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우별은 일반에서는 독수리자리 알테어로 알려져 있지만, 옛 천문도에는 염소자리 베타별 다비로 되어 있다. 과연 견우별은 어떤 별일까? <일러스트 : 해와 달의 만남 당진愛 바다불꽃축제 포스터(일부)>
견우와 직녀는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헤어져 있다가 일 년에 한 번 칠월칠석에 까마귀와 까치들의 도움을 받아 상봉했다가 다시 헤어진다. 실제 밤하늘에서, 직녀별은 서양 별자리로는 거문고자리의 알파별은 베가(Vega)이고, 견우별은 일반적으로 서양의 독수리자리 알파별인 알테어(Altair)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천상열차분야지도]와 같은 옛 천문도와 천문관측기록에는 염소자리의 베타별인 다비(Dabih)가 견우별로 되어 있다. 과연 견우는 어떤 별일까, 알아보도록 하자.
잘 알려진 견우와 직녀 이야기는 중국의 남북조시대의 문학가인 은운(殷芸, 471-529)의 [소설(小說)] 에 나오는 이야기가 가장 이른 문헌 기록이다. 이 문헌은 명(明)의 풍응경(馮應京, 1555-1606)이 편찬한 [월령광의(月令廣義)·칠월령(七月令)]의 “일년일회(一年一回, 일년에 한 번 만남)”에 수록되어 있고, 7세기에 출간된 중국의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도 수록되어 있다.
은하수의 동쪽에는 직녀(織女)가 있었는데, 그녀는 천제(天帝)의 딸이었다. 해마다 옷감을 짜는 일을 하였는데, 옷감이 완성되면 구름무늬 비단과 하늘나라의 옷을 이루었다. 그러나 외모를 가꿀 짬은 없었다. 천제는 그녀가 외로이 지내는 것을 가엾이 여겨 은하수 서쪽의 견우랑(牽牛郞)에게 시집가도록 허락해주었다. 견우랑에게 시집 간 뒤에 직녀는 옷감 짜는 일을 그만두었다. 천제가 노하여 질책하며 은하수 동쪽으로 되돌아오라고 명령한 다음, 한 해에 단 한 번만 서로 만날 수 있게 해주었다.
사실 이 기록에서는 동쪽과 서쪽이 반대로 되어 있다. 실제 하늘에는 직녀별은 서쪽에 있고, 견우별은 동쪽에 보인다. 그러나 견우와 직녀가 언급된 것은, 멀게는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의 노래 가사집인 [시경(詩經)]에도 나오고, 사마천의 [사기(史記)]에도 나오며, 한나라의 화상석에도 새겨져 있다. 이야기가 문헌으로 채록된 것이 남북조시대였다는 말이다. 위의 간단한 이야기가 시간이 지나면서 이야기에 살이 붙었고, 또한 주변의 몽골, 한국, 일본으로 점차 퍼져나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 변종이 생겨났다.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견우와 직녀 이야기는 이렇다.
직녀는 옥황상제의 딸이었다. 그녀는 아름다운 옷감을 짜는 재주가 있었다. 그녀는 어느 날 은하수 가에 놀러 갔다가 하늘나라의 소치는 목동 견우를 만나 사랑이 싹텄다. 옥황상제는 직녀를 견우에게 시집 보냈다. 그러나 결혼한 두 사람은 달콤한 신혼 생활에 빠져서, 직녀는 자기의 임무인 옷감 짜는 일을 게을리 했고 견우는 소치는 일을 하지 않았다. 화가 난 옥황상제는 견우는 은하수의 동쪽에 직녀는 은하수의 서쪽에 살게 하여 서로 떼어 놓았고, 일년에 단 하루 칠월 칠석에만 만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나 막상 칠석날이 되었지만 은하수를 건널 방법이 없었다. 둘은 서로를 멀리서 바라보며 눈물만 흘렸다. 그 바람에 땅에는 홍수가 났다. 그래서 땅의 짐승들이 모여서 의논한 결과, 까치와 까마귀가 하늘로 올라가 은하수 위에 오작교를 놓아 견우와 직녀의 상봉을 도와주게 되었다. 그래서 이튿날이 되면 까치와 까마귀의 머리가 벗어진다고 한다. 또한 견우와 직녀가 만나서 흘리는 기쁨의 눈물로 해마다 칠월칠석에는 이슬비가 온다고 한다.
