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중순(10수)
하루시조 345
12 11
닭아 울지 마라
무명씨(無名氏) 지음
닭아 울지 마라 옷 벗어 중전(重錢)을 주마
날아 새지 마라 닭의 손대 빌었노라
숨궂은 동녘 다히는 점점 밝아 오더라
중전(重錢) - 중전(中錢)으로 보아야 할 듯합니다. 중전(中錢)을 전당(典當)으로 잡은 돈.
숨궂다 – 심술궂다.
다히는 – 우선 ‘땅은’으로 풀어 봅니다.
닭더러 울지 마라 하고 그 입막음으로 뇌물을 주는데, 그 뇌물이 옷을 벗어 전당 잡힌 급전(急錢)입니다. 무슨 피치 못할 일이 있을까요.
날아 제발 새지 마라 이르는데, 새는 날을 닭에게 부탁했다고 못 새게 할 수 있을까요. 닭은 생물이니 의인화(擬人化)가 금방 되는데, 새는 날까지 대화(對話)를 하니, 작가가 어떤 일로 다급해졌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지금 그립던 님과 밀회중인 것일까요. 내일이면 어떤 참혹한 일을 당하게 되는 것일까요.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346
12 12
울며불며 잡은 소매
무명씨(無名氏) 지음
울며불며 잡은 소매 떨뜨리고 가들 마오
그대는 대장부(大丈夫)라 돌아가면 잊건마는
이 몸은 아녀자(兒女子)라 못내 잊어
울며불며 - 소리 내어 야단스럽게 울기도 하며 부르짖기도 하며 우는 모양.
소매 – 옷소매. 팔소매. 윗옷의 좌우에 있는 두 팔을 꿰는 부분.
떨뜨리고 – 떨치고.
가들 – 가지를.
대장부(大丈夫) - 건장하고 씩씩한 사내. 여기서는 상대를 추키는 뜻을 담았다.
아녀자(兒女子) - 어린이와 여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 여기서는 자신을 낮추는 뜻이 담겼다.
이별의 정한이 솔직하게 담겼습니다. 남성 우위의 세상에서, 한 번 정을 준 남자와의 이별이라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이 진하게 담겼습니다. 아녀자를 잊은 대장부들, 오뉴월의 서릿발에 어찌 살아남았을까요.
종장 끝구의 생략은 시조 창법(唱法)에 의한 것으로 ‘못하리’ 정도가 되겠습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347
12 13
이 몸이 죽거들랑
무명씨(無名氏) 지음
이 몸이 죽거들랑 묻지 말고 주푸리어 매어다가
주천(酒泉) 깊은 소에 풍덩 드리쳐 둥둥 띄워 두면
평생(平生)에 즐기던 것임에 장취불성(長醉不醒) 하리라
주푸리어 – 일단 ‘지푸라기로’로 풀어 둡니다.
주천(酒泉) - 중국 지명 ‘주취안’의 한자어 표기. 간쑤성(甘肅省) 서북부에 있는 상업(商業) 도시. 하서(河西)의 요충지로 전한(前漢) 무제(武帝) 때는 비단길을 확보하기 위해 주취안군(郡)을 두기도 하였다.
술이 솟는 샘이라는 뜻으로, 많은 술을 이르는 말. 우리나라 강원도 영월군에 속한 한 고을 이름이기도 함.
소(沼) - 늪.
평생(平生) - 일생(一生). 사는 동안.
장취불성(長醉不醒) - 술에 늘 취해 있어 깨어나지 못함.
죽어서도 술독에 푹 빠져서 취했는지 깨어났는지 모르게 있고 싶다. 매장(埋葬) 아니고 수장(水葬)인데, 특별히 말을 만들어 ‘주장(酒葬)’이라 하겠습니다. 그럴리야 있겠습니까. 술에 찌들어 살아온 ‘명정(酩酊) 60년’일지라도 죽음이 그를 ‘술 고문(拷問)’으로부터 풀어주는 것일 테니까요.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348
12 14
장산 깊은 골에
무명씨(無名氏) 지음
장산(長山) 깊은 골에 백설(白雪)이 잦았어라
명사십리(明沙十里)에 창해(滄海)를 둘러 있다
금사(金寺)에 종성(鐘聲) 맑은 소리 구름 밖에 들리느니
장산(長山) - 여기서는 ‘깊은 산’으로 풀어 봅니다.
백설(白雪) - 흰 눈.
