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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철학의 여러 단계들(1912),
브륑슈비크(1869-1944), P. 592.
제1부 구성의 시대 Période de constitution 01
제1권 산술학Arithmétique. 03
제2권 기하학Géométrie 43
제3권 무한소 분석Analyse infinitésimale 153
제2부 근대 시대 Période moderne 251
제4권 비판철학과 실증주의 La philosophie critique et le posivitisme 253
제12장 칸트의 수학적 철학La philosophie mathématique de Kant 253
제13장 오귀스트 꽁트의 수학철학 La philosophie mathématique d‘Auguste Comte 282
제14장 과학적 토대들의 변형Transformation des bases scientifiques 302
제5권 산술학의 진화 L’évolution de l’arithmétique 341
제15장 수의 독단론Le dogmatisme du nombre 344
제16장 산술학의 유명론Le nominalisme arithmétique 354
제6권 수리[논리]계산의 운동 L’mouvement de logistique 369
제17장 수학들의 수리[논리]계산 철학의 형성 Formation de la philosophie logistique des mathématiques 370
제18장 수리[논리]계산적 철학의 붕괴 Dissolution de la philosophie logistique 394 §234
제19장 절대적 연역의 관념 L’idée de la déduction absolue 411
제7권 수학적 지성과 진리 L’intelligence mathématique et la vérité 427
제20장 직관의 근대적 용어 La notion modern d’intuition 427
단원 A. 용어의 형성 Formation de la notion 430
[1절] 종교적 선입견들 Préoccupations religieuses 430 §259 §260
[2절] 형이상학적 직관 L’intuition métaphysique 433 §261
[3절] 과학들 속에서 직관 L’intuition dans les sciences 434 §262 §263 §264
단원 B. 근대 수학들의 방향정립 L’orientation des mathématiques modernes 437 §265
[1절] 고전적 수학들 속에서 직관L’intuition dans les mathématiques classiques 437 §266 §267
[2절] “선천적” 원리들의 비판 Critique des principes “a priori” 440 §268 §269 §270
[3절] 현대 수학자들에게서 직관 L’intuition dans les mathématiens contemporains 443 §271 §272
단원 C. 수학들에서 직관주의 운동의 해석L’interprétation du mouvement intuitioniste dans les mathématiques 447 §273
[1절] 심리학에 도움(의뢰) Recours à la psychologie 449 §274 §275
[2절] 물리학에 도움(의뢰) Recours à la physique 449 §276 §277 §278
[3절] 수학 철학의 문제 Le probleme de la philosophie mathematique 456 §279 §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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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권 수학적 지성과 진리 L’intelligence mathématique et la vérité 427
제20장 직관의 근대 용어 La notion modern d’intuition 427
단원 B. 근대 수학들의 방향정립L’orientation des mathématiques modernes 437
§265. [직관주의가 종교적 경험에 숨거나 (형이상학적) 과학주의에 넘겨주는 과정에서 수학은 어떤 변형작업을 감당했을까?]
[개관]
우리는 우리의 진술 속에서 수학의 고찰에 한번 더 접근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미 직관주의는 서로 다른 두 국면들(deux aspects) 하에서 우리에게 소개되었다. 사람들은 직관주의가 과학을 과학주의(le scientisme)에게 넘겨주었다는 것을, 그리고 직관주의는 종교적 경험 또는 감성적[미학적] 꿈의 초월적 영역 속으로 숨어버렸다는 것을, 믿을 수 있었다. 그러나 초기 도약의 힘 자체에 의해, 직관주의는 명백한 양보로 되돌아와야만 했고, 그리고 그의 절차들을 지성에게 속성을 부여한 절차들과 더불어 과학 속에서 대치하기 위하여 과학의 지평으로 내려와야 했다. 학설에 대해 가장 오랜 형식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가장 외부적인 형식이었던 과학에 대한 반동 대신에, 과학 자체의 두 가지 해석들 사이에 대립으로 대체되었다. 하나의 해석은 논리적 일반성과 기계론적 편견의 포로가 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각각의 분과학이 근거하는 대상의 특수성(la spécificité)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고, 탐구의 절차들을 대상의 고유한 성격들에게 적용하기에 조심하는 것이다. (437)
이제부터 직관주의적 운동의 원리를 판단하지 않고서, 그리고 사람들이 사회학에서 또는 심리학에서, 생물학에서 또는 물리학에서, 직관적 방법을 원용할 수 있었던 이런저런 주제에 관하여 취해야만 하는 방편을 판단하지 않고서, 이런 방법이 해방의 숨결과 풍부성의 숨결을 다른 과학들을 통해서 이행하게 했던 것은 분명하다. (437)
수학들은 자기들의 차례가 되어 비슷한 추세에 의해서 가로지를 수 있게 허용되지 않았던가? 어떤 의미에서는 과학의 반성만큼이나 오래된 것인 수학적 직관의 용어가, 결정적인 변형[형성]작업을 감당한 또는 더 정확하게는 완성한 직관주의적 철학의 승리하는 추진력에 기인하지 않았던가? (437)
1절 고전적 수학들 속에서 직관 L’intuition dans les mathématiques classiques 437
§266. [데카르트의 직관 대 빠스깔의 직관] - [직관: ‘보다’에서 출발하는가? 기하학적 이미지를 종합(적분)은 ‘보다’를 넘어서며, 이미지상으로 점과 선, 선과 면, 면과 부피 사이에 모순이 있다. 즉 적분의 계산에서 직관적 인식은 ‘보다’를 넘어서 고의적 협약이다. 이 협약의 직관이 빠스깔의 감정 직관과 대립된다. 이 직관은 무한을 계산하지 않고서 느낀다.]
