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가 멈춰 서자 허이(许伊)는 맨 먼저 뛰어내렸다. 이어 “이야- 향기로워!” 하는 그녀의 감탄소리가 차안에까지 들려왔다. 그는 참지 못하고 빙그레 웃었다. 그녀의 유치함 때문이었다. 그녀는 27, 28세 쯤 되어보였다. 허나 아직도 어린애 같았다. 외모도 그렇고 행동거지도 그렇고. 사실 그의 이상형은 이런 천진난만한 여인이 아니었다. 나이처럼 머리가 비었기 일쑤였고 많은 경우 이 여자애 또래의 순진함이란 꾸며낸 거였기 때문이었다. 그와 같은 나이의 남자들의 눈을 속이기엔 꾸며낸 순진함 따윈 졸렬한 수단이었고 헛수고였다. 하지만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또 설령 그녀가 안다 할지라도 대수롭잖게 생각하리라고 그는 믿고 있었다. 7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자신만 좋으면 다른 사람의 감수 같은 건 종래로 개의치 않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차에서 내린 후에야 일행은 비로소 휴양지 호텔의 전모를 보게 되었다. 휴양지는 호숫가에 자리 잡은 건축군이었다. 바다처럼 안겨오는 확 트인 호수는 고원호수 특유의 청정한 물빛으로 반짝였고 저 멀리 외로운 섬이 고즈넉이 떠있었다. 울창한 나무숲과 조화롭게 어우러진 이 모든 것들은 완연 한 획을 빼어서도 안 되고 한 획을 더 보태여도 안 되는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사위에는 또 많은 꽃나무들이 심어져 있었는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키 높은 목련나무들이었다. 목련꽃이 만개한 꽃나무들에선 감미롭고도 향긋한 꽃향기가 진동했고 그 그윽한 향기는 온 천지를 뒤덮으며 사람들을 감싸 안아 자칫하면 그 향기에 취하게 하였다. 꽃향기는 진실로 사람을 습격하였을 뿐만 아니라 지어 모략까지 곁들였다. 먼저 그대의 머릿결, 귀밑머리, 옷자락에 젖어들었고 다음 그대의 숨결에 스며들었으며 그대가 조금만 방심하면 그대의 오장육부를 점령하였다.
이번 필회에 계몽북(纪蒙北)은 올 마음이 없었다. 수년간 부대창작실 전업작가로 사업하며 이런 크고 작은 필회에 너무 다녀 인젠 신물이 났었기 때문이었다. 하물며 모임인 이상 신경을 써가며 상투적인 인사말을 나눠야 하였고 또 멋 적은 술도 응부하여 마셔야했기 때문이었다. 사십을 넘어서며 그는 점점 이러한 것들을 싫어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필회를 문단의 광범한 사교모임으로 생각하며 필회를 통하여 뭐 책 출판이든가, 작품 홍보라든가, 필전(笔墨官司)이라든가…… 그리고 또 돈벌이 구멍을 뚫는다든가 하는 등의 각종 업무를 교섭한다는 곳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허나 이러한 것들은 그와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는 글을 쓰기 시작한 첫날부터 이러한 것들을 필요치 않았던 것이었다.
전하는데 의하면 작가들의 필회는 사랑이야기를 많이 산출했다. 스캔들을 몇 개씩 꽁무니에 달고 다니는 작가도 꽤 많았지만 계몽북에겐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왜 그만이 독선기신(独善其身)이라 하는지 궁금해 했고 또 “어쩜 백마왕자처럼 기품 있는 외모를 가진 사나이가 남녀의 사랑을 모를까?” 하며 애석해 하였다. 지어 “그라고 왜 남녀 간의 사랑을 모르겠어? 그저 마음의 문을 굳건히 닫았을 뿐이겠지.”라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견해에 대하여 계몽북은 그저 일절 웃어넘겼다. 가능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흥취가 없었던 것이었다. 그는 스캔들의 남주인공이 되어 수많은 사람들의 혀와 침방울 속에서 끈적해지고 더러워지는 것이 싫었다. 매번 사람들이 뒤에서 스캔들에 에워싸인 동료들을 담론할 때면 그의 가슴속에선 스캔들의 주인공들에 대한 몰리해와 연민의 감정이 솟구쳐 올랐다. 참 멀쩡한 두 사람이 왜 이처럼 자중하지 않아 이런 추잡한 얘기들을 꽁무니에 달고 다니는지?
지난 달 그가 소재한 성 작가협회에서 개선이 있었다. 그가 모 직위에 당선된다는 여론이 들끓었었다. 하지만 결과 그는 낙선되었다. 시초 별로 마음에 두지 않은 일이었으나 막상 사람들에게 떠들썩하게 담론되었던 터라 물 건너가자 왠지 불쾌해났다. 그 자리에 미련이 있어서가 아니라 원래 자신과 관계없는 일이 사람들에 의하여 억지로 관계가 맺어졌고 또 결과가 허무하여 다른 사람보다 무능한 것으로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또 설령 다른 사람보다 무능하다 할지라도 그는 비기고 싶은 마음이 꼬물도 없는데 한 무리의 싱거운 사람들이 기어이 그에게 이 수모를 얹어주었던 것이었다. 특히 줄곧 이런 허명을 탐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를 만나기만 하면 붙들고 의분과 불공평함을 토하였는데 이런 친절함을 그는 거절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삼킬 수도 없었다. 허! 내가 언제 저 치들과 한 부류가 됐어! 그는 본래 참가하지 않기로 한 필회에 다시 참가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래 표정이 풍부한 상판들을 피해 나가 기분이나 푸는 거다!
허이는 처음으로 필회에 참가했다. 출판사에서 근무한지 몇 년이 되었지만 줄곧 이런 기회가 없었었다. 이번에도 원래는 사장이 참가할 예정이었으나 “삼강(三讲)”때문에 몸을 뺄 수가 없어 그더러 참가하게 하였다. 그 무슨 특별한 임무도 없었다. 그냥 작가들과 면목을 익히면 된다는 것이었다. 이게 무슨 임무인가? 그야말로 변상적인 요양이었다. 하물며 그가 가는 곳이 풍경이 수려한 운남이기까지 하니. 나이가 제일 어리고 근무연한이 가장 짧은 그를 보낸 것은 솔직히 그에 대한 변상적인 장려였다. 그녀는 사장의 배려에 감격해마지 않았다.