잦다 - 잇따라 자주 있다.
명사십리(明沙十里) - 곱고 부드러운 모래가 끝없이 펼쳐진 바닷가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창해(滄海) - 넓고 큰 바다.
금사(金寺) - 금(金) 자가 들어간 절의 이름.
종성(鐘聲) - 종소리.
깊은 산골짜기에 흰 눈이 쌓여 간다고 초장에서 그림을 그려놓고, 중장에서는 갑자기 넓은 바다를 끼고 있는 명사십리가 겹쳐집니다. 또한 종장은 먼 데 절에서 들리는 종소리로군요. 한시(漢詩) 한 구절 한 구절을 풀어 놓은 듯합니다. 배경만 있고 전하고자 하는 바는 없는 작품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초심자의 예쁜 심성이라도 어여삐 주워 담습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349
12 15
백설이 만건곤하니
무명씨(無名氏) 지음
백설(白雪)이 만건곤(滿乾坤)하니 천산(千山)이 옥(玉)이로다
매화(梅花)는 반개(半開)하고 죽엽(竹葉)이 푸르렀다
아이야 잔(盞) 가득 부어라 춘흥(春興)겨워 하노라
백설(白雪) - 흰 눈.
만건곤(滿乾坤) - 하늘과 땅에 가득함.
천산(千山) - 천 개의 산. 여러 산들.
춘흥(春興) - 봄철에 절로 일어나는 흥과 운치.
자연을 즐기는 여유로움이 잘 드러난 작품입니다.
겨울에도 매화와 죽엽은 일찌감치 봄을 기둘리는가 봅니다.
참 신기한 일입니다. 봄이 되면 자연스레 흥이 생기니까요. 겨울 동안 움츠리고 숨어들기만 했더니 이젠 그만 가슴을 펴고 밖으로 나오라는 절대자의 권유요 배려일까요.
‘술’을 춘(春)이라고 했다는데, ‘부어라, 가득’이라 했으니 춘흥은 곧 취흥(醉興)이라고 읽어도 되겠습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350
12 16
천산에 조비절이요
무명씨(無名氏) 지음
천산(千山)에 조비절(鳥飛絶)이요 만경(萬逕)에 인종멸(人從滅)을
고주(孤舟) 사립옹(蓑笠翁) 독조한강설(獨釣寒江雪)이로다
어떻다 물외한정(物外閒情)은 어옹(漁翁)인가 하노라
만경(萬逕) - 여러 좁은 길.
고주(孤舟) - 외로이 떠 있는 배.
사립옹(蓑笠翁) - 도롱이에 삿갓 쓴 늙은이.
독조한강설(獨釣寒江雪) - 혼자 차가운 강의 눈을 낚다.
물외한정(物外閒情) - 사물 밖의 한가로운 정서.
어옹(漁翁) - 고기 잡는 늙은이.
오언(五言)절구(絶句)를 2자 3자로 띄우고 토씨만 붙여 시조의 음수율을 갖춘 가짜 시조가 참 많습니다. 이 작품도 초장과 중장은 오언절구를 그대로 갖다 썼습니다. 다만 작품 속의 어옹이나 사립옹을 자신으로 생각한 점이 한가롭고 문학적입니다. 추운 강의 눈 내리는 낚싯꾼이 한 폭의 동양화 그대로입니다. [최이해 崔伊海 해설]
공화순 시조시인
시조를 음수율(글자수)로만 따질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三句六名이라는 말 가운데 아직 六名도 밝히지 못한 상태이고, 확실한 것은 시조에서 句의 문제입니다. 한자와 한글은 본질적으로 뜻글자, 소리글자로 다르기 때문에 한자를 섞어 시조의 형식을 맞추는 것은 句의 형식에서 봐야 할 듯합니다.
시조는 3장(초, 중, 종)의 구조와 6구 형식을 갖추는 것으로 장마다 2개의 句로 이루어진 셈이지요.
하루시조 351
12 17
겨울날 따스한 빛을
무명씨(無名氏) 지음
겨울날 따스한 빛을 님 계신 데 비추고자
봄 미나리 살진 맛을 님에게 드리고자
님이야 무엇이 없으리마는 내 못잊어 하노라
충신(忠臣)이 님, 곧 군주(君主)를 향한 연주지정(戀主之情)의 작품인가 싶습니다. 작품 속의 ‘님’은 곧장 ‘임금’으로 풀어지던 교과서 해석의 뒷맛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한 자락 깔고 보면, 님은 곧 사랑하는 상대요, 무엇이든 주고 싶은 ‘그대’일 수 있습니다.