고전 수학이 마주쳤던 직관의 잡다한 양태들을 몇마디로 상기하는 것이 좋겠다. (437)
직관은 그것의 기원적 의미에서 두 눈을 통해서 대상에 대한 이해이다. 수학적 인식은 직관일 것이다. 마치 감각적 인식이 직관인 것처럼, 그 인식이 이미지를 동반하는 용어들에 근거하는 한에서 그러하다. 이리하여 기하학은, 그리스인들이 이것을 구성했던 대로, 직관적 과학이다. 분석기하학의 발명가로부터 리만(Riemann, 1826-1866)과 소푸스 리(Sophus Lie, 1842–1899)에까지, 추상 수학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기하학적 표상을 사용했던 수학자들은 단어의 일상적 수용에 따라서 마치 직관적인자들로 간주되었다. (438)
그러나 여기서 이러한 수용에서 주목할만한 확장이 있다. 직관의 자료들에 대한 도움의 요청[수단]은 추론을 쉽게 하기위하여 생산되었을 뿐만이 아니다. 그것은 증명작업을 기대하거나 없거나 간에, 발견의 도구이다. “사람들이 제안된 부피(용적) 대신에 동등한 양의 액체로 대체 할 수 있을 때, 사람들은 액체 덩어리들이 제시하는 성질들을 이용하여, 사람들이 그것[부피]들에게 부여하고자 원하는 모든 형식들을 쉽게 다룰 수 있는, 두 부피들의 비교를 무매개적으로 확립한다.”마찬가지로 전통에 의해 말하자면, 갈릴레이가 가능한 만큼 동등한 두께로 된 금속 판들의 무게로서 사이클로이드(lacycloïde, 원의 한 점의 회전에 의한 곡선)의 구적분(la quadrature)의 정식을 발견했다. 이 정식은 일상적 사이클로이드의 면적과 생성적 원의 면적을 마치 구체적 실현작업처럼 제공했다. (438)
관념들의 동일한 순서 속에서, 아르키메데스의 방법론의 최근 발견은 적분 계산의 확립에서 역학적 직관들의 핵심적인 중요성을 강조했다. 르네상스시대에 불가분적인 것들의 학설은 갈릴레이의 동력학에 관련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순수하게 수학적인 이론처럼 구성되어서, 이런 학설이 몇 가지 고찰들에서 보면 새로운 역할을 직관에게 부여한다. 결국, 우리가 보아왔듯이 직관을 특징지우는 것은, 그럼에도 적분작업의 계산에 정확한 의미를 부여하게 해줄 근본적 요소를 소유하고 있지 않으면서, 사람들이 거기서 진실한 적분작업들을 실행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기하학적 이미지들의 사용에의해 미분화(la différenciation) 하지 않고서 지나간다. 그런데 이런 기하학적 이미지들은 정확하게 될 수 없다. 왜냐하면 나눌 수 없는 것은, 마치 선적이고 표면적인 요소처럼 취급됨과 동시에 첫째 경우에서 면적으로 둘째 경우에서 부피로 조성될 수 있는 이런 이중 성질을 갖는다. 아주 엄격하게 사물들을 다룸에 있어서는, 모순일 것이다. 그러나 파스칼이 그 모순을 제시했듯이, 이 모순은 언어의 생략(l‘ellipse, 수학에서 타원) 속에 있다. 모순은 고의적인 협약(convention expresse)으로 드러날 수 있다. 표면을 마치 선의 합계처럼 다루면서 나눌 수 없는 것들의 기하학이, 사람들이 원하고자 하는 것만큼 작은, 또 나눌 수 없는 것의 규정된 길이를 밑변으로 삼는, 사각형의 높이를 암시한다는 것을 매번 경고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런 암시는 적분 계산의 발전이 간단하게 멈추었던 난점들을 뒤집도록 허락하고, 그리고 나눌 수 없는 것을, 카발리에리(Cavalieri, 1598-1647) 또는 로베르발(Roberval, 1602-1675) 실행에 이르렀던 비교들과 합산들을 계산하기 위하여, 단순한 요소의 자격으로 사용하도록 허락한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 나눌 수 없는 것의 직관은 직관적 재현[표상]의 엄격한 법칙을 위반한다. 그리고 이런 위반 자체는 그것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너비의 명석 판명한 용어에 근거한 데카르트의 직관에 대하여, 빠스깔은 감정의 직관을 대립시켰다. 이 감정의 직관에 대한 원리들은 은연중에 남아있으나, 그러나 그것들은 논리적 거리낌들(les scrupules)을 내버리고서 무한의 정복을 위하여 감정에 대해 보다 민첩할 뿐이다. 가끔은 파라독사들 일지라도 수학을 무한의 영역에 적용하는 것을 주목한 이 귀결들을 따르면, 빠스깔은 마치 과학의 질성에서 유요한 것처럼 종교의 질서에서도 유효한 진리의 일반 학설을 구성하기에 이른다. 우리가 현대 직관주의에서 알릴 수 있을 가장 과감한 개념작업들에 길(la voie)이 열린다. (439)
§267.[추상적 용어들의 파라독사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대수학과 기하학은 달리 찾는다.]