어제는 도착 날이었다. 그녀는 곤명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다음날 징강‘澄江’에 도착하였다. 그곳에서 필회에 참가하는 모든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총 9명이었는데 반수 이상은 늙은이었다. 당연히 모두 명망 있는 늙은이들이었다. 그중 성이 호(胡)가인 노작가가 쓴 산문을 그녀는 중학시절에 벌써 교과서에서 읽었었다. 모두들 그이를 후로우‘胡老’라고 불렀다. 다음 두 중년 여인이 있었다. 이름을 얘기하면 모두 아는 사이였지만 그들은 저들의 대화에 빠져 아예 그녀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작가가 아니기에 그들이 자신을 이렇게 대하나 보다고 생각하였으나 아니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도 담담했다. 그제야 그녀는 이것이 그들의 일상 상태임을 알게 되었다. 그중 오직 한 남자만 비교적 젊었는데 부대에서 온 계몽북이었다. 들은데 의하면 그는 젊은 나이에 상교(上校)로 되었고 문직이기에 군복을 입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저도 몰래 그에게 몇 번 눈길이 갔다. 단정한 이목구비에 건강함으로 넘치는 구릿빛 피부를 가진 그는 항상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꼭 마치 그러지 않으면 무슨 합당하지 않은 얘기라도 흘러나오는 듯하였다. 그는 표정이 많지 않았고 행동이 신중하였으며 군복을 입지 않았지만 언제나 군복을 입은 것처럼 느껴졌다. 뿐만 아니라 매 하나의 단추를 모두 꽁꽁 채웠는데 꼬물의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는 속으로 살며시 그를 상교라고 불렀다.
일행들이 차에서 내려 목련꽃의 향기에 포위되었을 때 그녀는 무심결에 “이야, 향기로워!”라고 감탄을 토하고는 인차 계면쩍음을 느꼈다. 사람들이 자신을 하찮은 일에 호들갑을 떤다고 웃을 것 같았던 것이었다. 허나 그녀는 바로 생각을 돌렸다. 흥, 웃을 테면 웃어라지. 뭔 관계가 있담? 허이는 다른 사람들의 눈길 때문에 자신을 속박하는 것은 지난 세기에나 있을 법한 케케묵은 처세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눈을 들어 둘러보는 순간 그녀는 계몽북의 한 쌍의 침착한 두 눈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 눈 속의 내용을 그녀는 읽어낼 수 없었다. 그냥 흑백이 분명할 뿐이었다. 그는 마치 새삼 힘들이지 않고도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듯싶었다.
저녁밥은 호텔 식당에서 먹었다. 여러 가지 생선 외에 산에서 나온 진기한 산물들이었다. 한창 버섯이 나는 계절이라 각종 버섯들이 오구구 얼굴을 내밀었다. 그물버섯, 꾀꼬리버섯, 건바버섯, 계종버섯…… 버섯요리를 만드는 방법 또한 다양하였다. 고추와 함께 볶기도 하고 고기를 잘게 썰어 넣고 볶기도 하였으며 버섯을 넣어 닭국을 끌이기도 하였다. 버섯으로 만든 각종 요리는 거의 상의 절반을 차지하였다. 허이는 처음으로 이처럼 신선한 버섯들을 맛보게 되었다. 향긋하고 신선하고 만만하고 매끄럽고. 허이는 입맛이 당겨 작은 공기로 밥을 세 공기나 축내며 이 맛 나는 버섯요리들을 통쾌하게 먹었다. 상에서 그녀처럼 식욕이 좋은 사람은 계몽북 뿐인 것 같았다. 허나 그는 술을 마셨고 국을 먹지 않았다.
후로우가 웃으며 부러운 목소리로 얘기하였다. “그래도 젊은이들이 식욕이 왕성해!”
두 중년 여인 중 한 사람은 성이 단씨고 한 사람은 임씨였다. 단씨가 말했다.
“허이는 먹을 복 있어요. 선천적으로 날씬해 다이어트 할 필요 없으니까요.”
“당신도 다이어트 할 필요가 없죠.”
임씨의 얘기에 단씨는 득의에 찬 미소를 지었다. 사실 그 둘 모두 뚱뚱하지 않았다. 허이는 한번 씩 웃어보이고는 아무 말도 않고 또 걸쭉한 송이버섯계탕을 반 공기 후루룩 마시고는 흡족해 국 숟가락을 놓았다.
“몽북이, 조금 후 함께 호숫가나 거닐까?”
후로우가 입을 막고 이를 쑤시며 계속하여 얘기하였다.
“우리 못 만난 지 3년이군.”
“좋습니다. 제가 선생님의 방에 모시러 갈게요.”
계몽북이 공경스러운 태도로 이야기하였다. 후로우와 계몽북의 부친은 오랜 친구였다. 단씨는 즉시 호응해 나섰다.
“그럼요. 호숫가에서 산책해야죠. 호숫가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잇달아 임씨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얘기하였다.
“호- 전 오늘 밤 또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네요. 매번 경치가 좋은 곳에 오면 전 왠지 그냥 실면해요.”
허이는 ‘중년 임대옥이네.’라고 생각하며 속으로 그를 살그머니 대옥누이라고 불렀다.
결국 일행은 모두 호숫가에 가 산책을 하게 되었다. 그들은 두세 사람씩 짝을 묶어 호숫가를 거닐었는데 어떤 사람은 담배를 피웠고 어떤 사람은 우스개를 하였으며 또 어떤 사람은 민간속요를 흥얼거렸다. 계몽북과 후로우는 갈라진 후의 각자의 정황들에 대하여 얘기하면서 지인들의 근황을 서로 물었다. 모두들 이번엔 임무도 없고 지방의 영도들과도 교제하지 않아도 되며 또 선전용 문장도 쓸 필요가 없기에 잘 휴식할 수 있다고 이구동성으로 얘기하였다.
허이는 꽃을 꺾었다. 그는 목련꽃을 한 묶음을 품에 안고 산보하는 내내 향기를 맡았다. 청신한 공기는 향기롭고 티끌 하나 없었다. 호수의 물빛도 청정한 것이 현실감 나지 않았다. 설령 호수의 물이 자신의 발 위에 있을 지라도 아득하게만 느껴질 것 같았다. 먼 곳에 눈길을 주면 그 물빛은 또 사람들의 가슴을 떨리게 하는 영롱한 빛으로 변하였다. 마치 기이한 전설이 금방 끝나 그 여음이 지금까지 살랑거리는 것 같았고 또 아주 일상적인 사건이 발생하려는 듯싶었다. 펑퍼짐한 구름은 유별나게 희고 어마어마하게 컸으며 사람들과 그처럼 가까웠다. 모든 것들은 너무 진실하여 외려 아득하고 허황하게 안겨왔고 또 허망한 것이 오히려 진실감을 주었다. 이 곳은 정말로 기이했다. 그 기이함은 뼛속까지 스며든 기이함이었다.