초장의 ‘빛’은 오늘날로는 ‘볕’이 더 낫겠고, ‘살지다’를 어떤 모양보다 ‘맛’에 끼워 맞추니 더욱 ‘감칠맛’이 됩니다. 못 잊어 하는 마음이야 남과 여가 다르겠습니까. [최이해 崔伊海 해설]
예찬건 가객
https://youtu.be/s86NUE5xPhM?si=ocStaO1dC4-InhIw
제 음원에 있는 시조가 나왔네요. 고가신조 옛노래 새가락 음원으로 들려 드립니다. 가객 초지 예찬건 올림
하루시조 352
12 18
동짓달 밤 길단 말이
무명씨(無名氏) 지음
동지(冬至)달 밤 길단 말이 나는 이른 거짓말이
님 오신 날이면 하늘조차 무이 여겨
자는 닭 일 깨워 울려 님 가시게 하는고
이른 – 이르기를. 말하기를.
무이다 – 뮈다. 밉다.
일 – 일찍.
옛말이 되어버린 세 단어만 풀면야 나머지는 쉽게 해석이 됩니다. 동짓달이 가장 긴 밤들이 모여 있는 달이건만 작가에게는 이런 밤이 짧기만 하답니다. 더구나 님과 함께 지내는 밤인데, 하늘조차 밉게 보아서인지 닭을 일찍 깨워 님을 가게하고 만답니다. 아직 결혼식을 안 올린 님이거나 숨겨둔 정인(情人)이기 때문이겠습니다만.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353
12 19
동창이 기명ㅎ거늘
무명씨(無名氏) 지음
동창(東窓)이 기명(旣明)ㅎ거늘 님을 깨워 보내오니
비동방즉명(非東方卽明)이요 월출지광(月出之光)이로다
탈앙금(脫鴦衾) 퇴원침(退鴛枕)하고 전전반측(輾轉反側) 하노라
동창(東窓) - 동쪽으로 난 창문. 가장 먼저 밝아진다.
기명(旣明) - 이미 밝았다.
비동방즉명(非東方卽明) - 동쪽 방향이 곧 밝은 게 아님. 동쪽이 아닌 곳도 밝다.
월출지광(月出之光) - 달이 떠서 나는 빛.
탈앙금(脫鴦衾) - 원앙금(鴛鴦衾)을 벗다.
퇴원침(退鴛枕) - 원앙침(鴛鴦枕)을 물리다.
전전반측(輾轉反側) - 누워서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함.
이런 큰 실수를 하다니요. 원앙금침(鴛鴦衾枕)을 참말로 어처구니 없이 물리치고 말았습니다. 정신이 혼미(昏迷)하지 않고서야 먼동 트는 빛과 달 뜨는 빛을 착오(錯誤)할 수가 있겠습니까. [최이해 崔伊海 해설]
하루시조 354
12 20
님이 가려ㅎ거늘
무명씨(無名氏) 지음
님이 가려ㅎ거늘 성낸 김에 가소 하고
가는가 마는가 창틈으로 여어보니
눈물이 샘솟듯 하니 풍지 젖어 못 불러라
가려ㅎ거늘 - 가려 하거늘. 간다고 하거늘.
여어보니 – 엿보니.
성낸 김에 ‘길 테면 가라지’ 했다가 님이 진짜로 갔습니다. ‘님아, 님아’ 불러서 돌이키고 싶은 맘 간절한데 눈물에 젖은 문풍지 탓에 못 불렀답니다. 핑계가 문풍지이거늘 정작 그 젖은 눈물은 자신이 흘린 것입니다. 샘솟듯 하는 눈물이라니, 과장 같지만 진짜 같기도 합니다.
우리네 선인들은 참말로 감정 표현에 미숙했던 것 같습니다. 모든 게 적시(適時)에 이뤄져야 할 것을 차마 어찌 안타까워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 반어(反語)를 못 알아차리는 고운 님도 남녀간에 많았고요. [최이해 崔伊海 해설]
첫댓글 맨처음에 이 작자는 여자인가 남자인가, 먹물인가 아닌가, 한량인가 일꾼인가 등 여러 상상을 해보면서 그 근거가 될 수 있는 요소는 작품 속에서 어떤 표현인가 등을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