그럼에도 17세기에 [사람들은] 이 길을 따라가지 않았었다. 우리들 시대에 와서 철학이 빵세로부터 끌어내었던 방편이 어떤 것이든지 간에, 엄격하게 역사적 관점으로부터, 나눌 수 없는 것들의 방법은, 마치 빠스칼이 행했던 것과 같이 재능있는 기술자의 손들 사이에서 경이로운 도구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사용법으로, 즉 라이프니츠의 분석학에 직면하여 제한된 범위로 남았다. 빠스깔의 직관은 건축의 구성작업에서 임시적인 찰나일 뿐이며, 이에 대한 지적 동역학은 단지 논리적 조화와 풍요성을 보증할 수 있었다. (439)
차이있는 요소을 분간하면서, 그리고 그 요소에게 새로운 알고리듬의 출발점이 되어야하는 추상적 표현을 부여하면서, 무한소 분석의 정초자들은 정의상으로 수평을 넓혔고 데카르트 방법의 권위를 강화하였다. 데카르트의 방법은 순석적 조합들과 기하학적 표상작용들의 상호 관계를 정의상으로 제시하고 있다. 과학자에게는 열려있는 길들의 하나 또는 다른 하나에 참여하게 하도록 과학자에게 허락하면서, [어떤] 길이 과학자에게 다음들을, 즉그에게 기하학의 영역으로 번역하도록 남아있는 대수학적 해결책들이든지, 분석적 정식을 아직 소유하지 못하였지만 해결할 수 있는 기하학적 해결책이든지를, 발언하도록 이끈다. 그러나 바로 거기에 발명의 질서 속에서 우발사고들이, 또는 규정된 언어를 선택하기를 강요한 진술의 개별성들이 있다. 사람들이 평행론의 원리를 유지하는 한, 대수학으로 확립된 명제 전체는 기하학으로 된 그것의 대항 부분[반대명제]을 가지고 있으며, 그리고 상호교환이 동등하게 진실일 것이다. (440)
2절 “선천적” 원리들의 비판Critique des principes “a priori” 440
§268. [직관은 현상에서 경계없은 무한계에서도 통용되어야 한다. 그 경계와 한계를 넘어서는 원리는, 수학의 정당성을 위해, 이미 연속성의 원리 또는 영속성의 원리를 요구한다. 이원리가 선천적과 연결될까?]
만일 평행론의 원리가, 또한 이 원리와 더불어 선천적원리들을 수단으로 모든 수학적 발견을 정당화하는 필연성가, 수학의 “황금시대”에 상응한다면, 과학이 고전적 이론들의 수평을 완전히 따라가 보면서 미래 탐구들의 방향정립에 관해 질문받았을 때, 그 원리는 문제로 제기되어야 했을 것이다. 과학이 옛 원리들의 장벽을 흔들려고, 또 방법의 개선과 과학의 확장이 작용되었야할 틈(la brèche, 돌파구)을 열려고 노력했던 것은, 한계의 경우들(les cas-limites)의 검토에 의해, 또 경계들(les frontières)의 연구에 의해서이다. 그러나 이때에 또한 사람들은 미리[사전에] 독창적 절차만을 주장할 수 있다. 정의된 재조작화에서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으면서 또 논리적 또는 수학적 사유의 일반적 전형에 근거하여 모델이 되는, 이 독창적 절차는 미지의 영역을 탐험하기를 허락한다. 반대로 다음도 가능한데, 즉 어떤 것이 그 방식으로 항상 존속한다고 하는데, 문제들이 우선 그 방식으로부터 제기되었고, 그리고 해결책들도 그 방식으로부터 얻어졌다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마치 특수한 각인을 태어나게 했던 천재의 지문을 표시하는 특수한 지문처럼, 과학의 이런저런 부분이 있다. 따라서 직관은 근대 철학자들이 직관에게 부여한 정확한 의미와 더불어 다시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 철학자들은 대상의 특수성에 알맞게 되어있는 방법을 지시하기도 하고, 또한 소위 말하는 논리적 연역법의 형식들에게 환원할 수 없었다고 할지라도 직관(elle)과 더불어 직관의 정확성의 증거에 기여하기도 한다. (440)
과학의 과정이 선천적 정당화의 필연성과 더불어 충돌 속으로 들어간다는 비판적 찰나를 고정하기 위하여, 우리는 두 개의 원리들을 기록 보고할 것이다. 하나는 구체적 기하학의 영역에서이고, 다른 하나는 추상적 분석이 영역에서인데, 이 원리들은 동일한 철학적 요구를 증거한다. 즉 뽕슬레(Poncelet, 1788-1867)의 연속성의 원리 또는 영속성의 원리와 한켈(Hankel, 1839-1873)[서른넷]의 형식적 법칙들의 영속성의 원리이다. (440)
§269. [뽕슬레의 직관을 초직관적이라 한다. 이는 초한수들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뽕슬레는 연역의 반대방향으로 전개되는 다양한 진행방향들에게 실재성이 부여하며, 이런 것을 직관이라 한다.]