사람들이 호수를 찬미하자 후로우도 흥미가 솟아 얘기하셨다. “전지호(滇池)의 물은 이곳과 비길 수 없어. 심하게 오염되었고 면적도 작아졌지요. 하지만 고금 제일 장련(古今第一长联)은 참 잘 썼어. ‘5백리 전지 눈앞에서 사품치네/옷섶 헤치고 두건 날리며/광활한 벽파 마주하니 가슴속의 환희 금할 수 없노라……’허허, 뒷부분은 외우지 못하겠네.”
계몽북이 말하였다.
“기실 이 장련은 서두가 훌륭하고 기상이 있을 뿐입니다. 뒷부분에서는 그냥 글자 수에서 기록을 돌파하기 위하여 앞의 것들을 해석하였죠. 만약 상련이 이 구절만이라면 하련은 ‘수천 년의 애환 가슴속에 사무쳐/술잔 들고 하늘 보며 장탄식 하노라/ 아, 천고의 영웅들 강물처럼 흘러갔어라’라는 부분까지 써도 아주 완정하지요. 할 얘기를 다 토했으니까요.”
후로우가 읊조리고 나서 웃으며 얘기했다.
“일가지언이네, 일가지언!”
허이는 ‘후로우의 이것은 대체 찬성인가 부정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가하게 산보하며 얘기를 나누노라니 계몽북은 출발시의 불쾌함이 조금조금 사라지고 마음이 많이 홀가분해진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훌쩍 자리를 떠 세간의 하찮은 득실들을 먼 곳에서 바라보자 그러한 것들이 한층 더 별거 아니게 느껴졌고 마음을 쓰는 것이 아니라 언뜻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조차도 무의미해 보였다.
일행을 수행한 쇼리(小李)는 40세 좌우로 안겨왔다. 외모는 더없이 수수했지만 입을 열자 인차 그의 재능과 수양이 흘러나왔다. 그는 모두들 경치를 한껏 구경하기를 기다려 천천히 이 호수의 전설에 대하여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얘기에 의하면 이 호수는 형성된 지 340만년이나 되었는데 송조 때에는 나가호(罗伽湖)로 불렀고 민간에서는 또 청어희월호(青鱼戏月湖)라고 불렀다는 것이었다.
“청어희월호, 이 이름 듣기 좋아!” 후로우가 감탄했다. 계몽북이 “한 사람이 학명은 이봉추(李凤秋)라 부르고 애명은 소련(小莲)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지요.”라고 말하였다. 모두들 “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허이는 ‘소련이라는 여인 꼭 청순하고 물 오른 아리따운 여인일 거야.’ 라고 나름 속생각을 굴렸다.
조금 후 쇼리가 얘기했다. “그래요. 꼭 그 느낌이죠. 하지만 저희들은 당신들처럼 그렇게 멋지게 표현할 줄 모르죠.”
허이는 첫 순간부터 징강(澄江)의 사람들은 특별한 눈빛을 띠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아주 온화하고 겸허하게 느껴졌던 것이었다. 헌데 지금은 그들의 어투 또한 아주 특별하다는 감을 가지게 되었다. 느릿하지만 무디지 않고 오히려 신중하게 사고를 한 후 떠오른 생각들을 한마다 한마디씩 얘기하고 있다는 감이 들었다.
“정식으로 무선호(抚仙湖)로 불리기는 명조 때부터였습니다.” 직무에 충실한 쇼리는 계속하여 이야기 하였다.
“이 호수의 사방 수십 리가 모두 흙, 모래로 이뤄진 토질이지요. 하지만 물밑 몇 십 리 되는 곳엔 오히려 체적이 아주 큰 돌덩이들이 많이 쌓여있답니다. 네모반듯한 것으로, 삼각형모양의 것으로, 길쭉한 것으로 수두룩한데 어떤 것은 마치 인공적으로 펴놓은 듯 정연하지요. 계단처럼 보이는 것도 있고 비탈처럼 보이는 것도 있구요. 지어 하나의 돌벽(石头墙)도 있답니다.”
누군가 물었다. “그럼 건축 유적인가요?”
쇼리는 “그래요. 그것을 하나의 함락된 도시라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죠. 보기에도 확실히 많이 닮았구요. 하지만 구경 어느 도시이고 언제 함락되었으며 또 왜 함락되었는지는 누구도 모른답니다. 목전 전문가들은 지진 혹은 산사태 때문이었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지요. 이제 수중고고(水下考古)를 거쳐야만 그 수수께끼가 풀릴 수 있죠.”라고 대답하였다.
단씨와 임씨는 이구동성으로 경탄을 토했다. 단씨가 물었다. “문자로 기록한 자료 같은 것은 없는지요?” 돌아가 글로 펼쳐보고 싶은 것이 연연했다. 허이는 이런 순간 작가들은 일종의 직업적인 탐욕을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노작가들은 얼굴에 웃음기가 떠나지 않았고 겸허하게 행동하면서 서로 추어올렸다. 오직 후로우만이 귀담아 듣는 것 같기도 하고 무심히 지나치는 것 같기도 하면서 넓은 식견을 갖춘 품위 있는 문인의 기품을 보여주었다. 허이는 제문이 없었고 놀란 경탄은 더욱 없었다. 계몽북은 조금 뜻밖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 작은 이외의 발견에 기뻐났다. 그녀는 호들갑스러운 여인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이 점이 아주 좋았다. 왜 좋았는지는 그 자신도 알 수 없었다.
투숙한 곳이 호수를 임하였기에 허이는 아침에 깨어나기만 하면 베란다에 가 심호흡 하며 호수를 바라보았다. 아침에 허이가 깨어나 베란다에서 머리를 빗고 있을 때 옆방 베란다의 문이 열리면서 대옥누이가 나왔다. 이어 노랫소리가 흘러왔다. “아, 목련꽃 피어나니 그 향기 십리에 풍기네. 송이송이 목련꽃이여- 사랑과 함께 영원하여라……”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하지만 자주 노래를 부르지 않았기에 노랫소리가 조심스러웠고 매끄럽지 못하였다. 이어 다른 하나의 목소리가 화답하였다.
