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중의 陰
마음이라고 한다.
마음이라는 것은 心 이라 쓰며 나눌 小 더하기 있을 , 이다
즉 나누고 있다 라는 뜻이다.
그러면 무엇을 나누고 있음인가.
나눈다면 서로 연결이 되는 것일 것이며
그 연결의 대상은 모든 사물의 마음일 것이다.
이젠 저자가 누군지 까먹었지만 누군가가 쓴 글이 생각난다.
산속에 있는 커다란 바위가 있는데 아주 약간의 낮은 인지력의 의식이 있다고 하자.
그 바위틈에 어느날 포수의 총부리를 피해 새가 한마리 숨어서 목숨을 건졌다면
그 새는 바위에게 무슨 신통력쯤은 아니더라도 감사의 마음이 있게 되면서
그런 일이 발생할때마다 바위에 깃들이면서 계속적인 감사의 마음이 바위에
인지하게끔 발전하게 되며 이윽고 어느날엔가는 바위 스스로 생각하기를
자신이 무슨 대단한 존재라도 되는 양 뻐기게 된다는 것이다.
ㅎㅎ....
높은 산에 올라보면 그런 바위밑에 촛불과 몇개의 과일과 소줏병이 나뒹굴게 되는 것을
더러 볼수 있는 연유인것이다.
이처럼 인지력이 낮은 바위도 이윽고는 뻐기게 되는데 사람인 이상 말할나위가 없을 것이다.
물론 작금의 상황도 그러한것이지만
작금의 상황이 한스러워 이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이를 응용해 우리들도 뻐길수 있는 존재 근처라도 가보고자 하는 이야기이다.
기천수련자라면 반드시 하고 있는 내가신장의 심법이야기를 하고자 함인 것으로
내가신장 수련은 초심자는 3분 정도로 시작한다.
처음엔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서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저 끙끙거리기만 하다가
서너달 안에 5분 벽을 돌파하면서 고통과 타협하는 놈 , 고통을 애써 밀어버리려 노력하는 놈.
그저 잊어버리려 하는 놈 ....등등이 있는데
이중.... 고통을 잊어버리려 하는 방법을 여기서 찾아보고자 한다.
왜 그런고 하니 마음이라는 것도 훈련하기 나름인지라
그 훈련방법과 수련 정도에 따라 정신력 혹은 영의 성장을 바랄수 있기 때문이다.
(영은 절대로 그냥 성장하지를 않는다. 아무리 엄청난 지식을 섭취한다 해도 그것은 그저 지식일뿐
영의 성장은 아닌것이다. 영의 표현은 혼으로 나타나고 혼의 표현은 육체이다)
일단 내가신장을 서면서 여러 생각이 떠오를 때 그것을 객관화 할수 있게 되면
초심을 벗어날수 있다.
방법은 고통하고 있는 자신이 자신이 아닌것오로 여길수 있게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날인가는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는 또 다른 자신을 느끼게 된다.
혹자는 이것을 유체이탈이라는 엄청난 경지라고 하는데 천만에 어림도 없는 소리이다.
물론 가능도 할것이라 사료되고는 있지만
우리는 그런 쓰잘데기 없는 짓거리는 하지 말도록 하자.
유체이탈해서 무슨 이득이 있다고 그런 얼토당토한 짓을 하겠는가 말이다.
이 단계에 오른 다음엔 하나의 생각을 떠올린 다음 일체의 다른 생각은 하지 않고
오로지 그 하나의 생각에만 매달리기를 하면 십분벽을 돌파한다.
십분벽을 돌파하면서 하나의 생각에만 집중할수 있다면 상당한 집중력을 갖추게 된것이니
이제부터는 몸공부를 통한 마음 나누기에 들어 갈수 있다.
즉 자신의 마음을 부릴수 있는 기초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모공열기를 하기 시작해야 함인데
일단 여기까지만 같이 하는 것으로 시작해보자.
롸잇 나우!
첫댓글 3분도 죽을 맛인데…;;;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기적을 느끼는데…ㅎㅎ;;
ㅎㅎ..그러면 장수하는 것이네요
@道命
참 고마운 수련법입니다. 감사합니다!