쁘왕까레가 말하기를, “뽕슬레는 이 세기의 가장 직관적인 정신[학자]들 중의 하나였다. 그는 정열적으로 또 거의 뽐내기로 직관적 학자였다. 그는 연속성의 원리를 마치 그의 가장 과감한 개념작업처럼 간주했다. 그럼에도 이 원리는 감관의 증거에 근거하지 않았다. 오히려 쌍곡선(l’hyperbole)을 타원(l’ellipse)에 동화하는 것을 증거의 반대로 말했다.”사실상 퐁슬레(Poncelet, 1788-1867)는 직관에 연관하여, 카발리에리(Cavalieri, 1598-1647)의 입장과 비슷한 입장에 전념한다. 투영적 방법(la méthode projective)은, 마치 불간분적인 것들의 방법처럼,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재현작용은 근거유 있기를 멈춘 바로 거기에서 직관적인 재현작용에 의해 암시되었던 성질들을 길게 이어간다는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또한 사람들이 직관의 실재적 자료들 대신에, 외연적으로 직관이라 불릴 이상적 상상을 대체한다는 것을 요구한다. 데카르트의 평행론의 관점으로부터 또는, 모든 직관이 공간적 표상작용을 함축하는 칸트적 비판론의 관점으로부터, 우리가 빈터(Winter, 1871–1935)로부터 빌려온 표현에 따르면,뽕슬레의 직관은 초직관적(transintuitif)일 것이다. (441)
일상적 직관 기하학에 연관하여 특성을 초월적이게 하는 투영기하학의 특이한 성격을 뽕슬레가 인정했던 것은, 그 때 그가 공간에 관한 사변작업들의 기원을 찾아 순수하게 분석적 일반화 작업들로 거슬러 올라갔을 때이다.연역법이 일반적인 것에서 개별적인 것으로 가는 수세기 동안의 편견에 복종하면서, 진술 속에 엄격성에 도달하기 위하여, 그의 발견물들의 심리학적 발생을 감추는 것이, 그리고 보편적 범위를 가질 것이라고는 원리를 이 발견물로부터 도츨하는 것이, 필연적이라고 그는 믿었다. 이 때에 그의 독창적 진행방식의 방향(le sens)을 전도하면서, 그는 이 발견물들을 그가 다음처럼 불렀던 것의 표현에 종속시켰다. 마치 우리가 그것을 상기할 기회를 갖는 것처럼, 그 표현이란, 느낄 수 없는 계속에 의해 변화하는 크기들에 대한 수학적 법칙들의 무한정한 영속성 또는 연속성의 원리이다. 그리고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가 이미 보았듯이, 뽕슬레는 꼬쉬(Cauchy, 1789-1857)가 소개하면서 결정적이라고 한 반대들에게 제시했던 것이 정신과 자연의 보편적 법칙처럼 연속성의 공리를 선천적으로 환기하고자 한 것이다. (441)
연속성의 원리는 일반적이고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다. 그럼에도 뽕슬레가 이 원리를 가지고 만들었던 응용방식들은 정확했고 풍부했다. 이때부터 투영방식의 진실한 범위를 분간해내기 위하여 해야만 했던 것은 발명과 진술 사이에 방향/의미의 전도(cette inversion de sens)를 새로이 전도하는것이고, 또는 보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논리적 정식들의 폭정에게 저항하는 것이다. 이 폭정은 주장하기를 이런 의미의 전도를 부과하고 그리고 정식들의 자연적 질서 속에 진행방식들을 소개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학은 이런 진행방식들 덕분에 구성되었다. 심지어 이런 지적인 창조작업의 질서를 직관이라고 부르면서, 완전한 담론의 질서에 대립함으로써, 사람들은 잡다한 과학적 분과학들이 계속해서 채택했던 언어에 충실하고, 그리고 사람들은 아마도 수학적 직관의 실재성을 정당화한다. (442)
§270. [추상수학의 계산에서 알고리듬에 의한 여러 조합 방식은 보편적(직관적)이며, 일반적이다.]
순수 분석학의 진화가 우리에게 유비적 결론으로 인도하는 것 같다. 이런 진보는 여기서 완전수들에 관한 우선 효과적으로 이루어진 계산작업들의 증가하는 확장[외연]일 것이다. 더하기(+)와 동등성(=)의 근본적 정의들을 확립하면서, 또한 이 정의들 덕분에 이런 수들에게, 결합성(associativité, 결합법칙), 교환성(commutativité, 교환법칙), 분배성(distributivité, 분배법칙)이라는 성질[속성]들을 부여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면서, 당신은 사람들이 완전수들의 영역을 구성했다고 가정해보시라. 사람들은 수적인 조합들을 정의하면서, 그리고 이런 조합들이 산술적으로 요소들의 계산에 대해 근본적 성질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면서, 초기 영역에서 분수의, 음수의, 허수(상상)의, 무리수의 영으로 이행할 것이다. (442)
따라서 추상 수학의 발전은 개별적인 것에서 일반적인 것으로, 말하자면 계층의 논리학의 반대 방향으로 가는 방향[의미]으로 방향이 잡힐 것이다. 이러한 것으로부터, 전통적 질서의 요청들에 만족하기 위하여, 계속적인 일반화작용들이 합법적이라는 보편적 원리하에서 산술적 관계들의 증가하는 외연을 포섭하다(subsumer)라는 시도가 나온다. 그리고 그러한 것은 결과로서 형식적인 법칙들의 영속성 원리, 또는 한켈(1839-1873)의 원리의 이름하에 알려진 조작적인 형식들의영속성 원리의 역할이다. “보편적 산술학의 일반적 기호들에 의해 표현된 두 형식들이 동등가일 때, 이것들은 그대로 동등가로 남아있어야 한다. 기호들이 단순한 크기들을 지칭하는 것을 그만둘 때, 그리고 계산작업들은 어떤 내용을 받아들 것이다.” (442)