“꽃을 달겠으면 내내 다세요. 부디 꺾은 꽃 길가에 버리지 말아주세요……”
목소리가 시원스러웠을 뿐만 아니라 아주 도취되기까지 한 모양이었다. 단씨였다. 솔직히 도취될 만도 하였다. 목련꽃나무는 2층 높이까지 울창하게 자랐는데 창문만 열면 꽃향기가 확 날아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부른 노래를 허이는 알지 못했다. 아마 그들이 젊었을 적 유행했던 노래인 듯싶었다. 허이가 시계를 보니 아직 식사 할 시간까지는 조금 여유가 있었다. 그는 호텔에서 나와 이곳저곳 걷고 싶었다.
그는 저도 몰래 한 목련꽃나무로부터 그 다음 목련꽃나무에로 걸어갔고 온 나무에 흐드러지게 피어난 목련꽃을 황홀하게 바라보며 발끝을 돋우어 목련꽃을 꺾었다. 꽃송이엔 아직 이슬이 맺혀 있었고 빛깔은 금방 응고된 알의 흰자위 같아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여려지게 하였다. 볼수록 어릴 적 가슴 앞 두 번째 단추에 예쁘게 달았던 백난화처럼 안겨왔다. 하지만 인상 속 그 키 낮은 관목이 여기에선 어쩌면 이처럼 키 높게 자랐을까 하는데 생각이 미치자 그는 백난화가 옳은 지를 긍정할 수 없었다. 여기에서는 무엇 때문에 목련꽃이라고 부를까? 또 그 이름엔 어떤 유래가 있을 것인가? 허이는 이제 기회를 찾아 물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이때 멀리에서 계몽북이 산책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혼자였다. 그냥 뒷모습뿐이었지만 고독하면서도 숙연하게 안겨왔다. 그 누가 끼어드는 걸 바라지 않는 듯싶었다. 허이는 불현듯 ‘그에게 고민이 있는 걸까? 고민이 있다면 무슨 고민일까? 어떤 고민이 그의 능력으로도 해결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허이는 계몽북 같은 남자를 만난 적이 없었다. 그가 알고 있는 남성은 옛날 대학시절의 스승님, 동학, 그리고 출판사에 취직한 후의 동료들이 전부였다. 졸업 후 출판사에서 근무한지도 어언 6년이 되었다. 허나 주변의 남자들은 너무 늙지 않으면 관상성이라곤 꼬물도 없었고 외모가 그냥 평범한 정도로도 봐주기 어려운 형편이어서 도무지 사귀고 싶은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고비사막을 마주한 처지에 놓인 허이는 속으로 은근히 금방 졸업한 대학생 혹은 연구생들이라도 몇 명 분배되었으면 하고 바랐으나 그의 운수가 조금 나빴는지 6년 사이 남성이 한 명도 분배되지 않았다.
계몽북은 나이가 얼마일까? 그의 구체적 나이는 알 수 없지만 허이는 그 나이가 참 좋다는 감이 들었다. 한 남자를 그처럼 빛나게 할 수 있고 사람을 흡인할 수 있게 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를 바라보며 허이는 자신과 자신의 생활이 너무나도 단조롭고 밋밋하게 안겨왔으며 지어 조금 암담하게 까지 느껴졌다.
허이는 기타 여인들이 계몽북에게 호감을 품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며칠이 지나자 모두들 익숙해졌다. 임씨와 단씨는 계몽북에게 가방을 들어줄 것을 청들었고 조금 후 임대옥 누이는 또 시기적절하게 물병을 넘겨주었으며 단씨는 고의적으로 질투를 드러내며 그들을 놀려주었다. 계몽북은 느긋하면서도 간단하게 응부하였다. 좋아하는 지 싫어하는 지를 보아낼 수 없었고 그 누구를 소외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또 그중의 어느 하나와 특별히 가까이 지내지도 않았다. 헌데 그는 종래로 허이를 돌본 적 없었다. 뭐 의식적으로 돌보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허이가 늙지 않고 까탈스럽지도 않아 보살핌이 필요하지 않은 원인이었을 수도 있고, 또 허이가 종래로 계몽북의 앞으로 다가가지 않은 것과도 관계되었다.
사실 허이는 어느 사람에게도 가까이 가지 않았다. 그는 늘 귀에 이어폰을 끼고 길을 걸으면서 MP3 플레이어를 들었으며 말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말도 듣지 못하는 듯싶었다. 신사풍도도 세대차이가 많으니 효험을 못 보는지 나이가 지긋한 분들은 서로 겸양하기에 바빠 언제 허이를 보살펴줄 것을 생각 할 겨를이 없었다. 임씨와 단씨는 허이의 행동을 눈 안에 넣고 있었다. 그들은 이 여자애가 의도적으로 이목을 끌기 위하여 색다르게 행동한다고 생각하였기에 더욱 그를 다독이지 않았다. 허이는 마침 시끄럽게 구는 사람이 없는 차라 아예 듣고 있던 선율을 흥얼거렸다. 이러면 대체 누가 누구를 상대하지 않는지를 보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계몽북처럼 항상 주위 사람들을 느끼고 또 티 나지 않게 고루 돌보려면 얼마나 힘들까? 참 뭘 그럴 필요가 있는지. 임씨가 계몽북에게 물병을 넘기자 그는 마개를 열어 후로우에게 주었고 다음 쇼리에게서 한 병을 가져다 자신이 마셨다. 단씨는 공주병이 좀 있어 등산을 하며 몇 번이나 산길을 걷기 힘들다고 투정을 부렸다. 계몽북은 인차 여러 작가에게 얘기하였다. “산정에도 뭐 특별한 것이 있는 같지 않네요. 해발고가 좀 높은데 너무 힘들 정도로 무리하지 맙시다. 두 편으로 나누어 체력이 따르는 분들은 계속 오르고 오를 생각이 없는 사람들은 저 정자에서 차나 마시지요.” 단씨는 즉시 환성을 질렀다. 늙은이들도 모두 흔쾌히 동의하였다.
마지막엔 허이와 쇼리만이 산정으로 오르게 되었다. 함께 회의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떠나자 허이는 새처럼 발랄해졌다. 그는 이어폰을 빼고는 웃고 이야기 하였다. 활기를 찾은 허이는 밝게 빛났고 활력으로 넘쳤다. 어정쩡해난 쇼리가 황홀하게 바라볼 정도였다. 산정에 올라 바라보니 중중첩첩한 푸른 빛이 모든 것들을 가렸다. 이 세상엔 오직 푸른빛만 남은 듯 사람들이 한 발자국만 내 디뎌도 그 푸른빛에 녹아들 것만 같았다. 물기 머금은 습윤한 바람이 옷깃을 날렸고 매 하나의 땀구멍이 후련하게 숨을 쉬였다. 허이는 두 팔을 활짝 펼치고 가슴이 뻥 뚫릴 정도로 외쳤다. “야호! 야호호호- 허이- 아이-” 허이는 그처럼 넋 잃고 외쳤다. 마치 그가 마주한 것들이 그냥 빈 산 뿐인 듯. 녹음이 우거진 소나무 아래로 시원한 바람이 술렁였다. 그의 외침소리에는 싱그러운 소나무의 내음이 실려 있었다.