견우와 직녀가 나오는 고구려 덕흥리 고분 벽화. 평안남도 대안시 덕흥리에서 1976년에 발견된 고구려 고분 벽화.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선은 은하수이다. 벽화에 먹글씨로 적혀 있는 글에 의하면 이 고분은 408년에 만든 것이다.
우리나라에 견우와 직녀 이야기가 언제 알려졌는지는 문헌 자료가 없으므로 알 수가 없다. 다만, 408년에 완성된 고구려의 고분인 덕흥리 고분 안에서 발견된 벽화 속에 견우와 직녀의 그림이 나오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하면, 적어도 408년에는 견우와 직녀 이야기가 한반도에서도 회자되었음을 알 수 있다. 덕흥리 고분에 그려진 견우와 직녀 그림을 보면, 견우는 소를 끌고 있고, 직녀의 발치에는 검둥개가 한 마리 따르고 있다.
중국의 견우와 직녀를 소재로 다룬 최초의 문헌은 [시경(詩經)]이다. 이 책은 중국의 춘추시대(기원전 770년~기원전 403년) 이전의 노래를 모아 놓은 것이다. 이 책의 “소아(小雅)·소민지십(小旻之什)” 제9편 “대동(大東)”에 견우와 직녀가 언급되어 있다.
아아, 하늘엔 은하수. 바라보니 역시 빛이 나네.
베틀질하는 저 직녀가 하루 종일 일곱 번이나 자리를 옮기는구나.
비록 일곱 번 자리를 옮겨도 비단 무늬 못 짜네.
밝은 저 견우도 수레를 끌지 않네.
동쪽에는 계명(啓明), 서쪽에는 장경(長庚).
구부정한 천필(天畢)은 뭇별 속에 놓여 있을 뿐.
조선시대 간행된 [시경(詩經)]의 부록에 들어 있는 “대동총성지도(大東總星之圖)”. <출처: 안상현 등, 2010, [천문학논총], 25권, 129-139쪽 “견우성의 이중적 의미에 대한 해석”>
여기서 계명(啓明)은 새벽에 보이는 금성을 말하고, 장경(長庚)은 저녁에 보이는 금성을 말한다. 우리말로는 샛별과 개밥바라기별이다. 천필(天畢)은 필성(畢星) 또는 필수(畢宿)이라고도 하는데, 현대 별자리로는 황소자리이며 토끼를 잡는 그물을 형상화한 것이다. 조선시대에 발간된 [시경]에는 ‘대동총성지도(大東總星之圖)’가 있다. [시경]의 ‘대동(大東)’이란 시에 나오는 별과 별자리를 모두 그려놓은 참고 그림이다. 대동총성지도의 견우는 그 모양이나 은하수와 떨어진 거리 등으로 볼 때, 분명히 염소자리의 다비(Dabih)라는 별이 분명하다.
조선의 학자인 이익(1681-1763년)은 [성호사설]에 “우녀(牛女)”라는 항목에서 하고(河鼓, 독수리자리 알파별 알테어)가 견우별이라는 일반적인 인식이 천문도의 내용과 맞지 않음을 지적하고 있다.