그런데 한켈(Hankel, 1839-1873)이 이런 원리를 근거로 자신의 모든 발걸음들을 규칙화하고자 원했을 것이고, 그리고 그는 원리가 유보없이 그리고 그것의 모든 보편성에서 응용될 수 없다는 것을 무매개적으로 인정한다. 결국 마치 그라스만(Grassmann, 1809-1877) 또는 해밀턴(Hamilton, 1805-1865)의 알고리듬들처럼, 알고리듬들을 고려하는 것이 편하다. 이 알고리듬들 안에서 교환성[상호호환성]의 성질은 곱셈을 위해서 보존되지 않는다. 그 알고리듬들 안에서 사람들은 AB = −BA를 갖는다. 그리고 정확히 말하자면, 그러한 한켈의 작품 자체 안에, 이런 보편적 산술학(cette aritmétique universelle)의, 즉 겉만 그럴듯한(spécieuse) 산술학의 가장 높은 발전을 표시하는 알고리듬들이 있다. 그는 이런 산술학으로부터 전통을 다시 다루고자 원했다. (443)
따라서 한켈의 정식은, 사람들이 원한다면, 경향의 지표(une indication de tendance), 방법의 규범(prescription)일 것이지만 원리는 전혀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원리 위에 과학의 체계를 구성하기 위해 토대를 만들 수 있다. 사람들이 그것[원리]에 대해 진술을 작성하는 어떤 신중함을 지니게 되면, 사람들은 수적인 한 종류에서 다른 종류로 이행에서 명제들은 앞선 체계와 양립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난다는 이런 사실을 회피할 수 없다. 예를 들어, 페아노(Peano, 1858-1932)가 그것을 관찰했던 대로, a + b > a 라는 부등성[비동등성]은 절대 수들에서는 진리이며 성질화된(qualifiés) 수들에서는 거짓이다. 마찬가지로 계산[계량]하는 상징주의의 동일한 법칙 안에서, 통상적인 기하학 안에서 선분[활꼴]들의 계량적[스칼라양의] 덧셈과 기하학적 계산의 벡터 양의 덧셈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벡터 계산에서 사람들은, 평면에서 AB와 BC의 방향이 어떤 것이라 하더라도, AB + BC = AC이라 하는데도 말이다. (443)
3절 현대수학자들에게서 직관 L’intuition dans les mathématiens contemporains 443
§271. [수학이 자연수의 배열처럼 생각하는 연속적 방향이, 운동의 방향을 지닌 영속성의 원리가 방법론을 달리하는 위상들을 열 것이다. 자연수라는 틀을 부셔버리다. ]
영속성의 원리들(les principes de permanence)의 비판은 과학의 역사에서 결정적인 전환을 표시한다. 기술의 지평을 넘어서지 않고서, 그 찰나[즈음]에 철학적 해석의 모든 선입견(toute préoccupation)을 물리치면서, 우리는 고전 수학이 그 자체로 부여했던 이미지의 전복에 곧 참석할 것이다. (443)
이런 이미지에 따르면, 수학은 조합들의 체계를 무한히 펼칠 수 있다. 그러나 이 체계는 원리들에 근거한다. 이 원리들로부터 수를 규정하는 것과 동시에 자연을 다퍼내는 것은 쉽다. 과학적 연역법의 모든 미래가, 비록 발명가들의 재능이 그것으로부터 지수(la puissance)를 늘여(prolonger, 확장하여)가는 것으로 보이는 것과는 거리가 멀지만, 공리들과 범주들의 정확한 목록 속에 미리 포함되어 있다. 데카르트는, 방정식(équation)의 용어와 너비(étendue)의 용어를 명석 판명한 이것들의 규범(maximum)으로 이끌면서, 이것들의 상호 적합성과 이것들의 내밀한 상관관계를 원리로서 제시하면서, 토대들을 확립했고, 인간적 과학의 한계들을 규정한다(prescrire). 라이프니츠는, “순서로 된 진보”의 그의 개념작업 즉 연속성의 원리(principe de continuité) 속에서, 추상적 분석의 정당화와 동시에 기하학적 재현작업의 정당화를 발견한다. 추상적 분석에서는 무한한 항목들이 계열 법칙의 통일성으로부터 도출된다. 그리고 기하학적 재현작업에서는 사람들은 한 점에서는 무한히 이웃하는 점으로 이행한다. (444)
사람들은 오늘날 어떻게 그러한 언어를 유지할 것인가? 철학적 사색들은 어떤 다른 특수화 없이 기하학자들의 공간 위에 근거하면서, 게다가 이 사색들은 공간을 가지고 실재성 또는 순수 관념 또는 직관 형식을 만드는데, 이런 철학적 사색들은 현실적 과학과 접촉을 상실했다. 에우클리데스의 계량적 공간은, 왜냐하면 그 공간이 에우클리데스적이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공간이 계량적일 뿐이기 때문에, 다른 전형들 옆에서 특별한 전형일 뿐이다. 그 공간은, 만일 사람들이 완성된 노력의 폭력성을 잘 표시하는 장점이 있는 이런 파라독사적인 표현을 감히 위험에 처하게 한다면, 관점(un point de vue)이 되었다. 게다가 상호 입장들의 질서만이 유지하는 상황의 기하학 이래로에우클리데스 체계의 명시적이든 암시적이든 요청들의 하나의 가설적 제거에 근거하여 확립될 수 있었던 “상상적” 기하학들의 각각에까지, 그것[각각]이 소위 말하는 연속성의 공리가 되었다고 하더라도,우리는 계속적으로 폭로되었던 다양한 관점들을 이미 암시했었다. (444)