필회의 제일 마지막 밤에는 전례대로 풍성한 만찬과 무도회가 준비 되었다. 제일 마지막 무도회의 분위기는 항상 열렬하였다. 하나는 며칠을 함께 하였기에 모두들 친숙해져 무르익은 정서를 끌어올리기 쉬웠고, 다음 하나는 마지막 밤이었기에 열정을 좀 지나치게 표현하였다 할지라도 이별을 앞두었다는 자연스럽고 걸 맞는 이유가 있었기에 무방했던 것이었다. 세 번째는 고려가 적어져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을 모두 솔직하게 표현하였으며 더 이상 감추지 않았다. 그것은 내일이면 이 임시집체가 해산되어 각자가 제 갈 길을 가게 되기에 꼬물만한 어색함도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여 이런 무도회는 주최 측에서 신경 쓰지 않아도 아주 원만하게 잘 진행되었다. 지어 밤새 이어질 때도 있었다.
만찬 때 후로우는 종업원이 올려온 각종 국산 술을 보고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쇼리가 인차 물었다. “선생님의 취향이 아니면 다른 것으로 바꿀 수도 있습니다.” 후로우는 시바스리갈12년(芝华士12年)을 가져오게 하였다. 상의 남자들은 모두 후로우를 동무하여 조금씩 마셨다. 가장 많이 마신 후로우는 술기운이 올라 양 볼이 불깃해졌으며 잇달아 한숨을 후유- 쉬며 창밖의 호수를 넋 나간 듯이 바라보았다. 허이는 참 이 연세에 자신을 노년 베르터(维特)처럼 굴다니 라는 생각을 했다.
사실 주최 측은 무도회의 장식에 아주 신경을 썼다. 도처에 로마식원주와 인조덩굴이 있었고 어두운 꽃무늬 커튼과 반투명한 휘장이 중중첩첩 겹쳐있어 감미롭고 호화로웠다. 허나 아쉽게도 이러한 것들이 밖의 천연적인 나무와 호수들을 막았기에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계몽북은 일찍 무도회장으로 갔다. 좋아하여서가 아니라 아무래도 올 것을 다른 사람에게 끌려서 오는 것보다 자신이 절로 오는 편이 낫다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하물며 주최 측에서 이처럼 성의를 들여 초대하는데 손님으로서 얼굴을 보이는 것도 예의였다. 그는 먼저 주최 측의 두 여성에게 춤을 청하여 이 며칠간의 성심스러운 초대에 고마움을 표현한 후 임씨를 요청하였다. 임씨를 자리에 데려다 줄 때 옆의 단씨는 이미 웃음꽃을 듬뿍 담고 일어섰다. 평소 춤을 많이 춘 것이 역연하였다. 음악이 울리자 단씨는 환하게 빛났다. 허리는 곧게 펴졌고 발걸음은 가볍고 매끄러웠는데 직업선수 못지 않는 운치가 있었다. 계몽북은 정신을 추슬렀다. 둘은 빙빙 돌아 무도장의 중심에 이르렀고 슬쩍 몇 개의 기교가 넘치는 춤사위를 선보였다. 순간 구경꾼들 속에서 박수소리가 터졌다. 이어 임씨와 단씨는 다른 사람들의 끊임없는 요청 속에 묻히게 되었고 계몽북은 석연히 옆으로 물러났다. 쇼리가 다가오며 물었다. “허 아가씬 왜 안 왔나요?” 계몽북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기실 보지 않아도 그는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당연히 오지 않을 것이었다. 그는 “힘들어 휴식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진요?”라고 얘기하였다. 쇼리가 근심조로 말했다.“제가 방에 청하러 갔었는데 그녀가 없더군요.”
계몽북은 무도회장의 불빛, 소리 그리고 냄새 모두가 너무 진하게 느껴졌다. 자신이 춤을 출 때는 느끼지 못하였지만 일단 멈추니 모든 감각기관이 견디기 어려워났다. 담배 두 개비를 피울 사이 계몽북은 온 몸이 굳어지는 듯싶었다. 그는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어둠속에서 목련꽃은 한 세기를 면면히 풍길 향기를 펼쳐놓았다. 어둡고 축축하고 청렬한 향이 넘치는 공기는 계몽북의 온 몸을 깨끗이 씻어준 듯싶었다. 그는 작은 길을 따라 저도 몰래 호숫가에까지 이르렀다. 호제‘湖堤’에 내려서기 전 그는 물가에 한 사람이 서있는 것을 보게 되였다. 그는 속으로 ‘정말 제멋대로야.’라고 중얼거렸다. 허나 다시 눈길을 주는 순간 짙푸른 수면 옆, 은은한 달빛 아래의 그녀는 그처럼 가냘프게 안겨왔다. 꼭 마치 엷디엷은 구름 같아 반투명한 것이 꿈결처럼 흩어지고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다. 계몽북은 저도 물래 측은해났다.
그는 조용히 걸어갔다. 그는 그녀의 뒷모습을 몇 발자국 앞두고 가볍게 기침을 하였다. 그녀가 놀랠까 걱정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머리를 돌렸다. 순간 그녀의 두 눈은 빛났다. 반사 된 호수의 물빛처럼.
“왜 가서 춤 안 춰요?”
“그럼 당신은 왜 안추죠?”
그녀가 반문했다.
“나와 바람을 좀 쐬려구요.”
허이는 머리를 돌리고 원래의 자세를 회복하였다. 마치 주위에 아무 사람도 없듯이. 계몽북도 호수를 바라보았다. 다음 슬그머니 그녀를 훔쳐보았다. 한밤중에 여자가 저처럼 희비가 엇갈리고 저렇듯 무아지경에 빠지다니? 꽃처럼 안겨왔다. 어둠 속에서 한 잎 한 잎 피어나는 꽃처럼. 계몽북은 저도 몰래 섬뜩해났다. 이러한 정경을 수년전 꿈속에서 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꿈속의 여자는 그녀가 아니었지만 물, 달, 그리고 짜릿함과 넋 잃음은 꼭 꿈속 그대로였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호숫가 어쩌면 이처럼 마음 슬퍼나게 아름다울까요.”