“칠석날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옛 이야기가 있다. 까마귀와 까치가 다리를 놓아주기 때문에 이날이 지나면 까막까치는 모두 머리가 벗겨진다고 한다. 유종원(柳宗元, 773-819년)은 “걸교문(乞巧文)”에서 ‘천손(天孫)이 하고(河鼓)에게 시집간다.’라고 했는데, [사기]의 “천관서(天官書)”에는 ‘천손은 직녀다.’라고 되어 있다. 송(宋)나라 학자인 정초(鄭樵)는 “[이아(爾雅)]에 ‘하고는 견우’라는 말이 있으므로 나도 하고는 견우로 본다.”라고 하였다. 이렇듯 옛 시인들과 문인들은 하고를 견우라고 여겼는데, 내가 천문도를 보니, 견우가 따로 있고 하고도 있으니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천문관측 기록에서 “몇 년 몇 월 몇 일에 달이 견우성을 범했다.”는 ‘월범견우(月犯牽牛)’기록을 검증해 보면, 그 날짜에 달이 침범한 천체는 거의 예외 없이 염소자리, 특히 염소자리 베타별(β Cap)인 다비(Dabih)로 확인된다. 즉 고려와 조선의 천문학자들은 염소자리 베타별을 견우별로 여겼고, 그 별이 포함된 별자리를 견우(牽牛)라고 보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1624년 양력 3월의 ‘태백성이 견우의 넷째 별을 범하였다’는 기록의 실현. 3.5는 3월 5일을 뜻하며, 각 날짜에 따라 각각 금성의 위치를 표시하였다. 따라서 이 기록이 가리키는 견우는 염소자리 베타별(β Cap)과 그 주변의 별들로 이루어진 별자리임을 확인할 수 있다. <출처: 안상현 등, 2010, [천문학논총], 25권, 129-139쪽 “견우성의 이중적 의미에 대한 해석”>
견우별은 어느 별인가? 알테어가 견우별이라는 까닭은 다음과 같다. 다비는 너무 어두워서 밝은 직녀와 걸맞지 않는다. 어둡기 때문에 찾기도 쉽지 않다. 또한, 옛 문인들의 시문에 하고(河鼓, 알테어)를 견우와 동일시 하고 있다. 한편 다비가 견우별이라는 까닭은 다음과 같다. 우선 [천상열차분야지도]와 같은 고대 성도에서는 하고(河鼓)가 은하수 경계 안에 들어가 있어서 전설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리고 만일 하고가 견우라면 달이나 행성이 견우에 접근했다는 많은 천문 관측 기록들을 설명할 수 없다. 또한 전등이 없어 오늘날 보다 훨씬 깜깜했던 옛날 하늘에서는 3등성 정도의 별을 쉽게 인지하는 것이 가능하므로, 3등성인 다비도 충분히 중요한 별로 인식될 수 있다.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다음과 같다. 고대로부터 시인묵객들은 견우(牽牛)라고 하면 대개 견우성(牽牛星)이라는 하나의 별로 인식하였으며, 그 별은 하고(河鼓)라는 세 개의 별로 이루어진 별자리의 중앙에 위치한 하고대성(河鼓大星) 즉 알테어(Altair, α Aql)였다. 한편, 고대의 천문학자들이 인식한 견우는 다비(Dabih)를 포함한 별자리로 우수(牛宿)로 호칭되었고, 특별히 견우대성(牽牛大星) 또는 견우중성(牽牛中星)이라고 호칭되는 천체는 염소자리 베타별(β Cap)인 다비(Dabih)라는 하나의 별을 뜻함을 알 수 있었다.
이미지 목록 문학과 민속에서의 견우별인 독수리자리 알파별 알테어(화살표) | 역사천문학에서의 견우별인 염소자리 베타별 다비(화살표) |
결론적으로 말해서, 역사적으로는 하고(河鼓)와 우수(牛宿)가 모두 견우(牽牛)라고 불려졌었다. 문학과 민속으로 견우성을 접해온 일반인들은 알테어를 견우성으로 인식하고 있고, 천문학자들은 다비(β Cap)를 견우대성으로 불러왔다. 같은 ‘견우(牽牛)’라는 명칭을 분야에 따라 다른 별에 사용하게 됨에 따라 혼란이 생겼던 것이다. 그러므로 칠석날과 같은 민속에서는 독수리자리의 알파별 알테어를 견우별로 정하고, 옛날 천문 관측 자료를 분석하여 역사천문학 연구를 할 때는 염소자리의 베타별 다비를 견우로 보는 것에 유의하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