다른 한편, 자치적인 학문이 된 분석학의 근대적 방향을 따라가기 위하여, 가장 일반적 틀들을, 예를들어 집합(ensemble)의 용어가 제공할 수 있는 틀을 참조하기에 충분하지 못하다. 과학이 가꿀 수 있는 영역을 서술하는 것은 다른 것이고, 과학이 수확할 수 있는 지평을, 특히 수확하도록 허락할 수단을 고정하는 지평[터전]을 제한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444)
이런 고려에서 보아, 마치 사람들이 어떤 에르미트(1822-1901)에게서와 어떤 바이에르스트라스(1815-1897)에게서 폭로했던 반성들처럼, 아무 것도 특성화되지 않는다. 에르미트는, 즉 배타적으로 기하학적 재현[표상작업]의 영역에서 쉽게 잘못 느끼는 종족의 분석가는,그럼에도 분석학에서 대상들의 과학을 본다. 이 대상들은 우리의 오성 밖에서 현존한다. 수학자들은 자연주의자의 관찰에 정확하게 비교할 수 있는 방법에 의해 대상들의 과학에 도달해야만 한다.분석가의 사유와 그의 상위 감각적 대상 사이에서 무매개적인 접촉의 감정은, 그가 발견물들을 혐오하는 만큼 본능적으로 그에게서는 매우 강하다. 이 발견물들은 분석적 사실들의 엄격한 탐구방식을 증거한다고 하더라도, 수학적 실재성들에 의해 형성된 조화로운 세계의 틀들을 부셔버렸다. 수학적 실재성들은 틀들의 동등성 또는 순수성을 위태롭게 할 위험에 처해 있다. 그는 허물없는 편지에서 썼다. “나는 파생되지 못한 연속적인 함수들의 슬픈 상처의 두려움(effroi)과 공포(horreur)와 더불어 방향을 바꾼다.” (445)
마찬가지로 소위 말하는 추문(스캔들)을 선동했던 자, 즉 바이에르스트라스는 함수들의 이론을, 특히 비합리적 수들의 고찰을, 내버려 두기를 거절한다. 그리고 그는 어떤 크로네커(Kronecker, 1823-1891)의 추상적 형식주의 안에서 해소된다. 크로네커에게서는 “완전수들 사이에 방정식들만이 있다는 것이 공리이다.”그[바이에르스트라스]는 또한, 사람들이 코발레브스키(Kowalevski, 1850-1891)에게 보낸 그의 편지에서 그것을 보듯이, 그 천재가 그의 총체성(integralite)에서 이해하고 또 새로운 길을 연 특수한 영역의 규정작업을 그 분석가에게 요구했다. “집합의 관점들은, 전체를 감싸면서, 그리고 더 높은 것을 향하여 또한 이상을 향하여 인도되어서, 야코비(acobi, 1804–1851)에 앞서서 아벨(Abel, 1802–1829)[스물일곱]을 놀라운 방식으로 자리를 마련해 준다.” 관점들은 수학자를 “시인”에 접근시킨다. 관점들이 “창조적 상상작용(Phantasie, 환상)으로 표출한 것 때문에, 나는 오히려 직관을 말해야 했을 것이다”라고 바이에르스타라스가 덧붙인다. (445)
§272. [수학의 확장: 자연수를 방정식과 다른 방정식을 다룬다.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의 보편 수학의 방식과 대립적인 페르마, 월리스, 파스칼로부터 리만에 이르게될 수학들의 진행방식이 있다. ]
이런 선언들의 범위를 기술적인 관점으로부터 평가하기 위하여, 이런 선언들이 과거의 몇몇 작품을 밝히고 또 우리 눈앞에 드러내는데 관심이 없지 않다. 예를 들어 17세기에, 그들의 방법에 대한 일반성을 선천적 체계로부터 도출했던 어떤 데카르트 또는 어떤 라이프니츠의 이외에도, 마치 파스칼(1623-1662), 월리스(Wallis, 1616-1703), 특히 페르마(Fermat, 1601-1665)같은 과학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근본적 공리들에 관한 또는 사유와 너비의 연관들에 관한 이론들을 불안하게 하지 않고서, 수학의 매우 다양한 영역들에 접근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수학적 대상들의 어떤 범주에 알맞는 특별한 법칙들을 직접적으로 파악하려고 애썼다. 그들은 범주에 규정된 문제들의 해결에 알맞은 절차들을 묶었다. 페르마의 가장 뚜렷한 발명들: 직각 좌표들의 사용, 접선들을 위한 방법, “디아판토스의 문제들”의 해결등은 깔끔하게 제한된 틀들 안에서 이렇게 소개되었다. 이 발명들은 풍부한 탐험을 위하여, 구성작업 자체를 위하여, 과학의 새로운 가지들의 기대치 않은 여정을 연다. (446)
이런 잡다한 작업들은 틀림 없이 통일성 없이 남아 있지 않는다. 그러나 아래 둘은 다른 것이다. 한편의 통일성이 있다. 사람드은 탐구의 출발점에 그 통일성을 위치시켰고, 통일성은 과학적 분과학문들의 공통적 특성들에만 지지를 받을 수 있을 뿐이다. 다른 한편의 통일성도 있다. 사람들은 발견의 끝에 이 통일성을 도달하게 할 것이며, 마치 사물들의 자연에 기초된 결과처럼 말이다. 수들의 조합들을 마치 토대로서 다루면서, 이렇게 다음 두가지가 블레즈 빠스깔에 이른다: 즉 어떻게 수적인 지수들의 합산의 문제가 연속적 크기들의 차원들에 상대적인 문제들을 재결합하는지를 제시하는 것, 그리고 “연결에 의해 통일성의 다정한 자연이 가장 멀리 있는 겉보기의 사물들을 재통합하였는데도, 아직도 충분히 찬양받지 못할 그 연결”을 유명하게 하는 것, 이 두 가지이다. (446)