계몽북이 무엇인가 말하려는 순간 한 줄금의 바람이 휙- 불어와 수면에 잔잔한 물결을 일구었다. 그는 말머리를 돌렸다.
“들어갈까요?”
허이가 물었다.
“뭐라구요?”
“저 들어가자 했어요.”
“이 말 아니구요. 당신이 먼저 하려던 말 말예요.”
계몽북이 말을 이었다.
“별것 아닙니다. 옛시 한 구절 떠올렸을 뿐입니다.”
“어느 시요?”
“저 강물은 꿈꾸듯이 흘러만 가고, 낭군님이 우울하면 나도 슬퍼라(海水梦悠悠,君愁我亦愁).”
허이는 그만 아연해졌다. 그녀는 황홀함에 젖어 물었다.
“이 시 누가 쓴 거죠?”
“양무제”
“황제? 황제가 어떻게 이런 시를 써낼 수 있죠?”
계몽북은 반드시 분위기를 바꿔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하여 “당신은 안 들어갈래요?” 라고 물었다.
허이는“싫어요.”라고 대답했다.
허이는 자신이 들어가고 싶지 않을뿐더러 계몽북도 들어가게 하고 싶지 않았다. 허나 계몽북은 자신이 이미 너무 오래 머물렀음을 느꼈다. 그는 “그럼 먼저 들어갑니다.”라고 말하는 홀로 호제에 오른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
무도회가 끝날 때까지도 허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임씨와 단씨마저도 느려질 정도로 춤을 추고나 그녀가 궁금해져 물었다. 계몽북은 모두 모른다고 대답해버렸다. 그는 ‘여자애가 홀로 호숫가에서 허튼 생각을 할지언정 사람들의 흥청거림에 끼어들려 하지 않다니? 참 제멋대로야. 하물며 내가 이미 그녀를 부르기까지 했었는데 날더러 더 어쩌란 말인가?’라고 생각했다.
허이는 내내 호숫가에 혼자 앉아 있었다. 계몽북도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는 그가 고의적이라고 생각했다. 화가 울컥 치밀어 거의 해가 떠오를 때까지 앉아있다 온몸이 얼어든 채 방으로 돌아갔다.
이튿날은 모두 돌아가게 되었다. 허나 항공편으로 인하여 세 무리로 나누어 비행장으로 가게 되었다. 부동한 책임자들이 함께 식사를 한 후 배웅해주었다. 허이는 두 번째 무리에 속하게 되었는데 차문을 열고 보니 계몽북 뿐이었다. 둘은 같은 항공편은 아니었지만 선후 20분밖에 차이 나지 않았기에 함께 가게 되었던 것이었다. 차안에 문득 두 사람만 남게 되었는데다가 어젯밤 유야무야 한 대화까지 곁들여져 차안의 분위기는 묘하게 이상해졌다.
배웅하는 사람은 쇼리가 아니고 얼굴이 불그스레한 청년이었다. 허이가 물었다. “쇼리는요?” 그 청년은 쇼리는 일찍 후로우를 배웅하러 갔다고 얘기하며 작은 대바구니 하나를 건네주는 것이었다. “이것은 쇼리가 당신에게 선물한 것입니다. 당신이 좋아한다면서요.” 허이는 호기심에 넘쳐 받아 안았다. 가볍고 정교한 바구니였다. 우에 덮여진 그 한 층의 푸른 잎들을 헤치는 순간 아, 눈앞엔 한바구니 그득한 목련꽃이 안겨왔다! 모두 반쯤 피어난 것이었는데 하얀 색과 노르스름한 색들이 예쁘게 어우러졌다. 한 그루의 꽃나무에서 꺾지 않은 것이 분명하였다. 이번 여행에서 줄곧 찾아오지 않은 감동, 이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참 좋군요.” 계몽북이 말했다. 꽃을 말하는 건지 사람을 말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허이는 회답하지 않고 가볍게 웃었다. 그녀는 ‘그래. 바로 이런 거야. 기대하지 않은 것에서 비로소 서프라이즈가 있는 법이지. 기대를 품기만 하면 결국 실망하게 되어 있지. 실망이나 하지 않을 순 있지만 서프라이즈는 절대 있을 수 없지.’라고 생각하며 잎들을 다시 잘 덮고 바구니를 무릎 위에 정중하게 올려놓았다. 결심하고 집까지 가져갈 모양이었다. 공항 대기실에 들어서자 청년은 돌아가고 허이와 계몽북만 남게 되었다. 탑승수속을 끝마친 후 두 사람은 자리를 하나 사이 두고 앉았다.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허이의 비행시간이 먼저였다. 하지만 비행기가 뜨자면 아직도 한 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하였다. 배웅하는 사람이 길에서 지체할까봐 너무 일찍 출발했기에 이 둘 반드시 이만한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되었다. 계몽북은 허이를 보니 그녀는 딴 곳에 눈을 팔며 작심하고 입을 안 열 예정이었다. 계몽북은 몰래 한숨을 쉬었다. 그는 이 여자애 정말 성깔이 대단하다고, 다행히 며칠 동안 오냐오냐 하지 않았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지금 얼마나 기고만장할지를 모르겠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끝까지 그녀와 같은 굴 수는 없어 “시간 아직 많이 남았는데 우리 가서 음료나 마십시다.”라고 말을 건넸다.
허의가 물었다.
“지금 저와 얘기하는 건가요?”
“당연히 당신과 얘기한 거죠. 여기 다른 사람도 없는데.” 계몽북이 웃으며 얘기했다.
“여러 날 물고기처럼 성대를 별로 쓰지 않았기에 불쑥 누가 저와 얘기하니 습관이 안 되네요.”
허이는 어젯밤의 그 만남은 아예 없었던 것으로 말끔하게 지웠다.
“그래요? 그날 산에서 그처럼 산이 떠나갈 듯 외치고선. 성대를 왜 썼어요?”
계몽북은 그녀가 불쑥 자신을 골려주려 들자 똑같은 어조로 반격했다. 허이는 그날 그가 죄다 들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피식 웃다가 인차 웃음을 거둬들였다. 그 웃음 때문에 기분도 꽤 느슨해졌다. 계몽북은 또 한 번 얘기하였다. “갑시다.” 그녀는 일어나서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계몽북은 차를 주문하였다. 하지만 물만 요구할 뿐 차는 자신이 가져온 것을 넣었다. 허이는 망고 주스를 주문하고는 계몽북이 몸을 돌려 자신이 소지한 찻잎을 꺼내 컵에 넣고는 주전자 속의 물을 붓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참 진지하게 안겨왔다. 허이는 ‘차 한 모금 마시는 것마저 이렇게 신경을 쓰다니? 이 남자는 대체 어떤 남자일까?’라는 생각이 갈마들었다. 허이는 강남에서 태어났기에 차를 즐기는 많은 사람들도 외출할 때엔 극복하고 그런대로 그냥 주어진 차를 마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시기 좋은지요?”
