과 같고,
비구가 계율을 어겨 악한 세계에 떨어져 빠지는 것은 마치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것과 같다.
마땅히 알아야 한다. 괴로움 속에서 복을 닦으면 그 복이 가장 크고 복 속에서 죄를 지으면 그 죄가 가볍지 않다.
그러으로 괴로움에서 즐거움으로 들어가면 즐거움 가운데 즐거움을 알지 못하고 즐거움에서 괴로움으로 들어가야 비로소 괴로움 가운데 괴로움을 안다.”
이 말로 증험할 수 있으니 반성하기 바란다.
또 『법구경(法句經)』의 게송에서 말하였다.
뜨거운 것은 음욕보다 더한 것이 없고
독한 것은 노여워하는 것보다 더한 것이 없으며
괴로운 것븐 몸보다 더한 것이 없고
즐거운 것은 적멸(寂滅)보다 더한 것이 없다.
부처님께서 이 게송을 마치시고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아주 오랜 옛날 무수히 많은 세상 이전에 다섯 가지 신통을 지닌 비구가 있었는데, 그 이름이 정진력(精進力)이었다.
그는 산 속 나무 아래 한적한 곳에서 도를 구하고 있었다.
그 때 새와 짐승[禽獸]네 마리가 그의 좌우에 붙어 있어 항상 안온할 수 있었으나, 첫째는 비둘기요, 둘째는 까마귀이며, 셋째는 독사요, 넷째는 사슴이있다.
이 네 마리 새와 짐승은 낮에는 나다니며 먹을 것을 구하다가도 밤이면 돌아와서 도의 곁에서 자곤 하였다.
어느 날 밤에 네 마리 새와 짐승이 서로에게 물었다.
‘세간의 괴로움 가운데 무엇이 가장 막중할까?’
까마귀가 말하였다.
‘배고프고 목마른 것이 제일 괴롭다. 배고프고 목마를 때에는 몸이 파리하고 눈이 어두워지며 선식(神識)도 편안하지 않다.
그래서 쳐놓은 그물에 몸이 걸리거나 칼날도 돌아볼 틈이 없으니, 우리들이 몸을 잃은 것은 모두가 이로 말미암지 않는것이 없다.
이로써 말하면 배고프고 목마른 것이 제일 괴로운 일이다.’
비둘기가 말하였다.
‘음욕이 가장 괴롭다. 색욕(色慾)이 치성할 때에는 아무것도 돌아보거나 생각하는 것이 없다. 그래서 몸을 위태롭게 하고 목숨을 잃는 것이 다 이로 말미암지 않는 것이 없다.’
독사가 말하였다.
‘성냄이 가장 괴로운 것이다. 독한 마음이 한 번 일어나면 친하고 친하지 않고를 가리지 않고 또한 사람을 죽이며 다시 자신까지도 죽인다.’
사슴이 말하였다.
‘두렵고 무서운 것이 가장 괴롭다. 나는 숲 속에 있을 때 마음이 항상 두렵다.
사냥꾼과 온갖 승냥이와 이리들이 무섭고 두려워서 비슷한 소리만 나도 곧 달아나다가 구덩이에 빠지곤 한다.
부모와 자식이 서로 헤어지고 간담이 항상 두근거린다. 이로써 말한다면 놀랍고 두려운 것이 제일 괴롭다.’
비구가 그 말을 다 듣고 곧 대답하였다.
‘너희들이 논한 것들은 모두 지말(枝末)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고통의 근본을 깊이 연구했다고 보지는 못하겠다.
천하의 괴로움은 이 몸보다 더한 것이 없다. 몸은 괴로움의 그릇으로서 근심과 두려움이 한량없이 많다.
나는 이 때문에 세속을 버리고 도를 배워서 뜻을 멸하고 생각을 끊어 사대(四大:地ㆍ水ㆍ火ㆍ風)를 탐하지 않고 괴로움의 근원을 끊으려고 니원(泥洹 :涅槃)에 뜻을 두고 있다.
그런 까닭에 몸이 큰 괴로움의 근본임을 알아야 한다.’
이런 까닭에 옛글에 이르기를
“큰 걱정거리는 이 몸만 한 것이 없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