중요한 찰나들, 근대 수학의 발전에서 장엄한 순간들은, 두 영역들이 그것들 자체로서 지금까지 잘 교육받았으며, 결정적인 제한에 예정된 것으로 보였던 그런 순간들이다. 그 두 영역들은 단번에 접촉에 들어가며, 서로 기대치 않은 도움을 주고 받는다. [하나는] 라그랑쥬(Lagrange, 1736-1813)가 확립한 찰나이다: 대수 방정식들을 위한 해법의 일반적 조건들의 연구가 소위 풀어놓은 방정식의 근들 사이에 교환들을 참작[고려]으로, 그리고 이 교환이 변할 수 없이 남아있는 함수들의 규정작업으로 귀착한다. 대수학에 의해 제기된 문제는 “조합들의 일종의 계산으로 … 환원 되었다.”길은 갈르와(Galois, 1811-1832)의 근본적 발견물들에게 그리고 일반적인 군(群)론에게 열렸다. (446)
[다른 하나는] 리만(Riemann, 1826-1866)이 논평들을 독점하는찰나이다. 이 논평들은 겉보기에 “매우 어린애 같은” 그리고 과학보다 더 놀이에 가까운 방식인데, 임의적으로 어떤 표면을 변형하는(déformer) 가능성 위에 근거한다. [그래서] “그 변형작업이 완전하게 연속되기만 한다면, 또 변형작업이 찟기(la déchirure)도 땜질(la soudure)도 도입하지 않는다면, 그 변형작업이 대수방정식 함수들의 이론을 새롭게 함[개선함]을 다른 것보다 결코 적지 않은 것을 끌어낸다.” (447)
달리 말하면, 데카르트에서 오귀스트 꽁뜨까지 철학자는 수학(lamathématique) 위에,말하자면 철학자가 일반적으로 대상과 방법을 정의 하는 과학 위에,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으며, 철학자는 과학으로부터 선천적으로다른 부분들을 열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오늘난 반대로, 우선 수학들이(lesmathématiques), 말하자면 개별적 용어들에 근거한 일련의 분과학문들이 있었던 것 같다. 이 용어들은 정확성을 가지고 제한되었으며, 엄격성을 가지고 연쇄로 이어졌다. 그러고 나서 잘 규정된 영역들 사이에 소통과 가지치기의 천 개의 길들은 방법들의 배열을 제시하기에, 또 그것들의 적용의 수평을 넓히기에, 새로운 해법 또는 새로운 문제를 자극하기에, 이를 것이다.만일 사람들이 과학의 외부적 표면에 남아있는 보편적 알고리듬의 시도를 멀리한다면, 이는, 클라인(Felix Klein, 1849-1925)이 이를 제시했던 대로,근대 수학들의 발전을 지배하는 계속적인 두진행방식이다. (447) (11:15, 59S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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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 아르키메데스(Archimède de Syracuse, Ἀρχιμήδης, 전287경-212경), 고대 시실리에서 활동한 라틴 물리학자, 천문학자, 수학자, 기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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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디오판토스(Diophante d'Alexandrie, Διόφαντος ὁ Ἀλεξανδρεύς, 2-3세기, 150?-), 알렉산드리아에서 그리스 언어로 쓴 수학자. 산술학자.
1564 갈릴레이(Galilée, it. Galileo Galilei, 1564-1642) 피사(Pisa)에서 태어나, 피렌쩨의 아르세트리(Arcetri)동네에서 세상을 떴다. 이탈리아 수학자, 기하학자, 천문학자.
1596 데까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 프랑스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
1598 카발리에리(Bonaventura Francesco Cavalieri, lat. Cavalerius, 1598-1647), 이탈리아 수학자, 기하학자, 천문학자. 대학교수.
1601 페르마(Pierre de Fermat, 1601-1665), 프랑스 변호사, 수학자. 1602 로베르발(Gilles Personne de Roberval, 1602-1675), 프랑스 수학자, 물리학자.
1616 존 월리스(John Wallis, 1616-1703), 영국의 수학자.
1623 빠스칼(Blaise Pascal, 1623-1662), 프랑스 박학다식(un polymathe), 수학자, 물리학자, 발명가, 철학자, 도덕론자, 신학자.
1646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 독일 철학자, 수학자, 논리학자, 외교관, 역사가, 사서. 문헌학자. Nouveaux Essais sur l'entendement humain, 1704(1765 출판)는 로크의 Essai sur l'entendement humain, 1689)에 대한 반박문이다.