계몽북은 자신의 용정차(龙井茶) 한 모금을 마시고는 의심과 동정이 어린 얼굴빛으로 그녀 앞의 진하고 끈끈하게 안겨오는 황색액체를 바라보았다. 허이가 대답했다. “금방 짜낸 신선한 거 아니에요.” 이런 캔 주스는 맛이 안 좋았다. 허이는 슬며시 계몽북의 차가 부러웠다. 말갛고 파란 것이 보는 것만으로도 갈증이 가셔졌다. 조금 조용해진 후 계몽북이 예의적으로 물었다.
“이번에 유쾌하게 놀았어요?”
“당신은요?”
허이가 공을 다시 차왔다.
“많이 즐거웠습니다.”
허이는 그를 향하여 샐쭉 눈을 흘겼다. 그는 속으로 ‘흥, 그런데 왜 저를 외면했죠?’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이 시각 그 말을 꺼내는 것은 어딘가 애교를 부리는 것처럼 보일 것 같았다. 후- 또한 답을 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그는 슬픔에 잠겨 생각하였다. 계몽북, 자신이 얼마나 잔인하였었는지를 영원히 모를 거야. 지난 며칠간, 모든 게 얼마나 좋았던가. 그렇듯 훌륭한 환경 속에 출중한 남자가 나타났고 또 그녀에게 잘 대해주었다면 얼마나 즐거웠을까! 그 며칠은 아마 그녀가 평생 추억할 수 있는 유쾌한 나날들이 되었을 거다. 여행이 시작되자 계몽북이 출현은 하나의 완벽한 가능성을 암시하였다. 하지만 그 귀한 며칠은 지나갔고 그 은밀한 가능성은 꽃처럼 피어나지 못하였다.
계절, 날씨, 호수, 목련꽃마저 그녀를 도와주었는데 계몽북이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이젠 무엇을 얘기하든 늦었다. 허이는 계몽북이 도무지 용서할 수 없게 느껴졌다. 그렇다, 계몽북은 아예 자신을 마음에 두지 않았던 거였다. 며칠간 그는 모든 사람들을 즐겁도록 배려하고선 이제 와서 내친걸음에 자신을 달래려 하는 거라고 허이는 생각했다. 계몽북 뭘 믿고 저렇게 자신감이 넘친단 말인가? 흥, 좋은 생각 하고 있어. 허이는 그가 소원을 이루지 못하도록 하리라 결심을 내렸다.
계몽북은 허이의 심정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한 이인이 눈앞에서 화를 낸 다는 건 남자에겐 언제나 하나의 압력이었다. 그가 분위기를 느슨하게 하려 할수록 허이는 더욱 화나 하였고 허이가 점점 화낼수록 계몽북은 말을 더욱 조심하여 하게 되었다. 계몽북이 조심스럽게 얘기하는 모습을 보자 허이는 더욱 화가 치밀었다. 계몽북이 겨우 생각해낸 화제는 너무나도 보잘것없는 가느다란 물줄기인 듯 호수와 오아시스를 이루지 못하고 재빨리 음울한 사막 속에서 증발해버렸다. 하여 그도 침묵하게 되었다. 허나 막상 작정하고 침묵 하니 침묵도 더는 난감하지 않았다. 오히려 둘이 함께 침묵을 하니 외려 서로의 마음이 통한 듯싶었다. 침묵은 천천히 그들을 안정되게 하였고 둘을 느슨해지게 하였다. 따라 자세도 부드러워졌고 표정도 어리둥절하던 데로부터 각자 황홀함 속에 잠기게 되었다.
멀리서 바라보면 그들을 서로 깊이 사랑하는 연인으로 느낄 정도였다. 담담한 한잔 차를 놓고 마주하여 덧없이 앉아있는, 천만마디의 말은 입 밖에 낼 필요조차 없는 그런 연인으로. 하지만 시간은 결코 조용함으로 인하여 희미해지지 않았다. 허이의 비행기 시간이 다가왔던 것이였다. 허이는 흠칫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허나 떠나려다 그래도 작별인사는 나눠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 멈춰 섰다. 하지만 또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몰랐다.
“내가 데려다 줄게.”
계몽북이 말했다.
“이젠 보는 사람도 없는데 당신 굳이 그럴 필요 있나요?”
“자넨 내가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 하는가에 신경 쓰는 사람처럼 느껴졌어? 자넨 나를 모르고 있어.”
그를 바라보면서 허이는 생각에 잠겼다. 그래. 난 당신을 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 나에게 그런 기회가 있기나 했었나? 당신이 나더러 알게 하였어? 그녀의 두 눈은 착잡한 빛을 띠고 그의 얼굴을 스쳐 지났다.
계몽북은 그녀에게 대바구니를 넘겨주며 얘기하였다.
“잊지 말고 가져가. 가는 내내 꽃향기가 풍길 거야.”
그녀는 바구니를 받아 안고 망연히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 무슨 사색을 더듬는 듯싶었다. 그것도 몹시 골머리를 앓아가며. 그인 또 이런 말을 하고 있어. 어제 저녁 그 불쑥 내뱉은 시와 같은 말들을 말이야. 그인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모든 걸 알고 모든 걸 따라주는 듯 느끼게 하였지만 실은 그 거부하였던 거였어.
마지막 그녀는 무엇을 깨달은 듯 웃었다. 하지만 그 웃는 얼굴은 삽시에 붕괴되었다. 갑작스레 들이닥친 억울함이 그녀의 얼굴을 일그러뜨렸던 것이었다. 그는 머리를 홱 돌리고 걸어갔다. 날듯이 앞으로 향했다.
계몽복은 급급히 계산하고 달려 나왔다. 그녀가 긴 머리카락을 날리며 총총히 앞에서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뒷모습마저도 온통 슬픔으로 차 넘쳤다. 계몽북은 마음이 조급해났다. 막 달려가고 싶었지만 또 계면쩍기도 하였다. 그는 발걸음을 부지런히 옮겼다. 거의 따라잡게 되었을 땐 그녀는 이미 검표구로 들어갔었다.
