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믿는 자란? - (1)
성경에 보면"내(예수)가 올 때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라고 하셨는데 과연 이 시대에 주님께서 너는 내가 보는 견지에서 '믿는 자이다'라고 인정해 줄 사람은 얼마나 될까? 현대교회 안에는 지극히 소수의 교인만이 해당되리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 세상엔 주님이 인정하실만한 믿는 자는 어떤 신자를 표준으로 삼아야 한단 말인가?
이상은 오늘날 대다수의 신자들이 갖고 있는 모순이다. 교인들의 기준으로 볼 때 신자이지만 주님과 성경을 비추어 볼 때는 "믿는 자"의 기준에 미달되는 것이다. 주님께서 누가복음 18장에서 "믿는 자"라는 교인의 수준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 맞이할 준비가 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뜻한다(눅 18:1-8). 그래서 히브리서에서는 현재 "자기(예수의 재림)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고 기록하였다(히 9:28).
이 원칙을 그대로 적용하여 바울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이미 가진 믿음을 기초로 해서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진보하는 삶으로 설명하였다(롬 1:17).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나는 초등학교 시절에 집이 학교와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길에 지나가는 같은 방향으로 가는 자전거를 얻어 타고 다닐 때가 종종 있었다. 자전거가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방향과 같을 때 올라탄다. 이처럼 천국가는 방향을 각자가 발견하고 천국가는 길로 가는 사람들과 같이 걷는 것이 믿음 위에 있는 사람들이다.
천국가는 사람들이란 지금 생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한 믿음"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는 천국 가는 길을 분명히 발견하였는가? 어떤 사람이 되면 천국 가는 사람이 되었다는 확실한 기준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발견하였는가? 그것이 확실히 성경이 제시하는 구원의 길이라면 그것을 붙들면 구원이다(고전 15:1-2, 히 3:6,14).
그러므로 주님의 면전에 서기에 한 점의 부끄럼 없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만이 "믿는 자"라는 칭호를 얻을 수 있다. 지금 당장에 주님 앞에서 전혀 부끄럼 없는 삶의 기준을 알고 또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믿는 자의 자격을 성만찬에 참여할 자로 정하고 성만찬에 참예하는 기준을 제시하기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잔을 마실지니 이는 심판 날에 죄 정함(죄인으로 드러남)을 받지 않게 하려함이니라"(고전 11:28-32)고 기록하였다.
교회 다닌다고 누구나 믿는 자가 아닐 수도 있다. 교회 안에서 높은 직분을 가졌어도 처음 믿을 때에 완벽한 믿음의 바탕으로 신앙생활을 출발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믿음의 기초가 잘못되어 있다. 요즘 신자들의 대다수는 믿음의 시작부터 잘못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래 위에 지은 믿음의 집들이 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이다. 건축물의 제일 중요한 부분은 기초공사이다. 기초를 튼튼히 애햐 건물이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마태복음 7장에서 비가 오고 바람이 불면 무너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시사하고 있는가? 그것은 심판날이 닥치면 구원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사람이 당할 위급한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인은 언제나 구원의 확신을 분명하게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 나가야 한다. 그래야만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날 곧 죽음이 갑자기 다가온다 하여도 당황해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반석 위에 지은 집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구원의 문제가 해결된 신앙인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래서 마태복음 16장에선 그리스도를 계시로 깨닫고 믿는 자를 반석 같은 믿음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에베소서 6장17절에선 구원의 확신을 머리에 쓰는 투구로 비유했다. 전쟁을 치르고 있는 군인에게 제일 중요하게 보호해야 할 신체부위는 머리이다. 다른 곳은 부상을 당해도 살 수 있지만 머리를 부상당하면 중고 사는 것과 직결된다. 이처럼 구원의 확신은 천국과 지옥이 갈라지는 문제이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하고 믿음생활을 한다는 이들을 바라보시는 주님의 관점은 모두 모래 위에 지은 허술하고도 아슬아슬한 믿음을 가지 교인이다.
첫댓글 교회를 다니고 있다고 해서
모두 " 믿는 자" 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