1736 라그랑쥬(Joseph Louis de Lagrange, en it. Giuseppe Luigi Lagrangia, 1736-1813), 이탈리아 수학자, 역학자, 천문학자. 사르데냐 왕국 출신 프랑스 귀화.
1788 뽕슬레(Jean-Victor Poncelet, 1788-1867), 프랑스 수학자, 기술자, 장군, 기하학자.
1789 꼬쉬(Augustin Louis, baron Cauchy, 1789-1857) 프랑스 수학자, 과학아카데미 회원, 에콜폴리테크니크 교수.
1801 꾸르노(Antoine Augustin Cournot, 1801-1877), 프랑스 경제학자, 수학자, 철학자. 독점, 복점, 완전협력의 모델들을 정식화하였다.
1802 아벨(Niels Henrik Abel, 1802–1829)[스물일곱], 노르웨이 수학자. 수계열들의 수렴(la semi-convergence des séries numériques),
1804 야코비(Carl Gustav Jacob Jacobi, 1804–1851), 독일의 수학자, 타원 함수, 역학, 미분 방정식, 행렬식 및 수론에 근본적인 기여.
1805 해밀턴(William Rowan Hamilton, 1805-1865), 아일랜드 수학자, 물리학자, 천문학자. 4차원과 벡터(quaternions et des vecteurs)에 기여했다.
1809 그라스만(Hermann Günther Grassmann, 1809-1877), 프러시아 수학자, 인도연구자. 언어학자, 물리학자, 네오휴머니스트.
1811 갈르와(Évariste Galois, 1811-1832)[스물하나], 프랑스 수학자.
1815 바이에르스트라스(Karl (Theodor Wilhelm) Weierstrass, Weierstraß, 1815-1897) 독일 수학자.
1819 세레(Joseph Serret, 1819-1885), 프랑스 수학자, 천문학자.
1822 에르미트(Charles Hermite, 1822-1901) 프랑스 수학자. 수들 이론, 4각형론(les formes quadratiques), 수직의 다항식(les polynômes orthogonaux).
1823 크로네커(Leopold Kronecker, 1823-1891), 독일의 수학자, 논리학자. .
1826 리만(Georg Friedrich) Bernhard Riemann, 1826-1866), 독일 수학자, 위상학 미분기하학. 비유클리드 기하학 성립.
1839 한켈(Hermann Hankel, 1839-1873)[서른넷], 독일 수학자.
1842 리(Marius Sophus Lie, 1842–1899), 노르웨이 수학자. 연속성 체계를 미분방정식에, 그리고 대수학에 적용.
1842 다르부(Jean Gaston Darboux, 1842–1917), 프랑스 수학자.
1846 미탁-레플러(Magnus Gustaf (Gösta) Mittag-Leffler, 1846-1927) 스웨덴 수학자.
1849 클라인(Felix Klein, 1849-1925), 독일 수학자. 1868년 새로운 공간 기하학(Neue Geometrie des Raumes), 이 공간에 플뤽커(Julius Plücker, 1801-1868)에게 주의를 끌었으며, 플뤼커가 4차원 공간으로 이용했다고 한다. // Cf. 클라인(Morris Kline, 1908–1992), 미국 수학교수, 수학사가. 수학의 대중화에 힘씀.
1850 코발레브스키(Sofia Vassilievna Kovalevskaïa / Sophie Kowalevski, 1850-1891), 러시아 여성 수학자.
1854 쁘왕까레(Henri Poincaré, 1854-1912), 프랑스 수학자, 물리학자, 기술자, 철학자.
1856 스틸어스(Thomas Joannes Stieltjes, 1856-1894), 네델란드 수학자.
1858 페아노(Giuseppe Peano, 1858-1932), 이탈리아 수학자, 언어학자. Formulaire de mathématiques, 1895(참여자: Giovanni Vailati (en), Mario Pieri, Alessandro Padoa, Giovanni Vacca, Gino Fano, Cesare Burali-Forti, etc)
1865 아다마르(Jacques Salomon Hadamard, 1865-1963), 프랑스 수학자.
1866 스트로브스키(Fortunat Joseph Strowski de Robkowa, 1866-1952) 프랑스 문학사가, 수필가. 문예비평가.
1871 빈터(Maximilien Winter, 1871–1935), 프랑스 철학자, 법률가. La méthode dans la philosophie des mathématiques,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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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성의 원리들(les principes de continuité)는 라이프니츠(Leibniz)에 의해 제시되었고, 코시(Cauchy, 1789-1857)와 바이어슈트라스(Weierstrass, 1815-1897)) 등에 의해 극한 개념과 ε-δ논법으로 엄밀하게 형식화되면서 현대의 함수 연속성 개념으로 발전했다. <뽕슬레(Poncelet, 1788-1867)에서 전개되었고>
영속성의 원리들(les principes de permanence) 19세기 영국 피콕(George Peacock, 1791–1858)이 처음 구상하고 제시하였으며, 이후 독일의 수학자 한켈(Hermann Hankel 1839-1873)이 1867년에 명확하게 체계화하고 명명했다. <페아노(Peano, 1858-1932)로 이어질 것이다.>
참조: 통일성은 원리라고 말하지 않을 것인가? 통일성 또는 완전성을 주장하는 이들이 있을 수 있고, 그리고 생물학과 심리학의 지속의 원리가 있을 수 있고, 자연의 자발성에 의한 플라노메네 아이티아의 필연성의 자연(원리)이 있을 것이다.
(13:17, 59SLF) (11:39, 59SM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