계몽북은 큰 소리로 불렀다. “허이-” 그가 처음으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머리를 돌리지 않은 채 손을 들어 얼굴을 쓱 문질렀다.
계몽북은 계속하여 외쳤다. “허이! 전화 해!”
그녀는 조금 주춤한 듯싶었지만 끝까지 머리를 돌리지 않았다. 그리곤 또 한 번 얼굴을 문지르는 것이었다.
비행기가 뜰 때에야 불현듯 계몽북은 한 가지 일이 떠올랐다. 자신에게는 그녀의 연락처가 없었던 것이었다. 허이에게도 그의 것이 없었었다. 함께 한 나날들에 그들은 서로 명함마저도 교환하지 않았다. 그는 줄곧 둘이 단독으로 얘기 나눌 수 있고 또 자신이 가장 찾기 편리한 전화번호를 적을 수 있는 기회가 있으리라고 믿었었다. 하지만 정작 둘이 단독으로 있게 되자 예상했던 것들은 모두 나타나지 않았고 이름 할 수 없는 애수만 흘렀었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 물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치졸함과 새삼스러움은 계몽북의 풍격이 아니었다. 또 허이의 풍격도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오늘의 이별에는 만남이 있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하여 그녀는 울었다.
이러한 실의감은 한 번이 아니라 수차였다. 제일 심한 한번은 어머님의 장례식에서였다. 그때에야 그는 자신이 종래로 어머님에게 고마움을 얘기한 적 없다는 것과 일평생을 살아오며 행복했었냐고 물은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줄곧 묻고 싶었었다. 하지만 노상 나중에 물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하다가 결국 영원히 미봉할 수 없게 되었다. 늘 모르다가 알게 되었을 땐 이미 너무 늦었다. 하소연 할 수 있는 허다한 시간이 있을 줄 알고 또 줄곧 어떻게 하소연할까 생각하였지만 기다려온 것은 하소연할 수 있는 상대가 영원히 사라진 것이었다.
갑자기 마음이 무거워났다. 에이, 미련한 놈! 그가 자신을 욕했다.
한 가닥의 익숙한 향기가 그의 주위를 맴돌다가 사라졌다. 목련꽃. 이러한 향기는 진정 그윽하다로 표현해야 했다. 허이의 성격도 그러하였다. 그 목련꽃은 다른 사람이 그녀에게 선물한 것이었다. 그녀에게는 꽃을 선물할 사람이 의례히 있을 것이고 그녀 또한 이런 기질의 꽃에 어울렸다. 솔직히 그녀와 목련꽃이 이번의 여행을 빛나게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꽃을 줄 사람 그일 수 없었다. 처음부터 그일 수 없었다. 이것은 운명적으로 결정된 것이었다. 그녀도 그처럼 깨달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녀는 몰랐다. 그녀는 아직 너무 젊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의 여행에 대하여, 계몽북에 대하여 그녀는 어떻게 생각할까? 그녀가 고의적으로 이번의 여행을 잊으려고 하지 않겠지? 때론 사람들은 그 무엇인가를 잊기로 마음먹으면 진실로 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까 두 사람이 마주 앉았을 때 목련꽃의 향기는 피부와 호흡에 스며들어 그들의 마음을 고요해지게 하였다. 꼭 마치 모든 말들을 다 해버린 듯, 마음속에 더는 찌꺼기가 없는 듯. 아스라함 속에서 계몽북은 한 가지 일을 떠올렸다. 진실로 거의 잊어버렸던 한 가지 일을. 수년전, 다른 한 연인을……
그와 그녀는 한 차례의 필회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녀와 그는 하나의 조가비의 두 쪽처럼 서로 닮았고 마음이 맞았으며 처음 만났지만 오랜 지기와도 같은 친근함을 느꼈었다. 헤어진 후에도 그들은 줄곧 연락을 했었고 해도 해도 끝없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는 그녀가 싱글이 옳은지 아닌지를 몰랐다. 그녀는 종래로 이 문제에 대하여 이야기한 적 없었고 그 또한 미처 생각지 못하였다. 때론 다음번 전화에서 물어야지 하고 생각할 때도 있었지만 그 다음이 되면 또 할 얘기가 끝없어 워낙 이런 무미하고 흥을 깰 문제를 물을 사이가 없었다. 그는 후에야 알게 되었다. 워낙 묻고 싶지 않았고 감히 물을 수 없었던 문제라는 것을. 그녀 없이는 도무지 살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계몽북은 허이와 비슷한 나이였다. 감정경력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 마냥 그러하듯 그도 쉽사리 자신의 몸에서 발생한 감정을 귀하고 신성하게 간주하였던 것이었다.
그녀는 종래로 만나자는 얘기를 입 밖에 꺼내지 않았었다. 그러나 그는 그녀가 몹시 그리웠다. 실로 사무치게 그리웠다. 어느 날 그는 도무지 참을 수 없어 그녀가 사는 도시로 달려갔다. 허나 막상 그녀의 집 밑에 이르자 갑자기 긴장하여 올라갈 수 없었다. 그는 맞은 켠의 전화박스에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 그로부터 걸려온 전화라는 걸 알자 그녀의 목소리는 마치 구름을 벗어난 달 마냥 웃음이 남실댔다.
그는 말했다. “나 지금 당신네 집 밑에 있어.”
그녀는 여전이 깔깔 웃었다. “당신 농담하는 거죠?” 그가 말했다. “당신 지금 아래로 내려 봐. 아마 날 볼 수 있을 거야.”그녀는 갑자기 목소리를 죽였다. 다음 창가로 가 피뜩 아래로 내려다보았다. 다시 전화 속에 나타났을 때 그녀의 목소리는 완전히 바뀌었다. 그녀는 다섯 마디밖에 하지 않았다. 하지만 계몽북은 평생을 잊을 수 없었다. “뭔 짓이에요?!” 계몽북이 그 무슨 반응을 할 새도 없이 그녀는 철컥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훗날 그는 그래도 그녀가 고마웠다. 그녀가 자신에게 일생 중의 가장 충만된 격정을 가져다주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 때문에 훗날의 계몽북이 있었던 것이었다.
일망무제하게 펼쳐진 눈길과도 같은 창밖의 운해를 바라보며 계몽북은 생각에 잠겼다. 그래, 허이가 이 옛일을 떠올리게 한 것이었어. 난 아까 이 이야기를 그녀에게 들려주어야 했어. 하지만 그것 또한 무엇을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그녀더러 날 용서해달라고. 그녀 앞에서 난 언제 용서받아야 되는 대상으로 되었는가? 계몽북은 쓰디쓴 웃음을 지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